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깨진 거울 (2)

「끼익 끼익」
체육관으로 들어선 미영을 반기는 것은 거꾸로 매달린채 움직이는 낯선 남학생이였다.
군데군데 찢어진 교복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드러난 상처는 온몸 곳곳에 가득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학생을 바닥으로 내려주고 싶은 미영이였으나 저 높이에서 거꾸로 떨어진다면 오히려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었기에 타고 올라갈것이 없을까 생각하며 주변을 살폈다.
[누구야? 강현이는 누나가 없는데?]
거꾸로 매달린 남학생의 위에서 운동장에서 만난 의뢰인과 똑 닮은 사람이 말을 걸었다. 위태로운 자세로 조명위에 앉은 민수는 고소공포증 따윈 없는지 평온한 표정이었다.
창밖에서 얼핏 본 다른 후배들의 모습은 운동장의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최면에 걸린것처럼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력한 상태.
그러나 시계추가 되어버린 불쌍한 저 학생은 고통에 신음하며 작은 목소리로 도움을 청했다. 누가봐도 의뢰인과 심각한 원한관계 라는걸 알 수 있었다.
사정이 어찌됐든 후배의 고통을 차마 두고볼수 없었던 미영은 구석에 놓여있던 뜀틀을 향해 달려갔다. 옆에 깔린 두툼한 매트리스를 깔면 떨어질때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줄거라 생각했다.
[아줌마랑 아저씨는 누구길래 끼어드는 거야?]
미영은 민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지금 해야하는 일에 집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매달린 남학생의 머리 밑으로 고인 피웅덩이가 예사롭지 않았다. 빨리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출혈때문에 죽게될지도 몰랐다.
[꺄하하하!! 떨어졌다! 부서졌어! 봤어? 인사는 했을까!?]
혼자 말하고 혼자 웃는 민수의 반응은 기괴할 정도였지만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그 빈틈덕에 강현이라 불린 학생을 바닥으로 내릴수 있었다.
그의 얼굴에 가득 새겨진 붉은 상처들. 무작위에 엉망이었지만 문제는 낙서에 쓰인 도구가 볼펜따위가 아니라 칼과 손톱으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너무나도 끔찍한 후배의 얼굴은 미영조차 잠시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흉터가 망쳐놓은 얼굴때문이 아니었다. 강현의 눈이 있어야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이 공허했고, 피로 된 눈물만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걱정마 아직 안죽었으니까.]
어느새 두사람의 앞으로 나타난 민수는 장난스럽게 미영이 가져다놓은 뜀틀을 넘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눈을 뽑아낸 장본인 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기찬 모습이었다.
[고강현이 째려보면 무서워. 그럴 필요 없는데 계속 떨려서 그만 뽑아버렸지뭐야.]
그제서야 미영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누구였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어찌보면 학창시절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흔하디 흔한 이야기. 그렇지만 당하는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하는 고통과 비극속에 남은 삶을 살아가야 했다.
가는 숨을 쉬며 뉘인 강현이와 뜀틀위에 앉아있는 민수의 차이는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뻔했다. 커다란 키에 걸맞는 두터운 손으로 저 작은 아이를 얼마나 괴롭혔을지··· 상상이 가질않았다.
미영은 두 후배를 번갈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생전 처음보는 사이였지만 그저 슬프고 괴로워 참을수가 없었다. 선배로서, 어른으로서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게 부끄러울 뿐이었다.
[그만 울고 비켜줄래? 손톱이랑 발톱도 다 뽑아주기로 약속했거든]
민수의 순진한 얼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섬뜩한 경고였다.
미영은 조심스럽게 강현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다가오는 민수와 맞서며 둘을 갈라놓았다.
그녀의 연민어린 눈을 본 민수가 물었다.
[늦었어요 누나. 이제 사과도 뭣도 다 필요없어요. 이건··· 그냥 마지막 화풀이일 뿐이야.]
미영의 진심이 전해진듯 한결같이 장난스러웠던 민수의 분위기가 조금은 달라졌다. 그럼에도 복수를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은 과거 민수가 받은 고통의 크기를 짐작하게 했다.
“안돼··· 여기서 그만하자 다시 시작할수 있어··· 누나가 도와줄게.”
[누나가 뭔데요?]
“너랑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
[같다고? 뭐가 같은데? 누나한텐 저런 새끼들이 없었잖아!!!]
민수의 분노가 목소리의 형태로 뿜어지며 체육관을 흔들었고, 메아리가 사방에 몰아쳐 귀가 찢어질듯 고통스러웠다.
