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잠꼬대 (6)

[크아아아아!!]
순식간에 악마로 변한 경호원들은 각자 무기를 휘두르며 좁은 골목을 막아섰다.
그에 맞서는 요원들은 악마들 처럼 인간의 형상을 벗어던지진 않았으나 불타는 안광과 펄럭이는 날개 때문에 그들과 마찬가지로 인세에 속한 존재라 생각하긴 어려웠다.
지상과 하늘을 포위한 천사들은 크기 차이 때문에 고양이에게 달려드는 생쥐 같아 보였으나, 아무렇지 않게 거대한 양손도끼와 대검사이로 달려드는 걸보면 두려움 같은것은 전혀 느껴지 않는듯 보였다.
그나마 덩치가 큰 대머리의 천사 둘은 온몸을 가릴정도로 큰 빛의 방패를 내세우며 악마들의 무기를 받아냈다.
그들이 시간을 끄는 사이 나머지 천사들은 차근차근 악마들에게 피해를 입혀가며 상처를 누적시키고 있었다.
악마들은 자신의 피로 어두운 골목 주변을 흥건히 적시면서도 입구를 지키는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해냈다. 머리위에서 기회만 노리는 천사들은 철통같은 방어때문에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며 맴돌 뿐이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올백머리의 천사는 더 많은 머릿수를 가지고도 압도하지 못하는 상황에 분노한듯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형편없는 것들! 고작 두마리때문에 쩔쩔 매느냐!!”
그녀가 하늘로 손을 뻗자 하얀 벼락이 떨어지며 팔에 감겼다. 뱀처럼 팔을 휘감은 벼락은 손가락의 움직임을 따라 형상을 이루면서 길어졌다. 마치 번개로 창을 빚어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파지지지지직!!」
골목이 꽉차도록 빛과 소리가 울려퍼지자 악마를 상대하던 방패를 든 천사들은 기다렸다는듯 하늘로 날아 올랐다. 상대를 잃은 두 악마는 순간 당황한듯 머뭇거렸다.
노출된 두 악마를 향해 번개의 창이 쏟아졌다.
악마의 가슴에 적중한 뇌창이 피부를 관통해 몸에 구멍을 낼 거라 예상했지만 살아있는 번개는 그대로 거미줄처럼 펼쳐지며 거대한 몸을 불태우고 구속했다.
[그그그그극!!]
거대한 덩치가 무색하게 온몸을 떠는 악마는 그물이 된 번개를 떨쳐내지 못했고 그것은 옆에 있던 동료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은 무기조차 제대로 들지 못한채 붙잡혀 서로에게 끌려갔다.
마침내 등을 마주하게된 두 악마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고 완벽하게 제압된 듯 보였다. 그러나 번개의 줄기는 전혀 약해지지 않은채 더 크게 빛을 발하며 사냥감을 옥죄였다.
「푸화아아악!」
셀수없이 조각난 악마의 팔다리가 좁은 골목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천사들은 포로같은것엔 관심이 없는듯 했다.
경호원이 제거되자 그들의 행사를 방해할 존재는 더이상 남지 않았다. 골목을 포위한 요원들은 비밀입구의 앞을 둘러싸고 지시를 기다렸다.
“열어.”
번개를 쏟아낸 여인이 명령하자 요원들이 비밀입구의 문을 열었다.
놀랍게도 이전에 입장한 군주의 부하가 들어갔을 때와는 전혀다른 풍경이 통로를 가득 채우고있었다.
점액질의 불결한 것들이 쏟아지는 기괴한 통로는 더이상 사람이 만든 건물이라 부를수 있는것이 아니었다. 꾸물거리며 움직이는 벽의 주름은 짐승의 창자라 부르는게 더 어울릴듯 했다.
포식자의 뱃속인걸 알면서도 스스로 걸어들어갈 어리석은 생물이 어디있겠는가?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천사라도 해도 다르지 않았다.
“일단 대기해. 집정관님께 다녀오겠다.”
골목에서 벗어난 여인은 클럽 정문에서 멀지않은 검은 밴으로 걸어갔다.
