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

“서쪽 피난처에 남아있는 ‘왕초’를 찾아가도록. 이건 명령이다.”
팀장, 조민호의 말을 듣고.
광훈과 도준, 그리고 고봉은 새로운 지역으로 떠나고 있었다.
“그나저나. 왜 그러신거래? 팀장님은.”
“흠, 갑자기 서쪽 마을로 가보라 하던데.”
“뭐지?”
“크크, 설마 우리만 너무 활약해서 조급하셨나?”
탁.
도준은 말 없이 광훈에게 뭔갈 던졌다.
“오, 초코바! 가져온거 아직 남았었어?”
“이게 마지막. 한동안 당분 충전하긴 힘들테니 먹어두라고.”
‘..키익.’
앞서 가는 그들 뒤로 가방을 두개가 매고 걸어가는 새끼고블린 고봉.
그는 말 없이 둘을 쳐다봤다.
이내 시선을 눈치챈건지 광훈은 아차 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 나 다 먹어버렸는데. 혹시, 고봉이꺼도 있나.”
“···.”
도준은 말 없이 뒤에 있는 고봉을 바라보더니.
똑.
먹던 초코바를 조금 잘라 건네주었다.
“키익!”
뻘쭘하게 초코바를 손에 쥔 고봉.
놈은 뭐라 말을 했지만.
하지만 그와 말이 통하는 건 광훈뿐이었으니.
“재, 고봉이라고 했나? 뭐라는거냐?”
광훈은 눈을 굴렸다.
“나, 고봉. 궁금한게 있다.”
“뭔데?”
“인간은 이해가 안된다! 앞뒤가 다르다 켁!”
“응?”
“이랬다 저랬다. 안된다. 이해!”
어린 고블린이었던 고봉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몇 시간 전만 해도.
그의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인간은 미친게 분명하다 키익!’
공격해온 프란시스 형제.
같은 종족끼리 이렇게 피터지게 싸우다니.
게다가 새로 보게 된 도준이라는 인간 역시.
눈에 은근히 보이는 광기가 있었다.
그에 반해, 지금은 정반대.
적의 없는 표정으로 자신에게 초코바를 건네주고 있었다.
“고봉, 생각한다. 역시 미친게 분명. 저 인간 역시!”
“그, 그래. 초코바는 어때.”
“끽! 맛있다. 맛있다!”
이 대화는 광훈에게만 들렸으니.
“광훈아, 재 도대체 뭐라는거냐. 화난건지 즐거운건지를 전혀 모르겠는데.”
“..어, 초코바 줘서 고맙대.”
광훈은 도준을 보고 이해가 안된다며, 미쳤다고 하는 대화를 그대로 말할 수 없었다.
가뜩이나 탐탁치 않아하는 것 같은데.
‘굳이 그대로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어? 저기.”
지금 세명이 동시에 먹은 것은 각성용 초코바.
신비한 홀이 세상에 생겨나며.
거기서 나온 자원으로 새롭게 개발된 상품이었다.
먹으면 장시간 피로가 회복되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왜?”
“저기 좀 봐봐. 뭔가 흙먼지같은데..”
“에이. 아무것도 없는데 뭐.”
“..아냐. 뭐가 오는 거 같은데.”
새롭게 개발된 상품들.
거기에는 도구도 포함되어있었다.
대표적인 것은 사냥꾼들이 사용하는 간이 망원경.
김광훈은 초코바를 먼저 다 먹고 이걸로 앞을 내다보던 참이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건.
‘뿌연 흙먼지?’
또한 그의 동물적인 감각은 뭔가를 경고하고 있었다.
고봉 역시 뭔갈 느꼈는지 코를 킁킁댔다.
“광훈! 온다. 뭔가!”
기분탓인가.
흙먼지가 점점 빠르게 이쪽으로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엥? 뭐가 온다고?”
도준만 마저 초코바를 먹으며 우물거릴 뿐.
하지만 다시 망원경을 펼쳐 앞으로 쭉 늘려보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고.
환영이라도 본 듯 흙먼지는 온데간데 사라져 있었다.
“엥... 내가 잘못봤나.”
한참을 그렇게 걸었을까.
“드드드득!”
이번에는 흙먼지가 아닌, 지진에 가까운 땅의 흔들림이 느껴졌다.
“어!”
이번에는 도준 역시 느낄수밖에 없었다.
뚝.
그리곤 누굴 놀리듯, 장난치는 것처럼.
또다시 멈춰버리고 말았다.
“사사삭!”
“드드드득!”
소리와 흙먼지.
이 둘은 번갈아며 순서대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둘의 간격은 점차 좁혀지고 있었다.
마치 이들에게 다가오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어...”
그때.
한참 앞장서 걸어가던 도준.
그는 발을 멈추더니.
