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택트V

그리고 1시간을 기다리자, 접시 모양의 납작한 탈 것이 도착해서 전송이동진을 수납하고, 드라, 리치, 우노, 투아를 태우고 모선으로 귀환했다. 귀환하는 동안 우노와 투아가 이해할 정도의 수준으로 대충 고대인과 모선, 그리고 무례한 외계 침입자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설리반인들이 실재했던 거군요. 아이들의 동화에나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설리반의 모선에 도착하자 우노와 투아, 그리고 리치마저 눈을 빛냈다. 판타지 세계 주민들의 SF와의 조우였다.
“잘왔다 후손들이여. 이곳은 너희를 환영한다.”
설리반의 홀로그램이 나타나 반가워하자, 우노, 투아, 리치는 설명을 들었음에도 허공에 나타난 모래허깨비 설리반을 보고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생명체가 있을 수 있는 거군요.”
“후손이여. 나는 생명이 없다. 그대들의 기준으로는 도구와도 같은 존재일 뿐. 하지만, 그대들이 나를 살아있는 자로 대해준다면 그건 또 다른 기쁨이겠구나.”
은근히 후손들에게 신기한 취급을 받으면서도 기뻐하는 설리반에게 드라는 말했다.
“가져온 전송진을 고정시켜 줘.”
“그렇게 하지.”
소형 비행정에서 모선으로 옮겨진 전송진을 꽉 잡고 있는 고정구가 부서질 정도로 진동하고 있었다.
“저걸 어떻게 고정하려는 거지? 억지로 고정했다가 부서지기라도 하면 곤란한데.”
드라의 말에 설리반이 답했다.
“이 모선의 동력원이 저런 공간적 불안정성을 에너지로 바꾸는 것이다. 저 전송진 덕분에 모선의 복구가 빨라질 듯하다.”
“오······그래?”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시공간 에너지가 방출되고 있으니까······”
“시공간 에너지?”
“우리의 기술의 정화가 바로 시공간 에너지다. 동력원으로부터 지금의 내 몸을 유지하는 기술의 가장 바닥에 존재하는 근원이지.”
“그럼 설리반도 전송진을 만들 수 있나?”
“그런 건 안 된다. 저 전송진을 연구해 보면 실마리가 잡힐지는 몰라도, 이전의 우리 기술로는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야. 태청아. 리치야. 니들이 전송진 만드는 게 우글이랑 설리반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란다. 이거 뭔가 협력하면 재밌는 게 나올 거 같지 않냐?”
“주인님이 허락하신다면.”
“나도 드라님이 허락하면 같이 연구를 해보겠다.”
“저희도 돕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태청이를 우노 들고, 우글이는 투아가 착용한 상태에, 거기에 리치가 가세했고, 설리반의 협력으로 이동진이라는 마법적인 현상을 연구하도록 투입되었다.
“아······나만 할 일이 없네.”
다른 이들에게 연구 주제를 던져주고 나니 심심해진 드라는 동력실의 위에 설치된 이동진을 타고 학노자의 도관으로 건너가 단로 아래에서 축기기 수련을 시작했다. 가끔 우노와 투아가 와서 수련해야 했기에 그 시간에는 설리반이 만들어준 학습 기계를 사용했다.
“우주 문명이라는 게 참 대단하군. 거의 3억 광년에 이르는 거리의 별끼리 물자와 문명을 교류하고 있다는 거지.”
설리반이 우글이 탑재되어 있던 추락한 함선의 동면자들의 기억을 추출해서 필요한 지식을 정련하여 드라에게 수면 학습시스템을 통해 주입해 주고 있었다. 대략 8시간의 수면으로 인간이 100년 정도 공부해야 할 양을 주입하는 게 가능하다고 하니, 고대의 설리반인들은 엄청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우글이네 기술도 비슷한 것이 있다고 하나, 그 비율이 3개월짜리 공부할 양을 12시간에 학습시킨다고 하니,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드라는 날이 갈수록 우주 문명에 대한 기초지식의 수준이 깊어 갔고, 더불어 설리반들에 대한 정보도 얻었다. 다만, 설리반들의 정보는 거의 십수만 년의 역사와 과학 발전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서 그중에서 추려서 핵심적인 것만 학습하고 있었다.
그렇게 1년 6개월이 지났을 때, 드디어 메디컬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수리가 아니고 완성인 이유는, 이전 우글이네 메디컬 시스템은 치료와 약간의 신체향상 시술이 가능한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거의 몸을 재구성하고 생명을 무한히 연장하는 것까지도 가능한 시스템이었으니까. 마찬가지로 설리반들의 기술 덕택이었다.
“원래 우리는 스스로를 개조하는 것에 강한 터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후손들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여서 조금은 힘을 쓴 것이다.”
“하하하······조금 힘을 쓴 거라고요 이게?”
