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VIII

드라가 녀석의 말에 되묻자 녀석이 다시 말했다.
“단대인과 카엘님의 평화협정을 모른다는 말이더냐. 이 몸을 납치하다니 공멸이라도 바라는 게냐?”
드라는 이자의 상전이 카엘이라는 것과 반대 세력의 주인이 단대인이라는 자라는 걸 깨닫고는 말했다.
“그래서, 카엘과 단대인 둘이 이 세상을 마음대로 휘젓겠다?”
“무···무슨 너는 누구냐. 새로 들어온 자인가?”
“새로? 뭐 그런 셈일까? 너희들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냐?”
“말할 수 없다. 새로 들어온 자라면 카엘님께 의탁해라. 이 세상은 미쳐있다. 너도 머지 않아 미쳐버리게 될 것이다. 오직 카엘님과 단대인만이 이 미쳐버린 세상에서 길을 찾아주실 수 있는 분들이다.”
“뭐래는 거냐.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해. 뭐가 미친 세상이야.”
“너는 모른다. 이 세상이 얼마나 미친 세상인지를. 지금은 멀쩡하지만 오래지 않아 세상이 미친 마각을 드러내고 미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 올거야. 카엘님을 믿어라.”
“싫은데.”
“싫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다 너도 좋고 우리도 좋은 일이다.”
“그 일이 뭔데?”
“카엘님을 믿고 따르는 거다.”
“그러니까 그게 뭐가 좋은 거냐고.”
“이 세상은 미쳐간다 그 사이에 미치지 않으려면···”
“아 젠장··· 무슨 녹음기냐. 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거야?”
드라는 축기기 라엘 녀석이랑 이야기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그 세상이 미쳐간다고는 하면서 그 미쳐가는 게 무엇인지는 정작 말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이상함을 느끼고는 드라는 태청과 이야기를 나눴다.
“뭔가 안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단대인이라는 자와 카엘은 서로 다른 세력을 구축했고, 그 안 좋은 일에 대한 대항책이나 정보가 있는 것같구요.”
“그래? 그럼 일단 카엘이라는 놈을 잡아와서 캐물어 봐야겠군.”
드라가 다시 묵특의 병영에 잠입하려고 했을 때 묘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영기가 있는 것이 다가오는 것을 막는 결계입니다.”
“그래? 찢으려고 하면 찢을 수 있을 거 같긴한데···”
“바로 들킬 겁니다.”
태청이의 말 때문에 공간에 일렁이는 기운을 찢으려던 드라는 그만 두고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카엘인가 하는 녀석 상당히 용의 주도한 녀석이네. 꼼꼼하게도 주변에 결계를 쳐놨어.”
“주인님 말씀대로 상당한 수준의 부적술사로 보여집니다. 이렇게 광범위한 영역에 치밀하게 설치하는 게 쉽지 않았을 터인데요.”
“그런데 저기 빈 곳이 있는데 말야···”
“수상하죠?”
“그래. 완전 수상해.”
거의 5킬로미터 반경을 빽빽하게 결계를 쳐놓은 주제에 딱 한 곳을 비워놓았다. 마치 이쪽으로 들어오라는 분위기로.
“하지만 수상하다고 마냥 구경만 할 순 없으니까. 들어가야겠어.”
드라가 결계가 빈곳으로 하수신의 보법을 응용한 그림자를 걷는 보법으로 스며들어가자 빈곳 주변에서 수백 개의 목각상이 솟아올랐다.
“인형술이로군요. 카엘이라는 자가 결계와 인형술 모두에 능하다니 대단한 자입니다.”
“그래? 쟤들 대충 어느 정도 수준이지?”
어느새 드라의 주변을 가득 에워싼 목각 인형을 보며 태청에게 물었다.
“수준은 축기기 중기 정도 수준이지만, 술자를 찾아내지 못하면 끊임없이 살아날 겁니다.”
‘스릉~’
드라는 태청이를 뽑아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일단 주변을 정리하면서 술자를 찾아보는 게 좋겠어.”
‘콰직! 콰직! 콰직!’
태청이의 말처럼 드라가 검강을 일으켜 베어내고 소멸시켜도 어느새 그만큼 보충되어서 숫자가 줄어들지를 않았다.
“이건 좀 예상외인데···”
“술자를 찾았습니다. 북서쪽 큰 천막 안에 모여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좋아.”
태청이의 말을 들은 드라는 북서쪽 방향을 크게 베어내고는 그쪽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 쪽에는 백여명은 족히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천막이 있었고, 드라는 천막을 베어내고 들어갔다.
“이런···”
“환상결계진입니다. 정말 대단하군요. 이런 규모라니···”
드라의 눈에는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분명 천막을 베어내고 들어왔을 뿐인데, 적은 드라가 환상결계에 빠지도록 준비해둔 것이었다.
“이거 어떻게 빠져나가지?”
“결계진의 생문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병영 주변에 펼쳐져 있던 모든 결계와 여기 천막 안의 결계가 서로 보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어느새 환상 결계진 안의 초원은 밤이 되었고, 밤하늘에 오로라가 어지러이 춤추고 있었다. 초원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드라가 최고속의 보법으로 사방을 달려보아도 끝없이 펼쳐져 있는 초원 뿐이었다.
“이야···이건 또 다른 세상이나 다름 없는 걸?”
