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입

현재 광훈과 도준, 그리고 고봉이 가려는 곳은 마조 패거리의 소굴이었다.
마조 패거리.
점점 세력이 커져가며, 남아있는 사람을 납치해서 싸움을 붙이기도 한다는.
악질 그룹이었다.
아무리 인간 무리라 할지라도 언젠간 처치해야 할 상대.
그리하여 둘은 오왕초에게 전해받은 정보대로 그곳을 향해 떠나게 된거였다.
“오, 왠일로 아무 괴수도 안보이지?”
지금 그들이 향하는 곳은 전반적으로 풀하나 없는 삭막한 돌산들이 펼쳐져 있었다.
신기하게 괴수는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대신 사람 한명이 나타났는데.
“예끼!”
앗!
도준은 머리를 쥐어싸매 휙 고개를 돌렸다.
“어? 그 누구더라...영감님?”
뒤에는 안대를 둘러쓴 할아버지 한명이 어느새 서 있었다.
등에는 몸만한 낚싯대가 걸려있고.
갓과 곰방대를 보자.
마치 조선시대에서 뛰쳐나온 것 같았다.
“끌끌, 너 손버릇이 나빴던 그 녀석이구나. 벌써 잊은게냐, 나는 조영감이다 조영감!”
광훈은 이번에도 마찬가지.
키도 작고, 눈도 안보이는 노인이었건만.
그의 기책은 전혀 알아챌 수 없었다.
정체는 저번에 한번 만났던 적이 있던 노인.
조영감이었다.
“어라? 조영감님. 여긴 무슨일로?”
“앗.”
민도준은 멋쩍은듯,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는데.
가방에서 고풍스러운 무늬가 그려진 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안에 든 건 저번에 도준이 노인에게서 훔쳤던 단약이었다.
“저..이거...”
“쳇, 됐다. 단약은 어차피 비상용이었거늘. 이제와서 받아봐야 뭣하겠나.”
노인은 콧방귀를 뀌더니만.
그대로 빠르게 입을 열었다.
“흠, 그래서 젊은 청년 둘이 어디로 가는교?”
“어르신. 혹시 마조 패거리 아세요? 거기를 좀 가려는데.”
“칫. 역시 젊은 녀석 아니랄까봐 질 나쁜 곳에 가려는거구만.”
콩!
조영감은 그대로 곰방대를 들더니 광훈의 머리를 때렸다.
“으잉? 사람을 납치까지 해가지고 싸움붙이는 질 나쁜 곳을 가려는기야? 쯧쯧. 이래가지곤..”
“아, 아뇨 그런게 아니라.”
지금 그들이 그곳에 가는 이유는 패거리를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도준이 조리있게 말을 정리해주자.
그제야 노인은 이해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흠. 그려. 그렇다면 쉽지는 않을걸세.”
“혹시 아시는게 있으십니까?”
“내 자식놈이 생각나 도와줄까 싶어 왔더만, 이거이거 곤란하구먼.”
“예?”
“나는 지금 소란을 피울 수 없는 입장이니...도와주긴 힘들겠네, 미안하네 청년들. 빚은 나중에 갚도록 하지.”
광훈은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나타난 조영감님.
상당한 실력자로 보이는 그가 자신들을 도와주려 했다니?
일단 확실한 건 적대하지 않는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는 거였다.
“큼. 내 위치랑 정보는 조금 알려주도록 하지.”
이후 조영감은 느닷없이 뻐금뻐금 곰방대에 불을 붙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그래서, 놈들과 정면대결은 하지 말라고요?”
“그려. 문지기만 처리하고. 투기장에 들어가 우승을 하는 편이 쉬울걸세.”
“투기장이요?”
“어차피 두목, 마조를 잡지 않는다면. 나머지는 잔챙일 뿐. 녀석은 우승자가 아니라면 만나기조차 쉽지 않다, 몸을 사리니깐.”
도준은 설명을 들으며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사람들을 납치해서 강제로 싸움을 붙이는 투기장을 여는 사내가 주변에 있다.
그의 이름은 마조.
그를 처치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무리가 생성될게 뻔하니, 투기장에 참가, 우승해서 그를 먼저 만나보라는 것.
‘흠...일단 말로만 들어선 복잡하진 않은데...’
그때.
노인은 뚝, 말을 멈추더니
“으갹? 뭔놈의 괴수가 이런곳에 있는교?”
말을 하다말고, 뭔가를 느꼈는지 재빠르게 아래를 쳐다봤다.
그리고 거기에는 고블린이 태연하게 앉아서 노인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새끼 고블린, 고봉이었다.
“촤아악!”
즉각반응을 하듯.
그는 그대로 등에 맨 낚싯대를 들어올려 고봉을 향해 내려찍었다.
마치 파리를 잡는 파리채와 같은 모습이었다.
“아아! 어르신 잠시만요!”
탁.
광훈은 겨우 양손을 뻗어 낚싯대를 잡아냈다.
“휴, 애는 제 짐꾼입니다, 짐꾼!”
“으잉?”
의문에 찬 듯 그는 낚싯대를 천천히 들어올리곤.
고개를 갸우뚱했다.