드라는 커다란 병원같이 만들어진 메디컬 시스템의 조종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메뉴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미 설리반 기술의 상당수를 학습한 드라의 입장에서 보아도 이건 엄청난 혁신이었다. 그야 그럴 것이 우주 문명의 기술을 추출한 설리반은 메디컬 시스템에서 새로운 도약을 이뤄냈을 뿐 아니라, 지난 1년간의 이동 마법진 분석에서 마법과 신선술의 기초에 대한 이해에도 성공했으니까.
“마나하트 개조에다가 단전 개조, 그리고 탈태환골 레벨 1까지 적용할 수 있다는 거, 이거 정말인 거죠?”
“그러하다. 정말로 지난 1년은 설리반의 기술의 비약적인 도약이 가능한 시간이었다.”
이미 저 캡슐의 초기 시험은 끝났고, 지금은 우노와 투아의 탈태환골을 진행 중이고, 거기에 더해서 리치에게도 단전을 심어주고 있었다.
리치에게 단전을 심는 게 가능해진 이유는, 리치가 마법생명체이기는 하지만, 인간을 기본으로 변형된 경우여서, 역계산을 통해 단전 생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만, 단전을 형성했을 때 리치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리치의 강력한 모험정신을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물론 일곱 스켈레톤이 마루타가 되어서 중간에 갈려 나갔지만, 그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니까 논외)
“5..4..3..2..1”
“모든 처리가 끝났네. 회복하는 데 하루 정도의 시간이 걸릴 듯하군.”
드라는 그 말을 듣고 시술이 끝난 우노, 투아, 리치의 바이탈을 확인하고 있었다.
“어라······리치가 원래 심장이 있었나?”
거의 해골 밖에 없었고, 옷으로 가려져 그 속살을 볼일은 없었던 리치였다. 물론 언데드니까 심장이 없었지만, 지금의 리치에게서는 바이탈 사인, 즉 심장 박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봐? 리치가 피부가 재생되고 있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인 것으로 보인다. 처리를 환원해야 할까?”
설리반의 말에 드라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리치가 판단할 문제겠지. 일단 회복하고 나서 물어보자.”
그리고 하루가 지난 뒤, 모두가 깨어났다.
“스승님.”
우노와 투아는 이제 10대 중반의 소녀가 되어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조차 그녀들은 30대 초반의 여기사였지만 시간을 천년 만에 완전히 거슬러 오른 셈이다.
“성공했구나. 고생했다.”
“별말씀을요. 이 모든 게 스승님의 덕분입니다.”
“아니야. 너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야.”
우노와 투아는 기사이면서 마법기사였고, 그리고 신선도를 수련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메디컬 시스템을 위한 데이터는 그녀들에게서 추출한 게 반 정도는 되었다. 드라의 경우, 이 세계에서 온 몸이기 때문에 또 다른 형태의 데이터가 많았기에 지금도 분석 중이었다.
“그리고, 리치······넌 지금의 몸에 만족하냐?”
“그럼. 피부가 생겨났고 심장이 뛰는데, 이게 얼마나 기분이 좋은 줄 모를 거다. 심장이 멈춰봐야 아는 거라서······”
리치의 수다를 들으면서 드라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마 심장이 멈췄다가 다시 뛰는 건 드라가 더 많이 해봤을 거라고.
리치는 연골은 아직 재생되지 못해서 콧망울이 없이 코가 있던 자리가 크게 구멍이 뚫렸고, 몸의 곳곳이 재생과 파멸을 동시에 맞이하고 있지만, 징그러울 정도의 심장이 뛰고 있었고, 단전의 자리에 보석과 같은 것이 생겨나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건, 반시와 비슷한 상태로 보입니다.”
태청의 말에 드라와 리치가 주목했다.
“신선도의 수련법 중 시체를 이용한 수련이 있는데, 그 수련의 과정에서 겪는 현상과 비슷해 보입니다.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몸이 되면 연기기와 축기기를 바로 뛰어넘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 경우와 비슷할 것 같습니다. 만약 원영기를 대성하게 되면 생이 충만한 금선에 반대되는 반선의 몸을 얻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오······그래? 그러면 그 수련법을 알고 있나?”
“저도 기억에 그러한 소문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반시수련은 워낙 비밀스럽고 명맥을 찾기가 어려운 것으로 압니다.”
“그래······언젠가 수련법을 찾아낼 수 있으면 좋겠군.”
드라의 말에 리치가 대답했다.
“굳이 그런 수련을 하지 않더라도, 이미 불사의 몸이고, 새롭고 흥미로운 것이 이렇게 많이 생겼으니 나는 괜찮다.”
리치의 눈은 설리반과 우글의 기술 세계에 정조준되어 있었고, 설리반도 마법과 선도에 상당히 자극받은 상태였다. 그날 이후로 또다시 연구를 계속하였고, 6개월 뒤 북극 산위에 있는 동굴에서 추락한 함선과 주변의 얼음으로 냉동된 이들을 모선으로 옮겨왔다.
“정말 오랜만의 해후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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