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과 고독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나는산
작품등록일 :
2024.06.11 10:44
최근연재일 :
2024.06.24 20:44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78
추천수 :
0
글자수 :
39,717

작성
24.06.23 19:03
조회
23
추천
0
글자
9쪽

회피 - 1

DUMMY

난 도서관을 다녀오고 바닥에 누워 새하얀 천장만 끝없이 바라봤다. 이렇게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낸다고 내 삶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한동안 멍하니 있다 든 생각이, 오늘 밤이 지나 몇 시간 후면 반드시 놈은 내 앞에 나타나 내 몸 어딘가를 찢으려 할 것이다.

암흑 속 찢겨져갈 나의 몸.

난 그런 상상만으로 온몸은 부르르 떨리고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그런 끔찍한 상상을 하며 불현듯 여기 집안에만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가야 한다. 놈이 나를 찾을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남은 시간은 고작 3시간. 난 3시간 안에 놈이 찾을 수 없는 먼 곳으로 도망쳐야 내일 있을 끔찍한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집 밖을 나가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난 신발도 신지 않은 채 허겁지겁 뛰었고, 뚜렷한 목적지 없이 집에서 최대한 멀리 갈 생각만 했다.

그렇게 얼마나 뛰었을까?

몸에는 땀이 흐르다 못해 증가가 뿜어져 나오고, 지친다는 생각보다는 살고 싶다는 바램이 나를 뒤덮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사람을 죽일까?’만을 생각해온 내가 이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난 주위를 바라보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제발 숨겨달라고, 정말 살고 싶다고’ 매달리며 빌어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무참히 죽여 온 내가, 타인에게 살려 달라 말할 용기는 도저히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난 살고 싶다. 정말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 발아래를 보니 붉은 발자국이 보인다. 그리고 그게 뭔가 싶어 또다시 아래를 바라보니 날카로운 쇠가시가 발을 뚫고 있었고 그 사이로 피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피로 얼룩진 발자국이 거리에 새겨져 있었고, 난 그것도 모른 채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런데 뛸 때 몰랐으나 새겨진 피의 발자국을 보는 순간,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다.

아!!!!!

하며 절망의 신음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주변의 도움을 요청할 수도, 내 힘으로 쇠가시를 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1시간 후면 반드시 놈은 나를 찾아 신체 어딘가를 찢으려 할 것이다. 그러면 지금 겪는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고통이 온몸을 휘감을 것이고, 다음날 눈을 뜨면 난 또다시 절망하여 무너져 버릴 것이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가시에 박힌 발을 질질 끌며 또다시 움직였다.

그렇게 발이 뚫린 채로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환한 불빛이 내 주위를 스쳐 가는 게 보인다. 환영인가 싶기도 하고, ‘드디어 놈이 나를 잡아가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는 순간 큰 불빛이 내 앞으로 점점 다가오는 게 보인다. 난 다가오는 큰 불빛을 보며 본능적으로 그것을 피했다.

살고자 하는 본능이었을까?

“아! 다행이다. 정말 죽을 뻔했어.”라는 생의 한숨을 뒤로하고 주변을 돌아봤다.

난 대로 한가운데 주저앉아 있었고 그 사이로 무수히 차가 지나다녔다.

난 지나가는 차들의 불빛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살인자인 내가 살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다가오는 차를 이리저리 피하는 모습이 한심하고 안쓰러워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죽고 싶지 않아. 계속 살고 싶어.’라는 말만 내뱉었다. 그리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빨리 대로를 가로질러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기 있으면 너무 위험해.”라고 혼잣말하며 뚫려있는 발을 질질 끌며 다시 움직였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아마, 바닥에 쏟은 피가 너무 많아서인지 움직이려는 생각과 다르게 몸은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바닥을 적시는 나의 피는 온 세상을 붉게 만들었으나, 지금 나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새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전과 다른 큰 불빛이 내 앞으로 다가온다.

그것도 내가 피할 수 없을 아주 빠른 속도로. 하지만 당장 여기를 피해야 한다. 그러나 몸은 그런 의지와 상관없이 도저히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번에도 죽을힘을 다해 이곳이 아닌 저곳으로 몸이 튕겨졌다.

다시 이어지는 생명. 그리고 생에 대한 본능적 욕망.

