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선 III

“네가 우리와 계약하였느냐?”
황금색 빛 사이로 우뢰와 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드라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렇소.”
“우리를 보고도 전혀 위축됨이 없다니, 이번 주기의 예비 비상 계획은 훌륭하군요.”
빛이 잦아들자 키 4미터는 되어보이는 거대한 그리스신전의 조각상 같은 남녀 신이 서 있었다.
“저는 드라라고 합니다. 두 분은 누구신지요?”
“우리를 몰라? 허···”
황금색 번개가 분노를 표현하며 사방을 거칠게 몰아치고 있었고, 어느새 청룡각 진호와 백호각 미령은 바닥을 머리를 박은 채 조아리고 있었다.
“여보. 우리의 신격이 높다고는 하지만 모든 세계에서 알 정도는 아니죠. 화를 거두세요.”
여신이 손을 가볍게 흔들자 번개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고, 남신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제우스. 내 아내는 헤라다.”
“아···올림포스 최고 신이셨군요.”
“그래. 이제야 알아보는 군. 무례를 용서하지.”
드라는 속으로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밝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제가 예비 비상 계획인 것을 알아보시는 군요. 그러면 따로 설명은 드리지 않아도···”
“그 요사한 말들을 멈추어라. 네 진의는 짐작하나, 너는 우리로 하여금 소멸의 위험조차 감수하게 만들었으니, 마땅히 그에 예를 갖추고 우리를 대하거라.”
헤라의 말에 드라는 무릎을 꿇고 정중하게 절을 한 뒤 고개를 들고 말했다.
“후의에 감사드립니다. 미천한 제가 도조들의 목표가 되었던 바···”
“그만. 이미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았으니 그만해도 될 터. 너희 사방신각 놈들은 정말 무능하구나. 이 정도 사안인 걸 알았으면 천산탑 최고 위계를 불렀어야 하는 것을···”
“그만해요 여보. 어찌 이들이 예비 비상 계획을 알았겠으며, 알아보았겠어요. 이미 벌어진 일. 수습해보도록 하죠.”
“흠흠··· 너희 사방신각 아이들은 모두 각으로 돌아가 사방신 모두를 불러와라. 우리 둘이 있더라도 감당하지 못할 수 있으니.”
“존명!”
진호와 미령은 순식간에 부적을 태우더니 사라졌다. 그를 지켜본 헤라가 드라를 향해 말했다.
“사방신각 아이들을 물렸으니 편히 앉도록 해요.”
갑자기 부드러운 말투로 드라에게 말하자, 드라는 뻘쭘한 표정으로 제우스를 바라보았다.
“듣지 않았느냐. 마실 것과 먹을 것도 내어오너라. 최상급! 최상급이어야 한다. 알겠느냐?”
드라는 선옥을 품에서 내어주며 AI로봇들에게 최상급 안주와 술을 준비하도록 시켰다. 설리반에게 남아 있는 신들의 명주 넥타르를 흉내낸 것을 만들 것이라 보고를 듣고는 진행시켰다.
“자아··· 너는 네 예비 비상 계획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
드라가 소파에 앉자 헤라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우주의 파멸을 막기 위한 두번째 비상 계획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원래는 그랬었지. 그리고?”
“제가 알던 나쁜 녀석이 있는데, 그 녀석이 첫번째 비상 계획을 탈취해서 사용해버렸고, 어째서 인지 그 이전에 저는 두번째 비상 계획을 품게 되었습니다.”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계속해 보거라.”
“그게 다입니다. 제가 알던 나쁜 녀석이 도조들에게 봉인되었던 걸 풀어주니까 이야기해준 정보였고, 선계에 왔을 때 시간의 도조와 태상노군에 의해 노려졌고, 그들이 합일이라던가 하는 말을 했었다 들었습니다.”
“흐음···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지만, 틀린 부분이 많군.”
제우스가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고, 헤라가 그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여보. 무슨 얘기예요. 지금까지 만났던 두번째 비상 계획 중에 제일 진실에 근접한 이야기를 하는 거 같은데. 그래, 많은 걸 알아내었구나 장하다.”
“어···네···그런데 저 말고도 더 있었나요 비상 계획?”
헤라는 눈웃음치며 말했다.
“어째서 그게 너 혼자일 거라 생각하지?”
“그···렇네요?”
“모든 비상 계획은 선계로 모여들도록 운명지어져 있다. 그리고, 그 운명의 사슬에 천수각 또한 엮여 있기에, 그 수 많은 비상 계획들 중의 상당수를 우리가 만났지.”
“허···그랬군요. 그러면 어떻게 되었나요? 이전 비상 계획들은?”
헤라와 제우스가 조금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모두 저장되었다.”
“저장이요?”
“어차피 너 또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 우리 천수각가 계약한 고객에게 서비스 삼아 알려주겠다. 너의 영혼 그 자체가 비상 계획이다. 너의 영혼에 세겨진 그 모든 것이 이 우주의 종말을 막기 위한 수단이고, 네가 영혼의 격을 높여 선계에 도달한 순간, 저장되어 종말을 위해 예비된다. 그 과정을 도조들은 합일이라고 부르더구나.”
