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10화
“이분은 평범한 성자가 아니시다. 예언의 성자로 성서의 들판을 거니는 어린양으로서 우리로 들어와 활동을 시작하실 분이다. 아니, 이번 사건을 해결하셨으니 이미 활동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지.”
발더르의 당당한 외침에도 도시장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부끄럽지만 저희 모두는 도시에서 빠져나와 피난했기에 그 당시 누가 괴물을 퇴치했는지 알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정황상 여러분들이 처치한 게 맞겠지요. 하지만, 그 사실이 이분이 성자를 칭할 수 있는 증거는 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답답하군. 도시장! 그 괴물은 불완전했지만, 악마화에 성공한 악령이었네. 그것을 정녕 파견단의 인원으로만 해결했다고 믿는가?”
“저 또한 교에 충실하지만, 무지몽매하여 말씀하신 깊은 내용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런 무지한 자까지 이해할 수 있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나! 발더르 하이메어는 수도 신전수호단장으로 현재 파견단 신분이다. 나 발더르가 교의 모든 명예를 걸고 이분이 성자임을 증명한다! 이래도 믿지 못하겠나?”
발드르의 외침은 단호하고 결연해 보였다.
조금이지만 이만큼 신뢰받고 있다는 점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죄송하지만 믿지 못하겠군요.”
“뭣이? 감히 교인을 칭하면서 교의 권위를 반하겠다는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이 교의 권위가 맞다면 말이지요. 당신이 말씀하신 수도신전수호단을 상징하는 휘장은 어디 있습니까? 교의 엄중한 규율에 따르면 외부에 나설 때, 특히 임무 수행 중에는 신분을 증명하는 휘장을 반드시 착용해야 할 텐데요?”
휘장?
발더르를 처음 봤을 때부터 휘장 같은 것은 착용하고 있지 않았었다.
도시장의 말에 발드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그것은···”
“물론 사정이 있으시겠지요? 그러니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이것을 써보도록 하시지요.”
그가 꺼낸 것은 주먹만 한 수정구슬이었다.
“성위 측정기로군. 교에서도 특별관리 되는 물건일 텐데 어떻게 지방 도시장 따위가 갖고 있을 수 있는 거지?”
“교에 성실하니 선물로 주시더군요. 아, 물론 성실의 근거는 헌금입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자, 성자님? 이 구슬에 손을 올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구슬의 색으로 알 수 있겠지요.”
상황이 딱히 좋게 흘러가진 않았지만, 손만 올리면 상황이 잘 마무리될 것 같았다.
옆에서 발더르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결정에 확신이 들었다.
그래도 확실한 게 좋지.
‘상태창!’
수정구슬의 내력을 알기 위해 상태창을 외쳤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무래도 무생물에는 사용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손을 얹었다.
수정구슬은 무언가를 측정하듯 내부에 파면이 일며 떨렸다.
신력을 사용할 때 나오는 빛이 하얀색이니까 하얗게 빛나는 것일지 아니면 초록색이나 빨간색으로 나타날까
그때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지금 나는 성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신력이 음수가 되면서 임시로 박탈당해 사기꾼이라는 직업으로 변했었다.
만약에 저 수정구슬이 신력이나 신성력을 기반의 물건이라면 음수인 신력을 어떻게 측정할까.
진동을 멈춘 수정구슬이 눈앞에 궁금증의 해답이 내놨다.
수정구슬은 새까만 칠흑으로 뒤덮였다.
“이건···?!”
도시장과 발더르의 표정이 굳어졌다.
예상했던 색깔이 아닌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막말로 성스러운 성자의 기운을 받은 수정구슬이 새까만 색이라는 것이 어색한 게 당연하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물건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일단은 식사하시고, 차후에 얘기를 나누시면 어떠신가요?”
도시장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한 수 물러나는 제스쳐를 취했다.
“멋대로 불러내 의심하고, 또 멋대로기라는 건가? 도시장, 지금 장난하는 건가?”
나는 금방이라도 무기를 들 것처럼 화를 내는 발더르를 보고 제지 시킬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이었다.