별안간 고개를 아래로 쑥 숙였다.
“왜 그래? 갑자기 멈추더니 땅바닥에 얼굴을..”
“야, 광훈아.”
“응?”
“여기, 원래 ‘홀’ 이 있었나?”
“무슨 소리야. 우리 가는 길은 평지라는걸 알고 있잖...어?”
광훈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지 말라며 그의 옆에 섰지만.
‘어라?’
분명 도준, 아니 이제 둘이 보고 있는 건 깊디 깊은 홀이였다.
서울의 대규모 제1 홀은 비교도 되지 않는 크기.
원형의 절벽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싱크홀이 어느새 눈 앞에 있었던 거였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던 홀.
이 반경은 사막으로 반쯤 섞인, 평지.
심지어 이곳은 광훈이 예전에 밖에 나갔을 적.
한번 와봤던 장소였다.
‘그땐 분명, 홀이 없었는데.’
기시감.
그리고 불안함.
광훈은 자신의 팔을 바라봤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홀.
하지만 그 아래를 바라보고 있자.
지금껏 겪은 적 없었던 소름이 끼치며.
팔뚝에 닭살이 돋아 있었다.
“야, 민도준.”
“그래, 이거..”
둘은 동시에 발을 뒤로 뺐다.
“푸욱푸욱!”
이후 광훈은 뭔가 감이 잡혔는지, 바로 앞.
손으로 모래가 섞인 땅을 파내보았다.
그러자 아래에 드러나는 것은 적회색빛깔의 벽이었다.
그리고 그 벽은 숨을 쉬듯 꿈틀대고 있었다.
그건 벽이 아니었다.
어느 거대한 생명체의 거죽이었던 거였다.
“칵!”
광훈이 주먹으로 녀석의 몸을 살짝 쳐봤지만.
생채기도 남지 않아, 택도 없었고.
‘이건...괴수다.’
지금은 사냥이든.
간을 보든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광훈은 누가 뭐라그러든 사냥꾼이었고.
진정한 사냥꾼은 자신의 ‘타이밍’이 언제인지를 정확히 안다.
사냥은 굳이 비유를 하자면 턴제게임이었다.
상대방의 턴이 끝나면.
자신의 턴이 돌아오는.
사냥감이 쉬고 있을때나.
방심할 때 덮친다더진지.
자신의 턴은 언젠가 반드시 오는 거였다.
“튀어!!”
하지만 광훈은 잘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자신의 턴이 아니라고.
지금은 지극히 도망쳐야 할 때였다.
“퍽!”
고봉이 짧은 다리로 달리려다 자빠져버린다.
파악.
광훈은 고봉을 팔뚝사이에 끼우곤.
그대로 우다다 달리기 시작했다.
뒤를 따라 도준이 달리자마자.
“솨아아아.”
주위가 울리듯, 마치 쓰나미가 오는 것처럼.
땅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흔한 괴수의 짐승소리.
포효조차 없었다.
굳이 그럴필요가 없다는 듯.
장엄하게, 하지만 천천히 다가오는 공포.
“으아아아!”
슈우욱.
땅 위로 상반신을 튀어올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크기.
놈의 정체는 괴수였다.
홀처럼 위장을 하는, 초거대급의 1급 괴수.
어떤 영화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모래벌레였던 거였다.
“으아아아!”
“키엑!”
셋은 미친듯이 달려.
녀석이 닿기 전.
겨우 모래가 전혀 보이지 않는, 근처 산까지 전력질주를 할 수 있었다.
“헉헉.”
“후..살았다.”
뭔지는 모르지만 녀석이 한 일 하나는 확실했다.
놈의 영역일대를 황폐하게, 모래언덕처럼 만들어버리고 있었다는 것.
기억이 맞다면, 애초에 북한은 이집트처럼 사막이 있는 나라가 아예 아니었다.
"방금, 뭐였지?“
그렇게 거친 숨을 내쉬며 답을 찾아 일행이 향한 곳은 서쪽의 피난처.
팀장, 조민호가 그들을 보낸 장소였다.
“흠..여기도 장난아닌걸.”
“그러게 도대체 일이 있던거지.”
이곳 역시 상태가 안좋기는 마찬가지.
애초에 통제불가지역인 이곳, UT-3에 상황 좋은 곳이 있을 리 없었으니.
예전에는 군대기지와 연관이 있었는지.
참호나 고장난 탱크등이 주위에 보였다.
“너무 조용하네. 이상해.”
“왜.. 아무도 없지.”
유령이라도 들린 것처럼 고요한 피난처.
사람이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때, 도준은 뭔가 반가운 걸 발견한 것처럼 다다닥 달려나갔다.
“동동씨!”
뜨헉.
소리를 듣자마자 얼굴을 구겼지만 애써 밝게 핀 김동동.
