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축제(2)

축제 첫날이고 평일이니 한산할 거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메인 행사장에서 사방으로 뻗은 거리마다 사람들로 북적댔다.
행사 기간에 한복을 입고 다니면 음료수 쿠폰을 주기에 한복을 입은 사람들도 많았다.
언뜻 화려한 꽃밭으로도 보이고, 시간을 거슬러 온 듯한 광경이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경매장을 찾아다녔다.
경매는 내일 저녁이지만, 가격도 알아보고, 목록에 오르지 않은 다른 물건도 보고 싶었다.
한맥 미래 경매장은 행사장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이다.
삼 층짜리 상가를 모두 사용하는지 층마다 다른 주제의 골동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생활용품과 소형 가구는 일 층, 대형 가구와 고서화는 이 층, 조각작품은 삼 층으로 되어있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조금씩 섞여 있었다.
직원들은 행사를 준비하느라 바삐 움직였다. 목록을 들고 상품과 비교하느라 내게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다행이군. 오히려 편하게 구경할 수 있으니.
맨 앞의 도자기부터 구경하는데, 부르륵 폰이 울렸다.
윤태영이었다.
‘야, 소감이 어떠냐? 캬캬, 네가 출장이라니, 나 감동 먹었다.’
“그 말 하려고 전화했냐?”
‘괜찮은가 하고. 나야 총본에서 가끔 회의도 있고, 교육도 있지만, 넌 출장 처음이잖아? 예전처럼 쓰러지면 어떡하냐?’
“쓰러져? 내가?”
아니, 유하준이 쓰러졌겠지.
‘그 생각만 하면···. 그때가 중학교 때지? 수학여행 가서 너 엄청 심하게 앓았잖아? 열도 심하고, 헛소리도 해대고.’
윤태영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침 한 번 삼키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는 괜찮았어. 햐, 그러곤 대학 가서도 모꼬지 한번 안 갔지?’
윤태영은 한번 말을 꺼내면 멈추지 않는구나. 의미 없는 수다를 계속 들어줄 마음은 없고.
“안 바쁘냐?”
‘하나도 안 바쁜데? 너도 안 바쁘잖아?’
“난 바쁘다.”
‘네가 왜? 여하튼 그게 신병이라고 해서 너희 어머니가 얼마나 걱정하셨는지. 우리 집에 와서 한참 우셨잖냐?’
유하준이 열병을 앓았나. 나와 같은 병을 앓았군.
음. 그래서 이 몸에 무리 없이 들어왔구나. 어쩐지 너무나 편안해서 내 젊은 시절 같더라니.
주술력이 조금씩 돌아오는 데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수련의 성과로만 여겼는데, 이런 비밀이 있을 줄이야.
사람의 몸에 빙의하려면 몸과 혼의 결이 잘 맞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에는 문제없어 보여도 어딘가 틀어지기 시작한다.
주술을 쓸 때마다 힘이 왜곡되어 결국 자신을 공격한다. 내가 펼친 주술 때문에 내가 죽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문제없겠군.
수련만 계속하면 원래의 주술력을 되찾아도 다 쓸 수 있다.
유하준.
사람들은 유약하고 모자란다고 했지만, 암기왕에 아는 것도 많고, 열병도 이겨낸 녀석이구나.
“어, 사무실에서 전화 와서. 이만 끊는다.”
‘그래. 알았다.’
엉성하게 둘러대고 전화를 끊었다. 착한 녀석, 돌아가면 커피라도 사다 줄까.
나는 폰을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전시된 물건을 반쯤 돌아보았을 때 면경을 찾아냈다. 서인애가 부탁한 면경이다.
두 개의 면경 모두 사진과는 달리 많이 낡았다. 사진에서는 조명 때문에 실제보다 깔끔하게 보였던 거다.
그래도 그냥 낡은 것이 아니라 손때가 묻어있다. 실제로 부부가 사용했다는 뜻이니, 나쁘지 않군.
다른 여러 가지 생활용품과 나무 그릇을 둘러보는데, 대나무로 엮은 찬합이 보였다.
죽제 찬합이라는 명패가 앞에 놓여있었다.
이름은 죽제 찬합인데, 여기서 나오는 기운은···?
나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넓은 가게에 괴이한 기운이 없어 신기했는데, 여기 딱 방정맞은 기운이 버티고 있다.
찬합 뚜껑을 여니 마패가 들어있다. 말 세 마리가 새겨진 동그란 쇠붙이에, 색이 바랬지만 풍성한 술도 달려있다.
“뭐야? 찬합에 왜 이걸 넣어놨어?”
그것도 진짜 마패를.
마패를 집어내려다가 손을 멈추었다.
이건 사람이 여기 넣어둔 것이 아니라 마패가 숨어있는 것이다.
숨바꼭질이라도 하나.
‘사념과 잡귀가 같이 있어?’
주인을 찾아 달려가려는 마패의 사념과 그걸 이용해 장난치려는 잡귀가 기생하고 있다.
잡귀가 힘이 약해 사념에 달라붙은 꼴이다.
