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의 경고(1)

유물분석실에 들어가자 서인애는 조심스레 면경을 꺼냈다.
“관장님께는 말씀 안 드렸어요.”
“고맙습니다. 도와주셔서. 그런데, 소문이라니 어떤 겁니까?”
그녀는 돋보기로 면경의 상태를 확인했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이 외국에서도 인기거든요. 한류 열풍으로 수집가들도 많아지고···.”
서인애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헌터나 스카우터도 들어온다는 소문이에요.”
“그건 뭡니까?”
“세계를 다니며 보물을 수집하는 사람들이요. 트래저 헌터라고. 정당하게 구매할 때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죠. 킬러급이라는 소문도 있고.”
“보물 사냥꾼이라···.”
“아직은 소문이지만, 위험한 곳에는 가지 말아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요? 도난 사건도 끊이지 않고요.”
서인애는 안타까워하며 혀를 찼다.
도난 사건이라면, 나도 곧 관여할 텐데. 인턴이 끝나면 바로.
사건을 조사하다 보면 요괴 무리와의 접점도 만날 테지. 놈들이 좋아할 만한 사람들이니.
유물 헌터?
도난 사건의 범인과 비슷한 결을 가졌을까. 그렇다면 그들 역시 내게 도움을 줄 수 있겠군.
“알겠습니다. 명심하죠. 아, 그런데 계획서는 잘 쓰셨습니까?”
“쓰기야 잘 썼죠.”
서인애는 가방을 접어 들고 유물분석실 문을 열었다.
“우리 순서는 오지 않을 거예요. 신화에서 손을 쓴다니까.”
“신화박물관 말씀이세요?”
“예. 거기선 해외 홍보에 아주 적극적이거든요. 미국이나 유럽 쪽으로 전시도 자주 나가고. 협약 맺은 외국 박물관도 많고요.”
“이번 주제가 ‘우리 문화, 세계로 미래로’ 였죠?”
“그러니까 우리가 밀리죠. 참, 관장님께는 말하지 마세요. 실무자들끼리 하는 얘기니까.”
서인애는 별관 문을 잠그고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
“관장님이 아시면 뒤통수 잡고 쓰러지실 거예요.”
신화의 허 관장이 프로젝트를 가져간다면··· 그래, 문 관장은 뒤통수만이 아니라 가슴까지 부여잡고 쓰러질 것이다.
“거기는 재단에서 지원 많이 하니까 비교가 안 되는데, 왜 그러시는지···. 거기 이사장님이 문화유산에 엄청 관심 많거든요.”
“그래서 관장님도 후원사를 얻고 싶어 하시는군요.”
“아무리 그래도 심 이사장님 같은 분 찾기는 어렵죠. 진짜 굉장한 분이거든요.”
서인애는 전시관 문 앞까지 와서 멈춰 섰다.
“유 선생, 관장님이 오늘은 열한 시에 나오실 거예요. 오시면 바로 부를 테니, 꼭 들어주면 좋겠어요.”
“제가 할 일이 있습니까?”
“전에 얘기한 거요. 관장님도 저랑 같은 생각이더라고요. 면경 보고나니까, 더 확실해졌어요. 유 선생은 우리한테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나도 소속이 필요하긴 하다.
예전 내가 살던 곳과는 많이 달라졌다. 귀를 보지 못하는 건 같은데, 주술사를 전혀 믿지 않는다. 존재조차 모른다.
요괴 무리를 찾아서 완전히 소멸시킬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제대로 힘을 키우면서, 놈들을 추적하려면 확실한 신분을 가져야지.
열한 시라··· 생각할 여유가 좀 있겠군.
문 관장은 출근하자마자 나를 불렀다. 서인애의 말 대로 그는 계약서 초안부터 내밀었다.
“유 인턴, 아니 이제 유 선생이지. 우리와 함께 일하는 거, 어떤가?”
나는 계약서를 천천히 읽어보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뿐이지만, 급하게 처리할 일이 아니라는 건 안다.
“연구원이라고요?”
“서 실장이 그러더군. 다른 일 때문에 매일 출근할 수 없다고.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이면 되겠지? 행사 있을 때는 매일 나오고.”
“박물관에 행사가 없을 때도 있나요?”
“어허허, 왜 이러나. 바쁘면 좋은 거야.”
문 관장이 손가락으로 탁자 유리를 문질렀다.
“서 실장은 자네 능력이 부러운가 보이. 허허, 나도 그렇지만···.”
계약서에 따르면 내 업무는 소장품을 구해오는 일이다. 필요할 때는 계획서와 보고서도 쓰고, 여러 행사도 돕는다.
‘그 외 박물관에서 규정하는 일.’
이 말에 거의 모든 일이 들어간다는 것 정도는 안다.
소장품을 구해오는 일이라···.
서인애가 경고하던 보물 사냥꾼과 비슷하군.
동료 주술사들이 남긴 그림도 지금은 유물이 되었다.
굽다리 접시에 담긴 간미후의 술력이나 수루베가 남긴 신발 모양 토기처럼 다른 것들도 몇천 년을 견뎠을 것이다.
