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츠

전설의 10인.
홀이 생기고 괴수에 맞서.
규율과 세가지 직업을 만든 인물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법한 이름이었다.
“쉽다고 생각한 적 없나?”
“네?”
“통제 불가지역이라 불리던 이곳. 무려 이름도 UT-3. 하지만 지금까지 명성에 비해 너무 쉽지 않았나?”
오왕초.
앞에서 말을 하며 앉아있는 자.
그는 홀이 생기고 길이 남은 전설의 10인.
그 중 한명으로 알려진 사내였다.
그리고 그는 이미 죽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너희 같은 애송이는 기껏해야 낮은 등급의 괴수들만 봐왔겠지.”
도준은 생각해보니.
그동안 이곳에 와서 그렇게 어렵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물론 광훈이 함께 있기는 했지만.
자신은 이제 막 헌터가 된 지 얼마 안 된 신참.
여러 괴수를 만나왔지만.
지금까지 본 녀석들은 충분히 어떻게든 상대할만한 정도의 난이도였다.
악명에 비해, 생각보다 사람들이 꽤 살고 있기도 했었으니.
“그러고 보니. 거대한 모래괴수를 뺀다면, 생각보단 괴수도 많지 않았고. 상황이 최악인 경우는 거의 없었죠.”
헌터본부가 나눈 괴수의 등급표.
그건 총 5등급까지 있으며 숫자가 낮아질수록 토벌난이도가 올라가는 형태였다.
즉, 1등급으로 갈수록 힘든 난이도를 뜻하는 거였다.
“그래, 심플한 이유다. 몇 년 전. 내가 몸이 멀쩡할 당시, 웬만한 괴수들은 내가 제법 처치했었으니까.”
“예? 분명 헌터본부에서는, 이런 건 알려주지 않았었는데?”
“쯧. 거기와는 영 사이가 좋지 않아. 내가 살아있다는 것조차 숨기고 싶어 하지.”
“무슨? 그러고 보니, 죽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살아있는거죠.”
“뭐, 됐다.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하자. 너희에게 왜 여기가 UT-3라 불리는지 알려주겠다, 알고 있나?”
도준은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 빠르게 대답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선정된 통제 불가 구역이라 그런거 아닙니까?”
“아니지. 아니야. 다른 나라의 통제불가 구역이라면 그렇겠지만. 여기는 다르다, 삼웅(三雄)이 있거든.
“삼웅이요?”
“그래, 세 마리의 1등급 괴수.”
1등급 괴수.
전 세계적으로 놈들은 매우 희귀하며, 지금까지 봤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말이 1등급 괴수지, 사실 전설 속의 동물과 다름없는 취급이었다.
지하에 서식하는 모래벌레, 사공(沙孔).
지상에 사는 녹색 거북, 혁(赫).
그리고 상공의 불사조, 자림(字琳).
오왕초는 설명을 마치며 자연스럽게 도준의 담배곽에서 하나를 더 빼어, 입에 물었다.
“후..그래. 이 세 마리가 이곳에 있기에 UT-‘3’라고 불리는 거다.”
“그러면, 왕초씨가 그 세 마리도 처치하시면..”
“푸하하하!”
연기가 잘못 들어갔는지 콜록이던 오왕초.
그는 어이없다는 듯 의수를 들어 올리며 웃었다.
“나보고 저놈들, 1등급 괴수를 처치하라고?”
“분명. 검귀, 오왕초는 누구보다 현란한 무기들로, 괴수들을 쓸어넘겼다. 라고 배웠는데요. 게다가 다른 높은 등급의 괴수들도 처리하셨다면..”
“쯧. 전성기 시절의 나로서도 될까 말까인데, 가뜩이나 지금의 나에게는 무리다.”
치익.
오왕초는 담배를 땅에 지져 꺼버리더니.
의수를 다시 끼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이 길어졌군. 즉, 저 세마리를 처치하지 못한다면. 누가 되었든, 여기를 평정했다고 말 할 수는 없다는 거다. ”
둘은 이해가 잘되지 않는 듯.
멍하니 떠나는 오왕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왜 팀장 조민호는 여기에 보낸거며.
오왕초가 살아있다는 건 어떻게 안거지?
