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의 비밀(2)

황재욱 상무이사의 저택은 예상대로 크고 화려했다.
그의 지위에 걸맞기는 하나, 내 관심은 크기나 가격이 아니다.
땅과 집에 머무는 기운이 어떤가, 그것이 중요하다.
내 한 몸 먹고 자고 사는데 과연 넓은 집이 필요할까? 청소하고 관리하느라 오히려 피곤하다. 그 시간에 수련하는 게 훨씬 낫지.
관리인이 하면 된다지만, 그 관리인을 관리해야 하지 않는가. 거기 마음 쓸 시간 있으면 앉아서 명상하겠다.
황 상무의 저택은 그만하면 기운도 좋고, 정원도 잘 꾸며져 나쁘지 않았다.
밖에서 볼 때 그랬다는 말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가슴이 턱 막혔다. 이 집 주인은 숨기는 것이 많다. 정계와 재계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그런 사람은 독심술로도 읽을 수 없다. 말하려 하지 않으니, 속을 알 수 없다.
문 관장은 단순해서 독심술이 아니라도 다 보이는데.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마자 문 관장은 숨을 몰아쉬었다.
바짝 굳은 표정에 낯빛도 상기되었다. 황 상무와의 만남을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속이 들여다보이면 협상에서 불리한데···.
그는 저택을 바라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번에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하하, 드디어 우리도 스폰서가 생기는가!”
“관장님, 저희가 유리하려면 무덤덤한 게 좋지 않나요? 드라마에서 보면 그렇던데요.”
“음. 당연하지. 지금 나 정도면 위엄있지 않나?”
문 관장은 자켓 깃을 잡아당기며 허리를 폈다. 웃지 않으려 애쓰지만, 광대뼈는 여전히 올라가 있다.
“유 선생. 잘 할 수 있지?”
“예. 뭘요?”
“뭐든.”
“열심히 해야죠.”
“자네만 믿겠네. 우리 지송의 미래가 자네 손에 달려있거든.”
협박에 가까운 말을 하면서도, 문 관장은 계속 싱글벙글하였다.
황 상무가 응접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앉으시지요.”
그는 친절하게 소파를 가리켰지만, 나는 그의 기운을 읽느라 잠시 멈춰 섰다.
독심술을 써도 달리 읽히는 것이 없었다. 내게 보이는 건, 단지 자신도 박물관 하나 갖고 싶다는 마음 정도?
‘역시··· 숨기는 게 많구나.’
우리를 초대했으니 어떤 기대나 목적이 보여야 하는데.
박물관을 새로 세우기에는 자본이 많이 드니까, 기존 박물관을 인수하려는 건 이해하겠는데,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
그 많은 문화사업에서 왜 하필 박물관인지. 그중에서도 왜 하필 지송인지.
내가 그를 관찰하는 것처럼 황 상무도 찻잔을 들 때마다 나를 흘끗거렸다.
오늘은 문 관장을 따라 손님으로 왔으니 얌전히 앉아있다 가면 되겠지.
의례적인 인사가 오가고 차도 다 마시자 황 상무가 손을 들어 누군가를 불렀다.
비서인지 관리인인지 정장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다가왔다.
황 상무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약속된 신호였다.
황 상무가 눈웃음치며 관리인을 가리켰다.
“문 관장님, 수장고에 가보시겠습니까? 별채 하나를 수장고로 쓰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영광입니다.”
“어떤 것이 지송의 소장품이 될지 모르니 잘 보십시오.”
“오오, 훌륭합니다.”
문 관장은 내게 일어나라고 손짓했다.
황 상무가 손을 뻗었다.
“아, 유 선생과는 따로 할 이야기가 있는데, 혼자 돌아보셔도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물건 보는 눈은 아무래도 제가 낫지요.”
“느긋하게 돌아보셔도 됩니다. 저도 오늘은 스케줄을 비웠거든요.”
“예. 그럼 천천히.”
문 관장은 일어서며 내게 당부했다.
“유 선생, 잘 도와드리게. 자네는 우리 박물관을 대표하는 얼굴이야. 알겠지?”
“예. 관장님.”
문 관장은 관리인을 따라 나갔다. 얼마나 황홀해하는지 눈에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문 관장이 나가고도 황 상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집안에 사람이 없어 바람 소리만 우웅거렸다.
