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일곱에 도착한 이세계가 하드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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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형
작품등록일 :
2024.06.03 23:12
최근연재일 :
2024.07.0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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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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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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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죠

DUMMY

술에 띄워 두었던 얼음은 다 녹았고 안주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 녀석들 늦네."


제이미는 미지근해진 맥주컵을 손에 들고는 가끔가다 입에 가져다 댔다가 바로 떼기를 반복했다.


그녀의 눈썹과 눈썹 사이가 지근거리로 좁혀진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이런 경우 없었어. 일이 잘못된 거야."


컵을 내려놓고는 밖으로 나갔다.


약속 장소의 공기는 무거웠다.





할까, 말까 망설이던 그 의문을 결국 입 밖으로 꺼내놓을 수 밖에 없었다.


어쩌겠는가. 이것 만큼은 선천적으로 타고 난 건데.


"진짜로 이게 최선인 것 맞지?"


"더 좋은 방법 있으면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


역시나 예상했던 대답 중 하나가 돌아왔다... 그리고 두 사람을 해치려는 녀석들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그럼 행크, 뛰어!"


"실패하면 지옥에서 천년만년 저주한다!"


언수 씨는 짧은 줄을 가장 높은 횃대에 던져 단단히 감았다. 높다고는 하지만 지상 건물 2층 정도의 높이였다.


행크는 벽을 등지던 위치에서 놈들의 사이로 뛰어들어갔다.


맨 앞의 하나는 정확한 칼질로 쓰러뜨리고 그 바로 뒤에 있던 녀석은 어깨로 밀쳐 자빠뜨렸다.


노리던 두 사람 중 하나가 손아귀 밖으로 올라가자 놈들은 즉시 남은 하나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다 덤벼 새끼들아."


행크는 사방에서 달려드는 녀석들 사이에서 그럭저럭 버틴 편이었다. 그러나 아래쪽에서 다가온 손 세 개가 두 다리를 동시에 붙잡자 절망적인 표정으로 언수 씨를 바라보았다. 그 때 언수 씨도 보았다.


행크의 키가 순간 작아진 것처럼 보인 것이다. 얼굴도 새파래진 것은 덤이다.


"됐어! 여기까지 최대한 달려!"


행크는 못 달렸다. 한 손이 잡힌 왼발을 힘껏 흔들어서 자유롭게 만들고 오른발 잡은 손들을 칼로 찍었다.


한 놈은 놓았고 한 놈은 버텼다. 그 상태로 바닥을 찼다.


언수 씨가 있는 쪽으로 어설프게 제자리 뛰기를 한 격이다. 얼마 움직이지도 못 한데다 꼴사납게 넘어졌다.


팔꿈치로 움직이며 소리쳤다.


"이게 한계니까 그냥 던져!"


이를 빠득 갈고는 줄을 던졌다. 행크는 줄 끝단을 간신히 붙잡았다.


온갖 고생스러운 삶을 지내 오며 단련한 아귀힘이 대단히 좋았던 것이 천운이다.


앞으로 나자빠진 행크의 뒤를 노린 녀석들의 머리 높낮이가 들쭉날쭉 변하는 것이 보였다.


행크가 용감하게 사방에 포위되었던 장소에서부터 시작한 돌로 된 그물망이 드디어 사방으로 찢어지기 시작했다.


"흐아아아앗"


살에 칼이 들어와도 괘념치 않던 녀석들은 깊고 깊은 곳으로 추락하게 되자 그제서야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는 것이다.


"무거워!"


두 명이 동시에 한 말이다. 줄을 코 앞까지 당기고서야 행크의 다리를 아직 붙잡고 있는 녀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행크가 잡은 줄을 잽싸게 횃대에 휘감고 손을 뻗었다.


"칼 이리 내고 두 손으로 잡아!"


칼을 건네받은 언수 씨는 행크의 다리를 잡고 있던 녀석의 팔을 머리 위에서부터 힘을 실어서 내리찍었다.


