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계 진씨 가문(2)

으뜸유물경매, 대형 창고 같은 경매장 안에는 사연을 가진 물건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서인애의 관심을 끌만 한 것이 필요하다.
허공을 떠도는 기운 중에 기이한 것이 있었다. 지송박물관에 있는 것과 닮았다.
‘밝은 달이 흰 구름을 따라가네.’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확실하다.
수장고에서 내게 말을 걸었던 비녀와 한 쌍이다. 이거야말로 하늘이 주신 기회.
“실장님! 여기 실장님이 찾는 물건이 있는데요.”
“어디요?”
서인애가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저랑 내기하시죠. 그 물건을 찾으면 가는 길에 제가 커피 쏘겠습니다.”
“나더러 찾으라고요?”
“예. 어차피 이 안에 있으니까요.”
“뭔데요, 그게?”
“그걸 알려드리면 내기가 아니죠.”
“이 넓은 곳에서 뭔지도 모르는 것을 찾으라고요?”
“그럼, 힌트 하나 드릴까요? 박물관에 있는 것과 관련 있습니다. 그것과 한 쌍이랄까요?”
“한 쌍!”
서인애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이 안에 있단 말이죠?”
“확실합니다. 대신, 직접 찾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물건도 눈에 들어오죠. 다음 기획전에 어울리는 것이 두 개 더 있으니까요.”
“알았어요. 커피 쏘는 거예요.”
서인애가 입술을 꼭 다물고 경매장 안을 돌아보았다.
“한번 해보겠어요. 나도 하면 할 수 있다고요.”
물류창고를 샅샅이 뒤질 기세이다.
그녀가 진열대를 향해 돌아서자 진 사장이 내게 속삭였다.
“자네, 대단하네. 저 고집불통을 다룰 줄도 알고.”
“조금 배운 겁니다.”
“빨리 가보세. 저쪽이야.”
진 사장은 빠른 걸음으로 정원을 가로질렀다.
정원 건너편의 작고 아담한 건물, 유물실에서 나오는 기운은 어지럽고 소란스러웠다.
진경수 사장은 유물실로 걸어가는 내내 한숨을 쉬었다.
주차장으로 차가 들어갈 때마다 흘끗 돌아보았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허, 내가 저주를 받았다나. 가문의 보물을 잃어버려서 조상님들이 노하셨다고 어찌나 떠들어대는지. 그걸 찾을 때까지 낫지 않을 거라 악담을 하더구먼.”
“고생이 많으시군요.”
“퇴마사도 부르고, 탐정도 고용했는데. 돈만 날렸지.”
그 후로 그가 한 말은 도난 사건에 관한 다른 메일과 같았다.
예산이 없다, 지자체에서 관심이 없다는 것.
도둑이 들라치면 당해낼 사람이 어디 있겠냐는 말도 똑같았다.
“악몽도 그대로고, 물건은 못 찾고, 갈수록 원성만 높아지고 말이야.”
“다른 증상은 없습니까?”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악몽을 꾸고 나면 환청이 들린다네. 아내는 아무 소리도 안 난다는데···. 지금은 팔다리, 허리, 어깨, 안 아픈 곳이 없어.”
그는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어깨도 주물렀다.
그럴 수밖에. 그의 몸에 붙어 장난치는 것도 잡귀니까.
경매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보이지 않더니, 유물실로 향하는 동안 서서히 귀기를 뿜어냈다. 거기 모여있는 귀력에 반응한 것이다.
유물실 앞에 다다르자 진 사장은 구부정한 어깨를 폈다.
그가 유물실 문을 열 때 한껏 기대했지만, 적잖이 실망했다.
크기는 도심지에 있는 소형 창고인데, 보관된 유물은 많지 않았다.
그의 선조들도 대대로 중개업을 했기에 비싼 값에 판매하는 일이 우선이었으리라.
“많지는 않네. 팔기 아까운 것만 모아둔 거라서.”
그는 들어서자마자 오른쪽 선반을 가리켰다.
무릎까지 오는 받침대 위에 가짜 업경대가 놓여있었다. 높이가 90센티미터 정도 될 것이다.
업경대는 염라대왕이 쓰는 거울이다. 죽은 사람이 살아있을 때 지은 죄를 비춰준다고 했다.
가운데 동그란 나무판이 거울인 셈이다. 거울 주변으로 불꽃모양 조각을 덧대놓았다.
