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위임무

“그래서. 오늘 부른 이유는 다들 알고 있겠지. 지금부터 호위임무에 참여할 인원을 모집하겠다.”
팀장 조민호는 헌터들을 모았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하나.
본부에 파견할 정보병, 신철민을 호위할 인원을 모집하기 위해서였다.
드디어 주변에서 쉴 틈 없이 공격해오던 감염된 워울프.
게다가 그렇게 만든 장본인까지 처리했다니.
그간 밀렸던 보고를 헌터본부에 전달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곳에서 전기가 통할 리 없었고.
정보 전달은 오직 수필로, 발 빠른 정보병을 통해서만 진행된다.
“..결국, 이 임무의 핵심은 뭐냐. 평화의 거벽 근처, 정보병이 혼자 뛰어서 가도 되는, 안전한 지역까지 호위하는 거라고 할 수 있겠다.”
“···.”
“흠흠, 매우 영광스럽고 중요한 임무라 할 수 있지.”
활기차게 팀장이 호소하듯 외쳤지만.
아무도 반응은 하지 않았다.
“그럼 혹시, 지원자가 있나?”
“···.”
울타리나, 순찰을 하는 헌터들 없이.
쌩 야생으로 떠난다는 것.
아무도 목숨을 잃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없군.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 제비뽑기로 3명을 뽑도록 하지.”
실제로 태국에서는 군대를 뽑기로 정한다는데.
직접 겪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목숨이 걸렸으니 더 심한 기분일지도 모른다.
긴장에 찬 헌터들이 하나씩 제비를 뽑았다.
“쓱!”
그 중 거침없이 단번에 뽑는 헌터도 한 명 있었으니.
다름 아닌 광훈이었다.
그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당첨자는..”
뽑기가 끝나고, 숨 막히는 공기 속 팀장의 한마디 한마디에.
사람들의 희비가 교차하며.
그렇게 호위대의 맴버가 결성되었다.
***
“이것 참 골칫덩이네.”
그나저나 도준은 문어처럼 생긴 녀석을 잡으며.
어거지로 훔쳐 온 자원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주황색으로 빛나는.
동그랗고 끈적한 녀석의 핵이었다.
‘귀한 것 같아 뺏어오긴 했는데. 쓸데가 없네.’
무겁기만 하고 쓸모가 없어 보여 도준은 그대로 산속으로 던져버리려 했지만.
“잠까아안!”
뒤에서 누군가가 그를 멈춰 세웠다.
뽀글뽀글한 머리.
두꺼운 안경을 끼고 있는.
렌치를 들고 있어 누가 봐도 나 기술자요, 하고 온몸으로 말하는 듯한 복장이었다.
“누구시죠?”
“헉헉, 저, 이름, 챈들러 박. 그냥 챈들러라 불러요.”
“그나저나 왜..”
“이 자원. 제가 혹시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네, 어차피 버리려 했는데요 뭐. 괜찮습니다.”
뚝딱뚝딱.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기술자처럼 보이던 한 사내는 핵을 가지고 도준에게 돌아왔다.
“며칠이 걸릴 것 같긴 하지만요우..이건 대박입니다.”
“왜 그러시죠?”
“이 핵. 끊임없는 에너지가 나오고 있어요. 이를 전기 에너지의 이동을 절대적 변위로 이 장치를 사용해, 복합적이며, 그 절차를 네트워크상의 상호작용으로..”
“제가 무식해서... 쉽게 말해주실래요?”
“드디어, 이곳 임시기지에 전기가 통하게 생겼다는 말입니다! 슈퍼 대박입니다. 대박!”
이 소식을 기쁘게 소리치며 말해서일까.
기지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었다.
“뭐어, 챈들러! 드디어 여기에 전기가 통한다는 말이야?”
“캬! 인터넷 드디어 좀 써보냐?”
마치 어린아이처럼 환호하는 사람들.
물론 전기가 통하려면 여러 공사도 해야 하니.
최소 몇 주는 걸린다고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전기가 언젠간 통한다는 사실 그 자체.
그것만으로도 앞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셈이었다.
한명은 괴수를 처치하고 오고, 다른 한명은 임시기지를 발전시키도록 기여를 한다라.
게다가 팀장이 어깨동무을 하며 옹호까지 했으니.
이제 이견 없이 모두가 둘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지만.
도준은 계속해서 떠오르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이래서는 안 돼. 역시 북한에서 죽고 싶진 않단 말이지.’
그 한 줄에 가까운 생각이란 바로.
‘강해지고 싶다.’
라는 마음이었다.
광훈을 따라 이곳에 오긴 했지만.
헌터가 된 이상 언제까지 그에게 모든 걸 떠넘길 수는 없었다.
그동안 벌어진 사건들에서 도준이 기껏해야 할 수 있던 일.
기억나는 건.
추하게 도둑질에 눈을 뒤집고 달려든 것뿐이었다.
“뭔가 훈련을 하고 싶은데...”
김광훈은 압도적인 힘으로 사냥을 해온 베테랑.
소설로 비유하자면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먼치킨 캐릭터.
이대로라면 그의 바짓가랑이만 잡다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거다.
아니, 이 또한 운이 좋은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었다.
여기에서 위험천만한 임무를 하다가 죽게 될 가능성이 더 농후했다.
“최소한. 내가 스스로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야겠어.”
조금씩이지만, 성장을 해나가며 임무에 걸림이 되지 않는 것.
그게 최우선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
“맞다. 마침 여기 임시기지였잖아?”
임시기지.
헌터들이 많은 곳이었다.
그리고 헌터란 무엇이냐.