경찰 특공대 차량 뒤에 주차된 승합차는 짙은 썬팅도 썬팅이엇지만 경호원인지 경찰인지 헷갈리는 특이한 복장의 사람들 덕에 더욱 눈에 띄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평범한 사람들은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고 헬맷을 쓴 특공대에게만 핸드폰을 들이댔다. 여인은 아무런 방해없이 밴의 뒷문을 열었다.
「피융피융! 투두두두!」
작은 금발머리의 소년이 반쯤 드러누운채로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무슨 게임을 하는지 옆사람이 모를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웠지만 어깨를 들썩이며 화면을 두드리는 소년은 주변이 어떻던 안하무인이었다.
“집정관님.”
잔뜩 군기 잡힌 자세로 여인이 소년을 향해 말을 걸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이모와 조카뻘이라 생각해 당장 호통을 쳐도 이상하지 않았겠지만 여인은 집정관이라 불린 소년을 닥달하지 못한채 조용히 대답을 기다렸다.
“야이 똥겜!! 이걸 죽네!”
그는 게임에서 진게 분했던지 반대쪽 의자로 거칠게 휴대폰을 던졌다.
짜증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제복을 입은 소년.
재혁과 말다툼을 했던 천사 사라카엘이었다.
“후··· 왜? 문제생겼어?”
이제서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을 눈치챈 사라카엘은 뾰루퉁한 표정으로 여인을 처다보았다.
“두겹으로 꼬인 결계때문에 안으로 진입하기가 어렵습니다. 명천사들이 더 필요하니 지원을···”
여인은 점점 구겨지는 사라카엘의 얼굴 때문에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다.
“미라야. 내가 시킨것만 하라고 했지. 그걸 뚫고 가봤자 다 잡을수 있다고 생각해?”
“.....”
“쥐구멍이 그거 하나뿐일거 같아? 군주를 상대로 이길 자신은 있고?”
“명천사가 더 충원되고 집정관님께서 나서주신다면 승리를···”
사라카엘은 미라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등을 돌려 다시 휴대폰을 붙잡았다.
악마를 눈앞에 두고도 의욕이 없는 상관의 모습에 화가난 미라야는 주먹을 감싸 쥐었지만 지휘체계를 무시하고 상품천사의 명령을 거부할수는 없었다.
“우리는 우리 할일만 하고, 방역은 구제업자한테 맞기자 좀. 그만 나가 나 바쁘니까.”
“알겠습니다 집정관님.”
미라야는 결국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밴을 나왔다. 떳떳하지 못한 물건을 소지한 몇몇 사람들이 경찰의 손에 이끌려 순찰차로 옮겨졌지만, 고대하던 먹잇감의 뒷모습조차 보지 못한 그녀는 그저 한숨만 쉬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
미영은 며칠동안 잠만 잔듯한 몽롱한 기분으로 주방으로 내려왔다.
악마들의 습격을 당한 후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지만 침대와 식탁, 화장실만 기억나는 동선은 예전 게을렀던 백조생활을 떠올게 할 정도였다.
잠옷 차림으로 머리를 긁으며 주스를 마시는 그녀와는 다르게 반듯하게 차려입은 재혁은 수화기를 붙잡은채 한참동안이나 통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차려진 식탁을 보아하니 벌써 혼자 식사를 해결한 모양.
얼마나 입이 짧은지 별로 줄지않은 반찬은 입버릇 처럼 밥을 잘먹어야 한다 말하는 사람치곤 참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집사님의 요리솜씨는 언제나처럼 훌륭했다. 한식 양식 중식 가리지않는 스펙트럼은 진지하게 과거 호텔 요리사였을까 의심할 정도.
살찌는 것은 잠시 잊은채 매일 식사시간마다 행복해지는 미영은 반복되는 훈련시간이 없었다면 다이어트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지도 몰랐다.
“의뢰다. 무기 챙기고 나갈 준비해.”