맨 아래 해태 한 마리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거울을 짊어지고 있다.
앞부분은 조각이 정교하고 부드러웠다. 나무에 칠한 안료가 바래고 떨어져 나간 것마저도 고풍스러웠다.
그러나 뒷면은 그냥 매끈한 나무였다. 대패로 깨끗이 다듬어놓았을 뿐이지.
“이걸 몰랐다니까!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증거라고 가져가지 않았네요? 다른 곳은 경찰에서 보관한다던데요.”
“처음에는 가져갔는데, 담당자 바뀌면서 가져왔지. 필요하면 다시 가져가겠다고. 거기 놔두면 뭐 하겠나?”
진 사장은 가짜 업경대를 제대로 돌려놓았다.
“사실, 탐정을 고용하려고 가져왔다네. 도움이 될까 해서. 쥐뿔도 없었지만.”
“바뀐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인테리어를 좀 바꿀까 했지. 칠도 새로 하고 위치도 바꾸고.”
그는 뒷짐을 지고 유물실 안을 훑어보았다.
“괜찮은 유물이 있으면 더 모으려고 말이지. 이런 게 갈수록 돈이 된다네.”
그가 업경대의 불꽃 조각에 손을 얹었다.
“이거 보고 어찌나 놀랐는지···.”
숨을 몰아쉬다가 소매를 걷어 올리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떤 놈들인지, 잡히기만 하면 그냥···.”
그가 씩씩대는 동안, 나도 유물실 안을 둘러보았다. 벽을 따라 진열장이 빙 둘러있다.
가운데 작은 테이블은 관리일지를 쓰기 위한 것인가 본데, 지금은 사건기록을 갖다 놓았다.
여기 오기 전에 조사에 필요한 자료를 미리 부탁했다. 나를 퇴마사로 소개했지만, 사건도 조사하고 있으니까.
유물이 적은 만큼 대단한 귀력은 없었다. 귀기가 여기저기 많이 흩어져있기는 해도 평범한 잡귀들이었다.
진 사장을 따라다니는 놈과 비슷한 것들. 특별히 괴이하거나 음험한 놈들이 아니었다.
윤씨 가문에서는 원혼에 잡귀들이 수없이 달라붙어 있었다. 처음부터 거기 있던 것은 아니고 원혼이 끌어들인 것이지만.
유물실 구석도 살펴보았다.
놈들이 유인 부적을 썼다면 거기 들어있던 정념은 남아야 하는데, 그만한 기운은 없었다.
업경대에 들어있는 것이 부적에 끌릴 만한 놈이 아니었나? 아니면 해로울 것이 없어서?
어쩌면 그 물건에 혼이나 정념은 없고, 물건 자체가 힘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키킥.’
‘끄르르륵.’
선반 사이에 숨어있던 잡귀들도 꾸물꾸물 기어 나왔다. 진 사장에 붙어있던 놈과 어울려 넓고 짙어졌다.
“그전에는 악몽을 안 꾸셨나요?”
“악몽은 무슨. 잠만 잘 잤지. 수입 가구가 손은 많이 가도 쏠쏠하거든. 요즘은 홍보도 인터넷으로 하니 손님도 제법 많아졌다네.”
진 사장은 껄껄 웃다가 이내 시무룩해졌다.
“호사다마라고. 이런 일이 생기다니···.”
업경대에 혼이 들었는지 어떤지는 모르나, 영험한 물건임은 확실하다. 이 시끄러운 놈들을 죄다 누르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도둑들도 알아보았나. 이 분야의 능력자답군.
표적에 따라 유인 부적을 쓸 때와 안 쓸 때를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태까지 놈들이 손댄 것은 아주 섬세하고 정교한 작품들이었다.
가짜 업경대만 봐도 그렇다. 진짜 업경대는 오랜 시간을 두고 정성껏 조각한 작품이었다.
‘진 사장의 악몽은 쉽게 해결할 수 있겠어.’
잡귀 정도는 거뜬하다.
이번에는 벚나무 막대도 가져왔지만, 막대를 꺼낼 필요도 없다. 따로 유인해야 할 정도로 힘센 놈도 아니고.
“잠깐만 눈을 감고 계십시오.”
진 사장에게 테이블 옆의 의자를 가리켰다.
나가라고 하면 그에게 달라붙은 놈들도 따라 나갈 것이다. 잠시 최면을 거는 수밖에.
“이, 이렇게 하면 되나?”