"그렇게 찌르면 뼈에 박힌다고!"


"또 그 소리!"


네 번째 찍을 쯤이 되자 녀석의 팔뚝 근육이 버티질 못하게 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손가락이 하나씩 풀리더니 결국 마지막 녀석도 구덩이 아래로 떨어졌다.


두 사람은 횃대에 감긴 줄 하나씩에 몸을 의지한 모양새가 되었고... 당장은 급박한 상황을 넘겼다.


우리 이 정도 했으면 잠깐 이 상황에서 심신의 안정을 취해도 되는 것 아닌가?


안될 것 없지.


라는 명백한 무언의 대화가 눈빛만으로 오갔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땅이 꺼진 한숨을 쉬었다.


“···”


“일이···”


고개를 돌려보니, 행크가 나지막하게 말하는 듯 하더니 평소와 같은 목소리를 낸다.


“일이 그럭저럭 풀렸구만?”


“지옥에서 저주받을 일은 없겠군···”


“형씨 뒤끝 좀 있소? 사람을 옹졸한 놈으로 만드네.”


“방금 뭐라고?”


“뒤끝 있다고 했는데?”


“아니···.아니다. 이만 내려 가야겠지?”


행크는 먼저 내려가는 언수 씨가 들릴락 말락 늙어서 귀도 맥히셨나, 라고 낄낄댔다.


‘따로 혼내줄 필요는 없겠네···”


행크는 참으로 알기 쉬운 놈이었다. 두 사람은 어두컴컴한 나락 아래로 계속해서 내려갔다.




자리를 뜬 제이미를 가장 먼저 따라 나선 건 막내라고 불리던 키 작은 남자였다.


제이미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는 꽤 멀리 떨어진 왕궁을 노려보고 있었다.


“음···누님.”


“아···.스탠. 신경쓰이게 했냐?”


누님은 늘 이랬다. 세상 심각해지면 형제들을 별명으로 안 부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맞아.”


“혹시라도 무모한 생각은 하지 마세요.”


제이미는 계속 유지하고 있던 안 좋은 표정 그대로 스탠을 내려다 보았다.


스탠은 올려다보며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그저 방금 한 말을 눈빛으로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너는 가끔 이럴 때 좀 무서워.”


“무모하진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해야죠.”


“할 수 있는 일이라니···아, 그래!”


제이미는 뭐가 생각이 난 듯 품 속을 뒤졌다.


곧 안주머니를 뒤진 손길에 생쥐 한마리가 담겨 나왔다.


전형적인 마을 생쥐였지만 털이나 몸상태가 깨끗한 편이었다.


“그렇지요. 일단은 래리를 씁니다.


형님...들이 어디로 갔는지부터 알아 봐야겠죠.”


세상 모르는 생쥐는 바깥 공기가 기분이 좋은 지 거대한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두 남자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졌다.


이 표정은 두려움이나 막막함이 아니다. 기분나쁨과 불쾌함의 안 좋은 표정이었다.


“이 냄새는 분명···”


나락이라는 곳의 입구(?) 보다는 비교적 짧은 등반 끝에 바닥에 도착한 두 남자의 혹시나, 싶은 예상이 적중했다. 안 좋은 예상이란 늘 적중하는 법.


가장 먼저 보게 된 광경은 한참 먼저 도착했던 그 녀석들이었다.


일단 이 풍경은 예상을 했다. 그야 자신들이 합작해서 일으킨 일이었으니까.


거침없이 달려들던 난폭했던 것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죄다 엉망진청으로 부러지고 짓뭉개져 있었다.


“형씨···이거 틀림없는거지?”


무릎을 살짝 구부려 아래쪽을 살피던 행크의 표정이 매우 안 좋았다. 같은 곳에 시선을 고정한 두 남자는 확신했다. 굴러다니는 것 중 하나를 자세히 보니 사람의 해골이었다.


