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루베의 환영술(2)

수루베의 기운을 따라 지하 계단을 한 층씩 내려갔다.
녹슨 계단을 밟을 때마다 삐거덕 소리가 날카롭게 메아리쳤다.
폰 플래시 불빛을 따라 길을 찾아냈다. 다행히 배터리는 충분하다.
길은 축축했고, 퀘퀘한 냄새가 올라왔다. 인기척 때문인지 쥐나 벌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큰맘 권 선생은 조심스럽게 계단을 따라 내려왔다. 잔뜩 긴장해서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숨소리와 발소리만 크게 들렸다. 흠칫 놀라 멈춰서는 소리까지 들렸다.
“저기, 가라뫼님, 지하는 왜 가시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웅웅 메아리쳤다. 어깨를 움츠리고 쉬지 않고 두리번거렸다.
아무것도 없으니 긴장할 필요 없는데.
어둠 자체는 두려울 것이 없다. 어둠에 몸을 숨긴 사람이 위험하지.
부족의 아이들이 두려워할 때, 내가 쓰던 방법이 있다. 생각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반드시 기쁜 생각일 필요는 없다. 두려움을 잊을 다른 것이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나는 폰을 들어 정면을 비추었다. 빛이 퍼지며 멀리 갈수록 희미해졌다.
“언제부터 십이지 신장을 모셨습니까?”
“열두 살 때 꿈에서 부름 받았죠. 그때 들은 대로 큰맘을 찾아갔답니다.”
“스승도 큰맘입니까?”
“예. 스승이 돌아가시면 그 이름을 물려받지요.”
“제자 될 사람이 먼저 각성하고 스승을 찾아가는군요.”
“예. 그렇기도 하고, 스승이 후계자를 알아보기도 하죠.”
“선생님도 후계자를 키우십니까?”
“아뇨. 아직.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도 없고, 다른 계시도 없네요.”
말을 하다 보니 권 선생의 숨소리가 달라졌다. 걸음에도 힘이 생겼다.
“사실, 꿈도 몇 번 안 꿨지요. 탈진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맬 때 두 번째로 보았고요.”
신장에 대해 말하는 동안 목소리의 떨림도 가라앉았다.
“거의 십여 년 동안 안 꿨는데, 남부의 유물수집상을 보았고, 어젯밤에 이 빌딩을 봤어요.”
“대단한 신장이군요.”
그걸 알려주었다니. 내가 본 환영보다 정확하게.
하늘에서 내려온 신귀이니 당연한가. 나를 찾으라고 알려주었다니, 나도 찾아가야겠다. 내가 할 일에 대해 무언가 계시를 내려줄지도.
지하 삼 층, 맨 밑바닥까지 내려왔다.
철수하면서 빠뜨리고 간 부속품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선생님, 아까 일 층에서 환영을 보지 않았습니까?”
“환영요? 아뇨. 그런 거 없었어요.”
권 선생은 폰을 흔들며 이곳저곳을 비추었다.
‘이 사람은 환영에 빠지지 않았어. 다른 이에게 보이지 않았다면···.’
내 술력과 공명했기에 내게만 환영이 보인 것이다. 고대의 주술력에만 반응하는 환영.
수루베다운 환영술이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상대가 진짜인지 아닌지 시험하기 위한 결계였다.
‘수루베,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그와 함께 이런 어둠 속에서도 수련했는데.
지하 밑바닥에 서서 시커먼 공간을 바라보았다.
사방이 어두워 어디가 끝인지 보이지 않았다. 비릿한 흙냄새만 느껴졌다.
‘이렇게 깊이 파낼 수 있다니···.’
미인들 채널에서 본 영상이 눈앞에 겹쳐졌다. 요괴의 결계를 깨버린 공사장의 흔적들.
그 주차장은 지하 오 층까지 파 내려갔지. 땅끝, 지옥의 문이라 믿어 의심치 않은 곳인데.
요괴 무리를 봉인하고 아홉 명의 주술사들은 그것을 땅속 깊이 묻기로 했다. 비단산 너머 너르벌에.
‘사람이 갈 수 있는 가장 깊은 바닥, 지하 세계의 입구에 봉인하자.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도록.’
수십 명의 제자가 함께 흙을 파냈다. 보름달이 뜬 날부터 다음 보름달이 뜰 때까지.
단단한 바위 때문에 곡괭이가 들어가지 않았다. 누군가 소리쳤다.
‘이것은 지옥의 문이다!’
우리의 주술로도 바위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지옥의 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곳에 요괴를 봉인했다.
봉긋하게 메운 땅 위에 커다란 돌멩이를 둥글게 세우고 이중삼중으로 결계를 쳤다.
요괴의 힘을 빨아들여 결계가 더 강해지도록. 놈들의 힘이 완전히 사라져도 봉인은 남아있도록.