“흠...요즘은 괴수를 짐꾼으로 삼기도 하는가...역시 젊은것들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지. 이상하군.”
도준은 이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 광훈이만 그런겁니다. 모든 젊은이가 이상한건 아니니까요.’
“호오, 그나저나. 민도준이라고 했나. 자네 등 뒤에 못 보던게 하나 있구먼.”
“아, 이거..”
“켈켈, 오왕초가 무사히 전해준 모양이군. 그 무기를.”
그는 천에 둘러쌓인 도준의 등 뒤를 바라봤다.
길쭉한 길이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무기였다.
“그럼 나는 이만.”
휘익!
처음 만난 때처럼 노인은 순간이동을 하듯 그대로 허공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저 영감님. 도대체 정체가 뭐지?”
“그나저나 투기장이라··· 광훈아 자신있지?”
“뭐, 하면 하는거지. ..사람이랑 싸우는 건 싫은데.”
심플한 대답을 끝으로 일행은 정보대로 한참을 걸었다.
그러자 이내 저 멀리 낡은 폐허가 보였고.
그 앞에는 문지기들이 서 있었다.
대여섯명정도 되어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목줄을 찬 문지기도 한마리 있었다.
“탁탁!”
광훈은 재빨리 문지기 두명의 뒤로 이동해, 목을 때려 기절시켰다.
“좋아, 그러면 나머지도..”
도준에게 반대쪽을 처리하라고 말하려던 순간.
그럴 필요는 없어지고 말았다.
“커어엉!”
중간에 목줄을 차고 있던 문지기.
녀석이 미쳐날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말이 문지기지 사실상 그냥 괴수 한마리였다.
“컹!”
그 정체는 개 한마리였다.
문제는 겁나 큰 개라는 것.
케르베로스를 연상시키는 개였다.
머리가 셋 달린 거대한 늑대형상의 괴수가 떡하니 입구를 지키고 있었던 거였다.
“케헤엑!”
그리고 녀석은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며 날뛰기 시작했고.
이내 이곳의 문지기는 이 한마리만 남게되었다.
“애가 진짜 문지기라는건가? 그럼 어디..”
광훈은 그대로 총을 꺼냈다.
스톤임프를 잡으며 나온 소재들.
이것들을 놓고 갈리가 없었으니.
고봉의 가방에 가득 채워, 임시기지에 도착하자마자, 챈들러에게 전해준 후였기에.
이미 총기수리는 완료, 새로운 총알을 얻게된 후였다.
“철컥!”
장전까지 마쳤지만.
뭔가 생각났는지 그는 멈추더니.
슬쩍 도준을 바라봤다.
“너. 한번 혼자 싸워볼래? 훈련도 했잖아.”
“개무섭게 생겼는데. 야, 나 아직 F급인거 잊은거 아니지.”
“나도 F급인데?”
“...너랑 내가 같냐.”
진심이냐는 듯 도준은 케르베로스와 광훈을 번갈아 쳐다봤다.
날카롭고 마른 피가 덕지덕지 묻은 몸.
팔뚝만한 송곳니까지.
저번에 만난 워울프와 비슷하지만, 덩치는 훨씬 컸다.
“크크. 한번 해봐, 죽을 거 같으면 도와줄게.”
광훈은 도준의 행보를 보며 딱 감이 왔다.
‘만약 이놈이 한국으로 내려가서 정식으로 헌터시험을 치룬다면.’
무조건 C급, 아니 B급까지는 충분히 뜰 정도라는 것.
가뜩이나 거품많은 헌터들 사이.
도준의 재능과 성장은 가히 기하급수적이었다.
“에휴!”
도준은 그대로 어쩔 수 없다는 듯.
등 뒤에 있던 무기를 꺼내들었다.
“왕초 아저씨. 이럴 작정이셨나. 참 답답한 양반이구만.”
오왕초가 며칠간 시킨 훈련이란, 단순하기 그지 없었다.
특히.
민도준에게 시킨 건 바로.
“슈우웅!”
한 동작만 계속해서 해보라는 것.
그 동작은 나무막대기를 들고 앞으로 찌르는 자세였다.
수십, 아니 수백수천번이나 반복한 하나의 동작.
그리고 도준은 어때서 오왕초가 그런 훈련을 시켰는지.
이제야 알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쓰던, 영왕의 창이다. 부디 소중히 다루도록.”
둘이 떠나기 전, 마지막 날에 들은 말이었다.
그리고 오왕초가 도준에게 건넨 선물.
그건 그가 사용했다는 ‘영왕의 창’이었다.
“네? 갑자기 창이요? 써본적도 없는데.”
“..잔말말고 받아들어라. 때가 되면 사용할 수 있게 될거다.”
민도준은 그간 연습했던 하나의 자세.
이것이 바로 이 창을 사용하기 위해서임을 깨닫게되었다.
“부우웅!”
그렇게 창을 옆으로 치켜세우자.
창을 감싸고 있던 천이 사르륵, 떨어져나갔다.
이내 보이는 건 세세하게 문자가 박혀있는.
녹이 슬어 거친 금속이 번뜩이는.
청룡언월도를 연상시키는 노련한 무기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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