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4화
“혹시 이곳에 본인이 성자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 있나요?”
아무래도 나를 이곳 수도원 사제로 오해한 모양이다.
이전부터 생각했지만, 성자라고 소개하는 것이 이쪽 세계관상 좋은 첫인상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이들이 찾아온 이유가, 혹여나 성자를 사칭하는 놈을 찾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자수하는 꼴이 될 터.
“본인을 성자라고 칭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본 적은 없군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지나갔다.
그때, 성기사가 물었다.
“그대는 누구십니까? 이제 보니, 수도원 사제는 아닌 것 같은데.”
낮게 깔린 음성에 의심과 압박이 담겨있었다.
익숙한 취조의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는 듯했다.
구겨지는 인상을 억지로 피고 답했다.
“근처 시골에서 사제직을 하는 잡니다. 숙박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찾아왔다가, 여의찮아 떠나려던 참입니다.”
그 말에 성기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이유라면, 동행하시겠습니까? 저희는 이곳에 청원을 받고 찾아온 파견단입니다. 동행한다면 수도원 내 잘 곳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견단이라···베노스가 청원한 파견단이 이들일까?
동행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곳의 문제와 나를 엮으려는 것인가? 아니면, 성자 사칭범의 의심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그리해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는 특성과 신력을 갖은 한 절대 오해 받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오히려 그들에게서 신앙심 끌어올려서 신력을 올릴 생각에 벌써 흐뭇해졌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나는 잠시 동행할 자들의 신상을 훔쳐보기로 했다.
‘상태창’
[캐릭터 상태창]
이름 : 발더르 하이메어
레벨 : 45
직업 : 성기사
나이 : 38세
신성력 : 475
특성 : 불굴의 의지
스킬 : 성안의 빛, 심판의 일격, 신성한 방패
상태 : 기대감
[캐릭터 상태창]
이름 : 카르카 벨라린
레벨 : 21
직업 : 사제
나이 : 24세
신성력 : 210
특성 : 진리의 시선
스킬 : 성안의 빛, 빛의 축복, 빛의 보호
상태 : 기대감
[캐릭터 상태창]
이름 : 카이던 나이트폴
레벨 : 61
직업 : 종자 (암영회의 집행자)
나이 : 51세
신성력 : 50
특성 : 그림자 서약
스킬 : 밤의 송곳니, 칠흑의 단검, 어둠의 유령
상태 : 지루함
먼저 카르카는 젊은 나이에 사제가 된 모양이다.
화장기 없는 얼굴임에도 미모가 돋보였다. 하지만 그 외에는 특별히 주의 깊게 볼 만한 것은 없어 보였다.
문제의 시작은 성기사였다.
일단 엄청난 노안이다.
말투와 외모는 중년이 다 되어 보이는 데 반해 나이가 생각보다 젊었다.
반대로 종자라는 사람은 믿기지 않은 동안이었다.
아니, 동안 같은 걸로 감히 설명할 수 있을까?
상태창이 거짓말하지 않았다면 나이가 반백이 넘는데 외모는 스물 초중반으로 보였다.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반로환동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거기다 종자인데 가장 레벨이 높은 점과 암영회의 집행자라는 숨겨진 직업이 있다는 것이 스파이나 그 비슷한 일로 이곳에 온 사람 같아 보였다.
아무래도 저 종자를 가장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
일행이 된 것이 잘못된 선택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내 능력과 특성을 잘 활용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서로의 이름과 간단한 신상정보를 나누었다.
다시 들어간 수도원에서는 원장의 표정이 똥 씹은 표정으로 변했지만, 곧 뒤따르는 파견단을 보고 금방 비즈니스 표정으로 탈바꿈했다.
“아하하하, 사제님 그런 일이었다면 말씀을 해주시지 그랬습니까? 미묘한 오해 때문에, 기분이 상하셨다면 사죄드립니다.”
수도원장은 내가 파견단 잠시 동행한다는 사실에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그보다 청원 내용부터 다시 확인해 볼까요?”
카르카라 불리는 여사제는 똑 부러진 말투로 말했다.
아무래도 파견단 내에서 리더격인 모양이었다.
“네, 그러시지요. 최근에 이유불명의 악령 출몰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의 원인을 찾지 못하고, 가까스로 쫓아내기만 했습니다.”
