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과 고독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나는산
작품등록일 :
2024.06.11 10:44
최근연재일 :
2024.06.24 20:44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71
추천수 :
0
글자수 :
39,717

작성
24.06.22 19:16
조회
22
추천
0
글자
10쪽

고독

DUMMY

뜻하지 않게 하루에 두 명이나 죽였다. 하지만 어제의 살인은, 내게 그 어떤 자극도 주지 못했다. 그저 나에게 무수히 쏟아지는 고독과 차가움만 가져다주었을 뿐. 그리고 그 속엔 자유는 없었다.

그리고 살인을 하고 나서 무너졌다 생각되던 나의 벽은, 내가 닿을 수 없을 만큼 높아졌고, 하늘에 떠 있는 태양마저 가려 버렸다. 하지만 나의 마음과 다르게 햇살은 세상을 밝게 비추고 사람들은 그 햇살을 맞으며 유유히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나의 끔찍한 살인은 타인에게는 놀라우리만큼 평범했다. 그 어떤 사람도 내게 묻지 않았고 살인에 대해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난 어제 죽은 사람이 궁금해 두리백화점으로 가봤다. 하지만 차가워졌을 두 시체는 온데간데없었고 사람들은 일상의 평온함을 즐기며 평소처럼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정말 사람을 죽인 게 맞나?

내가 어제 한 행동은 사람을 칼로 찌르거나 망치로 친 게 아니라, 단지 생명 없는 물건을 부숴버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내가 이제까지 한 모든 행동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게 죽은 사람들의 표정, 외마디 비명, 살을 파고드는 촉감.

분명 내가 사람을 죽인 건 맞다.

그리고 그들이 부르짖은 살려달라는 외침과 손에 묻은 붉은 피.

그건 분명 지금의 삶이 여기서 멈추지 않길 바라는 생명의 외침이었다.

또한, 머리에서 터져 나오는 뇌수와 혈관에서 뿜어지는 붉은 피, 그리고 그것들이 피부에 닿을 때 느껴지는 순간적인 온기. 분명 내가 사람들을 죽인 건 실하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타인의 죽음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미칠 것 같은 이러한 의문이 머릿속을 휘감고 있을 때, 내가 한 살인이 과연 내게 어떤 의미인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 생각 속에 난 이때까지 뭘 할 걸까? 그리고 앞으로 난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까? 라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한 가지


조건 1. 반드시 하루에 한 명씩 살인하기


그런데 난 오늘 단 한 명도 죽이지 못한 채 밤을 지새고 있다. 그리고 시계를 보니 12시가 되어가고 초침이 12시를 지나는 순간, 난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저기와 다른 새하얀 공간.

그리고 나를 깨우는 익숙한 목소리.

전과 다르게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놈이 나를 깨운다.

그리고 놈은 눈을 뜬 나를 바라보며

“재영씨 잘 주무셨습니까?”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놈을 바라봤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 놈은 다시

“제가 재영씨에게 준 자유는 타인의 생명의 대가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다시 말해 시체 위에 세워진 자유란 말이죠.”

“분명 재영씨는 자유와 생명의 교환이라는 계약을 저와 했었는데, 어제의 재영씨는 저와의 계약을 위반하셨습니다. 반대급부로 재영씨의 신체 일부를 제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뭐 하실 말이라도 있습니까?”

난 놈의 말을 듣고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주위를 살펴보니 전과 달리 수술대 위에 누워있었고, 손과 발은 가죽끈으로 단단히 결박당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 왜 있는지 몰랐고 놈 말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다 하얀 수술대 위, 큰 칼과 쇠톱이 보인다. 난 그것들을 보고 극한의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놈에게 발작하듯

“그건 네가 정한 규칙이지 내가 정한 게 아니야!”

“지금 당장 놓아주지 않으면 반드시 널 죽이고 말 거야.”

라고 외쳤으나 나의 보잘것없는 힘으론 단단히 묶여있는 결박을 풀 수 없었다.

그리고 놈은 그런 나의 외침을 외면하듯 쇠톱을 손에 거머쥐더니, 내 왼팔을 자르기 시작했다. 난 조금씩 찢어지는 팔만큼이나 극한의 고통을 느끼며 다시 한번 몸부림쳤고 하얀 수술대 위는 나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쇠톱의 높이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고통의 깊이는 깊어지고, 뼈를 긁어내는 소리가 나를 미치게 했다.

결국, 나의 팔뼈는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부러지고 난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느껴졌다.

그런 죽음의 공포 때문일까?

난 놈에게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내가 죽인 사람과 같은 말을 했다. 그렇게 제발 살려달라고 죽기 싫다고 놈에게 사정했으나 놈은 나의 절규를 무시한 채 계속해서 팔을 잘랐다. 결국, 팔은 잘려졌고 놈은 다 잘린 팔을 바닥에 ‘쿵’하며 내던졌다. 그리고 난 던져진 팔을 보며 기절했다.

아직 어둠이 깊은 새벽.

난 새벽 차가운 공기에 눈을 떴고, 주위를 살펴보니 지금 있는 곳은 내가 사는 집이었다. 그리고 새하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악몽을 꿨구나’하고 안도했다. 그런데 왼팔로 바닥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나려하니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난 오른팔로 왼팔을 만져보니 잘려나간 뭉툭한 촉감만 있을 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쇠톱으로 잘려나간 왼팔의 고통이 나의 온몸에 휘감더니

아!!! 하며 소리쳤다.