‘밥먹을땐 개도 안건드린다는 데 하필···’
짜증이 났지만 안락한 시간을 보내던건 사실이였다. 여기도 엄연한 직장인데 매일 놀고 먹는건 말도 안되는 일, 여전히 잠꼬대에 관련된 사실엔 입을 다문 사장님이었지만 의뢰를 마칠때마다 가까워지는 진실은 그녀를 움직이게하는 하나의 원동력이였다.
식사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는 미영은 어색한 장비를 감추는데에 꽤 애를 먹었다.
두툼한 군용허리띠와 허벅지에 고정된 홀스터. 나이프와 권총이라니··· 얼마전까지 백화점에서 옷을 팔았던 그녀로써는 기겁할 만한 변화라 할수있었다.
며칠동안 훈련을 담당한 재혁도 그녀에게 무엇인가 대단한걸 기대하며 가르치진 않았다.
손바닥을 간신히 넘어갈 정도로 작은 6발의 더블액션 리볼버는 말그대로 저지력만 갖춘 수준이고 나이프는 최후의 보루 그 이상도 아니었다.
대부분이 그녀를 무방비인 상태라 여길게 분명한 지금, 대책없이 달려들 상대들에게 깜짝선물을 먹여줄 정도면 충분했다. 아직 완전히 각성하지 못한상태에서 더 많은것을 가르쳐줄수도 없었고.
이번 의뢰를 마친다면 직접 그녀를 가르쳐야할 수고도 조금은 덜수 있을게 분명했다. 오늘의 의뢰주가 재혁보다 훨씬 나은 교사라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미영이 받아들일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그런걸 신경쓸만한 착한 사장님이 아니었다. 시키면해야지 별수있나.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등장한 미영과 평소와 다를것없는 재혁은 퇴마사무소의 차고로 향했다. 여태 택시만 이용했던 그녀에겐 처음 오는 장소였다.
엄청나게 튼튼해보이는 개조된 SUV 차량. 두꺼운 범퍼와 커다란 타이어는 원래의 모델이 무엇인가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낯설었다.
“차가··· 있었어요?”
“택시는 너때문에 탄거야. 편하긴한데 그새낀 너무 시끄러워.”
운전중에도 쉬지않고 떠드는 제이를 떠올리니 사장님의 짜증이 이해가 갔다. 게다가 이 바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은 깨우친 지금부터는 비용이란 걸 무시할수 없었으니까.
「투르르르르르」
당연히 뒷자석을 예상한 미영은 두개밖에 없는 문에 당황했지만 얌전히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곧이어 시동이 걸리자 들려오는 소리와 진동은 약간 불안했던 그녀를 안심하게 만들었다.
악마를 때려잡는 퇴마사무소의 차량치곤 평범한 엔진소리. 생긴것만 보면 온동네 귓청을 때릴 정도로 시끄러울걸 예상했지만 조용한걸 좋아하는 재혁답게 승차감이 훌륭했다.
재혁은 유령처럼 차량을 통과하지도, 과속으로 질주하지도 않고 신호와 차선을 지키며 천천히 운전했다. 누구말대로 익사이팅한 경험밖에 없었던 미영은 그런 평범함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
「퍼억! 퍽퍽!」
학교로 보이는 건물의 옥상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또래들의 장난으로 보기엔 너무나 가혹했다.
한명을 둘러싼 세명의 학생들.
망을 보는 한명을 제외한 세사람은 무릎꿇린 작은 소년을 향해 주먹과 발길질을 서슴치 않았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교복으로 가려진 부분만 골라 때리는 치밀함은 한두번 해본게 아니라는걸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야. 정민! 이 XX새끼야! 그딴걸 보내? 죽으려면 혼자죽어!”
“너 때문에 우리 엄빠 경찰서에 불려갔어 이 XX끼야. 이러면 다 해결될꺼 같냐? 촉법이라 소년원 가면 그만이야 이 XX아.”
눈물을 흘리는 소년은 고통을 참아내면서도 꼭 잡은 휴대폰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그 이유를 알면서도 피해자를 조롱하며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해! 녹화! X발! 너만 했냐? 쳐맞는 영상으로 조회수 대박 쳐줄게!”