그렇게 되기 전에 지옥에서 요괴를 삼킬 거라 믿었는데···.
단단한 바위는 지옥의 문도 아니었고, 땅끝도 아니었다.
그때는 피땀으로 파내던 자리를 지금은 몇 가지 기계와 장비로 며칠 만에 파내니까.
수루베의 기운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엉성한 문이 하나 보였다.
틀에 맞지 않는 철문을 억지로 갖다 붙였다. 문 앞에도 흙더미가 쌓였고, 자물쇠도 걸려있다.
“저기! 문이 있어요. 문은 문인데···.”
권 선생도 구석을 가리켰다.
가까이 가보니 손잡이에 사슬을 감아두었으나, 자물쇠는 잠겨있지 않았다.
안쪽에도 역시 흙바닥이었다. 다른 바닥과 달리 흙이 봉긋하게 쌓여있을 뿐.
흙더미 속에 부서진 토기 조각 하나가 삐죽 빠져나왔다.
또 다른 환영이 빠르게 지나갔다. 땅이 기억하는 과거였다.
땅을 파내던 사람들이 토기 조각을 주워들었다. 주변에 몇 개의 항아리와 그릇 파편이 보였다.
굴착기가 바쁘게 움직였고, 계절이 바뀌었다. 눈 쌓인 한밤중에 몇몇 사람이 이곳을 들어왔다.
그들은 깨진 조각을 던져놓고 흙으로 덮어버렸다.
‘왜 잡귀가 붙었나 했더니···.’
그 사람들의 기운 때문에 붙었구나.
잡귀가 그 정도로 강해졌다면, 공사하는 동안 몇 차례 사고가 있었을 거다.
‘제대로 된 물건은 없겠지만···.’
어쨌든 수루베의 기운은 이 흙더미 속에서 나오고 있다. 다 뒤집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찾아야 한다.
조심스레 나무토막으로 흙더미를 끌어내렸다.
“뭐 하려고요? 이걸 파내려고요?”
권 선생은 삐죽 나온 토기 조각을 집어 들었다.
“삽이 있나 찾아볼까요?”
“아닙니다. 안에 든 물건이 깨질 수 있어요.”
“물건요? 뭐가 있는지 보이세요?”
그녀 역시 짧은 나무토막으로 흙을 퍼냈다.
그러다 문득 손을 멈추었다.
“설마··· 시체는 아니죠? 잡귀들도 대단하던데···.”
살인사건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곳이다. 시체를 숨기기에도 적당해 보이지만, 그 정도의 원혼이나 서늘한 기운은 없다.
“오래된 유물일 겁니다. 공사하다가 나왔을 텐데, 신고하지 않고 숨겨둔 거죠.”
“아휴, 다행이에요. 뭐가 남았을까?”
권 선생도 열심히 흙을 퍼냈다.
“어머, 여기 구슬도 있어요.”
그녀는 구슬 하나를 집어 들고 폰 불빛에 비춰보았다.
“옥은 아닌 것 같고, 유리구슬인가. 또 없나?”
권 선생은 흙을 파내며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구슬이라··· 다른 장신구가 있었더라도, 남아있을 리 없고.
나도 손으로 흙을 걷어냈다. 갑자기 손이 찌릿거렸다.
‘찾았다!’
손에 잡힌 것은 신발 모양 토기였다. 수강족 여인들이 신던 굽이 높은 신발.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바로 그 토기.
지금 보면 아이들이 찰흙으로 주물럭거린 것처럼 보이지만. 그때는 훌륭한 작품이었다.
그래서인지 모양이 온전히 남은 건 이것뿐이다.
토기를 꺼내 드니 안에서 흙이 우수수 떨어졌다. 조심스레 흙을 털어냈다.
신발에 손을 대고 술력을 불어넣자 밑바닥에 그림이 나타났다.
물길 속에 한 사람이 누워있다. 물을 다루는 수강족에게는 사람이 물이고 물이 사람이었다.
‘수루베.’
그리운 이름을 불렀다. 주술사 중에서 나와 가장 가까웠던 친구.
그림에 손바닥을 대니 하얀 아지랑이가 빨려 올라왔다.
차가운 기운이 손과 팔을 타고 가슴을 지나 왼쪽 허벅지까지 내려갔다.
수루베의 기운이 그곳에 자리 잡았다. 허벅지가 후끈거리다가 서서히 서늘해졌다.
그의 주술력이 핏줄을 타고 돌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스며들었다.
쿠콰쾅!
머릿속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수강족의 마지막 날이다.
내가 찾아갔을 때, 수루베는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가라뫼, 넌 반드시 살아남아. 끝까지 결계를 지켜.’
‘말하지 마. 숨을 아껴라.’
그는 피 묻은 손으로 내 팔을 잡았다.