그렇게 동네가 떠나가듯 비명을 질렀으나 사람들은 밝아져 오는 해만 기다릴 뿐 아무도 나의 비명에 주목하지 않았다. 난 잘려나간 팔을 바라보며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공포를 느꼈다. 정말 이대로 가다간 지금 붙어있는 팔, 다리뿐 아니라 목마저 나아갈 것만 같은 공포감이 들었다.

그런 공포감 속에 생각나는 한 가지


조건 1. 반드시 하루에 한 명씩 살인하기


오늘 당장 나와 상관없는 타인을 죽이지 않는다면 난 어제 느낀 고통을 또다시 겪어야 한다. 순간의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살인. 여기서 나를 위한 자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지금의 살인은 내가 숨 쉬며 살아가게 할 수단밖에 되지 않는다.

살기 위한 살인이라.

그런 생각이 들자, 난 사람이 아닌 똥만 받아먹는 돼지가 된 것 같았다. 난 앞으로 있을 내게 죽어갈 타인을 생각하며 이제 자유를 위한 살인은 끝났다고 외쳤다. 그렇게 외치고 아무 말 없이 집에 있는 뭉툭한 쇠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쇠몽둥이를 바닥에 질질 끌며 밖을 이리저리 헤맸다.


그렇게 도착한 자그마한 공원.

거기서 평화로이 놀고 있는 한 가족이 보인다. 그 가족을 보니 지금의 나와 다르게 정말 따뜻해 보였다. 고독함이 아닌 따뜻한 온기가 감도는 가족.

한때는 나도 우리 가족에게 외롭다고 힘들다고 외친 적이 있었다. 그때 가족에게 따뜻함을 받았다면 지금과 같이 내가 살고자 타인을 죽이는 일에 미쳐가며 살고 있을까?

난 그런 과거의 감정을 뒤로하고,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그런데 내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환한 웃음은 더 크게 들리고 나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린다. 하지만 나는 가족의 웃음을 외면한 채 거기서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의 머리를 쇠몽둥이로 내리쳤다.

그 남자(아버지)는 순간적인 가격에 피할 틈도 없이,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 남자는 점점 강해지는 쇠몽둥이질에 서서히 숨이 끊어지고 있었다. 난 그 사람의 숨을 완전히 끊어 놓기 위해, 팔을 높게 치켜들어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 했다.

하지만 공원에 있는 사람들은 두리백화점 때와 같이 아무 말 없이 무심히 스쳐 지나고만 있었다. 심지어 가족의 엄마라는 사람조차 남편의 죽음을 외면한 채 손톱만 쳐다봤다.

그렇게 거기 있는 누구도 어느 한 가장의 죽음을 공감하는 이는 없었다. 그런데 한 사람, 단 한 사람이 그 남자 위를 감싸며 울고 있다. 난 살인을 시작하고 처음 있는 일이라 어찌할 줄 몰랐고, 그 순간 들고 있던 쇠몽둥이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높이 치켜든 팔을 내려 울고 있는 사내를 바라봤다. 자세히 보니 울고 있는 사내는 죽어가는 아버지의 아들이었다. 고독함과 외로움에 둘러싸인 아이의 얼굴. 그 아이는 어릴 적 나의 얼굴과 같았다.

난 아이의 얼굴을 보고 당황하여 어찌할 줄 몰랐다. 하지만 내일 내가 당할 찢어질 고통에 몸을 떨며 아이의 눈물을 외면했다. 그러나 도저히 그 아이의 눈은 바라볼 수 없다. 하지만 아이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계속 울고만 있다.

난 그 아이의 울음을 외면하며 다시 쇠몽둥이를 잡고 팔을 높게 치켜들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어떻게 해서든 죽어가는 아버지를 살리려 몸부림쳤다.

한 생명을 지키기 위한 삶의 몸부림.

난 그런 생의 몸부림을 외면하려 아이를 공원 저편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누워있는 아이의 아버지를 쇠몽둥이로 내려쳤다. 그렇게 무지막지한 쇠몽둥이질은 10여 분간 이어졌고 누워있는 남자의 숨은 완전히 끊어졌다. 하지만 아이는 시체가 된 아버지를 다시 끌어안으며 울고 있었고 난 아이의 울음을 외면한 채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공원을 떠나 집에 도착했지만, 아이의 울음소리는 여전히 귓가에 맴돌고 있다.

난 아무도 없는 방안에 귀를 틀어막으며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아무 잘못 없는 가족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라고 혼잣말하며 차가운 벽에 기대 괴로워했다.

이때까지 나의 살인은 세상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그러나 오늘 나는 한 아이의 울음 앞에서 당황하며 주저했다. 그리고 울고 있는 아이 앞에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무참히 살해했다.

도대체 난 무엇을 한 걸까?

내가 고통받지 않기 위해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게 맞는 걸까?

지금 난, 살인이라는 도구를 통해 자유라는 막연한 감정을 얻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과연 이런 살육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정말 무참하고 무의미한 살인이다.

난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타인의 마음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그러한 삶에서 죽음이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죽은 아버지를 끌어안으며 우는 아이의 차가운 시선.

그 시선이 현재 나를 미치게 한다. 그런 생각 속에서 잘려나간 팔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도대체 난 무슨 짓을 한 걸까? 이제 난 어디로 가야 할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살인과 고독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 자유 24.06.24 22 0 6쪽
9 회피 - 2 24.06.24 17 0 9쪽
8 회피 - 1 24.06.23 23 0 9쪽
7 결심 24.06.23 20 0 4쪽
» 고독 24.06.22 23 0 10쪽
5 자유 24.06.22 23 0 10쪽
4 무죄 24.06.21 27 0 11쪽
3 존재 24.06.21 28 0 10쪽
2 고요 - 2 24.06.20 28 0 10쪽
1 고요 - 1 24.06.20 61 0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