“유 선생, 자네를 찾은 이유가 궁금하지 않나?”
“예. 궁금합니다.”
“진솔 골동품 사장과 허 관장이 자네 얘기를 무척 많이 하더군. 그때는 그저 호기심이었네만. 내 지인이 자네한테 메일을 받았다더라고.”
“메일이요?”
“박물관에서 귀흔도 찾고, 잡귀의 소란을 해결해준다고.”
“아···.”
유물을 도난당한 사람들에게 보낸 메일이다. ‘해결해준다’가 아니라 ‘원인을 찾아준다’였는데.
내가 보낸 메일에 답장은 반도 오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호의적인 메일은 세 개뿐이었다.
“혹시 그분이 제게 답장을 보냈습니까?”
“아니. 요즘도 이런 장난을 치는 사람이 있나하고 넘겼다더군.”
“그렇군요.”
“하지만, 난 의뢰할 게 있네.”
황 상무가 깍지 낀 손을 무릎 위에 얹고 상체를 숙였다.
“제대로 해준다면 보수는 아쉽지 않게 챙겨주겠네. 지송박물관도 후원하고.”
아, 이게 문 관장이 말하던 그 일이구나.
“무슨 일입니까?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도와드리겠습니다.”
“가보겠나?”
황 상무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는 나가려다말고 돌아보았다.
“알겠지만, 이 일은 비밀이네. 누구도 알아서는 안 돼.”
“물론입니다.”
당연히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믿지 않는 말을 떠들 이유도 없고.
황 상무는 복도를 따라 들어갔다.
“나도 우리 문화유산에 애정이 많네. 관심도 많고.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지주가 아닌가. 그래서 박물관을 후원하기로 결심한 거지.”
“관장님께 들었습니다. 문화사업부를 만드신다고요.”
“간부들은 돈 안 되는 일을 왜 하느냐고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해야 하는 일이지.”
그런 말을 하면서도 그의 마음에서 딱히 대단한 포부와 애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마른 모래사막 위를 걷는 기분이랄까.
왜? 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지만, 일단 믿기로 했다.
그룹의 재산을 털어 문화사업부를 만든다니, 쉽지 않은 결정일 테니까. 여간해서 수익이 나지 않는다.
그걸 이용해서 다른 사업으로 연결하지 않는다면···.
황 상무가 복도 끝방 문을 열었다.
음침하고 까탈스러운 기운이 확 밀려 나왔다.
방은 아주 작았다. 이 저택의 다른 방에 비하면 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맞은편에는 오로지 여덟 폭짜리 병풍 하나만 있었다.
앞면은 전통 자수로 수놓은 그림이었다. 여덟 장 모두 한 땀 한 땀 수를 놓았다. 놀랍도록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민화를 옮겨놓은 것으로 토끼, 개, 고양이, 학 같은 짐승과 꽃과 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뒷면은 서예 작품으로 한시가 적혔는데, 제사나 장례식이 있을 때 병풍을 돌려 사용한다.
서예를 쓴 이도 명필이라 글자마다 힘이 넘쳤다.
유하준은 한자는 깊게 공부하지 않았는지, 모르는 글자가 많았다.
대충 사람의 삶과 죽음을 구름이나 꽃, 물과 같은 자연현상에 빗댄 내용 같았다.
감상은 이쯤하고, 이 병풍에는 큰 문제가 있다.
귀의 기운이 너무 강했다. 온갖 사념이 다 모인 듯 어지러이 섞였고, 각기 결도 달랐다.
자수 솜씨가 아주 뛰어난 것도 한몫한다. 장인의 넋도 배어있고, 눈물과 피가 묻으면서 정기도 실렸다.
그 위에 요괴까지 한 마리 머물렀으니···.
“뭔가 알겠는가?”
“이거··· 상무님에게는 어떤 신호를 보냅니까?”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갑자기 방에서 소리가 들렸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싸우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퇴마사를 부르시죠.”
“불렀지. 그런데 이걸 태우라는 거야. 여기 서린 한이 깊다나.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꽃 자수 위에 손을 얹었다.
“태우기에는 아깝네요.”