“환상결계진의 특징입니다. 그 안에 빠지면 인지가 혼란이 와서 빠져나갈 수 없게 하는 것이죠. 법기인 저조차도 빠져들 정도면 정말 고도의 술수로 보입니다.”
“크흠···여기서 죽으면 안되겠지?”
“아마도 죽음을 선택하시면 이 세계에서 튕겨나갈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여기서 죽어봐야 지금 이 몸이 죽을 뿐이니 그럴 것 같네. 어쩐다···”
“드라님 이건 어떨까요? 제 단로(단약을 녹이는 화로)들을 소환하는 것은···”
“아. 그래 네 단로가 기운을 모으고 정화하는 능력이 있었지? 여기에서도 통할까?”
“결계진도 큰 범주에서 보자면 기운을 모으고 그것을 변화하는 능력이니까요. 통할 거 같습니다.”
“좋아. 진행시켜.”
“주인님의 영기가 필요합니다.”
드라가 태청이에게 영기를 잔뜩 주입하자, 잠시 후 허공에서 학노자의 이계에 있던 단로 세 개가 주변에 나타났다.
“단로의 정화력은 제가 다룰 터이니 단로에 영기를 주입해주시면 될 듯 합니다.”
드라가 단로 하나에 손을 대고 영기를 주입하자, 주변의 환상이 일그러지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환상 너머로 결계진의 핵에 영기를 주입하고 있는 자들이 보였다. 대략 십여명의 축기기 인간들이 결계진의 핵에 붙어 있었고, 카엘로 보이는 금색 의복으로 차려입은 자가 결계진을 향해 부적을 던지며 조종하는 것도 보였다.
“하···고생들하네. 어디한번 누가 이기나 해보자.”
드라가 단로에 영기를 더 강하게 주입하자, 주변의 환상이 사라져갔고, 결계진의 핵에 영기를 주입하던 자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고인께서는 자비를 베풀어 머···멈추어주시오. 우리를 모두 죽일 셈이오?”
카엘로 보이는 자가 부탁을 해오자, 드라가 손을 거두며 말했다.
“함정에 빠뜨리고 결계진을 펼친 건 너희이 잖느냐? 내가 너희를 죽여도 할 말이 없을 텐데?”
“우리 목단처사를 납치하시지 않으셨오?”
“아···그거? 이미 풀어주었는데? 좀 먼 곳에 있어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지.”
“크흠···”
카엘로 보이는 자는 뭐라 비난하려다 그만두었다. 이미 자신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상대인 만큼 굳이 척을 질 필요는 없는 것이라 판단한 까닭이다.
“어찌하여 고인께서는 저희를 핍박하셨습니까?”
“핍박한 건 아니고, 궁금해서 말이야. 내가 어쩌다보니 대월지국을 도와주게 되었는데, 그 적인 흉노 쪽에 수상한 자들이 있다고 들어서 말이지.”
“헙··· 저희는 그러면 묵특 병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재빠른 태세 변경이었다.
“좋아. 그러면 굳이 너희와 척을 질 필요는 없지.”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드라는 급히 도망치듯 물러나려는 카엘을 불러 세웠다.
“잠깐. 몇가지 물어볼 것이 있다.”
카엘은 약간 씁슬한 표정을 지었다가 표정관리한 뒤 대답했다.
“하문하시옵소서.”
“너희들 마엘이랑 무슨 관계냐?”
카엘은 이빨을 으득 깨물고는 말했다.
“제 동생을 아십니까?”
“마엘이 네 동생이더냐?”
“그렇습니다. 아주 오래전 헤어진 동생입니다.”
“아주 오래전? 얼마나 오래전?”
“이곳 시간으로는 2백년정도 되었습니다.”
“이곳 시간?”
“이곳과 바깥의 시간은 다르게 흐릅니다. 이곳의 백년은 바깥에서의 1년과 같지요.”
“허···그랬어? 그런데 마엘과 사이가 안좋았던 모양이지?”
“가문의 승계를 위해 저와 가신들을 이곳에 가둔 녀석입니다.”
“그래···? 자세히 이야기해보겠어?”
드라는 카엘과 마엘이 형제였고, 승계 다툼 과정에서 카엘을 가둔 일과 2백년 동안 이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이 세상이 미쳐간다는 건 또 무슨 이야기지?”
“그게 사실은··· 이 세계에 오래있게 되면 바깥 세계의 일을 잊고 동화되어 버립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기억을 잃고 미쳐버리기일 수여서, 미친다고 보통 표현을 합니다. 제 가신들도 일부는 이미 동화가 진행 중이어서 위험한 상태이기도 합니다.”
“그런 부작용이 있었다는 말이지. 그런데 너는 괜찮고?”
“그 동화를 막는 부적을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드라는 카엘이 내민 부적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부적술, 결계술, 인형술 이게 네 장기더냐?”
“그렇습니다. 고인께서 보시기엔 하찮을지 몰라도 바깥에서는 나름 이쪽으로 인정받던 터였습니다.”
“그래? 그럼 너랑 네 가신들 나를 따르지 않겠느냐?”
“···”
카엘이 잠시 말없이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자, 드라가 말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곳을 벗어날 때, 이곳을 나갈 수 있게 해주겠다.”
카엘은 그 말을 듣고 뭔가 결심한 듯 표정을 짓더니 부복하고는 말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이 카엘 목숨 다 바쳐서 충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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