쓰러지는 것을 간신히 참은 미영은 더이상 누구의 고통도 싸움도 원하지 않았기에 대화를 계속했다.
“볼수 없는것을 보고 만질수 없는 걸 만지고··· 혼자 잊혀지고 버려진 기분··· 그거 나도 알아 지금 겪고있으니까.”
민수의 얼굴에 가득했던 분노가 조금씩 옅어지며 의구심이 피어났다. 잠시 멍하니 벌린 입이 대답을 재촉했다.
[누나도? 언제부터? 나만 이상한게 아니었어? 고칠 수 있는 거면 어떻게···]
중간에 말을 멈춘 민수가 움찔거리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잠시 후 거칠게 고개를 흔들고 눈을뜬 그의 표정은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같이 달라져 있었다.
[검은 아저씨가 누나랑 같이 온 사람이야.?]
지금 학교에 들어와 있는 사람중에서 검은 아저씨라고 불릴만한 사람은 단 한명뿐이었다. 재혁을 말하는 것이라 확신한 미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우리 회사 사장님이야. 그분이 우릴 도와주실 거야 같이 가자.”
[크··· 키키키키킥..!]
섬뜩하게 웃는 민수는 그저 표정만 변한게 아니라 성격까지 달라져 있었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대화로 풀어갈수 있을거라 여겼던 미영은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걸 느꼈고, 오른쪽 허벅지를 향해 손을 내렸다.
[거짓말··· 다 거짓말 쟁이야!!!]
재혁이 있는 쪽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갑자기 돌변해 달려드는 민수의 손에는 날카로운 커터칼이 들려 있었다.
정면으로 빠르게 달려오는 표적. 미영은 훈련받은 대로 집중하고 기다렸다.
‘예측하지 못한 상대에게 한방으로 최대한의 피해를 줘야한다.’ 훈련할때마다 귀가 닮도록 재혁에게 듣던 말이었다.
[난 안속아!!]
고작 일미터 남짓. 번뜩이는 커터칼의 날을 확인할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순간.
「탕!」
생전 처음으로 총소리를 듣게된 민수. 영화에서 듣던것과는 비교도 되지않아 귀가 아플 정도였다.
[어···어? 실화야?]
복부에 생긴 주먹크기의 구멍은 저 작은 총때문에 생겼다라곤 믿을수 없을정도로 커다랬다.
실탄 사격을 안해본것이 아니었던 미영이 오히려 더 놀랄 정도. 총 뿐만아니라 총알역시 평범한것이 아님이 분명했다.
「털썩.」
총에 맞은 민수는 상처를 움켜쥐고 그자리에 무릎 꿇었다. 미영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은 고통보다 호기심에 가까워 보였다.
‘첫 사격으로 상대를 멈춰세운 다음 신중하게 급소를 향해 쏴. 아끼지 말고 여섯발 전부. 노려야할 곳은 머리 그리고 심장이다.’
머릿속에서 속삭이는 것 같은 사장님의 목소리. 그럼에도 미영은 훈련받은 지침을 따르지 않고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뗏다.
사람에게 총을 쐈다는 공포감, 민수가 겪은 불행한 사건에 대한 연민 등 그녀의 총이 발사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재혁이 봤다면 싸대기를 맞아도 할말이 없었겠지만···
생사가 걸린 순간에서 적을 걱정하다니 그것만큼 멍청한 짓거리도 없을테지만 미영은 이런일을 하기엔 아직 너무 여렸다.
“끄아아아악!”
갑자기 들려오는 강현의 비명.
미영이 고개를 돌리자 또다른 민수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귀신잡는 경찰 뭐 그런거야?]
「터엉!」
한참을 날아간 그녀는 창고 문을 부수며 배구공에 파묻혔다.
총에 맞은 민수에게 다가간 또다른 민수가 손을 뻗어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 그순간 두사람 모두 기괴하게 몸을 떨었다.
[저거 사람맞아? 이제 우리 둘뿐이야.]
자신을 상처입힌 미영의 총을 손에 쥔 민수는 하늘을 향해 뻗은후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아무리 당겨도 총알은 발사되지 않았다. 안전장치도 없는 낯선 생김새의 권총은 민수의 생각대로 다룰수는 없는듯 보였다.
[나같은 사람이라고 했어.]
[그걸 믿어? 아니 아니지. 그래야 그 아저씨도, 이 총도 말이되지. 근데 저거 기도할때 쓰는거 아니었어? 어떤 미친놈이 저걸 쥐고 주먹질을 해?]
