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 1

모든 빛이 어둠으로밖에 어겨지지 않은 고독의 삶. 고독이란 감정이 나의 삶을 짓누르고 그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등에는 커다란 쇠창살이 관통해 피가 흘러넘치고 난 그것을 바라보며 슬피 울고 있다. 언제쯤이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만약 내게 천사의 날개가 있다면 고통스런 삶을 벗어나 자유로이 날 수 있을까?
살아있으며 죽어있는 이 순간, 나는 슬피 울고 있다.
나의 나이는 정확치 않지만 30대 어느 가운데에 있다.
그렇게 지나온 30여 년의 세월 동안 나는 항상 혼자였다. 누구도 나의 존재에 대해 알려 하지 않고 나 또한 나의 감정을 말한 적 없다. 물론 나 역시 타인이라 불리는 존재에 관심은 없지만.
앞서 말했지만, 지금의 감정 상태는 내 삶에서 최악일 뿐만 아니라 이젠 더 이상 살아갈 힘도 없다. 그런 세상에 굴복하며 무기력하기만 한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그리고 원망스러운 이번 생은 완벽히 패배하고 말았다. 지금 내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다음 생에서는 이런 실패한 삶은 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대구의 어느 구석진 곳.
어느 힘센 할머니가 산을 던졌는데 하필이면 내가 사는 곳에 떨어졌다 한다.
그렇게 붙여진 동네 이름이 비산.
하지만 그런 할머니의 무지막지한 기운과 다르게 이곳은 한없이 어둡기만 하다.
비산의 아침은 상쾌한 공기보단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내뱉는 매캐한 먼지가 나를 맞이해준다. 그리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염색공단의 매연으로 온 하늘이 뒤덮는 곳에 내가 서 있다.
실패자들의 동네
열패감에 사로잡힌 사람들
희망이라는 단어보단 절망이라는 단어가 친숙한 그들
여기 동네 사람들에게 희망이란 단어는 단지 사치일 뿐이다.
80년대 초 어느 여름.
난 찌는 듯한 대구의 열기를 뚫고 실패자들의 열패감을 끌어안으며 태어났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엄마는 무슨 생각인지 1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나의 이름을 지었다. 그렇게 지어진 이름 ‘이재영’
재물 재(財), 영화 영(榮)
가난과 실패로 얼룩진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
아마, 자식을 통해 자신의 가난을 벗어나려는 생각에 지은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엄마의 소망은 절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내가 너무 커 도저히 나오지 않자 집게로 꺼냈다 한다. 그렇게 내 삶은 시작부터 고난이었고 아직도 나를 힘들게 한다.
‘차라리 그때 세상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힘듦도 없었을 텐데.’
그렇게 난 힘들 때마다 과거를 회상하며 후회의 혼잣말을 해본다.
하지만 이런 집안 형편과 반대로 아버지는 성실한 일꾼 그 자체였다.
낮에는 열심히 일만 하고 저녁엔 술만 먹는 누구나 봤을 평범한 아버지.
아버지는 내게 어떠한 감정도 주지 않은 채 일과 술에만 몰두한 분이셨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마치 한풀이하듯 술을 마셔댔다. 그렇게 술에 취해 잠에 곯아떨어진 아버지는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여는 80년대 경상도 아버지와 같았다.
그런 아버지는 여느 비산의 아버지와 다르게 술을 먹고 폭력이나 폭언은 하지 않았지만, 항상 열패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내게 하는 말이
“너희 아버지 저거 바래이. 저래 살면 니도 저렇게 되는기다. 항상 열심히 살고 남들에게 폐 끼치지 말고 착하게 살그래이.”
하지만 나의 근본은 엄마가 기대하는 것처럼 그리 착하진 않았다. 다만 세상에 두려움을 안고 항상 착한 척하며 살았다. 어떤 때에는 착한 척 연기를 하는 내 모습이 대견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착한 척, 그걸 진심인척 살아가는 내 모습에 그저 괴롭기만 했다. 이젠 이런 거짓된 삶에 지쳐만 간다.
지쳐가는 삶 속에 세월은 흘러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다. 그렇게 간 학교지만 내 삶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집에서와같이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고 홀로 외롭게 지냈다. 그리고 학교 안 어느 누구도 내게 관심이 없었고, 나도 그들에게 속마음을 말하지 않았다.
철저히 벽 안에 갇혀있는 삶.
