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문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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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고양이
작품등록일 :
2024.06.01 16:27
최근연재일 :
2024.06.24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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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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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8화. 잠꼬대 (2)

DUMMY

“못들었어? 찌르라고.”


재혁은 찌르라는 말에 반응하지 않는 미영에게 한번더 강조해서 말했다.


그녀가 상자에 있는 물건이 말뚝이란걸 확인한 후 상상하던 최악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천천히 다가간 뒤 바라본 침대위의 소녀는 여전히 흉측한 얼굴로 재혁을 노려보고 있었다. 미영은 혹시나 저 섬뜩한 시선이 자신에게 향할까 너무나도 두려웠다.


떨리는 손으로 말뚝을 붙잡았지만 도무지 사람을 향해 내려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괴물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정도로 변한 소녀의 얼굴이였지만 몸은 여전히 작고 여렸다. 평생 사람을 향해 흉기를 휘둘러본 적이 없던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요구였다.


재혁은 미영의 선택을 돕기위해 소녀의 목을 조르고있는 무릎에 더더욱 힘을 줬다.


[끼..께에에]


온몸이 결박당한 상태에서도 발악하던 소녀는 더이상 조금전처럼 반항하지 못했다. 쇠사슬에 묶인 채 휘젓는 나약한 손짓이 재혁의 허벅지를 두드리며 항복인지 모를 최후의 저항을 하고있었지만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것 만큼은 확실해보였다.


“훈련한걸 떠올려 니가 봐야하는건 애가 아니야. 진짜를 봐.”


여전히 두려움과 미안함에 사로잡힌 미영은 소녀와 눈을 마주치길 거부하며 고개를 돌렸다. 촛불훈련 덕분에 어제까지만해도 해냈다는 고양감에 취해있었지만 직접 마주한 현실은 영화속 슈퍼 히어로같은 전체 이용가가 아니였다.


“내가 무릎을 치워도 얜 죽어. 늦으면 다 니탓이니까 찔러!”


‘애를 그렇게 패고 목조르고 있는 새끼가 본인이면서 내탓이라고?’


재혁의 호통과 남탓 때문인지 그제서야 그녀의 두려움이 조금은 가셨다.


다시바라본 미영의 눈앞에 있는 소녀는 더이상 가족 사진속의 아이가 아니었다.


침대 위에 널부러진 바싹마른 늙은 손과 다리, 그리고 주름이 가득한 노인의 얼굴. 마침내 그녀도 소녀의 몸을 빼앗은 무엇인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쭈뼛 소름이 돋고 갑자기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괴물의 시선이 재혁을 떠나 미영을 향했다. 그녀를 째려보면서도 비웃는 노인은 마치 네가 찌를수 있겠냐 조롱하는것 같았다.


달라진 분위기를 재혁은 놓치지 않았다.


“지금!!!”


「푸욱!」


이제 미영도 혐오스러운 괴물의 모습을 잡아낼수 있었지만 사람의 뱃가죽에 말뚝을 박는 행위는 보통 강심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두꺼운 쇠막대기는 소녀의 허벅지로 향했다.


[끄아아악!]


방안에 소녀의 것이 아닌 괴성이 울려퍼지자 재혁은 그대로 아이를 안은채 침대 밖으로 몸을 날렸다.


「쿵!」


방구석으로 내동댕이쳐지듯 튕겨나간 그는 품에 안은 소녀를 살핀다음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혹시나 다칠까 머리를 감싼 손을 천천히 빼내는 재혁의 행동은 이전까지의 폭력적인 모습과는 전혀달라 다른 사람을 보는것만 같았다.


말뚝이 박힌 침대에 남아있는 귀신인지 괴물인지 모를 무언가.


미영은 이제 뚜렷하게 그 형체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옆머리만 조금 남은 늙은 남성이 누운채 하늘을 향해 손을 휘젓고 있었다. 그를 제압하던 사람이 없어졌는데도 가위에 눌린 것처럼 침대에서 허리를 떼지도 못하는 황당한 모습이었다.


사람의 색이 아닌 회백색의 흐릿한 외형은 귀신을 연상케 했고, 꿈적도 않는 빛나는 말뚝은 노인을 지상에 묶어두는 역할을 하는것 같았다.


재혁이 피곤한듯 목을 좌우로 움직이며 걸어와 미영에게 손가락질 했다.


“너 그리고 쟤. 그런 상태를 잠꼬대 중이라고 불러.”


“.... 저건요···? 귀신..? 악령?”


피식 웃은 재혁은 침대 위로 올라 코트 안쪽으로 오른손을 넣었다 뺐다.


