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 페어 교환 (1)

킴벌리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두 사람은 어리둥절했다.
“학회대항전이요? 우린 학회도 없잖아요. 무슨 대항전이에요.”
“학회야 만들면 되는 거지. 잊은 모양인데 난 본과 수교수라고. 학회 급조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킴벌리는 유진의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이린이 의문을 표했다.
“우린 고작 두 명이야. 딱히 연구한 것도 없고. 대항전에 나가면 오히려 평가만 떨어질 거라고.”
“그거야 적임자를 영입하면 그만이지.”
“적임자···? 혹시 선생, 그걸 빌미로 다시 사샤한테 접근할 생각은 아니겠지. 저번에도 말했지만 사샤는 고집이 세. 한 번 결정한 건 좀처럼 굽히지 않는다고.”
“그래. 그렇다고 했었지.”
“그걸 알면 왜 이런 시도를 하려는 거야? 나도 이미 학회대항전을 도와주겠다는 제안은 해봤어. 당연히 거절당했고. 우리가 또 찾아가 봐야 똑같이 거절당할 거야.”
거기에 대해서는 킴벌리도 동의하는 바였다.
‘마음과 심리’. 지금까지 킴벌리는 그 차이에 관해 무지한 상태였다.
그 점을 깨달은 뒤로 킴벌리는 그 둘의 차이에 관해 골몰해 보았다.
그리고 사샤의 그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이라면··· 조금 알 것도 같아. 사샤의 마음을.’
정말로 사샤가 킴벌리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면, 그녀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킴벌리가 사샤 대신 제자로 들인 유진이나 아이린에 대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그렇기에 유진이나 아이린을 사샤에게 접근시키는 건 하책 중의 하책이야.’
“아이린, 네 말이 맞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동의한다.”
“그렇다면 학회대항전은 포기하는······.”
“아니, 나갈 거다.”
“뭐어?”
아이린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러나 다시 화를 내지는 않았다.
유진이 아이린의 어깨를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야. 좀 진정해 봐.”
“뭘 진정이야··· 화낸 적 없어.”
“사샤한테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네 마음은 나도 알아. 걔는 좋은 애니까.”
유진은 말을 이어갔다.
그의 시선이 킴벌리에게로 옮겨졌다.
“하지만 교수님이잖아. 뭔가 생각이 있으시겠지.”
‘날 그렇게까지 믿어주다니 감동이다. 이 자식.’
킴벌리는 마음속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래. 날 좀 믿어다오. 처음부터 너희를 사샤한테 접근시킬 생각은 없었어. 우린 우리끼리 학회대항전에 나갈 거다. 사샤에게는 다른 두 명을 붙일 거고.”
그러자 유진이 또 딴죽을 걸었다.
“어··· 그러면 학회를 두 개를 완성하겠다는 말씀인데··· 학회당 최소 세 명이니까··· 사샤, 아이린, 저를 빼도 세 명이 더 필요한데요? 근데 교수님 저희 말고 아는 학생이 있긴 해요···?”
“뭐야. 날 믿어주기로 한 거 아니었냐!?”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현실성 없는 전략을······.”
“인마, 현실성이 없기는. 이 교수님께서는 이미 후보도 정해놨다 이 말이야.”
“허어. 안 믿기는데. 그래서 누군데요?”
킴벌리는 손바닥을 펴고 두 손가락을 꼽았다.
“두 명은 너희도 아는 사람.”
그리고 한 손가락을 더 꼽았다.
“하지만 나머지 한 명은 너희가 짐작도 못할 거다. 기대하라고!”
***
얼마 뒤, 소연무장.
늘 그렇듯 이곳에서는 기적의 섬광과 창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공기를 때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밝은 빛과 가장 큰 소음의 주인은 바로···
‘프루디. 열심히 성장하고 있군.’
가장 중앙의 연무대 위에서는 프루디-노릭 페어의 대련이 한창이었다.
프루디는 거듭된 대련을 통해 점점 실전 감각을 되찾아 갔다.
무시무시한 성장속도.
노릭이 우려한 대로였다.
‘하지만 내 예언도 적중했지.’
성장하고 있는 것은 프루디만이 아니었다.
킴벌리가 노릭의 고삐를 풀어준 뒤로, 노릭은 그야말로 개화했다.
칼끝은 더욱 자유로워졌고,
검술은 더욱 예리해졌으며,
기적의 조절도 더욱 섬세해졌다.