다들 일반인에게 비하면.
싸움 한가닥씩 한다는 사람들이 널려있는 곳이었다.
같이 사냥이라도 하면 충분히 좋은 경험이 될 터.
“저, 혹시.”
“무, 무슨 일이죠?”
“뱃지를 보니까 헌터신 거 같은데, 저랑 같이 사냥이라도 다녀오시겠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바쁜 일이 있어서.”
물론 광훈과 도준, 두명이 비교적 인식이 좋아졌다 해도.
그들이 전한 보고에 따르면 둘은 미치광이나 다름없었다.
그도 그런 게 감염된 워울프를 다 깨부수더니만, 죽기 직전까지 자원을 훔쳐서 달아났으니까.
정상이라 보긴 힘든 행태였다.
‘후, 괜히 엮이지 말자.’
어쩔 수 없지만 이게 대부분의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었다.
비록 기여를 많이 했다고 해도, 일반적인 사람들의 눈에 둘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여러 명의 헌터들에게 훈련을 시켜달라며 다가갔지만, 매번 도준에게 똑같이 들려오는 답변.
“죄, 죄송합니다. 제가 일이 좀 있어서..”
이런 대답뿐이었다.
물론.
도준은 왜 사람들이 자신과 사냥하는 걸 꺼리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에이. 그래도 광훈에 비하면 나는 일반인, 그냥 평범하지.’
이게 그의 저변에 깔린 생각.
광기 어린 한 사내 옆에 쭉 있어서 그런가.
도준은 아직도 자신이 평범하다 믿고 있었다.
최후의 수로는 광훈에게 훈련을 부탁하는 방법이 있지만.
그것만큼은 죽어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녀석의 기행 때문에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몸이 부르르 떨렸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저 사람한테만 부탁해보자.’
C급 헌터 뱃지를 달고 있는.
왜인지 낯이 익숙한 청년.
그에게 다가가자, 오히려 청년이 먼저 아는 체하며 인사를 해왔다.
“반갑습니다! 저번에 구해주신 건 확실히 잊지 않고 있습니다.”
“아, 그때 그?”
“네, 맞습니다!”
그는 이곳 임시기지에 오는 길에 산에서 구해준 헌터였다.
뭔가 예감이 좋은 느낌.
“..그래서, 혹시 저랑 훈련이라도 할 겸, 사냥이라도 가시겠어요?”
“오, 훈련이라면,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에서 즉시 도와드리죠.”
쾌활하게 승낙하더니 청년은 등 뒤에 매고 있던 무기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제가 헌팅할 때 사용하는 주 무기는 바로 활!”
나무로 이루어진, 튼튼하지만 꽤 오래되어 보이는 활이었다.
민도준은 그것을 미심쩍은 듯 바라봤다.
‘그냥 총 쓰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굳이 활을?’
“방금! 그냥 총 쓰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신 것 같은데요.”
그는 예상했다는 듯 껄껄 웃더니 활을 도준에게 건넸다.
그리곤 주위를 살피더니 속닥거렸다.
“..만약 제가 내는 훈련을 무사히 거친다면. 활만이 사용할 수 있는 ‘비기’ 를 알려드리죠.”
“비기 말입니까?”
“넵. 저희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적인 기술이죠. 목숨을 구해주신 값입니다.”
찡긋.
청년은 그대로 도준을 데리고 뒤편으로 데려갔다. 예전에는 넓은 대로변이었는지.
그곳에는 일직선에 가까운 길이 있었고.
저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저기 나무가 보이시죠?”
“잘 보이지도 않는군요.”
“크! 그게 핵심입니다. 화살을 단 세발 쏴서, 나무에 달린 과녘을 맞히시면 됩니다. 심플하죠?”
“예? 과녘은 커녕 나무도 잘 안 보이는데..”
그는 또다시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
약간의 자부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크하하. 최소 몇 년은 걸리실 겁니다. 가문의 영재라 칭송받던, 제가 그랬을 정도였으니까요.”
“후, 알겠습니다.”
“화이팅 하십쇼!”
“그나저나 약속, 잊지 마시죠.”
“물론입니다. 반드시 가문의 전설적인 ‘그 기술’. 활의 궁극점이라 할 수 있는 그것을 알려드리죠.”
이후 도준에게 활 쏘는 방식과 자세를 알려주더니.
청년은 기지로 돌아가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절대 쉽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청년은 알지 못했다.
지금까지 도준이 연명할 수 있었던 것.
홀이 생기기 이전부터 지니고 있던 근본적인 힘.
도준은 다른 이들의 기술을 훔치고, 베끼며 살아왔고.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누구보다 뛰어난 ‘적응력’이 라는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한편, 비교적 밝은 분위기와 다르게.
뒷골목에서는 담배를 피우며 모략을 꾸미는 자들도 아직 존재하고 있었으니.
항상 의심하고, 시기 질투를 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있기 마련이었다.
“어디 F급 미꾸라지 한 마리가 분위기를 흐려?”
역시 광훈에게도 마찬가지였으니.
침을 뱉으며 이를 고깝게 생각하는 무리가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알았지? 작전대로 진행한다.”
“네, 형님. 확실히 이해했슴다.”
“좋아.”
“크크, 저도 기대되지 말입니다.”
“그래, 그 자식..거품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가려주지.”
이 두 명의 사내.
그리고 다른 한 명.
이 제비뽑기로 선정된 세 사람이 해야 할 임무.
그건 바로 정보병을 평화의 거벽까지 호위하는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들과 함께 가게 될 헌터.
그는 현재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멍을 때리는.
이곳에 막 들어온 신참, 김광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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