“그래서 자네를 불렀네. 정말 실력자라면 지송박물관뿐 아니라 자네도 후원할 생각이네.”
황 상무는 자신만만한 말투였다. 내가 좋아할 거라 생각했나.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솔깃하겠지만, 글쎄···.
여기에는 요괴도 산다.
오래 전, 내가 봉인했던 그 요괴 무리는 아니다. 불과 몇십 년 전에 생겨나 지금껏 힘을 키운 놈이다.
아직은 귀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지만, 적어도 다른 잡귀를 잡아먹거나 붙잡아둘 정도의 힘이 있다.
싸우는 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요괴가 여기 있다는 건 그를 키울 먹이가 있다는 뜻이다. 요괴가 필요한 먹이, 사람의 탐욕과 분노, 원한.
그것을 만들어준 사람이···
흘끗 황 상무를 바라보았다.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사람이다. 가까이하면 안 되겠어.
문 관장에게도 알려주고 싶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까. 아무래도 관장을 설득하기는 힘들 것 같군.
“말씀하신 대로 귀가 많이 섞여 힘들겠군요. 혼자 조용히 살펴볼 수 있을까요?”
“좋을대로. 허나 병풍이 다치면 안 되네. 그것만은 부탁하네.”
“예.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황 상무는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돌아섰다.
문이 닫히자마자 병풍 주위를 한 바퀴 더 돌았다. 요괴가 확실하다.
잡귀는 다 삼켜진 것 같고···.
요괴를 소멸하고, 다른 정념과 혼은 풀어줘야 한다. 요괴가 만든 올가미만 풀어주면 정념과 혼은 알아서 떠날 거고.
먼저 놈을 끌어내야 한다. 잡귀라면 내 술력에 이끌려 나오겠지만, 이 요괴는 병풍 속에 가만히 숨어있다.
병풍을 부술 수는 없고.
여긴 너무 좁아서 제대로 싸우기도 힘들다. 이걸 마당으로 옮겨놓고 환영술을 쓰는 방법도 있지만···.
이런 때 필요한 것이 유인 부적이지.
부적을 그릴 것까지는 없고, 미끼만 있으면 되는데?
기품있고 기운 좋은 물건에 요괴가 끌릴까? 전혀 아니다.
혹시 수장고에 괜찮은 물건이 있을까? 거기는 귀하고 질 좋은 작품들일 테니 그것도 아니고.
뭔가 요괴가 좋아하고, 먹이가 될만한···.
‘귀력을 빨아들인 막대!’
이런! 벚나무 막대는 사무실 책상에 두고 왔다.
업무상 초대라고만 생각했지, 이런 일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나.
문 관장의 차를 얻어타면서 나무 막대를 들고 탈 수도 없고.
그래, 귀력을 빨아들였던 거라면··· 하나 더 있다.
하월이 머물렀던 은장도.
나는 가방을 뒤져 은장도를 꺼냈다. 하월이 떠났어도 저수지에서 빨아들였던 귀력이 남아있다.
‘하월도 예지력이 있나? 덕분에 미끼도 구하고.’
손끝으로 술력을 모았다. 은장도 칼집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썼다.
‘요괴를 부른다.’
권 소장이 알려준 것은 글자와 그림을 적절히 섞어 기호이지만, 사실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요괴야, 나오너라’라고 써도 아무 상관없다.
이것을 쓸 때 영력과 신력, 소망과 믿음이 얼마나 들어가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니.
주문을 외울 때도 마찬가지이다.
정해진 주문, 그 자체에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술사가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방편이다.
머릿속에 선연하게 그릴 수 있고, 술력을 집중할 수만 있다면 주문의 단어는 달라도 상관없다.
정신을 집중하니, 글자에 푸른빛이 서렸다가 서서히 스며들었다.
병풍 앞에 은장도를 내려놓았다.
잠시 후, 요괴가 병풍 안에서 깨어났다.
‘어디냐, 좋은 냄새가 난다.’
요괴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숨을 죽이고 요괴 덩어리가 다 빠져나오기를 기다렸다. 뾰족한 귀에 작은 사람의 모습을 한 덩어리가 팔과 허리를 내밀었다.