상태가 전부 제각각이었다. 삭아서 바스라지기 일보 직전인 것도 있었고 머릿가죽이 그대로 들러붙어 남은 것도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코를 틀어막았다. 방금의 장소를 벗어난 이후에도 상태가 제각각인 시체는 드문드문 있었다.


“이 사람들···아마도 우리랑 비슷한 처지로 여기에 와서 죽은 거겠지···?”


행크는 바닥에 띄엄띄엄 굴러다니는 뼛조각이니 살점들이 보일때마다 진절머리를 치며 중얼거렸다.


“그래···짚이는 데가 있어.”


언수 씨는 예의 그 ‘사상범’들이 받는 취급들에 대한 확인과 수상이 자신을 체포할 때에 했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며칠간 같혀 있던 사이에 있던 일들을 말했다.


행크는 어처구니가 없는 듯한 표정이다.


“그러니까 그 수상은 그게 진짜라고 믿는 거야?


그냥 허무맹랑한 이야기 하는 사람들 통제하려는 것 아니었느냐고?”


“그 놈이 그걸 믿는 건지 아닌지 아직 확신은 못하겠지만···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만큼은 확실하지.


수상이라는 작자가 재미로 다른 세상 이야기를 진지하게 시간 내 가며 듣고 있진 않겠지.”


“하긴 그 놈의 정책부터가 어이없단 건 우리도 똑같이 생각하긴 해.”


그리고 행크는 눈에 띄게 뭔가 머뭇머뭇하는 것이다. 이 알기 쉬운 남자는 행동거지도 매우 선명했다. 행동을 눈치챈 언수 씨가 채 묻기도 전에 말했다.


“우리 누님이 형씨를 데려오라고 한 건 아마도 보호하려고 했던 것 같아.”


언수 씨는 그제서야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 어린 놈이 반말한다는 것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놈은 나를 납치해서 인신매매, 혹은 그 비슷한 짓을 하려고 했던 놈이다. 그 일부터 캐 물어야 했다. 하지만 언수 씨도 사람이지 않은가. 당연히 그런 꼴을 당할 뻔 했으니 화부터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두 사람의 키가 비슷했기에 행크와 언수 씨는 비슷한 눈높이로 코앞에서 마주보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런 짓을 해 놓고선 잘도 태연하게 굴었어!”


“무슨 그런 짓? 아니··· 아! 이 형씨 진짜 뒤끝 있네!”


잠깐 동안의 드잡이질이 오간 후에야 언수 씨를 지배한 화가 좀 누그러든 모양이었다.


머리가 진정되고 나니 행크가 먼저 털어놓은 말이 떠올랐다. 쒸익대는 호흡을 좀 고르고는 다시 물었다.


“날 보호하려던 것 같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좀 거칠게 해도 되니까 아무튼 끌고 와.’


무슨 수를 써서든 데려오라던 디테일한 부분까지 말할 필요는 없겠지. 적당히 순화를 했다.


“우리는 그 날 형씨 뒤를 추적했다고.”





다리에 쪽지를 묶은 올빼미가 한밤중의 숲 속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덩치 큰 남자의 어깨에 착지했다.


“왔구나 울 애기.”


“우웩.”


마른 남자에서 대머리에서 키 작은 순서의 남자로 넘어가는 쪽지.


키가 작은 남자가 쪽지를 상세히 읽었다.


-4인조들

이렇게 생긴 녀석이 곧 그쪽 숲길 지나갈 거다

추적하다가 적당한 상황이 되면 잡아 오도록

좀 거칠게 해도 되니까 아무튼 끌고 와

보수는 하는 거 봐서


그리고는 뒷면에 청~장년쯤 나이로 되어 보이는 얼굴의 남자가 그려져 있었다.


키 작은 남자가 쪽지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말했다.


“지나가는 거 보이면 쥐어패면 되겠어.”


“그래 그러면 되겠네. 고르아, 첫타는 너야. 30분.”