[우리도··· 달라질 수 있었을까?]
[..... 아마도? 늦은거 같지만.]
[마무리는 해야지.]
[동감이야. 이미 알고 있겠지만]
어차피 하나였던 둘은 끝을 내기위해 쓰러진 고강현을 향해 걸어갔다. 다리가 부러진 그는 살아남기 위해 최대한 목소리가 들리는 반대방향으로 기어가는 중이었다.
“흐으으으··· 미안해 살려줘···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아니아 강현아. 미안한건 오히려 우리지. 손톱 발톱 다 뽑아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지금 너무 바빠서 그 약속 못 지킬 것 같아.]
[걱정마 그대신 다른걸 뽑아줄게.]
두 사람 중 한명은 머리를, 나머지 한명은 다리를 붙잡은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로 눈빛을 교환한 민수는 각기다른 방향으로 힘을 주기 시작했다.
“안돼!! 안돼에에에!!!”
「뿌드드득!」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가 난 이후에 강현의 목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복수를 마무리한 민수들은 친구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고인이 되신 고 강현씨는 지옥행 특급열차를 타셨다고 합니다. 빠이빠이~]
[더 나눌까? 둘은 좀 불안한데···]
[아니 지금 안되고 있어. 그 총도 주먹도 뭔가 달라··· 그냥 숨어서 기다리자. 아니면 저 누나를···]
「드르르륵!」
체육관의 문이 열리며 검은 코트의 남자, 재혁이 등장했다. 그를 반기는건 두 조각으로 나뉘어진 고강현의 남은 부분이였다.
“내가 뭘 놓쳤는지 말해 줄 사람?”
「꿀꺽!」
마른침을 삼킨 민수는 긴장한 표정으로 잔뜩 움츠렸다. 그 중 한명은 발사되지 않는걸 이미 알면서도 재혁을 향해 총구를 내밀 정도였다.
“나서지 말라니까 총까지 뺏기고 아주 가지가지 하네.”
[가까이 오지마! 쏠거야!]
발사될리 없는 총에 겁먹을 재혁이 아니었다. 세사람이 달려들어도 어찌하지 못했는데 둘인데다가 부상까지 당한 지금 민수가 이길 확률은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말 안해도 알지? 이제 포기해야해]
아직 상처가 덜 아문 민수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듯 보였다. 의식이 연결된 이상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었기에 결정을 내린 둘은 고개를 들어 기다리던 존재와 마주했다.
[하나는 남겨줘]
「쿠우웅!」
하늘에서 떨어진 끔찍한 존재는 머리는 뱀이었고 몸은 사람의 것을 닮았으나 수많은 촉수가 꿈틀대고 있어 마치 말미잘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나쁜 친구를 사귀었구만. 어머니는 아시냐?”
「슈슈슈슉!」
수십가닥의 촉수들이 상처입지 않은 민수의 몸을 휘감았다. 놀랍게도 거대한 뱀의 머리부터 작아지고 쪼그라들면서 그의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괴물이 완전히 사라진 그 자리에는 민수의 분신만이 남아있었지만 눈을 뜬건 그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안녕하십니까. 문지기님”
“널 봐서 안녕하지가 못한데 그냥 가면 안되겠냐?”
“정당한 계약에 따라 저는 정민수의 영혼 절반에 대한 권리를 얻었습니다. 이는 강요나 협박에 의한 무단 갈취가 아님을 다시한번 상기시켜 드립니다.”
“그래..? 어이 꼬마!! 강탈자한테 무슨 소원을 빌었어? 네 복수는 이미 끝났잖아.”
오랫동안 알고지낸 친구처럼 대화하는 재혁과 악마는 민수를 얼빠진 표정으로 만들었다. 그가 이제서야 처음 듣게된 강탈자라는 이름까지··· 충격적인것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날··· 자유롭게··· 안전하게 나가게 해달라고 했어요···]
“그래?”
「뿌드드득!」
징조도 없이 나타난 거대한 대검이 체육관의 바닥을 부수며 재혁의 손에 쥐어졌다. 그의 주먹에 맞아본 경험이 있는 민수는 상상조차 못했던 흉기에 겁을 먹고 한걸음씩 뒷걸음 치기 시작했다.
“우리가 안보내줄껀데?”
[우리?]
「뻐어억!」
민수는 뒷통수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충격 때문에 정신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 그의 뒤엔 어느샌가 깨어난 미영이 문자가 새겨진 군용 나이프를 든채 서 있었다.
그녀는 왼쪽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민수의 얼굴을 한 악마를 노려보았다.
“그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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