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렙을 위한 조건 - (8)
진성이 물었다.
“…그러니까 그레이트 힐이라는 것이 순간적으로 가진 마나의 절반 이상을 소모한다는거지?”
“네.”
“일반 힐은 5번 이상 사용하면 1시간은 쉬어야 하고?”
“네.”
진성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었다.
정수빈이 일부러 힐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횟수 제한과 마나의 양을 생각해서 계산을 한 것이다.
즉, 여분을 남겨두는거다.
‘정말로 위급한 상황에는 사용을 하겠지.’
더군다나 시전을 하는 즉시 들어가야 하고, 거리가 멀면 먼 만큼의 추가적인 마나소모도 따른다고 했다.
이를 테면 1미터당 힐 하나를 쓰는 마나의 반을 소비한다고 했던가?
한 가지 더 알게된 놀라운 사실을 자신과는 달리 힐러들과 딜러들은, 가진 마나의 양이 절반을 넘었을 때 시스템의 음성이 울린다는 것이었다.
‘하긴, 제작계열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겠지.’
생각은 그렇게 했어도 진성도 동조를 하기는 했다.
일단적으로는 자신은 탱커, 그러니까 근접 딜러라고 소개를 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감출 것은 감추고 가야했다.
그때였다.
“오빠, 그래서 말인데 우리 내일은 사냥 쉬고 하루만 놀면 안돼요?”
“응. 안돼.”
“칫. 사람이 어찌 그래요. 영화도 좀 보고 문화생활도 하고 스테이크도 썰고 그래야죠. 내일은 셋이서 데이트해요! 네?”
“문화생활은 지금 마시는 맥주와 치킨을 먹는 것으로 충분하고, 영화는 오늘 다 같이 봤잖아.”
“…잉? 그게 무슨 말이에요?”
“공포영화를 4D로 관람했잖아. 아까 머리가 터져나간 큰원숭이 본 것 같은데?”
“아. 그건 공포라기보다는 장르로 따지면 고어물 아니에요? 아무튼 그건 좀 비유가 아닌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정시원의 말에 정수빈이 맞장구를 쳤다.
‘누가 자매 아니랄까봐.’
뭐, 따지고보면 정시원의 말처럼 셋이서 데이트도 사실 나쁘지는 않았다.
데이트라기보다는 그냥 같이 노는거겠지.
하지만 진성은 이내 마음을 잡았다.
일과를 마치고 이렇게 술집에 와서 맥주 한 잔 기울이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본디 하루를 놀게 되면, 이틀을 놀게 되고 그것이 한 달 넘게 가는 것이다.
사람이 나태해지는 것 한 순간이었다.
물론 심할 정도로 자신을 채찍질을 하는 것일수도 있다.
그나마 1주일에 하루를 쉬는 것도 아이템 판매와 제작을 위해서였지, 그것이 아니었으면 1주일을 풀로 가동시켰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진성의 현재 마음은 그랬다.
그래서 말했다.
“B급 던전을 가기 전까지는 안돼.”
“와, 오빠 되게 독하네요. 안 그렇게 보이는데 사람이 순하게 생겨서 어쩜 그래요!”
“…….”
피식.
진성이 미소를 지었다.
사실 처음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정시원의 말에는 악의가 없다. 그리고 정말 저런 여동생 하나 있었으면 소원이 없을거라고 느끼게 한다.
물론 실제로 여동생을 둔 친구들이 몇 있어서, 실상은 매일매일 싸우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저런 동생이 있었으면 했다.
‘꿈은 이쯤 깨고.’
스윽.
진성이 술 잔을 들었다.
“건배하자.”
“흥. 그래요!”
“네.”
채앵!
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며칠이 지나 일요일이 되었다.
*
“여깁니다.”
“아. 일찍 도착하셨나보네요.”
“집 근처이기도 하고 할 일도 없고 해서 마실 나간다 생각하고 와있었지요.”
“그렇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것인가요?”
