44강 : 셰인의 실수

***
“내가 너무 말이 심했나? 그렇게 말할 건 아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수업이 종료된 후,
킴벌리는 노릭과 걸으며 계획에 관해 상의하고 있었다.
킴벌리는 자신이 한 말이 프루디에게 그냥 상처로만 남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프루디의 기가 너무 죽으면 어떡하지?”
“위스퍼벨 양을 걱정하시는군요.”
“당연하지! 아무리 의도가 독려라고는 하지만 이건 극약처방에 가깝다고. 선을 넘어 버리면 괴롭힘이나 다를 게 없게 돼.”
“하하···”
노릭은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킴벌리의 계획에 대해 더 큰 신뢰를 가지고 있는 건 킴벌리 자신보다 노릭인 것 같았다.
“눈을 보면 그럴 것 같지는 않던데요.”
“응? 눈?”
“교수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위스퍼벨 양의 눈을 봤어요. 살아 있었습니다. 아주 쨍쨍하게요. 정말로 작은 태양 같더군요.”
“어, 그랬어?”
“하하. 그 감정이 적개심인지 승부욕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요.”
‘그렇다니 정말로 다행이다.’라고 킴벌리는 생각했다.
그가 아는 것에 기반해도 프루디는 이 정도로 기가 죽을 학생은 아니었다.
‘하여간 나도 쓸데없는 고민이 많다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노릭에게서 걱정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위스퍼벨 양은 강해요. 마음이 강한 만큼 그 힘도 강대하죠.”
“확실히, 그렇긴 하지.”
“비록 지금까지는 허를 찔려 패배했을지라도 앞으로는 제가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음, 프루디가 널 추월할지도 모른다는 말이지?”
“네. 그때의 대책은···”
노릭은 말을 하다가 말았다.
그리고 빙긋 웃었다.
어차피 킴벌리라면 당연히 계획이 있을 텐데, 그걸 굳이 묻는 건 우스운 짓이라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킴벌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난 네 성장에도 감탄하고 있어. 프루디가 널 넘는 건 쉽지 않을 거다. 프루디가 성장하는 만큼 너도 성장할 테니까.”
“그건 그러니까··· 절 인정한다는 말씀인가요?”
“물론이다. 네게 별로 해준 게 없는데도 넌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어. 난 너를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노릭은 킴벌리의 인정이 기뻤다.
그동안 받았던 모든 비제의 찬사보다도 훨씬.
“그렇군요······.”
“물론 대책도 없는 건 아니야.”
“후훗, 교수님이라면 당연히 그러시겠죠.”
“괜히 기대받는 거 같아서 부담스럽네. 하여튼 걱정하지 않아도 돼. 곧 너와 프루디의 페어는 해체될 거거든.”
“그건 저 말고 다른 짝을 준다는 건가요?”
“맞아. 정확히는 모든 학생이 페어를 다시 짜게 될 거야.”
그 말을 듣고 노릭은 고개를 갸웃댔다.
“그럼 반발이 있을 텐데요.”
“아니. 아이들은 자기 입으로 내게 페어를 바꿔 달라고 말하게 될 거다.”
“역시··· 교수님께서는 계획이 다 있으시군요.”
노릭은 깊이 감탄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복도 저편의 누군가를 발견했다.
“아, 새로운 손님이네요. 저는 다른 길로 가보겠습니다.”
“엉? 왜.”
“제가 들키면 곤란하실 수 있으니까요. 저는 그런 검이 아닌가요?”
그리고 노릭은 눈웃음과 함께 복도의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 직후 킴벌리는 그 ‘새로운 손님’과 마주쳤다.
“오. 이런 데서 마주치다니 우연이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건 우연이라기보단 필연일 것이었다.
이곳은 킴벌리의 교수실 근처였으니까.
아이린은 직접 킴벌리를 찾아온 것이다.
“어. 용건이 있어서.”
아이린은 묘한 표정으로 킴벌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킴벌리는 뭔지 알았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아. 사샤의 이야기지? 만나 본 거야?”
“어··· 응.”
아이린은 뭔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됐어?”
“···결론만 말하면···”
“말하면?”
“망했어.”
“!?”
‘뭣! 망했다고?!’
사샤와 아이린은 사이가 안 좋았던 건가?
완전히 거절당한 건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온갖 생각이 킴벌리를 스쳐 갔다.
그는 가까스로 정신을 되찾고 아이린에게 질문했다.
“왜··· 왜 망했어?”
“그게··· 모르겠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말하자면 좀 긴데, 어떻게 할래···?”
그렇게 말하며 아이린은 킴벌리의 교수실 쪽을 돌아보았다.
일단 킴벌리는 그녀의 제안에 따라 교수실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
저번에 말했듯이 나는 사샤와 좀 알아.