대머리의 지시에 덩치가 작게 궁시렁대며 숲길이 바로 보이는 언덕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30분이 되어 교대를 할 시간 바로 직전에, 덩치는 언수 씨를 발견했다.


“형님, 저기 누가 지나가는데.”


카드를 치고 있던 세 명이 언덕으로 몰려갔다.


“틀림없어.”


“누님 그림은 역시 대단해.”


각자 나이프니 도끼니 꺼내들고선 달려내려갈 준비를 했다.


“야, 잠깐만. 저거 개인간이잖아.”


척 봐도 주 단위로 굶어서 피골이 상접한 개인간은 생존이 걸려 있는 식사를 발견하고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곧 사냥꾼과 사냥감은 목숨을 건 레이싱을 시도했다.


“어쩐지 일이 쉽더라니···따라가자.”


네 남자는 구시렁대며 사냥꾼과 사냥감을 따라 달렸다. 레이스는 오래가지 않았다. 아래에 깔린 언수 씨는 불이 붙은 유리병을 머리맡 방향으로 던져버렸다.


“아니, 저런 한심한 놈을 봤나.”


“아무래도 안 될 거 같아!”


칼을 투척해 봐야 하나, 싶은 순간에 개인간의 몸이 갑자기 발화하면서 고꾸라지는 것이다.


그 광경을 본 네 남자는 바로 제자리에 멈추고 나무 사이로 다시 몸을 숨겼다.


이내 덩치가 좋은 중년 남성이 나타났다. 대머리는 탄식을 흘렸다.


“망할, 자경단이다. 심지어 불장이네.”


“아니야 형님 오히려 잘됐어. 아무튼 저녀석 목숨은 구한거니까 뒤를 밟다 보면 기회는 또 생겨.”





네 사람은 그렇게 마을로 향하는 언수 씨와 레딩의 뒤를 계속 밟은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튼 나를 뭐··· 팔아넘기거나 그럴 생각은 아니었던 거고?”


“우리를 뭘로 봐? 그런 짓 안 해.”


“···”


두 사람의 얼굴에는 멋적음과 허탈함 등이 복잡하게 뒤섞인 표정이 흘러갔다.


행크는 일부러라는 듯한 느낌으로 침묵을 깼다.


“그런데 누님이 형씨 같은 사람 본격적으로 데려오도록 시도한 건 이번이 처음이야.”


작가의말

높으신 분들 사정으로 죽을까 보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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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일곱에 도착한 이세계가 하드코어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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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산 넘어 산이니 첩첩산중 24.07.02 26 0 12쪽
20 모두는 하나를 위해 24.06.23 20 0 11쪽
19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리 24.06.20 26 0 12쪽
»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죠 24.06.19 25 0 12쪽
17 두 사람은 나락페어 24.06.18 31 0 11쪽
16 위험한 초대 24.06.17 35 0 12쪽
15 깨어지지 않는 것 24.06.16 33 0 12쪽
14 하얀 도화지 24.06.15 29 0 11쪽
13 순수함의 양면성 24.06.14 45 0 11쪽
12 혼이 담긴 구라 24.06.13 38 0 13쪽
11 실천하지 않는 양심은 죽은 양심 24.06.13 30 0 12쪽
10 세상만사 사필귀정 24.06.12 31 0 12쪽
9 폭풍이 일어나는 날의 밤 24.06.12 38 0 13쪽
8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24.06.11 43 0 11쪽
7 누군가는 해야하잖아 24.06.10 51 0 13쪽
6 젊어서 고생은 돈 받고 하는것 24.06.09 49 0 12쪽
5 누구에게나 하나뿐인 24.06.08 58 1 13쪽
4 누구나 하나쯤은 24.06.07 64 2 15쪽
3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4 24.06.06 80 2 14쪽
2 하드코어로 시작하는 인생 24.06.05 86 1 12쪽
1 언수 씨의 어느 날 +2 24.06.04 133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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