“음, 물어볼 것이 좀 있어서요.”
“전화로 하면 될 이야기는 아니었나보군요.”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상대의 말을 들은 진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것도 잠시 눈 앞에 있는 상대, 신탁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무슨 일로 보자고 하신겁니까?”
“그러니까 그게…….”
설명을 하는 진성의 머릿속은 기억을 헤집어 두 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혹시 반지 판매 하시는… 어? 너는?”
“…….”
상대의 말에 진성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을 보고 아는 척을 하는 놈은 진성의 기억에도 있는 놈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좋은 쪽이 아니라 좋지 않은 관계였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임동진.
그것이 눈 앞에 있는 놈의 이름이었다.
이 새끼는 한 마디로 촉새 같은 놈이었다.
그냥 말로는 중립을 지킨다면서 여기저기 분쟁을 만들어서 싸움을 붙이는 놈이었다.
같은 야구부원 출신이기도 했고 건들건들거리는 것이 꼴보기 싶어서 많이 때리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그것이 고쳐지지 않았고 아니, 결정적으로 변득구의 충실한 심복이었다.
심한 말로 ‘개’인 셈이다.
적어도 진성의 기억에는 그랬다.
“…이진성?”
“그래. 오랜만이네. 임동진이.”
“…….”
임동진은 모자를 쓰고 있는 상태였다.
푹 눌러썼지만 그 어릴 적의 모습이 남아있어서 알아보는데는 어렵지 않았던거다.
임동진이 말했다.
“너도 헌터냐?”
“그래. 여전히 촉새질은 잘하고 계신가?”
“말 조심해라. 난 옛날의 임동진이 아니다.”
“그래서 뭐? 옛날의 임동진이 아니면 뭐?”
진성은 이죽거렸다.
이런 놈들은 원래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놈들이다.
초장에 기를 꺾어놔야만 한다.
인성 자체가 나빠서 변하지 않는 놈이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행동 후회하게 될 거다.”
“퍽이나, 왜? 또 그 꼬랑지 살살 흔들면서 득구한테 가서 꼰지를려고?”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왠지 아냐?”
“…….”
“나도 헌터거든.”
임동진은 이런 놈이었다.
약자한테 강하고 강자한테 약한 전형적인 간신배스타일.
진성은 애초에 이런 놈들을 경멸했다.
지금도 그러지 않는가.
힘이 있다고 기고만장 하는 꼴이란.
그리고 이런 것을 보면 참지를 못했다.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잠깐!’
진성은 임동진의 말을 머릿속으로 조합을 했다.
애초에 변득구의 심복이었고 그 뒤를 졸졸 따라 다닌 마당에, 지금 헌터라고 내뱉은 것이라면!
진성이 물었다.
“너도 타이거길드 일원이냐?”
“왜? 이제와서 쫄았냐?”
“얘도 아니고 무슨, 야. 이제 우리도 서른이 다가온다. 고삐리도 아니고 철없는 애들마냥 대화하지말자.”
처음부터 임동진은 자신의 상대가 아니었다.
급을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제 아무리 헌터가 되었다고 해도, 어린 시절에는 자신에게 한 번도 대들지 못했던 놈이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유지가 되리라는 법은 없지만 자신도 헌터로 각성했으니까, 변하지는 않을거다.
자신에게 하는 만큼 행해주는 것.
그것이 진성의 현재 속마음이기도 했다.
막말로 한 판 붙자고 하면 붙을 심산도 있었다.
헌터끼리의 대결이라…….
‘무장을 하고 싸우지는 않겠지.’
말 그대로 대결이다.
몬스터를 죽이듯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는거다.
그럴 목적으로 도발을 했는데 놈도 마냥 어린 시절의 임동진은 아닌 것 같았다.
“너, 이 새끼. 지금 나한테 무례하게 굴었던 거 곧 후회하게 해줄게. 덧붙여서 아이템 거래는 없던 걸로 하지.”
진성이 말했다.
“그러던가.”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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