“제 인격은 말살되는 거겠죠 당연히?”
헤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조들이 그러면 저를 만나서 하려고 했던 건, 합일···아니 그 저장을 하려던 거였다는 말씀이시죠? 제 인력은 말살시키고?”
“도조들은 너희의 영혼들이 가지는 ‘자아’라는 것을 거짓이라고 보고 있단다. 그렇기에 인격말살은 별 일이 아닌게지.”
“흠···쓰레기 같은 생각이다. 그들도 그 필멸의 영혼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제우스가 투덜거리듯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면 두 분은 원래부터 신이셨나요?”
“그래. 우리는 원래부터 불멸의 존재였고, 존재자체가 너희의 영혼과 같은 아스트랄체란다. 그리고 신격을 가진 존재들은 자아와 신격이 연결되어 있어서 자아를 지우면 신격이 사라지고, 반대로 자아가 남아 있으면 신격을 유지할 수 있지. 그 도조라는 자들은 자아를 지우고 우주의 힘과 동화한 최악의 괴물이지.”
헤라의 말을 듣고 보니 제우스와 헤라가 도조들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두 분이서 도조들을 막아낼 수 있나요?”
그 말에 제우스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고, 헤라는 웃으며 말했다.
“너에게 달려있다. 너의 비상계획의 상태가 충분한 수준에 이르렀다면 우리와 힘을 합쳐 도조들을 물리치고 너의 격을 신격까지 올려볼 수 있을게야. 그렇게 되면 도조들도 더이상 너에게 간섭하지 못하게 되지.”
“지금까지 그게 성공한 적이 있었나요?”
“딱 두번. 성공직전까지 갔었다. 다들 대단한 자들이었지.”
“···그러면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군요.”
“···”
헤라와 제우스가 드라의 표정을 아무말 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뭐, 어쩔 수 없죠. 아시겠지만 두 분 모두에게 백지 약속을 했어요. 그만큼 최선을 다해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더 윗 등급의 신님을 부를 순 없나요? 지금이라도?”
헤라를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산탑에서 이쪽으로 한 번에 나올 수 있는 건 둘이다.”
“아···그래요? 그러면 그러면 최고위 신 누구죠?”
“혼돈과 질서다. 그렇지만 두 분은 외출 불가다. 나오면 우주 자체가 파괴될테니. 아마도 계획을 발동시킬 생각인가 본데, 이미 너의 하루가 고정되었다. 다시 불러도 필연의 힘 때문에 결국 우리가 오게될 거야.”
“어 안되나요?”
“그래. 운명의 책에 기록된 내용은 너의 비상 계획으로도 바꿀 수가 없다. 선계의 법칙이지.”
“흠···그런데 여기 선계 맞나요?”
드라가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정확히는 아니지만, 이 장원까지는 선계의 법칙이 지배한다.”
제우스가 퉁명스레 말하고는 창문너머 검은 우주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저 장원의 보호막을 뚫고 나간다면요?”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계약에 의해 그 보호막을 뚫어줄 순 없다.”
“뚫지 않아도 됩니다. 저를 저 우주로 던져주실 수 있나요? 워프 같은 걸로?”
헤라가 고개를 저었다.
“저 방어막은 주술, 마법, 선술, 선법 모든 아스트랄체 기술에 대해 방어되어 있다. 우리가 진신을 드러내서 힘을 쓰지 않는 이상 불가능해.”
“허···그랬군요. 그러면 설리반 너는 방법이 없나?”
“제 일부 나노봇이 저 우주 밖에 양자 포털을 만들어 두었다. 양자 포털은 동작하는 걸 확인했다.”
“과학기술은 막히지 않은 모양이네요?”
드라의 말에 헤라가 웃으며 말했다.
“원시적인 기술을 발전시켜 궁극에 이른 자는 선계에 올라온 적이 없었지. 그래,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그러면 시도해보죠. 설리반?”
“지금 전송하겠다.”
“아! 잠시만. 헤라님 그러면 외출 가능한 최고 신은 누구인가요?”
“광명선신 아흐라마즈다와 암흑마신 앙그라마이뉴다.”
“오케이. 설리반 나 포털태워 줘!”
‘후우우욱~’
드라는 순식간에 시야가 암전하더지 우주에 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선계가 아님을 주변을 둘러 확인한 뒤,
‘파슷!’
드라는 순식간에 자신의 심맥을 끊어 죽음을 맞이했다.
『저주 대상의 죽음이 감지 되었습니다. 회귀합니다. 오늘 남은 횟수는 9회 』
“주인님. 천수신장 에이전트가 장원에 입장허가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들어오라고 해.”
드라는 진호와 미령을 설득해서 광명선신 아흐라마즈다와 암흑마신 앙그라마이뉴를 부르도록 했다.
‘콰지지지직~’
그러나 그들이 나타나자 공간이 찢어지고 드라는 죽음을 맞이했다.
『저주 대상의 죽음이 감지 되었습니다. 회귀합니다. 오늘 남은 횟수는 8회 』
“주인님. 천수신장 에이전트가 장원에 입장허가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제기랄. 공간이 찢어져 죽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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