이런 귀는 가볍게 소멸시킬 수 있지. 일단 사념은 풀어주고.
내 기운을 읽고 찬합 속 공기가 부르르 떨었다. 마패의 떨림이 읽혔다.
‘가짜와 한 상자에 있기 싫다, 이거군. 매일 가위눌리게 하는 데도 못 알아듣는다고?’
쯧. 그런다고 깨달으면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지.
계산대와 사무실을 돌아보니 아까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다르게 보였다.
그들은 경매에 내놓을 물건을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 마패를 찾고 있었다.
“잘 묶어놓으라고 했지?”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고함쳤다.
“묶어놨는데요. 아우, 누가 장난치는 거야?”
“사장님, 점검할 때 연 거 아닐까요?”
“이번에는 진짜, 확 치워버려야지!”
사장이 신경질을 내며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흥미롭군.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인지 볼까.
사장이 귀를 아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귀의 존재를 아는 자라면 이야기가 쉽게 풀린다.
나는 씩씩거리는 사장에게 다가갔다.
“혹시 마패를 찾고 계십니까?”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엥? 누구쇼?”
“사장님이 요즘 계속 가위눌린다고 들었습니다만.”
“누가 그러던가요?”
“봉서 상자에 있는 것이 다 가짜라고···.”
“헙!”
사장은 내 팔을 잡고 제일 안쪽 선반까지 들어갔다. 계산대와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을 둘러보고는 검지를 들었다.
“혹시 귀를 보는 분이오?”
“보고 듣습니다.”
“쉿, 이게 잡귀인 걸 직원들은 몰라요. 그런 말 하면 누가 여기서 일하겠습니까? 다 도망가지.”
“사장님은 어떻게 아십니까?”
“어쩌다 보니··· 그런데 마패는 어찌 아셨나?”
“저기서 보았습니다. 찬합에 숨어있던데요?”
죽제 찬합이 있는 선반을 가리켰다.
“허! 도망가봐야 손바닥 안이지!”
사장은 내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사라질 때마다 용케 찾았는데, 찝찝해서 치워버리려고요. 이번 경매에 내놓을 겁니다.”
“마패만 따로 내놓으시죠. 왜 가짜를 만드셨습니까?”
“가짜라니요? 봉서, 사목, 유척 다 진품입니다. 그거 맞추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사장은 눈을 부릅떴다.
“그러십니까? 그럼, 전 도와드릴 수가 없네요.”
나는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너 걸음 움직이자 사장이 내 소매를 붙잡았다.
“어허, 젊은 양반이 왜 이리 성질이 급하셔.”
“저도 물건을 사러 왔는데, 사장님을 뵈니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단호하게 말하자 사장은 쭈뼛거리며 내 앞을 막아섰다.
“에이, 그건 아니지. 일단 놈부터 찾고 얘기하죠.”
사장은 이마를 꾹꾹 누르면서 찬합이 있는 선반으로 갔다.
마패는 거기 그대로 있었다.
“워낙 흔해서 값이 안 나가요. 요즘은 기술이 좋아서 진짜랑 똑같이 만드니까. 그런데, 이걸 세트로 맞춰놓으면 값이 네 배로 뜁니다.”
“그래서 모조품을 만드셨습니까?”
“먹고 살려니 그런 거 아니겠소?”
“여기 서린 사념과 잡귀만 없애면 사장님도 편히 주무실 텐데요. 밤마다 잠을 설치면 신경이 날카로워지죠.”
“허어.”
사장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거 만드느라 공이 꽤 들었는데···.”
혀를 차며 이마를 긁적였다.
“아니, 이런 행사에 누가 값나가는 물건을 가져옵니까? 진품이라도 적당한 것을 갖고 나가지. 손님들도 다들 놀러 온 거고, 재미를 위해 하는 일인데.”
“그럼, 재미에 맞게 값을 부르셔야죠.”
“하, 그럼 마패 값에 공임만 받는 거로 해야겠네. 이거···, 어떻게 하면 됩니까?”
사장은 내게 마패를 내밀었다.
마패를 돌려보았다. 지송박물관에도 있는 물건이다. 거기 있는 건 말이 두 마리지만.
“사념과 잡귀가 둘 다 들었습니다. 사념은 주인을 찾아가고 싶어 하고, 잡귀는 사장님이 속임수를 쓰니까 그걸 쫓아와 눌러앉았어요.”
“아니, 그렇게까지···. 이 바닥에서 나만 그러는 것도 아닌데.”
그의 혼잣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귀를 없애는 대가로 무엇을 주실 건가요?”
“아, 그렇지. 귀신 보내는 값이 있어야죠.”
사장이 가게 안의 물건을 돌아보았다. 절대로 괜찮은 물건을 내놓을 사람이 아니다.
면경 세트를 달라고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것도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나도 혼이나 귀가 알려줘야 아니까.
내일은 감정가가 나와 설명하니, 그때 들으면 된다.
사장이 결심했는지 손가락을 튕겼다.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 마패와 상자를 드리겠습니다. 딱 마패 값만 받고요.”