그때부터 난, 그 벽 안에 갇혀 있기 위해 스스로 마음의 벽돌을 하나하나씩 쌓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벽 안에 갇혀있는 난 학교 안 어느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간혹 주위 사람들이 나에게
“재영아! 집에 같이 갈래? 야 오락실 가서 오락 한판하자”
라는 말에도 침묵하며 어떤한 답도 하지 않았다.
왜냐고?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마냥 싫고 귀찮으니깐.
그런 귀찮은 기분은 왜일까? 나의 삶은 시작부터 괴로웠고 그런 내가 타인에게 무언가 대답한다는 건 사치에 불과했다.
이런 고독의 세월은 조금씩 지나, 어느 순간 내 주위에는 단 한사람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내 삶은 중학생이 되기 전, 완벽한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고독한 삶은 나에게 자유를 가져다줬지만, 항상 혼자인 난 한없이 고독했다.
그렇게 난 어느 누구에게 관심을 받지도, 주지도 못한 채 학교를 그저 의무적으로 다녔다. 그래서 인지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너무 지루하고 괴로웠다.
하교하고 집에 와서도 유일한 친구는 아무 대답 없는 만화 캐릭터뿐이었다. 하지만 만화 속 캐릭터는 자랑하듯 내게 말만 쏟아낼 뿐, 나의 마음은 채워주지 못했다.
그렇게 침묵만 흐르는 감옥 같은 벽 안에서 자유를 얻었지만, 입가엔 고독이라는 불평만 말한다. 그런 내가 돈이라도 많았다면 어디든 훌쩍 떠나,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와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주위에 들리는 건 화력발전소의 굉음과 패배자의 욕설뿐.
지금 난, 내가 힘들어서 사람들이 힘든 건지 아니면 세상이 힘들어 내가 힘든 건지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지금의 고통은 영원히 나와 함께한다는 것뿐.
난 그런 고통을 끌어안으며 차가운 벽에 기대 얕은 숨을 쉬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나의 아버지 이야기를 해야겠다.
전에 말했듯이 아버지는 일과 술밖에 모르는 분이셨다. 하지만 아버지의 삶은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자유롭지만 고독한 삶.
아버지도 나와 같이 차가운 벽에 스스로를 밀어 넣는 고독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분의 삶에 대해 어떤 비난이나 조롱은 하고 싶지 않다. 그땐 몰랐지만, 대구에서 가장 후진 동네에 사는 내겐, 그런대로 괜찮은 아버지으니깐.
하지만 어렸을 적 나는 그런 고독한 아버지에게 칭얼거렸던 적도 있었는데
“아빠 심심한데 같이 놀아주면 안돼?”
“장난감 로봇 사주면 안돼?”
라고 하며 다른 사람들처럼 말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게 한마디 말도 없이 다시 벽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 아버지는 참 외로운 남자였다.
그런데 간혹 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기도 했었는데
“심부름 값 500원 줄 테니까, 슈퍼 가가 소주 한 병 사온나.”
“시장가가 술안주 좀 사온나.”와 같이
항상 술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 그때 난 아버지에게 심부름 값을 받아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의 아버지를 생각하니 지금은 그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그런데 집에서 항상 술만 마시고 잠만 자던 아버지가,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집에 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아버지가 집에 없으니 왠지 집안 전체가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하지만 그가 머물던 공간도 나의 공간이 되고, 그렇게 넓어진 공간에서 난 무한한 자유를 누렸다. 그렇게 아버지에 대한 걱정보단 내게 주어진 자유가 더 크게 다가왔다.
그런데 아직 나와 한 공간에 있는 엄마는 아버지가 사라진 것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말이 없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어디로 갔는지, 왜 집에 오지 않는지에 대해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와 내가 딱히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집에 먹고 마실 건 떨어지지 않았다. 간혹 그런 현실적 의문이 내 입에 맴돌긴 했지만, 지금의 삶에선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내게 중요한건 오직 자유. 자유만이 지금의 삶을 살아가게 하고 있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엄마에게 아버지가 왜 집에 오지 않는지 일절 물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으려는 생각이나 시도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간혹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앞으로 먹을 밥과 반찬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현실적 고민 속에서도 아버지가 없는 자유로운 삶 때문인지 시간은 정말 빨리 갔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난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아버지는 여전히 집에 오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지가 없는 내 삶에서 그에 대한 생각은 그저 무가치하기만 했다. 나의 삶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아버지는 내게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내 곁을 떠났다. 그리고 나를 떠나간 아버지에게 ‘어디에 있을까? 밥은 먹고 다닐까? 잠은 편히 잘까?’ 하는 생각은 높아진 마음의 벽을 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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