무리의 리더격으로 보이는 덩치큰 학생이 때리던 친구를 밀치며 자신의 휴대폰을 앞으로 내밀었다.
“고강현과 그 일당들에게 제가 당한 학교폭력을 고발합니다··· 라고? 야 정민수. X발 이러면 내가 무슨 두목같잖아 XXX야.”
잠시 폭력이 사그라들자 민수라 불린 아이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두려움에 압도된 소년은 가해자들과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그만··· 그만하고 싶어.. 다··· 그만해.”
일년동안의 긴 학교폭력을 참지못한 민수는 마지막 용기를 내 그동안의 피해사실을 털어놓았다.
당연히 학교는 뒤집어졌고 부모님은 몸져 누우셨지만 마땅히 이루어져야할 처벌은 없고 지지부진한 법적 다툼만 지속되었다.
학교는 합의를 주선하며 가해자들을 보호했고 당연한 전학처분 조차 내리지 않았다. 힘있는 무리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돈과 인맥으로 사건을 축소, 은폐했다.
사건 자체를 없었던 것으로 할수는 없었기에 가해자 모두 경미한 처벌이라도 받아야했다. 하지만 지옥같던 민수의 학교생활은 그 이후 더더욱 끔직해졌고 무리들의 폭력또한 멈추지 않고 교묘해졌다.
“내일이면 전교생이 니 알몸을 보게될꺼야. 그 다음엔 전 국민이 보려나?”
“아 XX! 토 나올거 같아! 그만 가자 담탱이 올라.”
“퉤! 재판 끝나고 보자.”
고강현 무리가 떠나고 망을 보던 태석은 쓰러진 민수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중학교 일학년 때부터 개차반인 성격으로 유명했던 강현. 그의 기분을 맞춰주지 않았다는 죄로 괴롭힘의 대상이 된 민수는 별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었다. 단지 운이 없었을 뿐 저 자리에 자신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때돌이! 뭐해! 매점가자!”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두 사람은 서먹한 사이었지만 안면은 있었다.
앞장서 도와줄 정도로 친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그저 바라볼뿐, 폭력은 가까웠고 용기는 부족했다. 태석은 민수와 눈이 마주치고 싶지 않아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흐··· 흐흐흐흐흑···”
가까스로 일어난 민수는 눈물을 흘리며 액정 화면을 바라보았지만 거기엔 아무것도 떠 있지 않았다. 발길질 당했을때 눌려 녹화가 중단된 모양이었다. 이제와서 이런게 무슨소용인가 허탈해졌다.
소년재판을 받더라도 가해자들은 별다른 피해를 받지 않을게 뻔했다. 기껏해야 전학이 가장 강한 처벌이겠지, 경찰도 선생도 어느 누구하나도 피해자의 편에 서있지 않았다.
민수의 고통은 모른채 쉬쉬하기 바쁜 어른들, 세상 어디에도 자신의 편은 없는것만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민수는 천천히 옥상의 끝자락으로 걸어갔다.
하늘과 민수를 가로막은 펜스는 혹시나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얇고 가는 철조망은 턱없이 부실해 보여 마치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존재하는 법과 비슷했다. 쓸모없고 약하고 의미없는.
「철컹철컹!」
민수는 펜스를 밀고 당기며 세상을 원망했다. 내가 사라지면 누가 슬퍼해줄까··· 지금 딱히 떠오르는 얼굴은 부모님 밖에는 없었다.
[내가 있잖아?]
「움찔!」
뒤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철조망에서 손을 떼고도 뒤돌지 못하는 민수의 얼굴은 듣지 말아야 할것을 들은 사람처럼 새파래져 있었다.
[그동안 많이 참았잖아. 이제 우리가 힘을 합칠때야]
소름끼칠정도로 똑같은 목소리. 마침내 민수는 그토록 거부해왔던 또다른 본인의 내면과 마주했다. 앞에는 마치 거울을 보는것처럼 똑 닮은 사람이 서있었다.
[하나가 되자]
있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으나 민수는 올것이 왔다는듯 나 자신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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