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

난 오늘 한 가족의 가장을 무참히 살해했다. 그것도 울고 있는 아이 앞에서...
그리고 절망하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내 귓가를 끝없이 맴돌고 있다.
이제까지 그 누구도 타인의 죽음을 외면하기만 했었는데 왜 이 아이 만큼은 다른 것일까? 이 아이는 앞으로 있을 아버지의 죽음이 차가운 고독으로 돌아온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수없이 질문을 해봤지만, 쉬이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난 그런 생각 끝에 내가 타인의 생명을 빼앗은 건 이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는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볼 용기도 나지 않는다.
이젠 나의 신체가 찢어지더라도, 설령 내가 놈에게 죽더라도 두 번 다시 사람을 죽일 수 없다.
그런 다짐 속에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생각해 봤다. 아버지는 내게 항상 무관심했고, 술과 일밖에 모르는 일상을 살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한 19번의 살인과 허무한 자백.
그때는 아버지가 한 살인이 그리 놀랍지 않았다.
그때의 아버지는 내게 아무런 가치가 없었고 고독만 안겨준 존재였다.
그런 생각을 하다 예전 오파상에서 봤던 아버지의 희미한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오른팔만 있는 상체
한쪽 눈을 가린 애꾸눈
의족을 하며 절뚝거리는 다리
모든 걸 체념한 듯한 굳어있는 표정
아버지는 왜 그런 모습으로 연쇄 살인을 자백했을까?
아버지는 왜 자신과 아무런 상관없는 19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였을까?
난 어릴 때와 반대로 아버지를 향해 많은 질문을 해보았다.
그리고 한 쪽씩 신체가 찢겨진 모습도...
나는 그 모습을 떠올리며 순간 잘려나간 왼팔을 만지고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버지도 나와 같이 무고한 타인을 살해했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신체가 절단되었던 것이다.
19번의 살인.
사람들이 외면하는 살인을 무려 19번이나 하며 고통에 휩싸여 살아왔을 아버지.
난 잘려나간 왼팔을 만지며 갑자기 아버지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아버지는 지금 살아있을까? 아니면 죽었을까? 그리고 어디에 있을까?
그동안 아버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기에 그에 대해 내가 아는 건 전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난 난생처음 동네 도서관에 찾아갔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기사를 뒤졌다. 거기서 아버지가 한 살인사건 재판에 관한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살인사건 이후 스스로 자수하여 재판받기는 했으나 1심에서 바로 무죄 방면되었다.
난 그 사실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무려 19명이나 잔인하게 살해한 연쇄 살인마가 1심에서 바로 무죄 방면이라니?
도저히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었다. 그렇게 충격을 받고 잠시 후 아버지에 대한 기사를 더 찾아봤다. 그리고 찾은 건 이전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는데
제목 - 무죄를 선고받은 희대의 연쇄 살인마의 자살
아버지는 그렇게 무죄 판결을 받은 후 자살하고 만 것이다.
무의미한 살인
신체를 절단당한 고통
살인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
그로 인한 극도의 고독감
지금 내가 겪은 일을 아버지는 이미 수년 전에 겪었었고, 그렇게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가르고 쪼개 나온 피로 지신의 몸을 따뜻하게 하려 했으나, 더욱 차가워지는 나의 마음처럼 아버지도 그리되고 말았다. 난 아버지의 죽음을 보며 타인의 생명을 빼앗아 내게 자유를 선물하려는 나의 행동이 한없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런 생각이 들자 더는 살인을 할 수 없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나도 아버지처럼, 스스로 죽어야 끝나는 지독한 트랩에 갇힌 걸까?
아니면 새하얀 공간에 사는 괴물에게 남아 있는 팔다리가 찢어져야 끝이 날까?
그리고 끝내 나의 목까지 절단되어야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삶이 아닌 죽음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지배하는 이 순간이 그저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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