“발더르,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이쯤에서 그만합시다. 그리고 당신도 내가 성자가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를 대기 전까지는 우릴 함부로 대하지 마시오. 우린 내일 바로 수도로 떠날 터이니 그동안에 우릴 의심하고 싶거든 그 잘난 수정구슬이라도 고치던가, 확실한 증거를 가져와야 할거요.”
나는 그 말을 끝으로 획 돌아서 방을 나섰다.
뒤따르던 발 두르는 나 만들 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시장이 뭔가 이상합니다.”
“이상하긴 하죠. 목숨을 구해준 사람에게 이런 행동은 웬만하면 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시장실에 들어갔을 때 미묘한 긴장감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그가 우리에게 갖는 불편한 감정 때문인 줄 알았지만, 방을 나오자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악령이나 악마 같은 마물을 만났을 때의 긴장감이었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도시장이 악령 빙의자거나 악마라는 말씀인가요?”
“그것까진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주변에 강력한 사기가 넘쳤을 겁니다. 하지만, 무언가 찜찜한 것은 분명합니다. 일개 지방도시장이 성위 측정기를 갖고 있는 것도 이상하고······.”
“발더르경, 아마도 작금의 괴물과의 전투의 피로나 감각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아서 예민하게 반응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단은 식사하고 나서 푹 쉬고 난 다음 다시 생각해 봅시다.”
“성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시장하실 텐데 괜히 발걸음을 붙잡았습니다. 어서 가시죠.”
발걸음을 재촉해 당도한 식당은 이전과 같은 위치와 꾸밈이었지만, 배고픈 나에게는 그런 것들보다 식탁 위의 음식들이 그 어떤 장식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그렇게 순식간에 자리에 앉아서 수프를 한입 먹으려는 데 배고픔에 눈이 멀어 실수로 스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집사에게 숟가락 하나를 다시 부탁하고, 발더르 쪽을 봤는데, 음식에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발더르는 내가 먼저 먹고 먹으려는 듯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내가 포크로 다른 무언가를 먹어도 됐지만, 양식의 시작은 수프로 시작해서 디저트로 끝나는 것 아닌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김에 완벽한 식사를 하고 싶었기에 스푼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먼저 드십쇼. 그래야 제가 편합니다.”
그는 뭔가 망설이다가 내가 편하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잠깐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스푼이 왔고, 먹음직스러운 수프를 한입 먹었다.
[체내에 수면 성분이 들어왔습니다.]
[약한 수면 성분을 저항합니다.]
[※경고※]
지속적인 섭취는 저항력을 떨어뜨리니 더 이상의 섭취를 권장하지 않습니다.
‘이건···뭐지?’
나는 수프를 한 입도 먹었다.
[체내에 수면 성분이 들어왔습니다.]
[약한 수면 성분의 저항을 저항합니다.]
[이상 상태저항력이 감소합니다]
‘젠장, 밥 먹을 땐대도 안 건드린다고 했는데.’
누군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막는 음식에 수면제를 넣은 것 같다.
순간 발 더러는 눈치챘는지 봤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음식을 입에 쑤셔 넣고 있었다.
일부러 약한 성분을 넣어서 저항력을 떨어뜨려 식사를 마치 고난 다음에나 효과가 발휘되게끔 해놓은 것 같았다.
내 예상이 맞다면 약 배분과 시간설정은 전문가의 솜씨가 아닐 수 없다.
그건 옆에 도움을 주려고 서 있는 집사가 사실은 약 성분이 잘 흡수되고 있나 감시하고 있는 마치 교도관으로보였다.
“저기, 발더르. 음식 맛이 별로이지 않습니까?”
나는 수면 성분이 있다는 것을 말하면 이들이 강력한 대응을 할 것이 두려워 말을 돌렸다.
내 말에 발도라는 의아해하다가 이내 씩 웃었다.
“아,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도시를 구한 사람들인데, 이 정도로 형편없는 음식을 내보이다니 누가 두 시장인지 안하무인의 끝을 보여주는 구나!”
발더르는 아까 있었던 의심에 대한 속풀이를 하려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맛이 형편없네, 양 이적네 하는 등의 얘길 하면서도 그이 입안의 내용물을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나보다 레벨이 높고 강력한 그가 쉽게 수면 상태에 빠지진 않겠지만, 이렇도록 많이 먹다 보면 저항력이 무너질 수 있었다.
