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택트 III

이미 축기기에 올라서 인세에 다시 없을 존재들이 되었지만, 드라의 입장에서는 이번과 같은 미지의 위험이 있는 곳에 데려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에 가는 길은 어떤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고, 아마도 내가 혼자 가야만 하는 길로 보여. 그러니 수련을 계속하고 있어 줘.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면 꼭 부를 테니까.”
드라의 단호한 거절에 우노와 투아가 섭섭한 표정을 잠시 지었다가 자신들이 아직도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을 한 듯 의지를 담아 말했다.
“꼭 수련을 통해 드라님이 믿을만한 실력을 기르겠습니다.”
축기기에 이르면 말에 영기를 담고, 그 말에 구속력을 가지게 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서원을 담은 말이 두 사람의 수련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주리라는 걸 알고 드라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두 사람의 힘이 필요할 일이 많을 것 같으니, 꼭 그렇게 해줘요.”
그렇게 두 사람과 리치 모두에게 일별하고 드라는 대륙의 남쪽 끝으로 향했다.
“하아······진짜 오랜만의 바다네.”
이곳의 대륙은 진짜 엄청나게 커서, 거의 남극에 가까이 와서야 대륙이 끝나고 바다가 보였다. 아마도 행성의 2/3는 육지인게 아닐까 싶었다.
드라가 이 세계에서 처음 만난 바다는 에메랄드빛으로 신비롭게 빛나고 있었다. 한참을 그 광경을 홀린 듯이 지켜보다가, 해가 질 무렵 태청에게 물었다.
“저기 바닷속에 그게 있다고?”
“정확히는 바다 밑의 동굴을 꽤 지나가야 그 입구가 있다고 전설에 내려옵니다.”
“우글?”
“원시적인 전설에 부합하는 위치라고 보입니다. 홀로그램으로 방향을 계속 보여드리겠습니다.”
“어! 이거 네비게이션이네?”
드라의 눈의 망막에 직접 투사된 홀로그램은 입체 네비게이션이었다. 드라가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자, 거기에 맞춰 가야 할 방향과 거리가 나오고 있었기에 너무 편했다.
“좋아. 우글 너 유능하네?”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스터.”
“그래. 또 이런 좋은 기능 있으면 추천해 줘.”
“아 그럼 하는 김에 적대적인 생명체나 움직임이 있으면 같이 표시할까요?”
“좋네. 그렇게 하자.”
10킬로미터 주변에 존재하는 위협이 될 수 있는 모든 생명체가 망막에 거리와 대상 크기가 표시되었다. 그 대상 쪽을 바라보면 확대되어 실루엣을 보여주었으므로 이것만으로도 꽤 귀찮은 접촉을 많이 피할 수 있을 듯했다.
‘마나쉴드’
드라는 마나쉴드를 직경 10미터 크기고 두껍게 펼쳐서 물이 들어오지 않게 한 뒤, 바다로 뛰어들었다.
‘둥~ 둥~’
“아······공기가 가득차 있으니 내려갈 수가 없네. 태청아, 방법이 없을까?”
“수중 호흡이 가능한 선도공법이 있긴 한데, 익히시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괜찮아. 해보자.”
태청이 알려준 공법을 며칠에 걸쳐 익힌 후, 바다에 뛰어들어 사용해 보았다.
‘꼬르르륵~ 꼬륵~’
물속에서 호흡이 될 뿐만 아니라 물이 주는 저항이 사라져서 손쉽게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기에, 심해의 동굴을 향해 천천히 내려갔다. 대략 수면으로부터 10킬로미터쯤 내려갔을 때, 드라의 온몸이 수압으로 쥐어짜여지는 게 느껴졌다.
“수압에 유의하세요. 지금 수압은 1000기압입니다. 지상에 비해 천배 강한 압력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우글의 정보에 드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가 초인의 상태, 아니 약화한 금선체를 가졌기에 버티는 것이지, 우노와 투아였다면 눌러 짜부라져 죽었을 것 같았다. 둘을 데려오지 않은 선택은 옳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작된 수중동굴의 구불구불한 내부를 따라 10킬로미터쯤 더 내려갔을 때 얇은 기포 막과 같은 것을 통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호흡할 수 있는 공기가 있으며, 희미하게 사방이 보이는 사방 백여 미터의 반구형의 광장이 있었다.
“이곳인가?”
“아닙니다. 목적지는 이 아래 1킬로미터를 더 내려가야만 합니다. 다만, 여기서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없는 것으로 보아 방법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드라는 텅 빈 반구형의 공간을 살펴보았다. 정 가운데 있는 모래가 쌓여있는 둥근 돌판을 제외하면 다른 것이 없었기에 둥근 돌판에 손을 가져다 대어보았다.
‘우웅!’
가벼운 진동음이 난 뒤, 돌판 위에 있던 모래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인간의 얼굴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그 얼굴이 살아있는 것처럼 표정을 이리저리 지어보더니 소리를 내며 말했다.