게다가 이미 죽었다고 믿었던 사람이 나타나서 이곳의 괴수들을 이미 줄여나갔었다고?
다른 통제불가지역은 주로 괴수의 수나 다른 요소를 통해 단계를 선정하는 식이었다.
예를 들어, 안전한 장소가 3단계라면, 통제불가지역은 1단계인 식으로.
하지만 여기는 달랐다.
괴수 세 마리가 있기에 통제불가지역이라 불리고 있었던 거였다.
이 역시 헌터본부에서는 알려주지 않았던 사실.
“그러면. 제가 바로 괴수를 처치하면..”
광훈이 말을 때기도 전.
그는 콧방귀를 뀌더니 어느새 저 멀리 걸어가 버리고 말았다.
“미친소리하지 말도록. 그 전에, 죽고 싶지 않다면. ‘악마’ 먼저 처리하고 오는 게 좋을 거다.”
주변에서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김동동.
그는 바톤을 터치하듯 말을 시작했다.
“휴..저 아저씨가 좀 무뚝뚝해서 그렇지. 사람은 참 착한데 말이죠.”
“동동씨는 뭐 아는 게 있나요?”
“아뇨. 저도 우연히 여기에 왔더니 만나게 된거라..”
“그나저나 그 ‘악마’라는 녀석은 도대체 뭐죠?”
“후...”
김동동은 깊은 한숨을 쉬더니 그 녀석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막 왔을 때만 해도. 여기에는 사람들이 꽤 남아있었죠.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그건, 그 악마라는 괴수때문인건가요.”
“네. 녀석의 공식명칭은 스톤임프. 사람들을 집요하게 괴롭혀서, 사람들을 죽이고, 탈출하게 만들었죠.”
“탈출이라면 최악은 아닌건...”
“아뇨. 저는 헌터라 아직 목숨은 부지했지만. 아마 겨우 도망친 사람들은,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죠.”
“..앗.”
“알다시피, 이곳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가려면. 놈의 영역을 지나가야 하니까요.”
그가 말하는 그 놈이란 이들 역시 지나쳐 오며 만난.
모래벌레, 사공이었다.
즉, 이 피난처 뒤에는 악마라 불리는 스톤임프가.
앞에는 모래벌레가 지키는 상황이었던 거였다.
“제가 임프들을 처치하려 했지만. 혼자선 무리였습니다. 게다가 오왕초씨는 보다시피 지금 싸울 수 있는 몸이 아니신지라...”
벌떡.
설명이 끝나자 광훈은 몸이 근질근질한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동씨라고 했죠? 당장 가시죠.”
“예? 어딜..”
광훈은 눈을 반짝였다.
꿩 대신 닭이라고.
모래벌레는 아직은 잡지 못하지만.
그게 사냥을 못 한다는 소리는 아니었으니까.
그는 다른 녀석이라도 잡아야 성이 풀리겠다는, 그런 열렬한 눈빛이었다.
***
전기가 통한다.
즉, 인터넷이 통한다.
한국에서는 그간 이상하리만치.
한 번도 퍼지지 않았던 UT-3에서의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야..그거 봤냐? 북한에서 헌터들이 성과를 엄청 거두고 있다는데?”
“뭐어? 몇 년동안 아무런 소식도 없었는데. 갑자기?”
수군대며 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여느 커뮤니티들에서 역시 이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 아니. 그래서 헌터본부가 성과를 거뒀으면 왜 선전을 안하는거지?
- 흠. 둘 중 하나겠지. 구라거나, 아니면 뒤가 구리거나.
사람들이 점차 위에서 벌어진 사건에 관심을 가지자.
어떤 회의장에서는 긴급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쾅!”
“아니, 누가 우리 헌터들의 정보를 인터넷에 뿌렸단 말인가?”
“게다가, 그동안 전기 한번 안 터진. 시골 깡촌 UT-3에 전기가 통한다고?”
위원장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고, 나머지가 헌터본부에 모여 회의를 나눈다.
기밀이 새어나가 초조한 사람.
재밌어졌다는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는 S급 헌터.
그리고 아무 말을 하지 않는 본부장, 박상철까지.
“그럼.. 어쩔 수 없지. 위원장님이 안 계신 이상, 내가 판단을 내리겠네.”
