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한 여름밤의 꿈 (4)

잔뜩 긴장한채 뒷자석에 앉은 미영은 슈리가 담긴 이동장을 꼭 품에 안은 채 안절부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택시에 타기 바로직전 그녀를 습격한 기괴했던 노인, 잊을래야 잊을수가 없는 검은코트의 남자 그리고 그와 대적하던 처음보는 사람들까지···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하루를 낭비하려했던 그녀의 계획은 보기 좋게 박살났고 정체모를 택시에 실려 낯선곳으로 향하는 상황.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것은 당연했다.
“...는 몇살이에요?”
“아··· 스물 넷이에요···”
“어.. 그 아니 그 고양이 여쭤본건데···”
미영은 방금전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게 저 택시기사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를 무시한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던게 부끄러워져 사과를 건냈다.
“죄송해요. 고맙다는 말 먼저 드렸어야하는데···”
“고맙긴요~ 그정도 서비스도 없이 어떻게 장사합니까.”
가로막는 불청객을 들이받아버리는걸 서비스라고 한다면 평소에 어떻게 운행을 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덕에 목숨을 건졌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여덟살이에요··· 러시안블루··· 남자아이구요.”
“오~ 러시안블루! 색깔이 아주 은은하니 멋진 종이죠. 저는 코숏 치즈냥이 두마리를 키우는데···..”
두사람은 같은 집사로써 느끼는 바를 공유하며 시간가는줄 모르고 담소를 나눴다.
긴장이 풀려버린 미영은 결국 꾸벅꾸벅 졸다 택시기사의 목소리를 자장가삼아 이동장을 끌어안은채 잠에 들고 말았다.
헝클어진 머리아래 모자가 떨어진 것도 잊은채 쓰러진 그녀.
백미러를 통해 손님의 상태를 확인한 택시기사는 작게 웃으며 혼자 되뇌었다.
“이정도면 추가요금 받을만한데...”
「툭툭툭」
“아가씨. 다왔어요.”
턱에 흘린 침을 닦으며 잠에서 깬 미영은 택시 바깥으로 나왔다.
서비스정신이 투철한 기사님은 이미 그녀의 짐을 밖으로 옮겨 쌓아놓은 상태였다. 미영은 넙죽 인사하고 뒷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꺼냈다.
“고생하셨어요 기사님. 얼마나왔죠? 혹시 카드도 되나요?”
“푸흡..! 아 죄송해요 우리 고객님 처음이셧구나? 전화하신 명함 가지고 계시죠?”
갑자기 머리가 하얘진 미영은 주머니란 주머니는 다 뒤지면서 소란을 떨기 시작했다. 다시 택시안으로 들어가서 바닥까지 싹다 살펴본 뒤에야 떨어져있던 명함을 찾을 수 있었다.
“여··· 여기요.”
명함을 확인한 택시기사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녀에게 건냈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카드에는 명함에 그려져 있었던 그림만이 유일하게 알아볼수 있는 것이였다.
“이게···?”
“아 고객님 아직.. 못 보시는구나.?”
머리를 긁적거린 택시기사는 난색을 표하며 운전석으로 도망가듯 뒷걸음 쳤다.
“회사 명함 주신분한테 전해주시면 알거에요! 엔젤 윙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족하셨다면 다음번엔 저 ‘제이’! 제이를 지목해주세요! 그럼!”
시원스레 영업용 멘트를 마친 기사는 처음 왔던것처럼 재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잠에 덜깬채 멍하니 카드를 바라보고 있던것도 잠시. 가로등의 불빛이 이미 하루가 지나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캐리어의 손잡이를 꺼낸 미영은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는걸 보여주는 커다란 가림막. 그 앞에 붙어있는 작은 설명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 평화동 성당 건설 부지 ]
[ 공사가 끝날때 까지 맞은편 한아름 상가 지하 1층에서 미사가 진행됩니다 ]
가림막이 끝나는 지점에는 이미 조금이나마 완공이 되었는지 고딕양식의 성당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신기하게도 건물의 색깔이 모두 검은색 이었다.
맞은편 지하로 건너가야하나 생각하던 미영은 이윽고 검은 성당으로 향했다. 건물에 불이 켜져있었기도 했고 목적지가 맞은편이였다면 택시기사가 굳이 여기에 내려줄 이유가 없었으니까.
「비이이이이」
버튼을 누르자 한물간 알림음이 들렸다. 카메라도 없는 오래된 구식이었다.
“어서오세요.”
짧게 정리된 하얀 턱수염의 노신사가 미영을 마중나왔다. 전화너머 들리던 그 목소리의 주인공임이 틀림없었다.
“어··· 그··· 명함받아서 왔는데요···”
‘검은 코트입은 이상한 남자가 보내서 왔어요’ 라고 차마 말하기 힘들었던 미영은 노신사의 앞으로 퇴마사무소의 명함을 내밀었다.
“저기 소파에 앉으세요. 짐은 제가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는 분명 그녀보다 연배가 높은것이 분명했지만 존댓말을 하며 밖에 있던 짐까지 들어 안으로 옮겨주었다.