그것을 찾으려면 유물을 쫓아야 하니, 도움이 되겠어. 지송박물관 소속이라면 어디서나 수긍할 테니.
하루나 이틀 생각하는 척해야지.
“제안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뜨르르륵 문자가 도착했다.
미인들 팬클럽 방에 새로운 게시물이 올라왔다.
‘10월에 벚꽃?! 막장 지구의 경고.’
사진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한 그루였다. 그 옆의 나무는 반쯤 꽃봉오리가 맺혔다.
지구의 경고? 아니다. 이건 요괴의 경고이다. 꽃은 사람에게나 아름답지, 요괴에게는 그렇지 않다.
반쯤 꽃을 피우는 이 나무, 요괴가 여기 있다.
영담호 저수지는 요괴가 지나간 다음이었지만, 이건 아니다. 현재진행형이다.
나무의 위치를 확인하고 폰을 닫았다. 금계천 가로수길.
“관장님, 저 오늘 반차 써도 됩니까?”
“뭐? 반차?”
문 관장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입을 꾹 다물고 나를 노려보다가 계약서를 내려다보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써도 되지, 되고말고. 쓰라고 있는 연차인데. 그래서 계약은?”
“관장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나는 인사를 마치고 벌떡 일어났다.
“어, 그러면 명함도 만들어놓겠네. 무르면 안 돼!”
문 관장은 내 등에 대고 소리쳤다.
금계천 강변을 따라 단풍 든 벚나무가 가로수를 이루었다. 꽃이 어디 피었는지 찾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산책로 끝에 사람들이 모여 떠들어대니 한눈에 알아보았다.
평일 낮이라도 점심시간인 데다 시내에서 가깝다. 얼어붙은 저수지보다 서너 배는 많을 수밖에.
사람들은 나무 아래 모여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다른 나무는 단풍이 들어 울긋불긋한데, 한 그루만 이파리 대신 꽃이 만발했다.
“이건 도깨비짓이야. 그 도깨비.”
“이상기후가 이런 기적도 만들어내고, 쓸 만한데?”
“차원이 겹쳐진 거라니까. 차원의 경계에 닿으면 저쪽 차원의 영향을 받는다고.”
“무슨, 인간의 만행을 보고 지구가 경고하는 거야. 지구도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인 거지.”
“뭐래? 예쁘잖아? 그럼 된 거야.”
미인들 너튜브 채널에 댓글 다는 사람들만큼이나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추측과 가설은 서로 달라도 결론은 똑같았다.
“어쨌든 빨리 찍자. 언제 떨어질지 몰라.”
꽃을 보고 나무의 상태는 보지 않는다. 시간을 거스르느라 고달팠을 터인데.
나는 사람들 뒤에 서서 요괴부터 찾았다. 꽃을 활짝 피운 나무는 이미 지나간 자리이다.
그 양옆으로 막 봉오리를 맺기 시작한 나무가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검붉은 새 요괴가 숨어있다.
언뜻 보면 솔개로 보일 만한 크기의.
검은 날개 끝에 긴 손가락이 달렸고, 몸집만 한 발톱으로 가지를 붙잡고 있다. 붉고 큰 눈에, 뾰족한 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군. 사람이 꺼리는 모습인 건.
놈들은 생겨날 때부터 사람이 두려워하는 모습을 갖는다.
태어나는 순간, 가까이 있던 사람이 가장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모습으로.
마치 알에서 깨어난 오리가 처음 본 대상에게 각인되듯이.
저 정도 작은 요괴가 다닌다면, 사람을 위협할 정도의 요괴는 아직 멀었어. 그걸 알아낸 것만도 다행인가.
나뭇가지에 숨어 귀력을 펼치느라 끼득거리는데, 그것이 사람에게는 새소리로 들린다.
“어머, 새가 노래하고 있어.”
“꽃이 피니 새도 날아왔나 봐. 꽃에 딱 어울리는 소리잖아?”
꽃이든 새든 여기까지다.
수루베가 남겨진 환영술이 있지 않은가. 그것으로 사람의 눈을 속이고, 내 영력으로 요괴를 처리한다.
내게 들어온 환영술을 불렀다.
수루베의 기운이 담긴 왼쪽 허벅지부터 뜨거운 기운이 번져 나왔다. 가슴을 지나 팔을 거쳐 양 손끝까지 내달았다.
양팔을 벌려 땅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내 숨과 손길을 따라 투명한 결계가 땅 위로 올라섰다.
산책로 끝에서 끝까지, 사람의 눈길이 닿는 곳 전부를 보이지 않는 결계로 감쌌다.
사람들 사이를 뚫고 산책길 둔덕 아래 풀밭까지 뛰어 내려갔다.
환영술은 봉인의 결계가 아니다. 사람이 보고 있는 것을 계속 보여줄 뿐, 날아가는 돌멩이는 막지 못 한다.
저들이 다치지 않도록 요괴를 유인해야 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사진을 찍느라 바빴고, 웃고 떠들었다.
그들 사이로 언제 왔는지 송자림도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붙어있던 새 요괴가 후두둑 날아올랐다. 결계를 알아차렸다.
‘꿰이익, 결계!’