살아가고자 하는 생의 욕구가 이렇게 간절한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그런데 한숨 돌리고 있는 사이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고통이 또다시 내 몸을 휘감았다. 그런 고통 속에서 아래를 보니 붙어있어야 할 다리가, 간신히 형태만 유지한 채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난 나름 피한다고 몸을 튕겨내긴 했으나, 다가오는 차를 제대로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찢어진 다리 아래로 피가 쏟아지고 그 피는 내가 지나온 피의 발자국조차 덮어 버렸다.

그리고 또다시 다가오는 큰 불빛.

그리고 다가오는 12시.

난 온몸에 전해지는 고통과 12시가 다가온다는 공포로 인해,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어버린 채 쓰러지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해는 밝아 있었다.

익숙한 바닥의 촉감과 항상 바라보던 새하얀 천장.

그리고 사방에 벽으로 막혀있는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있는 나.

난 내가 집 안에 있다는 걸 눈을 뜨고서 알았다. 그리고 시선을 아래로 내려 다리를 만져 봤다. 한쪽 다리는 깔끔히 절단되어 있고, 옆에는 의족이 놓여져 있었다. 난 찢어진 다리와 의족을 멍하니 바라보며 드는 생각이 결국 어제도 절단을 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놈은 나의 살인을 부추기듯 의족을 옆에 놓아두었다.

그러나 더는 사람을 죽일 수 없다.

그렇게 다짐 하지만 지금의 감정은 공포와 혼란 아닌 착란의 상태.

시간은 흘러가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난 한동안 멍하니 누워있다 문득, 벽으로 둘러싸인 방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놈이 준 의족을 잘려나간 다리에 차고 도망치듯 밖을 나갔다. 그렇게 나는 목적지도 없이 미친놈처럼 거리를 헤맸다.

그렇게 헤매다 하늘을 바라보며 하는 말이

‘교회에 가서 나의 죄를 빌어야 할까?’

‘아니면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라도 해야 하나?’

‘그러면 신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실까?’라고 혼잣말을 해봤지만, 하늘은 내게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 침묵 속에서도 막연한 마음을 안으며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교회에 도착한 난, 도저히 안으로 들어갈 용기는 나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절망을 말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교회 앞을 서성이길 몇 시간.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햇볕은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었으나, 나의 움직임은 어색했고 마음은 얼음덩이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그리고 처음 껴본 의족 사이로 피가 나오기 시작했고, 쓸려나가는 피부의 감촉이 나를 아프게 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고통은 지금 가진 불안을 전혀 잠재우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결국, 아버지처럼 내가 죽어야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죽는다면 지금의 고통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그래, 지금 내 삶은 여기서 끝이야.’

라는 혼잣말을 하며 조금씩 내 몸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난 지금의 생을 끝내려 근처 아파트로 움직였다.

한 20층쯤 되어 보이는 아파트.

바닷모래로 지어졌다는 이 아파트는, 주저앉아 버린 나와 다르게 우뚝 서 있었다.

나는 아파트를 바라보며 저 높은 곳에서 내려와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몸을 하늘에 맡기면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해 봤으나 부질없는 짓이다.

난 죽어가는 몸을 억지로 이끌어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바라봤다. 옥상 위 하늘은 더없이 청명했고 조금씩 부는 바람은 나를 높은 곳으로 올려 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하늘을 보고 아래의 세상을 바라보니 나의 절망은 세상 어느 곳에도 느껴지지 않았다.

난 나의 아픔을 모를 세상을 바라보며 “아! 이제 모든 게 끝이구나.”라고 조용히 외쳤다.그리고 ‘나의 죽음은 세상사람들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겠지만, 지금의 죽음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느끼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며 세상과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런데 옆에서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과 둔탁한 둔기음이 혼재되어 들린다. 나는 애써 외면하려 했으나 그런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개는 돌려지고, 가냘픈 여자가 내는 비명을 보게 된다.

그렇게 한 남자를 통해 서서히 끊어지는 한 여자 생명을.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가 저 자리에 서서 나와 무관한 사람을 무참히 살해했다. 그 순간 주위 어느 누구도 나의 살인을 말리는 이는 없었고, 죽어가는 한 생명에 철저히 무관심하기만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살인과 고독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 자유 24.06.24 26 0 6쪽
9 회피 - 2 24.06.24 17 0 9쪽
» 회피 - 1 24.06.23 24 0 9쪽
7 결심 24.06.23 21 0 4쪽
6 고독 24.06.22 23 0 10쪽
5 자유 24.06.22 24 0 10쪽
4 무죄 24.06.21 27 0 11쪽
3 존재 24.06.21 28 0 10쪽
2 고요 - 2 24.06.20 28 0 10쪽
1 고요 - 1 24.06.20 61 0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