‘사람들을 지켜줘. 그들의 믿음으로 우리가 힘을 가졌으니.’
‘네 걱정부터 해. 다른 사람 걱정할 때가 아니야.’
‘이 땅은 기억할 거다. 우리가 목숨 걸고 지켰던 것들···.’
그의 손이 스르르 미끄러졌다.
토기를 잡은 손이 부르르 떨렸다.
‘수루베, 네 부탁은 반드시 지킨다. 이번에는 반드시 소멸시키겠어.’
그의 환영술이 내게로 들어왔다.
이제부턴 어디서나 주술을 쓸 수 있다. 사람들은 환영에 빠져 내가 무엇을 하는지 보지 못하리라.
“쓸 만한 게 없어요.”
권 선생은 일어나 바지에 묻은 흙을 탁탁 털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죠. 문화유산을 숨겨놓은 건 범죄잖아요?”
그녀는 폰을 들고 흙더미를 내려다보았다.
“경찰에 신고해야죠.”
“경찰요?”
차라리 특수관리과에 알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들이라면 조용히 처리할 수 있을 텐데.
시계를 보았다. 지금쯤이면 반유민이 사무실에 도착했을 시각이다.
폰에서 연락처를 찾는데, 권 선생이 자기 폰을 가리켰다. 통화가 연결되었다는 손짓이다.
“예, 샤또 플렉스 공사장이요. 여기 지하에 옛날 물건이 묻혔어요. 공사하면서 나온 걸 숨겨두었대요. 빨리 조사하세요.”
권 선생은 나를 흘끗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표정이 어두웠다.
“어떻게 알았냐고요? 아, 가끔 예지몽을 꾸거든요. 꿈에서 본대로 와봤더니···.”
그녀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왜 출입 금지 지역에 들어갔냐고요? 그야 꿈에서 봤으니까···.”
그러다가 결국,
“예? 장난 전화하지 말라고요?”
툭, 연결이 끊어졌다.
“뭐니? 이거···.”
권 선생은 폰을 바라보며 콧김을 내뿜었다.
“그런다고 물러나면 큰맘이 아니죠! 정의를 실현해야죠.”
그녀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뚜뚜. 연결음이 내게까지 들렸다.
“아이쿠, 전화 받네. 오랜만이죠? 갑자기 일이 생겨서 말이죠.”
권 선생은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꿈에서 본대로 찾아왔더니 공사를 하다 만 빌딩이 있고, 지하에 흙더미가 쌓였는데, 그 안에 토기 조각이 있다. 이게 아주 옛날 물건 같다.
나는 신발모양 토기를 내려다보았다. 여기 있는 토기를 그냥 가져갈 수는 없고.
역시 반유민 과장에게 먼저 알리자.
전화를 했지만, 반유민은 통화중이다. 그렇다면 송자림.
아, 송자림 번호는 저장하지 않았다. 그때 그녀는 술잔을 들고 뛰어 나가버렸으니.
권 선생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렇다니까. 진짜 대단한 분이야. 이름? 유하준 님이라고. 응? 지금 경찰에 연락하겠다고?”
그녀는 흘러내린 가방을 끌어올리고는 폰을 흔들었다.
“경찰이 바로 올 거래요. 밖에서 기다리죠.”
올 때는 바짝 졸아있더니, 지금은 씩씩하게 앞장선다. 어쨌든 지금이 더 보기 좋군.
찾을 것도 찾고, 할 일도 끝냈으니, 어둡고 습한 곳에 더 있을 이유도 없다.
일 층으로 올라서자마자, 띠리릭 띠릭 벨이 울렸다. 반유민이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빼액 고함이 들렸다.
“지금 큰맘 선생님이랑 같이 있어요?”
“예.”
“그런 일이면 우리와 같이 갔어야죠! 뭐 하자는 거예요?”
반유민은 화를 내며 씩씩거렸다.
“이렇게 될 줄 몰랐죠.”
“기다리세요. 바로 출동한다니까. 성실하게 협조하세요. 괜히 오해받지 말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잠깐!’ 소리가 들렸다.
“쓸만한 게 나왔나요?”
“없어요. 토기 조각 정도요.”
“귀신 붙은 게 아니면 우리 소관이 아니라서.”
그제야 반유민은 전화를 끊었다.
예지력과 수루베의 기운에 이끌려 들어간 것은 맞지만, 그 일로 경찰서까지 오게 될 줄이야.
고맙게 차도 태워주고, 냉수도 한 잔씩 따라주었다. 앉으라는 곳에 앉고 기다리라기에 기다렸다.
상담석에 앉아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화가 난 듯한 굳은 얼굴로 지나다녔다.
‘아, 빨리 쉬고 싶다.’
‘집에 언제 가냐.’
사건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지만, 그들의 바람은 거의 비슷했다.