진 사장은 나무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손가락을 펴 술력을 덜어냈다. 미지근하게 공기를 데워 그의 감각을 가렸다.
약간의 최면술도 섞었으니 긴장을 덜어줄 테고, 잠깐이라도 푹 잠들 것이다. 악몽을 꾸기 전처럼.
금방 잠에 빠졌는지 숨소리가 일정해졌다. 새근거리는 콧소리도 울렸다.
이번에는 내 안의 술력을 꺼내 온몸을 감쌌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술력이 나오자 잡귀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키킥, 뭐냐?’
‘저걸 먹으면 나도 세진다.’
내 몸에 가득 찬 술력이 자석처럼 놈들을 끌어들였다. 진 사장의 몸에 붙어있는 놈들까지 끌려 나왔다.
놈들을 향해 손을 뻗자 후끈한 바람이 손에 맴돌았다.
기운이 소용돌이치면서 귀를 빨아들였다. 벌레 잡는 등불처럼 손바닥에 닿기도 전에 파팟 사라져버렸다.
선반 뒤에서 스멀스멀 기던 놈들은 더 깊이 숨어들었다.
저런 걸 놔둘 수는 없지.
나는 선반을 돌아다니며 놈들을 남김없이 끌어모았다. 숫자는 많지만, 귀력이 너무 약하다.
손끝에서 소멸하할 정도이니 꿈에서나 사람을 괴롭히지. 이래서는 내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바닥 선반 앞에 웅크리고 앉아 구석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한 놈까지 해치웠다.
귀의 기운이 사라지고 고요해졌다.
‘남은 놈은 없겠지?’
마지막 점검을 위해 맨 아래 칸부터 하나씩 둘러보았다.
한 칸 위로 고개를 들었는데, 업경대 선반 뒤편에 무언가 하얀 것이 보였다. 종이 같은데, 끄트머리만 살짝 늘어져 있다.
“사장님.”
진 사장을 불렀으나 대답이 없다. 대신 크르릉 코 고는 소리가 낮게 들렸다.
앉은 채로 완전히 잠에 빠져버린 것이다.
악몽에 시달리느라 오랫동안 제대로 못 잤을 테니 이해는 하지만.
“사장님!”
“어? 어? 뭐, 엥? 여기 어디야···.”
진 사장이 머리를 흔들며 눈을 껌뻑였다.
“아함, 잘 잤다. 아주 개운하구먼.”
그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는 팔을 쭉 펴 기지개를 켰다.
“사장님, 저기 뭐가 있습니다.”
“뭐 말인가?”
진 사장은 내가 가리키는 곳으로 손을 넣었다. 선반 뒤편에서 쪽지 하나가 나왔다.
원래는 하얀색이었겠으나 지금은 누렇게 바랬고, 잉크가 날아가 안에 쓴 글씨도 희미해졌다.
“편지 같은데?”
진 사장은 내게 편지를 내밀었다.
종이를 잡자 손이 가볍게 떨렸다. 귀를 소멸시킨 다음이라 그런가?
술력을 쓰느라 정신을 집중해서인지 가슴도 찌릿거렸다.
“돋보기가 없으니까 내 눈에는 안 보이네.”
“그럼,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머물지 않고 흐른다. 어둠은 우리 자리가 아니다. 더 밝은 빛을 향해 우리의 가치를 드높인다.’
내용은 별것 없는데, 느낌이 안 좋다. 아무 의미가 없다면 구태여 편지를 남기지도 않았을 텐데.
“이게 뭡니까?”
“나도 처음 보는구먼.”
“그때는 이게 없었나요? 업경대 바뀐 거 알았을 때요.”
“어. 어. 그럴 거야.”
진 사장은 눈썹을 찡그렸다.
“그게···. 잘 기억이 안 나네. 아주 난리였거든. 공사고 뭐고 다 그만두고 지금까지 이러고 있지.”
“그럼 이게 뭔지 모르겠군요.”
“누가 쓴 건가?”
“그건 없는데요.”
편지가 중요한 열쇠 같기는 하지만, 다른 글자는 없었다.
진 사장이 편지를 다시 받았다.
“아무리 봐도 모르겠네.”
나는 유물실 가운데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 위의 경위서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사건 일시나 개요는 이미 파일을 봐서 알고 있고, 특수관리과에서 조사하지 않은 자료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과거에 거래한 몇 군데 회사도 파일에 있는 그대로였다.
“사장님, 혹시 그 당시에는 보안업체 안 쓰셨나요?”