그리 친하지도 않고, 본과에 와서는 보기도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사샤는 좋아하니까.
그 녀석은 아카데미에 정말 몇 안 되는 정말 좋은 녀석이야.
어쨌든 나는 사샤가 소속된 학회를 알고 있어서, 방과 후에 그쪽으로 찾아갔어.
운이 좋게도 사샤는 거기 있더라.
혼자 마술연구 같은 거에 몰두하고 있었어.
“사샤.”
“응? 누구··· 린···!? 와 정말 오랜만이네.”
사샤는 따듯한 미소로 날 맞아줬어.
그리고 지팡이를 짚으며 일어났지.
걔는 불편한 몸으로 나한테 다가와서 날 껴안아 줬어.
나는 그런 사샤에게 물었지.
“뭐 하고 있었어? 혼자서.”
“응. 곧 학회대항전이 있잖아. 그거 준비.”
“근데 회원들은?”
“응··· 그건 말이지. 그냥··· 그렇게 됐어.”
사샤는 웃음으로 얼버무리려고 했지만,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어.
당신도 애들 뒷조사 하는 게 직업이니까 알겠지만, 사샤는 예과 졸업시험에서 영구적인 장애를 얻었어.
다리를 다쳤는데 치유가 늦는 바람에···
치유 기적으로도 왼쪽 다리가 불구가 되는 걸 막을 수는 없었지.
그런데 사샤가 속한 학회의 회장은 사샤 본인이었어.
그리고 그 학회는 사샤의 카리스마로 굴러가는 집단이었던 거겠지.
사샤가 약해지니까 다들 떠나버린 거야.
장애를 얻은 데다가 폐기 예정자로 지정되기까지 했으니.
그래서 나는 사샤에게 말했어.
“···하지만 학회대항전은 연구 성과만 가지고 경쟁하는 데가 아니잖아.”
“응. 그렇지.”
“3명이 한 팀으로 싸우는 경기도 있어. 다 혼자 할 셈이야?”
“···응. 아쉽게도. 혼자 노력해 볼 거야. 성과를 내야 모두가 돌아올 테니까. 덤으로 나도 폐기를 피할 수 있고.”
사샤는 언제나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애였어.
그래서 경쟁이 아니라 다 같이 문제를 해쳐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지.
하지만 그래서 자기 문제도, 모두의 문제도 혼자 떠안으려 했어.
“그건 너무 무모해. 같이 특별반으로 돌아가자. 거기서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 킴벌리라면 분명히 무슨 생각이 있을 거야.”
“···!”
사샤는 내 말에 놀란 듯했어.
잠깐 눈이 커졌다가, 도로 돌아왔지.
정확히는 킴벌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였다고 생각해.
“역시··· 그게 용건이었구나?”
“그거 들었어? 벌써 유진은 폐기를 피했어. 나도 성적이 훨씬 개선되고 있고.”
하지만 사샤에게서 돌아온 건 거부의 말이었어.
“미안해.”
“왜 미안하다는 거야? 혹시 무슨 소문 때문에 킴벌리가 무서운 거라면······.”
“아니야. 이건 내 문제고, 내가 해결해야 해. 누군가의 손을 빌린다면, 그건 완전한 해결이 아니게 돼버려··· 아마, 교수님도 그렇게 생각하시겠지.”
분명히 사샤는 그렇게 말했어.
마치 선생을 안다는 듯이 말이야.
“너··· 킴벌리 교수가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어?”
하지만 사샤는 그 질문에도 고개를 저을 뿐이었어.
그리고 걔는 물었어.
“아니··· 전혀··· 모르겠어. 지금의 킴벌리 교수님은 어떤 분이야? 좋은 분이니?”
‘지금의 킴벌리’,
나는 그걸 말실수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냥 이렇게 말······.
아니, 어떻게 말했는지는···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지.
하여튼 나는 선생이 사샤에게 도움이 될 거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했어.
하지만 그 말은 오히려 더 사샤에게 충격이 된 것 같아.
이유는 모르겠어.
단지 사샤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어.
“그래? 잘 됐다······.”
“그럼 돌아가면 되는······.”
“미안해. 나는 정말로 갈 수 없어. 기껏 찾아와 줬는데, 정말로 미안해.”
그 말을 끝으로 사샤는 입을 다물어버렸어.
사샤는 다정하지만 한 번 정한 일에 관해서는 타협하지 않는 면도 있어.
걔의 다정함도 그런 강한 마음으로 지켜 온 거겠지.
난 그걸 아니까, 그냥 돌아오는 수밖에는 없었어.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석연치 않은 게 한 구석이 아니야.
***
그렇게 아이린과 사샤 사이에 있었던 짧은 이야기가 끝을 맺었다.