「촤라락」


그가 꺼낸것은 황금색으로 빛나는 길다란 묵주였고, 한바퀴 손목을 돌리자 묵주는 자연스럽게 그의 손을 감쌌다.


이윽고 주먹을 말아쥔 뒤엔 기도를 위한 성스런 도구가 재혁의 의해 흉기로 변했다.


“버려진자. 악몽. 여러 이름이 있긴한데 중요한건 이것들이 어정쩡한 상태에 있는 사람한테 들러붙는다는 거지.”


“어정쩡한게 잠꼬대란 거에요? 그래서 저 애 몸에 들어간거고?”


“그래. 꿈꾸는 자들 사이에서 깨어난 자. 난 다르게 부르긴 하는데 왠지는 묻지마 내가 이름붙인거 아니다.”


무표정이던 재혁이 침대에 구속되어있던 악령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차갑게 아래를 바라보는 그는 분명 미소짓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것들 처리하는데엔 역시 주먹만한게 없지.”


십자가 부분을 코끝으로 가져다 댄 재혁은 작게 성호를 그은 뒤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무엇인가 중얼댔다.


“In nomine Patris et Filii et Spiritus Sancti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파앙!」


주먹으로 내려친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만한 강렬한 빛이 미영의 눈을 가렸고, 묵주에 폭탄이라도 심어놓았는지 의심할 정도로 뜨거운 열풍이 방을 가득 채웠다.


타고 남은 재만 휘날리는 침대의 위에는 이제 사람의 형상을 닮은 그을음만 남아있었다. 크기는 전혀 비교할바가 못되었으나 손바닥으로 모기를 때려잡은 것 같기도 했다.


“아멘.”


재혁은 손을 털어낸 뒤 묵주를 다시 품에 넣었다.


“난 애데리고 나갈테니까 말뚝챙겨.”


아직 깨어나지 못한 소녀는 엉망이된 방에서 나와 거실 소파에 눕혀졌다. 어머니는 아이를 이리저리 살피며 혹시나 다친곳이 없는지 확인했다.


부모의 손길을 느꼇는지 아이가 잠시나마 눈을떴다.


“엄마··· 졸려···”


“으흐흐흑! 소정아 내새끼···”


감격에 벅찬 의뢰인은 재혁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절을했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던것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할수 있는 행동이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소정이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흐흐흑”


“내일 애 보내야 하는거 잊지마. 오늘은 아마 계속 잘꺼야.”


뭉클함에 눈물을 찔끔 흘릴뻔했던 미영은 갑작스레 부모자식을 생이별 시키려는 재혁의 행동에 분노했다. 그녀는 본인의 처지도 잊고 아이와 그의 사이를 가로막은채 따졌다.


“왜··· 왜요!? 어쩌게요! 어린애한테 뭘시키려고!!”


미영은 끔찍한 경험을 한 소녀가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하는걸 원하지 않았다. 부모와 떨어져 귀신잡는 훈련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린 나이였으니까.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한 재혁을 지나 아이의 어머니가 미영의 손을 잡았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아가씨··· 참 마음이 곱네. 소정이 영영 못보는거 아니라고 하셨어요 원할때마다 만날수 있다고···”


머쓱해진 그녀는 괜히 상자를 열어 말뚝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고 현관문으로 달려가 고개를 숙인채 사장님을 기다렸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귀끝까지 빨개진 미영이였다.


“쑈를 한다.”


미영에게 핀잔을 준 재혁은 작별인사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 아이 어머니의 인사를 받으며 그녀가 뒤를 따랐다.


소음때문인지 몰라도 수많은 아파트 주민들이 복도로 나와 의뢰인의 현관문을 바라보고 있었고 미영은 순간 깜짝 놀라 움직이지 못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을 지나치는 재혁. 주민들은 정면으로 걸어가는 남자에게 어떠한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그는 마치 유령처럼 걸어가 계단 앞에서 미영을 기다렸다.


복도를 가득채운 낯선 사람들의 시선.


모두가 자신을 처다보며 수근대는것만 같아 미영은 점점 난처해졌지만 멀리 사장님의 표정이 더 굳어지기 전에 용기를 냈다.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그녀는 눈마주치는 주민들에게 살짝살짝 고개를 숙이며 복도를 걸었다. 하지만 지나치는 사람들의 눈에서 느낄수 있는 감정은 하나뿐이었다.


무관심.


재혁을 바라보며 놀라워했던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녀가 소란의 중심인 의뢰인에 집에서 나왔다는것을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어··· 지금··· 사장님? 이게 뭔···”


재혁은 주민들과 미영을 차례대로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잠든 사람이 어떻게 앞을 보겠어?”




아파트를 나온 정문 앞에는 검은택시와 제이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출발할때와 마찬가지로 두사람은 뒷자석과 앞자석으로 나눠 앉으려 했다.