‘술력이다!’
붉은 눈알을 번득거리며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어느 놈이냐?’
‘놈의 술력도 빼앗는다.’
‘덫인 줄도 모르고. 멍청한 놈.’
놈들이 나를 알아차리기 전에 싸울 준비를 해야지.
나는 적당한 나뭇가지를 주워들었다. 꽃송이가 매달린 벚나무 가지. 조금 전에 꺾인 것이라 아직 살아있다.
손에 쥐자 가지가 파르르 떨었다. 요괴 때문에 괴로운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계절을 거슬러 억지로 꽃을 피우게 하는 것도 고문이다.
‘너희의 괴로움도 곧 끝내주마.’
나는 주술의 힘을 나무 막대로 내려보냈다. 푸른빛이 양손과 막대를 감싸고 이글거렸다.
저수지에서보다는 술력이 성장했다. 수루베의 주술력 덕분인가.
작은 요괴 네 마리 정도는 처리할 수 있겠어.
새 요괴가 술력을 느끼고 나를 향해 돌아섰다.
‘저놈이군. 겁대가리 없는 놈.’
‘멍청이! 이건 덫인데!’
날개를 펄럭이자 뾰족한 깃털이 화살처럼 쏟아졌다. 요괴의 몸을 떠나는 순간, 깃털 화살은 두 배로 커졌다.
“어딜!”
막대를 휘둘러 크게 포물선을 그었다. 이글거리는 푸른 빛이 일제히 깃털 화살을 향해 날아갔다.
빛의 장벽에 부딪쳐 깃털은 화르락 검붉은 불꽃으로 사라졌다. 빛은 화살만 삼키고 허공으로 사그라졌다.
요괴의 정수를 노려야 한다. 아무리 기괴한 모습이라도 그 몸속 어딘가 정수가 있다.
눈앞에 떠있는 놈을 노려보았다. 껍질과 털이 두꺼워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쉬이익!
양쪽에서 깃털 화살이 날아왔다.
날아오는 깃털을 향해 막대를 휘둘렀다. 막대 끝에서 푸른 바람이 일어나며 가지 끝에 매달린 꽃잎이 떨어져 나갔다.
몸속의 정기를 끌어모았다. 몸이 푸른빛에 싸여 차갑게 이글거렸다.
날아오던 깃털 화살이 푸른 장벽에 녹아내렸다.
새 요괴가 공격을 멈추고 하늘에 떠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건 널 찾을 덫이야.’
‘술력은 있으나 어리석은 놈이군.’
“대요괴는 어디 있나!”
‘크크, 네 술력으론 어림없어!’
‘우리는 기다렸다. 술사들이 사라지기를. 과연, 사람이 우릴 찾아냈지. 캬캬, 이제 대왕님도 깨어나실 거다.’
‘대왕님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걸 못 보겠구나. 넌 곧 죽을 테니. 키키.’
‘사람은 차고 넘쳐. 서두르지 않아도 우리를 떠받을 거다.’
새 요괴가 날개를 퍼덕이다가 활짝 펼쳤다. 이번에도 깃털을 쏘려고?
나는 강물로 손을 뻗었다.
“강물이여! 그물이 되어라!”
금계천 물이 가느다란 물기둥으로 치솟았다. 여전히 가늘지만, 그물로 엮기는 충분하다.
물줄기가 솟아오르며 그물처럼 서로 이어졌다.
내 손짓을 따라 물 그물은 새 요괴를 향해 날아갔다.
철썩!
깃털 화살을 뽑아내려던 날개가 물에 흠뻑 젖었다. 삐져나온 화살이 물에 젖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잔꾀를 부리느냐.’
가장 큰 놈이 몸을 부르르 털었다.
뾰족한 코를 날카로운 부리로 바꾸더니 날개를 바짝 접었다. 크고 날카로운 창이 되어 달려들었다.
놈을 바라보는 내 눈에 힘이 들어갔다.
‘무리수를 뒀군. 내 앞에서 모습을 바꾸다니.’
요괴는 변신하는 동안 귀력이 흩어진다. 놈은 머리 뒤쪽, 목과 어깨 사이에 정수가 들었다.
‘저놈부터 처리한다!’
나는 막대를 치켜 올렸다.
날아오는 검붉은 덩어리를 향해 뛰어올랐다. 막대 끝을 놈의 정수에 정확히 찔러넣었다.
“뀌아악!”
요괴의 검붉은 덩어리가 너울처럼 흩어졌다.
‘이잇, 진짜 술사가 남았다니!’
작은놈이 젖은 날개를 펄럭거렸다.
요괴 하나가 사라지자 벚나무가 후르륵 가지를 흔들었다. 내게 말을 걸고 있다.
“복수하고 싶다고? 도와주마.”
몸 안의 정기를 모아 벚나무로 날려 보냈다. 푸른빛이 부챗살처럼 퍼져나가며 나무를 감쌌다.
휘이이잉.
벚나무는 가지를 흔들며 꽃잎을 떨어뜨렸다.
주술을 삼킨 꽃잎은 작은 표창이 되어 남은 요괴를 향해 한꺼번에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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