밤톨만 한 잡귀가 두 마리 떠다니지만, 딱히 해로운 놈들도 아니었다. 내 술력을 느끼자 곧장 구석으로 숨어버렸다.
“무단침입인 거 아시죠?”
젊은 경찰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터미널 사물함에 넣어두었는데요.”
“다음부터 경찰서 오실 때는 꼭 신분증 가져오세요.”
일부러 찾아왔는가.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건만. 다음에는 올 일 없을 거다.
검색하면 다 나오지 않나? 신원조회시스템도 잘 되어있을 텐데. 아, 그건 수배자용인가···.
“박물관 인턴이라고요?”
“예. 지송박물관요.”
“확인 좀 해보겠습니다.”
그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예. 지송박물관이죠? 예. 여기는 진한 동부지구대입니다. 혹시 거기 유하준 씨가 근무하나요?”
누구와 통화하는지 몰라도 굳은 인상이 조금 풀어졌다. 상대가 여자구나. 서인애 아니면 오여름.
오여름이면 큰일인데. 문 관장 귀에 들어가는 건 초읽기다.
“예. 협조 감사합니다.”
경찰은 전화를 끊고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보다는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권 선생은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곧바로 신분증을 꺼냈다.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예지몽을 꿨어요. 제가 이쪽으로는 유명하답니다. 인터넷 검색하면 금방 나와요. 미래시 인생연구소라고···.”
미래시 인생연구소?
하월을 은장도에 옮겨주고, 송자림의 장갑에 부적을 넣어주었다는 그?
‘그래, 공사장의 부적···.’
공사장 기둥에 붙인 부적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 정도 실력자가 많을 리 없지.
그녀의 부적술로는 귀를 막을 정도밖에 안 되지만, 송자림의 항마력이 더해지면 귀를 빨아들인다.
하월을 은장도로 옮겨준 것을 보면 귀력과도 시너지 효과를 낸다. 다른 힘과 만나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술력이라···.
“미래시요? 하월도 알겠군요?”
“오, 하월을 아세요?”
“송자림씨의 수호귀죠.”
“어머나, 그럼 아까 반 주임이랑 통화하신 거예요?”
“지금은 반 과장입니다. 과장 대리지만.”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세상 참 좁네요. 이렇게 연결되고.”
권 소장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인생연구소라면, 귀를 보는 직원이 많습니까?”
“제가 소장이면서 유일한 직원이랍니다. 호호.”
“두 분, 뭐 하시는 겁니까? 여기 동창회 아닙니다.”
경찰이 볼펜 끝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권 소장은 별다른 확인 없이 조사가 끝났다. 현장 발견자로서 설명도 제대로 마쳤다.
‘신분이라···.’
내가 나라는 걸 증명하려면 신분증이 있어야 하는구나.
거주지가 확실하고, 안정된 직업이 있어야 의심받지 않는다. 여기서는 그것이 필요하다.
내가 살던 곳과는 아주 다르군.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고, 마음 놓고 싸울 수도 없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 그러면서도 요괴에게는 무한한 힘을 바치지.
제대로 된 무기를 가질 수도 없는 이런 곳에서... 요괴 무리와 싸워야 한단 말인가.
어차피 시작한 싸움, 제대로 해내려면,
확실한 소속···, 그것부터 가져야겠군.
지구대에서 나오니 반유민의 문자가 와있다.
‘와서 꼭 해명하세요.’
서인애에게서도 비슷한 문자가 왔다.
‘무슨 일이에요? 큰일은 아니죠? 설명 좀···.’
다행히 서인애가 전화를 받았구나. 일단은 비밀을 지킬 테니 안심이다.
간단하게 답변을 보냈다.
뭘 해명하고, 어떻게 설명할지는 내일의 내가 알아서 할 테고. 오늘은 할 일을 다 마쳤다. 박물관 일도, 수루베의 환영술도.
“집까지 태워드릴게요. 가까이 살고 계셨네요.”
“고맙습니다. 가면서 하월의 근황도 알려드리죠.”
권 소장은 걷다 말고 멈춰 섰다.
“전 주술에 관심이 많아요. 성장하고 싶거든요. 부적술을 강화해야죠. 다른 주술도 배우고 싶고요.”
“지금도 훌륭하신데요? 솔직히 송자림 씨의 장갑 보고 놀랐습니다.”
“그건 자림이의 능력 덕분이죠. 더 강해져서 진정한 주술사가 되는 것이 꿈이랍니다.”
나는 권 소장의 하얀 머리카락을 흘끗 바라보았다.
백아도 그렇게 말하곤 했다. 하얀 꼬리를 흔들며.
‘진짜 주술사가 되고 싶어요.’
그때의 동료들은 없지만, 새 동료가 생겼다. 십이지 신장을 모시는 술사까지.
“권 소장님, 오늘 그 신장을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바로 출발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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