“아······아······”
“어라. 이거도 홀로그램 같은 건가?”
“모레를 이용한 3D 투영입니다. 홀로그램의 원시적인 구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라······이거······도.홀······로그..램······”
모래로 만들어진 커다란 나이 든 남성의 얼굴을 가진 그것은 우글과 드라의 말을 흉내를 내서 몇 마디 말했다.
“언어 탐색 중인 그것으로 보이네요. 제가 직접적인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실은 소리 파형을 보내겠습니다.”
뭔가 비프음 같은 복잡한 소리를 우글이 내자, 그 모래 얼굴이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유창하게 말했다.
“하하하······후손들이 다행히 상당한 수준의 공학을 발전시킨 모양이야. 우리가 실패하고 공학적인 발전을 완전히 봉쇄당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말이지?”
“응? 엄청나게 말을 잘하는데? 우글아?”
“제가 사운드에 대화에 필요한 음절과 단어, 그리고 언어구조를 실어서 전파했습니다. 다행히 잘 입력된 모양이네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잘된 모양이네.”
“그렇다네 후손이여. 우리들이 실패한 뒤로 십만사천이백십일주기하고도 더 지났기에, 거의 포기하고 있었던 차였다.”
“주기?”
“아······그대들은 시간을 어떻게 가늠하는지 모르겠군. 우리는 항성을 한번 공전하는 것을 한 주기로 시간을 다루었다.”
“그러면 그게 1년이겠네. 십만 년이 넘었다는 얘기야?”
“그렇다.”
“후우······만년 넘은 유적이라더니 10만 년이잖아. 우글아?”
“최소 1만 년이라고 말씀드렸었습니다.”
“크······그래. 아무튼 설리반인이라고 불러야 하나?”
“후손들이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로군. 우리는 스스로를 지칭하는 이름이 없다.”
“혹시 저 아래에 있는 너희들의 유적을 내가 좀 활용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
“이미 우리는 실패해서 잊혀가는 자들. 남은 우리의 유산은 발견한 후손 그대의 것이다. 남김없이 사용하고 어떻게 쓰더라도 그대의 몫.”
“좋아. 화끈하네. 그런데 그 유적이 이 아래 1킬로 미터나 더 내려가야 한다면서, 거기론 쉽게 갈 방법이 없을까?”
“내가 그곳으로 가는 관문이다. 이 돌판 위로 올라오면 바로 그곳으로 보내주겠다.”
“이야. 좋네. 그럼 부탁하지.”
‘스르륵~’
드라가 둥근 돌판 위로 올라서자, 모래가 드라를 감싸는 듯하더니 드라의 시야가 일변했다.
“깜깜한데?”
‘드드드드드!’
드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멀리서부터 거대한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방이 우윳빛 조명으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10만 년 전 유적이라더니, 완전 미래 SF네. 이게 무슨 과거야.”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진보한 문명으로 보입니다.”
우글의 말에 드라는 태청에게 물었다.
“태청아, 얘네들에 대한 다른 정보는 없어?”
“말씀드린 전설과 정보가 제가 알고 있는 것의 전부입니다. 정말로 엄청난 문명이었던 것 같네요. 저도 놀라고 있습니다.”
드라의 앞에 펼쳐진 기다란 터널은 SF에 나올 정도로 진보된 소재로 만들어져 있었고, 우윳빛 조명은 어디에서 흘러나오는지도 짐작하므로 어려웠다. 허공에 모래로 만들어진 홀로그램 얼굴이 만들어진 뒤 드라에게 말했다.
“후손이여. 이곳의 모든 것은 그대의 것이네. 그대가 우리를 설리반이라고 알고 있었다고 하니, 이곳 어디에서는 ‘설리반’을 부르면 내가 도와주도록 하겠네. 간단한 정보들을 그대의 손가락에 있는 정보 단말에게 알려주도록 하지.”
허공에서 비프음이 잠시 들려오더니, 우글이 말했다.
“유적의 정보를 전달받았습니다. 간단한 형태의 지도를 홀로그램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우글이 보여준 유적의 규모는 놀라웠다. 유적은 길이 1km, 한 층의 크기는 평균 가로 100미터, 그러니까 층당 10제곱킬로미터 정도 되는 층들이 모여, 총 10층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우주선이었다. 10제곱킬로미터면 대략 서울의 한 구의 넓이 정도다. 10개가 있으니 내부 면적이 서울시 정도는 된다고 보였다. 우글의 우주선은 이 우주선 크기의 만분의 일도 안 되는 그것 같았다.
“크기가 엄청나네. 이게 우주선이라고? 날 수 있어?”
“동력계나 전원계가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기술이라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조금의 수리만 된다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금도 자가 복구되고 있는 그것으로 보입니다.”
“설리반.”
“후손이여 불렀는가?”
“이거 날 수 있어?”
“대략 10주기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가능은 하겠지만······”
“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
“그대는 모르는가? 어두운 숲속의 사냥꾼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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