“인제 그만 먹고 일어나시죠. 발더르.”
그렇게까지는 할 줄 몰랐었는지,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성자님, 아직 수프도 입밖에 드시지 않으셨는데 벌써 일어나시는 겁니까? 입맛에 맞지 않으시면 음식을 다시 해서 올리겠습니다.”
공손한 말투지만, 내가 얼마큼 먹는지 지켜봤는지 수프 두 입이라고 정확하게 말했다.
의심은 확신이 서고, 무언가 일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상태창'
[캐릭터상태창]
이름 : 구푸티스 멘클리
레벨 : 27
직업 : 집사
나이 : 64살
특성 : 침착, 예절 교육
스킬 : 약품 제조, 기도비닉
상태 : 평온함
어색했던 상태창도 이제는 익숙해진 것 같았다.
내용을 보니 구푸티스라는 집사가 약을 제조한 모양이다.
한참을 읽다가 집사의 빛나는 모노클 사이로 보이는 평온해 보이는 눈과 마주쳤다.
나이는 헛투로 먹은 게 아닌지, 내가 무언가를 눈치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더 이상 돌려 말할 필요가 없음을 느끼고 말했다.
“발더르, 음식에 수면 성분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만 드시고, 빠져나갈 준비 하세요.”
대놓고 수면제를 음식에 넣을 정도면 뒤를 생각하지 않고, 일을 벌일 작정이라고 생각했다.
“···네, 알겠습니다. 성자님!”
그는 당황한 듯 표정을 짓다가 내 말의 뜻을 알아차리고 바로 무기를 들고 내 옆에 섰다.
“향과 맛, 그리고 약한 성분으로 미리 알아챌 방법이 없을 텐데···도대체 어떻게 아신 거죠?”
집사는 조금 전까지의 평온한 말투로 물어봤다.
만약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면,
‘스푼 다시 가져다드리겠습니다.’라는 말처럼 일상 대화를 같아 보였다.
나는 그 말에 자연스레 대답할 뻔하다가 정신 차리고 옆을 봤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음식을 많이 드신 것 같은데.”
“눈치채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사죄는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고 나서 정식으로 드리겠습니다.”
말하는 그의 모습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졸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든 메이스는 부들부들 떨리고, 걸음걸이도 점점 휘청휘청했기에 나는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이어서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들어오는 3명의 흑의인들이 칼을 뽑고 다가오고 있었다.
식당은 입구와 출구가 하나의 문으로 되어있었기에 우리는 이들을 모두 처리하지 않는 이상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흑의인들의 칼이 쇄도했다.
좌측, 중간, 우측을 하나씩 점유하며 머리, 몸통, 다리를 마치 짜인 각본처럼 나를 고깃덩어리로 만들기 위한 최적의 움직임이었다.
팅! 탕! 푹!
그 순간 발더르가 움직였다.
순식간에 세 가지 방위의 다른 곳을 방어해야 했어야 했다.
머리로 날아오는 칼을 메이스로 튕겨내고, 몸으로 오는 것은 갑옷으로 막아냈지만, 다리로 오는 일격을 각반이 막아주지 못하는 공간에 찔리고 말았다.
피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는 잠시의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다시 휘두른 메이스로 좌측의 흑의인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둥!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나고 흑의인이 쓰러졌다.
얼핏 봐도 머리에 움푹 팬 홈이 보였다.
나이와 스킬을 보니, 집사는 전력이라고 볼 수 없으니 이렇게 한 마리씩 없애다 보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육중한 몸체가 쓰러지며 내 계획은 역시나 틀어졌다.
한창 나를 방어하며 싸우던 발더르가, 흑의인의 공격을 받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쓰러져버린 것이다.
[상태 : 깊은 수면]
아무래도 약발이 돈 모양이었다.
거지 같은 상황에 욕이라도 시원하게 갈기고 싶었지만, 눈치 없는 흑의인들의 칼이 내게 날아들고 있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인데 도대체 카르카는 어디있고, 카이던은 어디 간 거냐!’
카르카는 몰라도 카이던만 있었으면 손쉽게 빠져나올 수 있을 터.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칼날은 시퍼런 빛을 내며 내 머리와 몸체를 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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