“아이고 이걸 어쩌나 앞자석이 짐으로 가득찼네요! 어쩔수 없이 미영씨는 뒷자석에 사장님이랑 같이 앉으셔야겠네!”


능글맞게 웃는 제이의 속셈을 모를 두사람이 아니었지만 여기서 따지고 들어봤자 귀가가 늦어질 뿐이었다. 양 옆으로 갈라져 앉은 둘을 바라보는 제이는 조금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운전을 시작했다.


“미영씨 첫경험 어땠어요? 오해하지마세요 현장근무 얘기니까 하하하핫”


몇번 본적 없지만 정말 붙임성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미영은 눈을 감고 대화를 거부하는 사장님 대신 제이에게 물었다.


“황당했죠··· 그런데 앞으로 계속 보통사람들과 모른척 살게 되는건가요···? 소정이라는 애도 엄마에게 잊혀지는 거에요?”


“아이는 앞으로 완전히 적응할때까지 보호시설에서 지내게 될거에요. 엄마가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구요.”


“완전히 적응하면···.”


“걱정하지 마세요 미영씨. 원한다면 얼마든지 꿈꾸는 자들과 마주할수 있으니까요. 오늘같은일 뿐만 아니라 잠꼬대할때는 세상에 나 혼자인것 처럼느껴지고, 우울하고··· 그래서 사고가 좀 많이 나요.”


“사고요!?”


“저 애처럼 외부적인 문제면 그나마 남이 해결해줄 수 있는데··· 스스로··· 흐흠! 아무튼 관심이 필요한 시기다 이거죠.”


세상에 혼자 남겨진것 같은 외로움. 주변 모든사람 뿐만아니라 가족까지 자신을 망각해버린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미영은 자신또한 아무런 정보도 도움도 없이 잠꼬대를 겪게 된다면 제정신을 유지할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백화점에서 그녀를 미친듯 바라보던 동료들의 시선이 오히려 그리울지도 몰랐다.


“혹시 기사님도··· 아니 죄송해요 쓸때 없는걸···”


“하하하 괜찮습니다. 지난 일은 다 추억이니까요. 저도 꽤 고생하긴했는데 주변에 좋은 분들이 계서서 이렇게 취직도하고 잘 살고 있습니다. 미영씨도 꼭 그렇게 될꺼에요.”


미영은 제이뿐만 아니라 사장님의 과거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 언제나 자기할말만 하고 까탈스럽게 구는 저 인간의 과거는 도대체 어땠길래 저모양일까 너무 궁금했다.


“사장님도 잠꼬대로 고생하셨어요···?”


“난 그딴걸 겪은 적이 없어.”


운전대를 잡은 제이는 여전히 모르는척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고 재혁이 자신을 놀리는 거라 생각한 미영은 한숨을 쉬었다.


“하··· 네네.. 그러시겠죠.”


갑자기 눈을 뜬 재혁이 옆좌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로봇같은 반응이 그녀를 살짝 기겁하게 했다.


“처음부터 깨어 있었으니까.”


미영이 이해할수 없는 말을 하는 사장님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너머 창밖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려는 그 찰나.


「덥썩!」


갑자기 재혁이 손을 뻗어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당겼다.


미영을 여자, 아니 사람으로도 안보던 것 같던 냉철한 인간이 갑자기 왜이러는지 얼굴이 붉어진 그녀는 재혁을 밀어내려했지만 힘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왜이러세···.!”


「콰아아아앙!」


그리고 엄청난 충격이 그들이 탄 택시를 덥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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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화. 깨진 거울 (1) 24.06.19 14 0 13쪽
12 12화. 잠꼬대 (6) 24.06.17 16 0 14쪽
11 11화. 잠꼬대 (5) 24.06.14 18 0 14쪽
10 10화. 잠꼬대 (4) 24.06.12 16 0 11쪽
9 9화. 잠꼬대 (3) 24.06.10 18 0 11쪽
» 8화. 잠꼬대 (2) 24.06.07 18 0 11쪽
7 7화. 잠꼬대 (1) 24.06.05 19 0 10쪽
6 6화. 한 여름밤의 꿈 (6) 24.06.03 18 0 12쪽
5 5화. 한 여름밤의 꿈 (5) 24.06.01 21 0 13쪽
4 4화. 한 여름밤의 꿈 (4) 24.06.01 17 0 10쪽
3 3화. 한 여름밤의 꿈 (3) 24.06.01 22 0 11쪽
2 2화. 한 여름밤의 꿈 (2) 24.06.01 18 0 10쪽
1 1화. 한 여름밤의 꿈 (1) +1 24.06.01 72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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