킴벌리는 듣는 도중부터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뇌내 설정집에서 사샤의 항목을 꺼내 처음부터 다시 탐독했다.
사샤.
알렉산드리나 ‘사샤’ 이오시포브나 미코얀.
전 예과 마술학부의 학생회장.
과거엔 뛰어났으나, 졸업시험에서 장애를 얻었고, 성격은 선하나 완고한 면이 있고··· 등등등.
원작이 제공하는 사샤에 관한 설명은 거의 아이린의 이야기와 일치하고 있었다.
단 하나.
킴벌리라는 변인을 제외하면.
그리고 아이린은 바로 그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선생··· 말해줘. 과거의 선생과 사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 아니야?”
“······.”
하지만 킴벌리는 거기 대답해 줄 수 없었다.
‘그 과거의 선생이라는 게 제가 아니거든요···?’
과거의 킴벌리는 킴벌리가 아니라 ‘셰인’이라는 별개의 존재였다.
셰인이 한 일에 관해 킴벌리가 아는 건 셰인이 남긴 문건을 통해 파악한 극히 일부의 정보뿐이다.
그래서 킴벌리는 솔직히 대답했다.
“아니··· 아무 일도 없었을 거야. 있었다 해도 기억이 나지 않아.”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네, 역시··· 선생이 사샤에게 나쁜 짓을 했을 리는 없겠지.”
의외로 아이린은 시원하게 이해해 주었다.
킴벌리도 정말로 사샤와 셰인 간에 어떤 나쁜 일이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킴벌리는 셰인의 기록에서 그가 누굴 괴롭힌 흔적 같은 건 찾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반드시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됐다.
‘이런 예상외의 변수가 터진 이상 신속하게 해결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비제와 기생자의 일처럼 되고 말 거야.’
“하여간··· 사샤에 관해 알아봐 줘서 고맙다. 다음에는 내가 직접 찾아가 봐야겠어.”
“응.”
“그럼 난 들를 데가 있어서 먼저 일어나보마.”
“잠깐, 선생···”
“응?”
킴벌리는 일어서려다 그녀의 말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
“뭔데?”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아이린은 킴벌리보다 먼저 자리를 떠나버렸다.
“뭐야. 싱겁기는.”
그 뒤에 킴벌리가 향한 곳은 행정동이었다.
사샤와 관련해서 확인할 게 있었다.
킴벌리는 찾은 파일의 페이지를 빠르게 넘겼다.
그 파일은 과거에 셰인이 담당했던 강의 기록이었다.
셰인의 강의를 수강한 학생 중에 사샤가 있었는지 찾아볼 생각이었다.
‘있어··· 딱 하나.’
‘독립적 마술장치의 이해.’
이 과목에서 셰인과 사샤는 단 한 번 만났다.
하지만 이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사샤 본인에게 묻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이린의 제안이 거부당한 건 그냥 사샤가 타인에게 의존하는 걸 극도로 꺼리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 수도 있어.’
그렇다면 킴벌리가 말로 설득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곧장 사샤에게로 향했다.
본과 마술학부 학생회관 3층,
달의 마술학회 회실.
아마 오늘도 사샤는 거기에 있을 터였다.
‘난 유진과 아이린도 동시에 구해냈어. 이번엔 프루디와 사샤다. 둘 다 놓칠 수 없어···!’
그런 결의에 찬 채, 킴벌리는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3층 복도에 들어선 순간···
한 학생과 마주쳤다.
눈처럼 하얀 백발에 지팡이를 짚은 손.
사샤였다.
“아, 네가 사샤······.”
“······!”
킴벌리가 말을 걸려던 순간,
사샤는 몇 걸음 그에게서 멀어졌다.
지팡이를 또각거리면서도 황급히.
그녀의 얼굴에는 여러 번 쓴 수채화 용의 물통처럼 온갖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서 그 감정들이 하나씩, 뚝뚝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혼란, -툭
비애, -툭
혹은 분노. -투둑
“사샤···?”
그리고 킴벌리가 그녀의 이름을 한 번 더 불렀을 때.
사샤는 복도 반대편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또각-또각-또각-또각-
그 속도는 불편한 다리로 인해 현저히 느렸다.
하지만 킴벌리는 그녀를 따라갈 수 없었다.
이유는 둘이었다.
하나는 그녀가 킴벌리를 피하려다 넘어질까봐.
또 하나는 그녀가 이 복도에 흘린 감정의 잔재가 킴벌리를 막아서고 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이건······.’
킴벌리는 복도를 적신 사샤의 눈물을 내려다보았다.
그건 킴벌리와 사샤 사이에 놓인 광막한 감정의 골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킴벌리는 사샤에게 섣불리 다가선다면 모든 게 무너질 수도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원인을, 킴벌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
‘셰인···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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