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과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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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나는산
작품등록일 :
2024.06.11 10:44
최근연재일 :
2024.06.24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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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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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무죄

DUMMY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그 흔한 TV나 컴퓨터도 없는 세상과 완벽히 차단된 곳이다. 그리고 살인이라는 단어도 고등학교 때 아버지를 통해 듣게 되었지 그전엔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살인! 나에게 있어 그 단어는 지금까지 내 삶과 너무 멀리 있는 단어였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살인이라는 단어는 죽어있던 내 삶을 움직이게 하는 최음제와 같다. 그렇게 살인이라는 단어가 내 삶 깊숙이 들어오고 나서 단 한 번도 바닥에 누워있지 않았다. 그리고 방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어떻게 죽이지, 얼마나 죽이지, 누구를 죽여야 하지?”라고 계속 혼잣말했다.

그렇게 혼잣말하다, 간혹 망치로 벽을 쳐보기도 하고 도끼로 문짝을 찍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행위는 ‘내가 정말 사람이 죽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만 들게 했다. 그러나 그런 불안 달리 칼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느꼈다.


살인이라는 단어가 내 삶을 지배한 1주일.

난 그런 불안을 끌어안으며 드디어 고통스러운 1주일이 지났다.

검은 사제복을 입은 놈이 말하길 살인 후 어떤 법적 처벌도 없다 했다. 그리고 몇 명을 죽이든 대상이 남자든 여자든 아무런 상관없다 했다. 그러나 난 누구를 죽일지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삶에서 ‘누구’라는 단어는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고민되는 건 사람을 죽일 시간과 장소뿐.

낮에 죽여야 할지 밤에 죽여야 할지, 안에서 죽일지 밖에서 죽일지와 같은 선택적 고민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단단한 고독의 벽을 깨뜨리는 삶의 고민.

이런 고민 속, 앞으로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의 고민이 내 삶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고민하며 다음날 있을 타인의 죽음이 내 삶의 빛이 되었으면 하고 빌어본다.


시간은 조금씩 흘러 드디어, 나는 행동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게 죽어갈 사람들이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댈 절망을 생각해 봤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타인의 절망을 통해 비어있는 내 마음을 채울 수 있을까? 라는 이중적 고민은 들었지만 이제 나에겐 선택지는 없다. 오늘부터 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살인마가 될 것이다.

그런 다짐을 하며 든 생각이 내가 세상에 나가 누군가를 죽일 힘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과 세상 사람이 내뿜는 소음이 두렵고 무섭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게 용기를 달라고 믿지도 않는 신에게 빌어도 봤지만 역시나 응답은 없었다.

지금의 최선은 어떻게든 사람을 안으로 유인해야 한다. 그런데 이제까지 난 사람을 집으로 불러들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고민과 달리 살인을 위한 도구는 완벽하게 갖추었다. 살인 후 은폐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왠지 그놈이 말한 게 모두 사실인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다만 지금 내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나를 위해 죽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난 이 문제를 단순하게 접근하기로 했다. 지금 내 체력으론 건장한 남자를 죽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다 죽어가는 노인네를 죽이는 건 너무 허무할 것 같았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죽을 존재였으니 죽일 가치가 없다고도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막연히 전화번호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10년도 더 된 낡은 전화번호부를 뒤지다 순간 철물점 옆에 있던 선화다방이 머리를 스쳤다. 그렇게 생각난 선화다방에서 커피를 시켜 여자를 유인하면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보다 약하고 아무도 관심 없는 사회의 패배자의 죽음을.

그런 생각이 들자 내 마음은 급해지기 시작했고 급하게 수화기를 들어 번호를 찍어 눌렸다. 난 번호를 누르는 짧은 순간에서 이때까지 느껴보지 못한 긴장감이 들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순간, 수화음은 잔잔히 흐르고 이런 상황을 모를 마담이 전화를 받는다.

“안녕하세요? 손님 뭐 주문하시겠어요?”

‘무엇을 시켜야 하나?’ 전혀 생각지 않은 말이다.

마담의 말에 당황한 난 “그냥 아무 커피나 주세요.”

라고 심하게 버벅이며 말했다. 그러자 마담은

“혹시 찾는 아가씨 있나요?”라고 묻자 ‘하! 누구를 불러야 하지?’ 하며 고민했다. 그런 고민을 하다 그게 누구든 지금 나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만 내 옆에 있으면 된다 생각했다. 난 다시 마담에게

“이쁘든 못생기든 상관없으니깐, 지금 제일 빨리 올 수 있는 아가씨 보내줘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마담은 귀찮은 듯

“그럼 정양 보낼 테니까 빨리 주소 불러 주세요.”라고 말했고

난 집 주소를 대략 불러 주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전화를 마친 나는 곧 있을 살인을 상상조차 하지 못할 마담을 생각하며 미친듯이 웃었다.

그리고 곧 나에게 죽을 정양이라는 년이 오기까지의 짧은 시간.

난생처음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을 초조하게 했다. 그 때문인지 내 몸은 땀으로 흥건했고 호흡도 거칠어졌다.

그리고 10분 후. 초인종은 굉음을 내며 울렸고 난 그 소리에 놀라 허겁지겁 문을 열었다. 곧 시체가 될 그녀.

난 정양을 바라보며 불쌍하다는 생각보다 앞으로 있을 그녀의 절망의 신음을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를 정양은 마당을 지나 안으로 들어왔고 내 앞에서 커피를 타고 있다. 난 커피를 타고 있는 정양의 얼굴을 살펴봤다. 내 앞에 있는 정양은 말 그대로 추녀였다. 얼굴엔 여드름과 기미투성이였고, 눈 코 입의 경계는 모호하게 나눠져 있었다.