“잦은 악령 출몰··· 악령은 저급 악령이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중급 이상의 악령이었다면 이미 도시의 기능을 상실했겠지요.”
“혹시 짐작 가시는 부분이나, 특이한 점은 없었나요? 저희가 그쪽 부분에서부터 조사를 시작하려고 합니다만···”
“사실 그 부분에 대해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저희가 사흘 전에 문제의 원인을 찾았고, 그 문제 또한 해결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해결하셨다구요?”
“네, 우리 수도원은 산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사제님들은 가끔 등산하십니다. 얼마 전 등산 중에 사제님들께서 미약한 사기가 느껴져서 다가가 보니, 동물 사체들이 한 곳에 무더기로 매장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동물의 사체가 매장되어 사기가 쌓였고, 그 사기로 인해 저급 악령이 자주 나타났다···뭐 이런 말씀인가요?”
“정확하십니다, 사제님. 저희가 사기를 잠재우고 사체를 모두 불태우니 그 뒤로는 악령이 출몰하지 않더군요.”
“그 후로 악령이 출몰하지 않았다면 사체 매장지 때문에 그런 것이 맞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파견단이 오신다는 말씀을 듣고 조금은 난감했습니다. 이렇게 헛걸음만 하게 돼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요? 이번 청원은 수도원장님께서 올려주신 게 아니라 시민들이 모아서 올리신 걸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저희끼리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청원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저희가 해결하기도 했지요.”
“거기다, 저희가 교를 나서자마자 문제를 해결하셨네요?”
“사제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는 알겠습니다. 모든 면에서 의심하고 조사하는 것이 파견단의 임무이지요. 하지만 혹시라도 이 문제가 수도원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이라면 아무리 교의 파견단이라고 해도 도가 넘은 발언이라 생각지 않습니까?”
“···저는 그저 현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심하는 부분을 지적하는···”
“이제껏 성도님들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악령을 퇴치한 저희에게 죄가 있다면, 좀 더 일찍 매장지를 찾지 못한 것뿐입니다. 사제님.
“문제는 이미 해결됐습니다. 이 이상 저희를 모욕할 것이라면, 교에 정식으로 항의하겠습니다.”
“하아······알겠습니다. 이 문제는 해결된 사항으로 알겠습니다. 다만 해당 매장지를 마지막으로 둘러본 후에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보여드리지요. 하지만, 벌써 노을이 져 올라가면 밤길 산행이 되어 위험하니, 내일 아침 일찍이 출발하도록 하시지요.”
그렇게 마무리된 토론은 의문점이 가시지 않고 마무리가 됐다.
수도원 2층에는 사제들이 숙식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실제로 쓰이는 공간은 몇 개 없는지, 사용 태가 안 나는 빈방을 4개 골라줬다.
“카르카 사제님, 이대로 돌아가실 겁니까?”
“아뇨, 내일 매장지를 둘러봐야지요.”
“무얼 말씀드리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수도원장은 뭔갈 숨기고 있습니다.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이안 사제님의 말씀은 알겠지만, 문제가 해결된 상태에서 파견단은 해당 지역에 간섭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런 여사제의 표정은 탐탁지 않아 보였다.
“카르카 사제님도 아시겠지만, 매장지도 사실상 볼 건 없을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수도원과 관련되어있다면, 매장지에 증거를 남기지 않았을 테니까요.”
* * *
파견단원들이 숙소 한곳에 모여있었다.
각자 배정된 방이 있었지만,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한곳으로 모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카르카가 안으로 들어오자, 성기사가 물었다.
“그분은 뭐라고 하시던가?”
“뭐, 예상하시는 바에요. 수도원장을 좀 더 파봐야 한다는 얘기였어요.”
“역시 자네 말이 맞았군. 성자를 쫓으려면, 악령을 쫓아야 한다는 말···”
“당연한 거 아닌가요? 진짜 그 성자라면, 세상에 관광하러 오진 않았을 테니까요. 근데 왜 아까부터 반말인가요?”
“나는 휘장을 벗은 순간부터 교의 일원이 아니네. 그러니 나이가 많은 내가 편하게 말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흥, 교의 일원이 아니긴요. 일반 성도로 강등됐는데, 사제에게 공대말을 쓰지 않을 생각인가요?”
“그것도 그렇군. 내일부터 공대하도록 하지.”