사람을 지켜보며 힘을 키웠으니 사람의 행동을 따라 한다. 머리를 돌려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은장도에서 나오는 악귀의 기운을 발견하자 남은 덩어리까지 쑥 빠져나왔다.
놈이 은장도로 옮겨가도록 놔둘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나는 몸 안의 술력을 끌어올렸다. 팔에서 손을 타고 푸른 빛의 줄기가 만들어졌다.
빛줄기는 빠르게 요괴를 향해 날아갔다.
‘히익! 이놈!’
은장도에 끌려가던 요괴가 나를 돌아보았다. 몸은 은장도로 끌려가고 있으니 쉽게 돌아설 수 없다.
“파귀!”
푸른빛의 밧줄이 요괴를 칭칭 감았다.
‘꿰에액!’
요괴는 몸부림치면서도 은장도를 향해 내려앉았다. 부적이 제대로 만들어졌군.
“소멸!”
손을 움켜잡았다. 내 손짓에 따라 빛줄기가 요괴를 옭아매며 점점 오그라들었다.
‘이놈, 감히 나를···!’
푸쉬시.
요괴의 몸이 거품처럼 꺼지며 사그라들었다. 덩어리가 엷어지면서 그 안의 정수가 비쳐 보였다.
“가라!”
나는 재빨리 은장도를 집어 요괴의 정수를 찔렀다.
정수에 모여있던 요괴의 힘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은장도를 타고 들어와 핏줄을 따라 빠르게 몸속을 돌았다.
몸이 뜨거워졌다가 서서히 식었다.
귀력을 술력으로 바꾼다, 예전에는 생각도 못했는데···.
나조차 믿을 수 없어서 눈을 감고 내 안에 들어온 힘을 느꼈다.
혼자의 힘이 아니다. 주술사 세 명의 술력이 한데 모여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간미후, 수루베···.’
동료 주술사들의 힘이 내게 또 다른 힘을 주었다.
다른 이들의 주술을 얻게 되면 더 큰 힘이 되겠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못 이룬 사명을 위해서.
아련한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병풍에 잡혀있던 정념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여기도 치워줘.’
‘날 꺼내줘. 네게 필요한 걸 알려줄게.’
‘나가고 싶다. 나가고 싶어.’
묶여있던 정념들이 저마다 소리쳤다.
그들을 묶은 것이 사라졌으니 그냥 나오면 될 텐데? 너무 오래 묶여있어서 스스로 못 나오는가.
필요한 걸 알려주겠다니 들어나 보고.
“내게 필요한 것? 그게 뭐지?”
‘사람을 조심해. 이유 없이 친절한 사람은 네게 독이 된다.’
“그건 나도 안다. 다른 소식은?”
이번에는 다른 녀석이 웅얼거렸다.
‘이 집 주인은 악귀를 키울 만큼 욕심이 많다. 요괴도 키웠지?’
“알고 있어.”
‘아주 큰 힘이 묻혀 있다.’
이번에는 정념이 아닌 혼이 말했다. 혼이 말하자 다른 정념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흐르는 정기도 가까이 가지 않는 곳이다.’
“아주 큰 힘?”
‘신비한 기운이 감돈다더군.’
이번에도 신귀인가? 신귀라면 찾아볼 가치가 있다.
‘그거라면 나도 봤다.’
떠돌이 정념이 조그맣게 받아쳤다.
‘땅의 것이면서 또 땅의 것이 아닌 힘이다.’
“거기가 어디인가?”
‘사람이 정한 이름은 모른다. 보여줄 수는 있다.’
정념과 혼이 병풍 속에서 꾸물거렸다.
눈앞에 거대한 절벽이 보였다.
깎아지른 벼랑에 군데군데 작은 구멍이 나 있다. 작은 짐승이 머물만한 동굴도 있고, 움푹 팬 구멍도 있다.
절벽에 이끼가 잔뜩 끼어있으니 볕이 잘 들지 않는 곳이다. 절벽 아래 나무와 크기를 가늠해보니 꽤 높은 벼랑이다.
바위는 황토와 밝은 회색이 섞였고, 가로로 줄무늬가 선명하다. 가까이에는 계곡물도 흐른다.
눈앞에 보이던 환영이 스르르 사라졌다.
그래서, 거기가 대체 어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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