정말 나 같은 찐따에게나 어울리는 여자라 해야 할까?

하지만 난 정양의 커피 타는 모습을 보고선 몇 년간 잠자고 있던 페니스가 발기되어 춤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피부는 박동하는 혈관을 따라 꿈틀거렸고 난 그런 혈관의 움직임에 순간 놀랐다. 그리고 곧 일어날 살해의 순간을 상상하며 숨 쉬는 이 순간에 환희했다.

살아있음이 이런 걸까? 난 곧 죽을 정양을 바라보며 죽음이라는 단어보다 삶이라는 단어가 내 앞에 성큼 다가온 걸 느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어떻게 정양을 죽일지 생각했다.

나는 시간을 길게 끌지 않고 최대한 단순하게 살인할 것이다. 그리고 정양이 내뱉는 고통을 무한히 즐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정양이 커피를 내 앞에 놓고 일어서려 했다. 그 순간 난, 망치로 그년의 정수리를 힘껏 내리쳤다. 탁하는 소리와 함께 망치는 그년의 정수리에 박혔고 그년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툭 하고 쓰러졌다. 그렇게 쓰러진 정양의 머리에선 피와 뇌수가 흘러넘쳤고 그것들은 내 방을 붉게 채우고 있었다.


쏟아지는 뇌수와 피로 인한 시각적 자극

손을 울리는 망치의 둔탁한 타격감

정양의 날카로운 비명


이 하나하나가 내게 새로움이었고, 이때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극한의 쾌감을 가져다 주었다. 그런 쾌감은 춤추던 나의 페니스를 빳빳하게 서게 했고, 가빠진 호흡으로 인해 심하게 헐떡였다. 그렇게 난 타인의 죽음을 통해 난생처음 살아있음을 느꼈다.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자유가 이런 것인가?

지금 난, 시체와 같은 이전의 삶과 작별하며, 등에 있는 쇠창살을 하나하나씩 뽑고 있다. 그렇게 뽑혀 나간 쇠창살은 굉음을 내며 바닥에 나뒹굴었고, 난 가벼워진 몸으로 지금의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그렇게 첫 번째 살인은 나의 환희 속에 지나갔다. 그런 환희와 달리 차갑게 굳어가는 시체를 창고 한 귀퉁이에 던져두고 붉게 물든 방에 돌아왔다. 그렇게 돌아온 방안은 쇠 냄새 같은 피 냄새가 진동했고, 난 그 냄새를 맡으며 마치 환각에 취한 듯 웃기만 했다.

그런데 말초신경의 자극이 너무 커서일까?

그 순간 기절할 듯했지만, 입가에 삐져나오는 웃음은 오늘의 나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다음 날, 난 놈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러 선화다방에 갔다. 다방에 도착한 난 그 앞을 왔다갔다하며 두리번거렸으나 다방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난 묘한 마음이 들어 조심스레 다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내가 다방 안으로 들어가자 마담은 반갑게 나를 맞으며 다가왔다. 난 태연하게 다가오는 마담의 모습을 보며 무척 당황했다.

난 그 상황이 너무 어리둥절해 마담에게

“혹시 저희 집에 배달 왔던 정양, 오늘 출근했나요?”라고 묻자 마담은 퉁명스럽게

“정양? 우리 집에 그런 애도 있었나? 애들아! 어제 거기로 배달 간 얘 있니?”

라고 했으나 다들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난 침묵만 감도는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고 거기서 그들에게 무어라 말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난 묘한 침묵이 감도는 다방을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혹시, 어제 일은 꿈이었을까?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얼굴을 꼬집어보기도 하고 정양의 시체가 있는 창고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픈 얼굴과 썩어가는 정양의 시체를 보며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난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며 생각했다.

다들 한 여자의 죽음에 이렇게 무관심할 수 있을까? 분명 어제까지 같이 일했던 사람일 텐데. 난 그런 생각을 하며 나 혼자 벽 안 있는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각자의 벽 안에 갇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난 그런 깨달음에도 처음과 같은 살인을 며칠 동안 반복했다. 그렇게 하루에 한 명씩 내 게 죽어간 그녀들의 비명과 붉은 피는 나의 방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반복되는 살인에도 여전히 나의 말초신경은 자극되긴 했지만, 처음과 같진 않았다.

발기되지 않아 축 늘어진 페니스와 차분해진 맥박.

그런 그녀들의 반응은 한결같았고, 거기서 오는 자극은 반복될 뿐 전혀 새롭지 않았다.

난 ‘왜 그럴까?’하고 고민하다, 자극이란 반복에서 나오는 평범함이 아니라 전과 다른 새로움에서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난 잠깐의 고민 끝에 새로운 방법, 새로운 장소에서 살인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난, 벽으로 둘러싸인 집이 아닌 세상 밖에서 살인하기로 했다. 하지만 내게 안이 아닌 밖이라는 세상은 여전히 어색한 곳이었고 지금의 침묵을 깨뜨리는 이질적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제 밖이라는 세상은 내게 무한한 자극과 자유를 안겨주는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자유를 향해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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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회피 - 1 24.06.23 24 0 9쪽
7 결심 24.06.23 21 0 4쪽
6 고독 24.06.22 23 0 10쪽
5 자유 24.06.22 24 0 10쪽
» 무죄 24.06.21 28 0 11쪽
3 존재 24.06.21 28 0 10쪽
2 고요 - 2 24.06.20 28 0 10쪽
1 고요 - 1 24.06.20 61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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