그리하여 북에서의 선전이 인터넷에 퍼진 지 며칠이 지난 후.
뒤늦게 헌터본부에서는 기사를 내보냈다.
- <영광스러운 첫 승전보! 그동안 UT-3에서 활동하던 임시기지의 인원들이..헌터일보>
- <늦었지만 확실한 한 발자국. 이는 우리 애쓴 헌터본부가 국민들에게 전하는 희망이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헌터일보>
물론 광훈의 이름은 쏙 뺀 채 헌터본부에서의 업적으로 치부한 채 말이다.
- 캬. 이제 위에도 정복되면, 땅값 걱정 안해도 되는 거냐.
- 오피셜로 떴네? 헌터본부가 웬일이래? 활약을 다 하고.
- 크! 아니, 헌터 중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고?
- 이거 뭔가 새로운 헌터가 발령된 것 같지 않음? 그동안 임시기지가 있었는데 아무것도 못 했었으니까.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 기사의 뒤편에는 한 헌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헌터가 앞으로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
경악한 도준의 표정.
퍽!
광훈은 그 앞에서 얼굴에 진흙처럼 찐득한 피를 바르고 있었다.
“..그래서. 임프무리는 냄새에 예민해서. 주의를 해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몇 분 전.
김동동은 스톤임프에 대한 설명을 해주면서.
조심스럽게 산에 널린 변이나 피를 수통에 조금 담았다.
“이런 식으로. 저는 녀석들의 흔적을 가지고 다니다가 살짝 뿌리고 다니곤 했었죠. 별건 아니지만 이 덕분에 아직 살아있는 거기도 하구요.”
“오, 역시 헌터는 다른데요? 살아남은 데는 이유가..”
도준은 말을 끊더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야.. 김광훈 잠깐만..”
동동의 말을 듣자마자.
광훈이 임프의 찐득한 검은 피를 얼굴에 바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응? 왜.”
“뭐하냐.”
“귀찮잖아. 수통에 담아서 뿌리고 다니면.”
“···.”
어느새 오왕초는 어딜 다녀온 건지.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녀석. 과감하군. 아는 누가 생각날 정도야.”
광훈은 뜨악하는 도준의 표정을 뒤로하고 오왕초를 바라봤다.
“오, 아저씨도 같이 가주시는검까?”
“아니. 너희 애송이들이 쉽게 죽으면 재미가 없지. 그저 놈들의 서식지가 어딘지 알려주려 온 것. 그뿐이다.”
처음 봤을 때는 무뚝뚝해 보였지만 나름 둘을 신경쓰는지.
오왕초는 나타나 툭툭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래. 여기까지군. 돌아가서 이 녀석 기름칠이나 해야겠어. 난 가봐야 힘도 못 쓸 테니 말이지.”
톡톡.
그러더니 그는 자신의 팔에 장착된 강철 의수를 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후, 임프라. 뭔가 무서운데요 하하. 그래도 이번에는 헌터가 세 명이니까 괜찮겠죠.”
“···네 진짜 무섭네요.”
도준은 옆을 슬쩍 쳐다보더니 치를 떨며 대답을 했다.
거기엔 광훈의 얼굴이 괴수의 피로 떡칠이 되어있었다.
“그럼, 슬슬...”
“앗, 잠시만요.”
광훈은 가기 전.
자기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철로 된 무언가를 꺼내 엽총 옆에 장착시켰다.
“철컥!”
그건 ‘파츠’ 였다.
챈들러가 임시기지를 떠나는 광훈에게 건네준, 총에 장착할 수 있는 파츠.
파츠에 따라 총에 새로운 성질이 추가되는 장치였다.
“후후, 미스터 광훈! 이 아이를 챙겨가시죠.”
“오, 이건?”
“제가 만든 총 파츠 중, 최고. ‘아리랑’ 입니다.”
“예? 이름이 파츠 이름이 아리랑..이요. 의외인데.”
“훗. 장착해서 써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수많은 파츠는 그저 짐이 될 뿐이라 전부 챙기지 못했다.
그냥 순정, 자신의 엽총만 챙기고 가려던 광훈에게.
챈들러는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파츠를 하나 쓱 건넸던 거였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흐음. 챈들러 외국 살다 왔다고 하지 않았나?’
파츠의 이름은 아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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