자기 생각이 마음에 드는지 싱글거렸다.
내가 마패를 들고 가만히 바라보자 얼굴을 붉혔다.
“어, 뭐··· 그러면 30퍼센트 할인으로다가···.”
어이가 없군. 이걸 어디에 쓰라고? 박물관에도 있는데?
사장은 손바닥을 비비더니 쯧 혀를 찼다.
“좋아요, 40퍼센트. 이 이상은 절대 안 됩니다.”
어쨌든, 마패에게는 새 주인이 필요하니, 이쯤에서 양보하자.
“그럽시다. 우선 사념을 보내고 잡귀를 잡지요.”
나는 마패를 들고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사념은 주인을 찾고 싶어 하니 그 소원을 이뤄주면 된다. 그것의 새로운 주인은 바로 나.
‘네게 주인이 생겼다. 너의 새로운 주인을 맞으라.’
온몸의 기운을 손바닥으로 모으니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사념은 기뻐하며 서늘한 아지랑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거기 붙어있던 잡귀가 도망치려고 불끈거렸다. 내 손에 들어온 이상 빠져나갈 수 없지.
주문을 바꾸니 손바닥이 뜨거워졌다. 손바닥 안에서 귀의 움직임이 더 빨라졌다.
나는 손을 움켜쥐었다.
‘소멸!’
손안에 모은 기운을 한순간에 폭발시켰다.
끼우욱 외마디 소리가 들리더니 잠잠해졌다.
“엇?”
사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오, 머리가 맑아졌어요. 어깨부터 뒤통수까지가 뻐근했는데···.”
“다행입니다. 다시는 가짜를 취급하지 않으실 테니까요.”
“허어, 그건 또··· 다른 문제죠.”
사장은 계산대를 향해 앞장섰다.
직사각형의 상자를 올려놓았다. 안에는 접힌 문서 두 장과 놋쇠 자가 들어있었다.
세월이 느껴지도록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언뜻 보면 진짜처럼 보였다.
특히, 문서는 몇백 년은 된 것처럼 색도 바랬고, 가장자리와 접힌 자국도 너덜거렸다.
“이런 가짜는 어디서 만듭니까?”
“아휴, 왜 자꾸 가짜라고. 이미테이션 몰라요? 요즘 못 만드는 게 어딨습니까? 돈만 있으면 뭐든 다 만듭니다.”
“아주 똑같이 만드는 기술자는 몇 없겠죠?”
“웬걸요. 수천 명은 될걸요? 우리나라 사람들 손재주가 얼마나 좋은데요.”
그런가···. 유물 도둑을 찾아볼까 했더니. 이런 식으로 찾는 건 어렵겠어.
“자, 이건 영수증이고, 증명서도 써드리죠.”
“진품 증명서는 마패만 쓰셔야죠. 나머지는 아니니까요.”
“거참, 까다로우시네.”
사장은 투덜거리면서도 내 부탁을 다 들어주었다.
박물관에 꼭 진짜만 있을 필요는 없지. 디오라마도 인형이지만, 효과가 크지 않나. 사람들의 관심도 끌고.
모조품만으로 코너를 꾸며도 좋을 것 같다. 손으로 만져보고, 펼쳐볼 수 있는 것 말이다.
귀가 서린 다른 물건이 있나 살펴보았지만, 다른 기운은 없었다.
삼 층에 있던 장군상 때문인가?
오래된 장군상이라 정념이 있을 법하지만, 귀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귀가 없는지 아니면 깊이 잠들었는지도.
예전에도 요괴 무리를 봉인하고 나서 그런 돌로 결계를 표시했다.
그 결계를 사람이 풀었으니··· 대요괴와 싸우려면 더 많은 귀를 상대해야 한다.
“그럼, 내일 또 오겠습니다. 경매 때문에 여기 왔거든요.”
나는 종이 가방을 들고 돌아섰다.
“그러십니까?”
시큰둥해하던 사장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어, 잠깐, 잠깐만 기다리십쇼. 귀한 분을 그냥 보내면 안 되죠. 일단 차나 한잔 마시면서···.”
그는 상담석을 가리켰다.
사장이 신호하자 어린 직원이 차를 따라왔다.
그사이 사장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예. 선생님이 찾던 분 같습니다. 진짜입니다.”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흘끗 바라보았다.
“그렇다니까요.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물건도 대번에 알아보고요.”
나와 눈이 마주치니 그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빨리 오십시오. 예, 여기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허공에 대고 굽신굽신 허리를 굽혔다.
사장은 두 손을 잡고 흔들었다.
“소개하고 싶은 분이 있어요. 이 지역에서 유명한 투자자시죠. 근처에 계신다니 금방 오실 겁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회색 머리의 노인이 들어섰다.
긴 회색 머리를 뒤로 묶고,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수염을 짧게 손질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사진 그대로였다. 남전갤러리 우지광 대표.
봉 사장을 통해 나와 만나고 싶어하던.
내가 수고하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오는군. 면경을 구하기 전에 이쪽부터 해결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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