“보안? 그때는 생각도 못 했어. 견적도 받았는데···, 잘 안됐지.”
진 사장은 들고 있던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런 일 있고 나니까 그때는 먹히더라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지만, 지금은 잘 관리하고 있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견적을 받았다고요?”
“그랬지.”
진 사장이 안타까운 듯 입맛을 다셨다.
“크응. 그때 계약했어야 하는데 말이야.”
“거기가 어디입니까?”
“아, 알파···. 뭐였는데. 알파카?”
“알파메일 경호요?”
“어, 맞아. 거기.”
진 사장이 손뼉을 딱 쳤다.
‘알파메일 경호.’
거기인가? 두 가문에서 공통으로 겹치는 부분.
‘그곳이 단서 같은데. 지금은 문을 닫았으니···.’
반유민이라면 찾아낼 거다. 모든 사건기록에 접속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의심스러운 저 종이도.
나는 편지의 앞뒤를 사진 찍고 나서 진 사장에게 넘겼다.
“사장님, 이건 경찰에 넘기세요. 단서가 될지도 모릅니다.”
“아휴, 긁어 부스럼인데. 또 얼마나 귀찮게 하려나···.”
진 사장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쉬었다.
“그래도 오늘부터는 잘 주무실 겁니다.”
“아, 말 안 해도 알겠네. 어, 그래···.”
그는 목을 이리저리 돌렸다가 어깨를 앞뒤로 흔들었다.
“조금 전에 말이지. 무지 달게 잤다네. 그렇게 단잠은 정말 오랜만이네. 허허.”
그는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어깨도 시원하고.”
제자리걸음을 몇 걸음 걷고 나서는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몸도 가벼워졌어. 머리도 맑아졌네. 어? 자네 정말 대단하구먼!”
진 사장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새 일을 끝낸 건가? 아주 잠깐이었는데.”
“또 무슨 문제 생기면 연락해주십시오. 이제 실장님한테 가볼까요?”
“아, 그래. 여기 서 실장이 와 있었지. 허허.”
진 사장은 서인애를 잊고 있었는지, 부리나케 밖으로 나갔다.
올 때와는 걸음걸이가 달라졌다. 허리도 곧고 걸음마다 힘이 느껴졌다.
한달음에 걷던 그가 경매장 정문 가까이에서 돌아섰다.
“이거 보수는 얼마나 하나? 이상한 기운이 사라진 거 말이야. 대가를 안 받으면 퇴마사가 곤란해진다면서?”
귀를 느끼는 사람들은 그것이 규칙이라고 알고 있나 보다. 그의 마음은 바람직하지만, 보수라···.
유물실 안에는 잡귀들뿐이었다. 수십 마리이긴 해도 손만 대면 사라지는 놈들이었고.
사건 조사에 쓸만한 단서를 얻었으니, 이번 보수도 박물관에 양보해야겠군.
“대가를 안 받을 수는 없지만, 정식으로 개업한 건 아니라서요. 서 실장님이 고른 물건 중에서 적당한 걸로 주시죠. 저희 박물관에도 좋고요.”
“허허, 자네 그런 식으로 해서 장사가 되겠나?”
“나중에 한 수 배우러 오겠습니다.”
“자네라면 내가 잘 가르쳐주지. 후원도 하고 말이야.”
진 사장은 뒷짐을 지고 호탕하게 웃었다.
경매장에 오니 서인애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손을 흔들었다.
“유 선생, 이거 보라고.”
테이블 위에 동곳이 놓여있었다. 푸른 옥 끝에 새까만 흑요석이 박힌 것. 지송박물관에 있는 비녀와 한 쌍 맞다.
그녀가 사려고 했던 귀불 노리개와 선추 세트도 찾아놓았다. 그것이 원래 여기 온 목적이다.
선추는 두 개 모두 은으로 만든 초혜집으로 그 안에 이쑤시개와 귀이지가 들어있다.
문양도, 모양도 똑같고, 가운데 박혀있는 보석의 색만 달랐다.
끝에 달린 매듭도 모양은 같고 색만 청색과 홍색 계열이다. 누가 봐도 연인을 위한 작품이었다.
“찾으셨군요. 실장님, 대단하십니다.”
“그렇죠?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에요. 눈이 빠지는 줄 알았지만.”
“제가 커피 사야겠는데요? 그런데, 다른 건요?”
“그건···.”
서인애는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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