서걱-
뼈가 잘리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노릭의 검이 상대의 어깨를 베었다.
승기를 가져온 일격이었다.
“치잇······.”
프루디가 혀를 찼다.
이런 일이 이번 한 번만이 아니었다.
빈틈을 만들어야 하거나, 결정타가 부족하거나, 프루디에게 빈틈이 생겼을 때, 노릭은 반드시 그 필요에 부응해 주었다.
당연히 팀 차원에서는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당연히도, 프루디에게는 그게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이번 승부의 주인공은 나였어야 했어! 방어를 꿰뚫고··· 적을 몰아붙이고··· 압도했잖아! 전부 내가 했는데······.’
‘왜 조명이 집중되는 건··· 항상 저 녀석인 건데···?’
프루디는 노릭을 돌아 보았다.
그리고 연무대 밑의 아이들을 보았다.
그들이 열심히 기록하고 있는 건 프루디의 화려한 기적이 아니었다.
노릭의 검술, 움직임, 행동 패턴과 임기응변에의 전환속도.
그런 것들이 기록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프루디는 전공수업 초반의 오명을 씻는 데는 성공했지.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겠지.’
킴벌리의 분석은 정확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가시지 않는 찝찝함이 프루디를 괴롭히고 있었다.
떼낼 수 없는 벌레가 머릿속에 붙어 있는 기분이었다.
노릭 빈프리드라는 이름의 벌레가.
“너 같은 건··· 너 같은 건 얼마든지 눌러줄 수 있어.”
그런데, 그녀가 그렇게 중얼대던 그때.
무시할 수 없는 불협화음이 그곳 모두의 귀에 감지됐다.
그것은 어떤 패배한 페어가 킴벌리의 피드백을 받던 중에 시작되었다.
“···어차피 아무리 해봐야 이기는 건 글렀어요! 이런 자식이랑 같은 페어니까!”
“뭐? 내가 몇 번이나 네 급발진에 맞춰서 움직여 줬는지 알아? 그때마다 전부 처발린 건 또 알고!?”
“하···! 우유부단한 너는 수업 끝날 때까지 탐색만 하다가 지겠지만, 난 아니라고! 너 대신 결단을 강요 받는 건 나란 말이야!”
“네가 신중하지 못한 걸 내 탓으로 돌리지 마···! 쓰레기 약골 자식아!”
킴벌리를 앞에 두고도 두 사람의 언쟁은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교수님, 이런 새끼랑은 못 해 먹겠어요! 페어를 바꾸든지 안 하면 이 수업 못 듣겠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자식이랑은 할 만큼 했습니다.”
킴벌리는 그런 그들을 달래려 했다.
“너희가 너희 입으로 말했듯이, 두 사람의 성향은 서로를 보완할 수 있어. 이 갈등을 극복해 낸다면 너희의 포텐셜을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킴벌리의 설득에도 두 사람은 끝까지 화해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은 친구 사이였다.
그리고 이 수업에는, 그런 관계로 이루어진 페어가 몇 팀이나 더 있었다.
하나의 불협화음이 울려 퍼지자, 불만은 도미노처럼 연쇄하여 폭발했다.
다들 저마다의 불만을 킴벌리에게 토로하기 시작했다.
“···저도 얘랑은 못하겠습니다. 약해도 너무 약해요···”
“···붙어볼래? 진짜 약한 게 누군지 알려주마!···”
“···아무래도 저흰 호흡이 안 맞는 것 같습니다. 맞춰보려고 노력은 했지만···”
순식간에 킴벌리의 수업은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하지만 그 혼란을 잠시 멈춘 것은··· 킴벌리가 아니었다.
“페어를 바꿔!? 웃기지 마! 이 쓰레기들아!”
프루디가 한 학생의 멱살을 잡고 일갈했다.
소란은 멈추고,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됐다.
“난 인정 못해! 너희 스스로 짠 페어 아니야? 그러면서 이제는 뭐? 다시 짜달라고? 부끄러움이라는 걸 모르는 거야?!”
프루디는 그렇게 외치고는 멱살을 잡고 있던 학생을 밀쳐버렸다.
프루디의 말에 반박할 명분을 찾지 못한 학생들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프루디에게 밀쳐진 바로 그 학생이 입을 열었다.
“하··· 부끄러움을 모르는 건 너겠지. 너는 그냥 노릭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핑계를 대는 거잖아.”