이동장과 함께 쇼파에 앉은 미영에게 나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따뜻한 차 필요하십니까? 커피? 코코아?”
“커··· 아니 코코아 부탁드립니다. 감사해요···”
“작은 친구에게 인사를 못했네요. 어디보자···”
「캬오오옹!!」
슈리는 허리를 숙인 노인에게 날카로운 적대심을 내비쳤다. 오히려 주인인 미영이 더 놀랄 지경이었다.
“허허허··· 제가 동물들한테 인기가 없는 편이에요. 신경쓰지 마세요.”
그녀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노인은 주방으로 자리를 피했다.
「샤아아아악!」
잔뜩 겁을 먹은 슈리는 털을 곤두세운 채 하앜질을 계속했다. 사람 좋아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개냥이라는걸 아는 주인이 보기에는 충격적일 정도의 행동이었다.
“안그러던 애가 왜그러니 도대체···”
미영은 고양이를 진정시키려 안으로 손을 넣었다. 하지만 뭐가 그리도 겁에 질렸는지 슈리는 엄마의 손길조차 거부했다.
“아얏!!!”
거칠게 빼낸 손에는 이미 붉은 상처가 피를 내보이고 있었다. 미영은 눈물이 조금 나올만큼 서러웠지만 비단 고통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늘 하루···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나는거야···’
***
허름한 간판의 전자제품 가게.
해가진 골목길 어두운 거리의 건물은 상호명이 무엇인지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검은 코트의 남자는 철로된 미닫이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장사를 접은것 같은 내부는 먼지가 가득했고 멀리 가로등 불빛만이 미약하게 가게를 비췄다.
남자는 주인의 허락도 받지않은채 가게의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갔다. 마침내 멈춰선 그의 앞에는 엘리베이터로 보이는 문이 있었다.
1층짜리 건물 안쪽에 엘리베이터라니 이해되지 않는 구조였지만 버튼을 누르자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띵동」
얼마안가 문이열렸고 남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알림음이 다시들릴때까지 걸린 시간은 길었다. 마치 영화에 나오는 비밀기지라도 되는것 같았다.
붉은 색의 조명이 가득한 층. 남자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걸었다.
정면에는 단 하나의 통로와 문만 존재했다. 문지기로 보이는 근육질의 대머리 여성이 차갑게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몸은 어지러울 정도로 많고 다양한 문신으로 가득차 있었다.
「척」
문지기는 오른손을 뻗어 더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조끼에 넣은 그녀의 왼손은 무언가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라는건 누가봐도 확실했다.
[괜찮아 주리. 손님이야]
문지기가 문을향해 고개를 까딱거렸고, 주인의 허락을 받은 검은 코트의 남자는 주리의 따가운 시선을 무시한채 방안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이야 자기. 나보러? 아니면 일?”
수많은 모니터가 자리한 책상의 앞. 검은 머리의 여성이 안경을 벗으며 인사를 건냈다. 밖에 있는 문지기처럼 그녀의 몸에도 문신이 가득했다.
“일.”
“피··· 아직도 화가 안풀렸나보네. 언제까지 삐져 있을꺼야? 우리사이에 계속 그럴꺼야?”
“오늘 이집 장사 안하나?”
한숨을 내쉰 여성은 안경을 다시쓰면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애교섞인 목소리는 사무적으로 변했다.
“네네. 고객님 장사해야죠. 무슨 용건으로 오셨습니까?”
“왕관이 뭐지?”
“왕관. C.R.O.W.N 머리에 쓰는거에요 고객님.”
대답을 들은 남자의 표정은 변화가 없이 싸늘했다.
「피식」
“농담이야. 후··· 진짜 언제쯤 우리자기 화가 풀리려나···”
“그럼 공짜로 해주던가.”
여자는 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생머리는 뒤에 가득한 모니터의 빛을 반사할 정도로 반짝였다.
“아무리 자기라도 그건안돼. 사업은 내 밥줄이자 신념이라구~”
그녀는 손가락을 땅으로 향하며 미소지었다.
“미안한데 확실하게는 대답을 못해. 내 전문은 아래쪽이잖아? 그건 위쪽에 물어봐야해.”
“그래서··· 그게 끝?”
“아쉬워? 그럼 라면먹고 갈래? 주리는 좀 일찍 퇴근하라고할게.”
남자는 그녀가 앉은 책상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서로에게 시선을 떼지 않는 둘, 내려다보는 남자와 올려다보는 여자의 얼굴은 서서히 가까워졌다.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인 그녀는 남자와 입을 맞출 준비를 했다.
두 남녀의 입술이 포개지기 바로 직전.
「촤라락.」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
남자는 쥐고있던 의뢰비를 책상에 내려놓은 후 그대로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후우우우우···”
한숨을 내쉰 여자는 모니터를 향해 눕다시피 의자를 젖혔다.
몇번 마우스를 딸깍인 그녀의 앞에는 누군가의 프로필이 나타났다. 방금 방을 나선 남자를 며칠이나 고생하게 만든 원인, 송미영의 것이었다.
“이년이 내꺼에 손을 대···?”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그녀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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