“쳇, 내일은 또 뭐야. 그냥 편하게 하세요.”
“···그러지.”
“그건 그렇고 아직 이안 사제가 성자라는 근거가 빈약하지 않나요?”
“그렇지, 그가 성자라는 사실은 빈약하지. 하지만 그가 리브나 마을에서 성자를 자칭한 자라는 사실은 명백해지지 않았나?”
“확실하진 않죠. 성자를 의심한다는 얘기가 돌아서 마을 사람들이 제대로 대화조차 해주지 않았으니까요. 유일하게 입을 모아 말해준 것은 그저 그자에 대한 칭찬뿐이었죠.”
“흐흐흐, 아닐세. 그들은 그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네. 그가 풍기는 기품과 몸가짐을 직접 보고도 모르겠나? 그가 리브나의 성자일세.”
“그건 두고 봐야죠. 리브나에서 어떻게 ‘악령의 시체’를 남겼는지 몰라도, 저는 그자가 예언의 성자가 될 인물이라고 생각되지 않네요.”
“그거야말로 두고 보면 알겠지.”
“쳇, 정말로 그자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세요?”
카르카의 질문에 어울리지 않는 무한한 긍정을 표하는 성기사를 보고 고개를 젓고는 말을 이었다.
“카이던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카르카는 너무 둘만 말했나 싶어서 넌지시 물어보기도 했지만, 내 종자이기에 내 편을 들어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기대에 충족하기는커녕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엥···? 어디 갔지? 분명 방금까지는 같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존재감이 없어도 그렇지, 사라진 줄도 몰랐구먼.”
“너무 둘만 얘기했나? 왠지 왕따시키는 것 같이 돼버렸네···그런데 도대체 어딜 간 거지?”
* * *
숙소로 돌아온 나는 머리 속이 복잡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파견단이 너무 쉽게 손을 떼서 일이 꼬였다. 더 깊이 들어가면 잃는 것이 더 많을 것 같은데···’
똑 똑 똑
“사제님, 이불과 베개를 가져왔습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네, 들어오시죠. 성도님.”
낮에 대화를 나눴던 수도원의 종자가 배시시 웃으며 문을 열었다.
여간이도 성도라는 소리가 듣기 좋았나 보다.
이 기회에 수도원 내부 정보를 좀 더 캐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성도님께서는 성도라는 호칭이 꽤 맘에 드시나 보군요?”
“아! 아, 네···너무 티 났나요?”
“오히려 보기 좋았습니다. 보통 일반적인 경칭으로 생각해서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보다 말이지요.”
“헤헤, 저는 수도원 분들보다 너무 부족해서 성도라고 불릴 수 없어요. 그렇게 불러주시는 분은 사제님이 처음입니다. 분에 넘치는 말이라 그런지 얼굴에까지 티가 났나 봐요.”
“아닙니다. 성도님도 원장님도 사제님도 교의 모든 사람은 결국 성도일 뿐이지요. 그저 하는 일에 따라 직책만 주어질 뿐입니다.”
“마, 말도 안 돼요! 원장님께서는 굉장히 대단하시고 고마우신 분이에요. 실제로 많은 악령도 퇴치해 주시고, 저도 도움받은 적이 있어서 더 잘 알죠. 그분은 정말 대단한 분이셔요.”
“도움받은 적이 있단 말씀입니까? 어떤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 물론이죠. 약 일 년 전 최초로 악령에 빙의된 사람은 저희 부모님이셨어요. 그때 부모님은 완전히 빙의돼서 저를 헤치려고 했을 때, 구원해 주신 분이 원장님이셨어요. 그리고 혼자 남게 된 저를 안쓰럽게 여기셨는지 수도원으로 불러서 살게 해주시고요. 정말 대단하시죠?”
자랑스럽게 웃는 모습은 왠지 슬픔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나는 종자의 말이 거짓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일단 저 순수해보이는 종자가 거짓말을 할 수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수도원장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정, 정말 대단하군요. 원장님께서 직접 구해주셨나요?”
“네, 사제님. 더 대단한 건 그날이 수도원장님이 부임한 지 하루도 안 된 날이었어요. 원장님이 부임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몰라요. 헤헤.”
‘부임하는 날부터 악령이 나오기 시작했다?’
원하는 데로 수도원 내부 정보를 얻어냈지만, 어째서인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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