그 말이, 프루디를 얼어붙게 했다.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그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래! 노릭이 강하니까 계속 같이 하고 싶은 거잖아!···”
“···노릭 덕에 몇 번 살아나더니 맛이 좋았나 보네···”
“···그냥 얼굴 반반한 노릭 선배한테 반한 거 아냐?···”
“아니야···! 그런 건······!”
프루디는 그들에게 반박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녀가 노릭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아직 나는 노릭을 꺾지 못했어··· 그런데 이렇게 놓아준다고? 그렇게는 안 되지. 절대···!’
단 한 번, 단 한 번이라도 노릭보다 빛나는 자신을 어필하고 싶었다.
노릭의 콧대를 그의 페어로서 꺾어주고 싶었다.
‘그래. 그러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겠지.’
킴벌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너는 그들에게 반박할 수 없어.’
프루디가 가진 건 노릭에 대한 열등감이다.
지금 노릭을 놓아주게 되면 영원히 그 열등감을 극복할 수 없게 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다른 학생들에게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프루디는 노릭을 놓아주는 것도, 그렇다고 붙잡는 것도 할 수 없다.
‘양쪽 다 자기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
‘그러니 내가 대신 결정해 줘야지.’
“그만.”
킴벌리는 빈 연무대 위에 올라 말했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그의 진중한 목소리에 아이들은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조용해졌다.
“좋다.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해주마. 현원의 과반수 이상이 페어의 교환에 찬성하면, 지금의 페어가 아닌 다른 페어로 교환해 주마.”
학생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잠시 웅성거림이 올라왔다.
쿵-
하지만 킴벌리가 한 번 발을 구르자 다시 그들은 고요로 돌아갔다.
“단, 현재의 페어는 저 프루디 위스퍼벨의 말대로 너희 자신이 선택한 페어다. 그렇기에 이번에 페어를 교환하게 된다면, 너희에게 선택권은 없다. 철저히 나의 결정에 따라야 할 거다.”
학생들은 당장 킴벌리의 말에 반박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곳 대연무장의 공기에는 이미 불안한 기색이 감돌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엘스티르가 나섰다.
“재밌겠는데요.”
다시 이목이 엘스티르를 향했다.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교수님이 직접 정해주는 페어도 재밌을 것 같아요. 안 그런가? 나는 그런데.”
“재밌고 말고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야. 우린 진지하다고···!”
누군가 한 명이 엘스티르의 말에 반발했다.
하지만 엘스티르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너희는 페어 교환을 신청했잖아? 그건 페어를 고르는 너희 안목이 형편없다는 걸 스스로 선언한 꼴 아니야?”
그녀의 촌철이 학생들을 꿰뚫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페어를 바꾸고 싶으면~ 너희에게 선택권이 없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아메.”
엘스티르는 옆에 위치한 자신의 페어, 아메에게 물었다.
아메의 의견은 간단명료했다.
“···난 내 페어가 누구든 신경 쓰지 않아. 팀이 뭘 하든 내가 이기면 그만이야.”
그러자 엘스티르는 모두에게, 특히 킴벌리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렇다는데요? 교수님.’
그리하여 킴벌리는 페어교환의 투표를 진행했다.
결과는 페어교환의 진행.
킴벌리는 당장 다음 수업부터 페어를 교환해 주겠다고 말한 뒤, 수업 종료를 선언했다.
물론, 교환 전에 학생들의 잔여 경기 횟수를 맞추기 위해 몇몇 페어는 오늘의 대련을 마쳐야 했다.
그리고 다음 수업의 날이 밝았을 때, 모두가 기다리던 새 페어의 발표 시간이 왔다.
“그럼, 교환 결과를 공개하겠다. 내가 호명하는 학생은 앞으로 나오도록.”
킴벌리는 메모장 하나 들지 않은 채, 팔짱을 끼고 학생을 호명했다.
“페어 1. 엘스티르 발프루스트, 노릭 빈프리드.”
이 부분에서 학생들은 놀랐지만, 대부분 그 결과에 납득했다.
발표의 후반까지도 학생들은 대체로 자신의 페어에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종반의 종반으로 갈수록, 모두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술렁임의 이유가 킴벌리의 입으로 선언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페어. 프루디 위스퍼벨, 그리고 다치아라이 아메. 이상이다.”
강철의 사제와 리틀썬.
사제학부 1학년과 2학년의 최강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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