그는 민도준에게 활쏘는 법을 가르쳐준 헌터였다.
‘아니, 어떻게 여기까지 온거지?’
그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자신이 가문의 ‘비기’ 를 알려주겠다며 호언장담했던 그 사내, 민도준.
애써 피해서 나온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기 때문이었다.
“하하. 어떻게 여기서 뵙네요?”
“오, 한동안 안보여서 걱정했습니다. 동동, 아니. 스승님! 하하!”
‘스승? 내가?’
김동동은 슬며시 자신이 들고 있던 단검을 슬며시 품 안에 넣었다.
‘..겨우 사냥용 무기를 바꿨는데, 이것마저 빼앗길 순 없지.’
자신과 자매지간인 단검가문.
그곳을 오다니며 매운 단검술.
이걸 민도준에게 보여줄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이미 동동은 알고 있었다.
즉시, 며칠도 채 되지 않아.
기술을 습득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거라는 것을.
“어? 그나저나 활이 안보이시네요?”
“아하하. 그게 갖다 팔..아니, 누가 훔쳐갈까봐 숨겨두고 있었죠.”
“..여기 도적이라도 있었나요?”
‘도적, 도둑은 바로 앞에 있는데..’
삐질삐질 흐르는 땀을 닦으며 동동은 헤헤 사람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앗, 하는 표정으로 진지하게 자세를 고쳐앉았다.
“도적이라..도적때, 비슷한 건 있긴 한데 말이죠. 휴.”
“네?”
“여기 오실 때, 사람이 없는 건 알고 계셨죠?”
“음. 이상하긴 하더군요.”
“원래는 그래도 스무명 가까이 살았었지만, 모두 도망치고 말았죠.”
“왜죠? 나름 전쟁기지였던 것 같은데. 참호도 있고.”
“..악마가 있거든요. 여기 주변에 터를 잡고 사는 괴수, 도적때보다 더 독한 자식. 악마가 있습니다.”
악마라.
그동안 수많은 놈들 봐왔지만 악마라 불린 괴수는 없었다.
광훈은 옆에서 들으며 살짝 입맛을 다셨다.
“설마, 악마라는 자식이 거대한 모래벌레..”
더 질문을 하려던 찰나.
저 멀리서 한 중년이 다가와 말을 끊었다.
“아니다.”
“네?”
“아니라고.”
“..누구?”
“모래벌래라. 그 녀석은 악마가 아니야. 다른 이름이 있지.”
“끼긱.”
오른팔.
그는 사고를 당했는지 강철로 된 의수를 차고 있었고.
늑대를 연상시키는 강한인상의 사내였다.
“쯧. 조민호가 보냈나?”
“네, 그렇습니다. 당신은?”
“보면 모르겠나, 왕초다. 오왕초.”
‘녀석이 보냈다는 건. 설마 이놈들이.. 그 자식을 처치할 수 있다 생각한건가.’
한심하다는 듯 위에서 아래를 훑어보던 한 사내.
특히 광훈의 맹한 눈을 보곤, 혀를 찼다.
“..뭐. 믿져야 본전. 기대는 안한다만.”
끼익.
왕초라 자신을 소개한 사내는 뻣뻣한, 기계로 된 의수를 벗어서 옆에 놔두며.
털썩 바닥에 앉았다.
“다,당신이 진짜 왕초라고요? 그것도 오왕초? 책에 나오는?”
“그래, 쯧. 뭐 불만이라도 있나?”
도준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홀이 생기고.
나라에서 가르친 필수 교습을 마쳤다면 모를 수 없는 인물, 오왕초.
그는 아직도 회자되는, 전설적인 사냥꾼이었다
“그나저나 너희들.. 반응을 보니. 삼웅(三雄) 중, 사공(沙孔)을 본 모양이군.”
“삼웅이요?”
“그래. 오는 길에 본 거대한 모래괴수 말이다.”
자리에 앉아, 오왕초는 여유롭게 팔의 상처를 긁적였다.
“담배.”
“예?”
“담배 좀 있나. 재미가 없어. 저, 김동동이란 자식은. 안 피더군.”
“앗, 제가 좀 남아있는게...”
후.
그렇게 어디부터 말해야 할지 고민 하듯.
도준이 건네준 담배를 한 대 물며 천천히 피워가던 오왕초.
그는 이내 한 개비를 다 피우고 나서야 나지막히 입을 땠다.
“음..얼마만의 연초인지...나쁘지 않군.”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여기에.. 분명 죽었다고...”
“담배값.”
“예?”
“애송아, 담배값이다. 지금부터 이곳이 왜 이곳이 통제불가 UT-3라 불리는지. 그 지긋지긋한 옛이야기에 대해 조금 가르쳐 주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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