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소르치 (sorte)

민혁 : 허억, 허억 ... 괘, 괜찮아! 주, 죽는 줄 알았어!!
윤정 : 선배! 정해진 작전시간은 절대로 틀리지 않아요!
민혁 : 그, 그럼?!
윤정 : 이런 경우는 ... 소르치(sorte) 밖에 없어요!
이제 윤정과 민혁의 호랑이 사냥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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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혁은 몸을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민혁 : 그럼 이제 어떡해?
윤정 : 방금 분명 맞췄어요!
그 순간, 처음 찾았던 땅굴에서도 무엇인지 모를 검은 물체가 빠른 속도로 튀어나왔다.
‘크아아아앙!!’
‘크어흥! 크어흥!!’
처음 땅굴에서 호랑이 두 마리가 동시에 뛰쳐나와 울부짖기 시작했다.
‘어우웅~ 어우웅~’
멀리서 들리는 호랑이 울음소리.
앞서 윤정의 총에 피격된 호랑이의 울부짖는 소리였다.
‘크어흥! 크어흥!’
‘어우웅! 어우웅!’
앞선 호랑이와 뒤늦게 등장한 두 마리의 호랑이는 서로에게 울부짖어 댔다.
멈춰선 채 울부짖는 호랑이를 본 윤정은 둘러메고 있던 산탄총을 즉시 호랑이에 겨눴다.
‘펑!!’
윤정이 쏜 총알은 빗겨나간 듯 보였고, 두 마리의 호랑이는 총소리를 듣자마자 즉시 자리를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윤정은 두 발을 다 쏜 산탄총을 꺾어 열었고, ‘펑’소리와 함께 배출된 탄피는 민혁의 얼굴을 맞고 튕겨 나왔다.
(앗 따거!)
그때, 도망가던 호랑이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윤정의 얼굴이라도 기억하려는 듯 멈춰서 윤정을 쳐다보았다.
윤정 : 선배 총 주세요!!
민혁은 급하게 자신의 산탄총을 윤정에게 건넸고, 윤정은 자신이 사용하던 총은 땅으로 내던졌다.
(기회다!)
윤정은 심호흡하며 호랑이의 머리를 정조준했고, 호랑이는 여전히 자리에 멈춰서 윤정을 응시하고 있었다.
‘딸깍.’
윤정 : 뭐야!?
총은 격발 되지 않았고, 방아쇠의 쇳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조종간 안전이었다.
민혁은 혹시나 모를 오발 사고를 대비해 총이 아무렇게 격발 되지 않도록 방아쇠를 잠그고 있었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누구나 그랬을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윤정은 재빨리 방아쇠 잠금을 풀고 다시 호랑이를 겨눴지만, 이미 호랑이는 재빨리 몸을 숨겨 깊은 산속으로 올라갔다.
윤정은 호랑이가 어디로 향하는지 끝까지 지켜보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에야 민혁을 쳐다봤다.
민혁을 쳐다보는 윤정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민혁 : 미안 ...
윤정 : 이건 도저히 ... 괜찮다고 할 수가 없겠어요.
윤정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지금껏 본 적 없던 화가 잔뜩 난 윤정의 표정에 민혁은 어쩔 줄 몰랐다.
윤정은 땅에 떨어뜨린 자신의 산탄총을 챙기려 걸음을 이동했다.
미안한 마음에 뭐라도 해야만 했던 민혁은 윤정 대신 총을 주워주려 한걸음에 달려나갔다.
민혁 : 내가 대신! ... 으악!!
어두워 안 보이던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굴러 넘어지는 민혁.
때굴때굴 굴러, 처음 땅굴에서 굴렀던 만치 다시 한번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민혁.
민혁 : 끄 ... 끄으윽 ...
그런 민혁을 바라보는 윤정의 눈빛은 이제 차갑다 못해 서늘할 정도였다.
민혁 : 크윽 ... 지, 진짜 미안해 ...
그렇게 몇 초간 말없이 민혁을 지켜보던 윤정은 갑자기 박장대소를 하기 시작했다.
윤정 : 와하하하! 아하하하하!
그 웃음이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알고있는 민혁은 조용히 일어나 윤정의 총을 챙겼다.
총을 챙기는 동안에도 웃음을 멈추지 않은 윤정.
윤정 : 아하하 ... 하하 ... 하 ... 아 ...
민혁 : 저기 윤정아? 이제 어떡할까? ...
윤정은 실성한 듯한 웃음을 멈췄고, 다시 한번 차갑게 민혁을 쳐다봤다.
민혁은 조용히 윤정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윤정 : 선배.
민혁 : 으, 응?!
윤정 : 지금 뭐하세요?!
윤정의 이유 있는 하극상이 시작되었다.
윤정은 민혁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윤정 : 선배! 아니, 정확히는 ‘그쪽’이죠! 그쪽 총이 도대체 왜 잠겨 있는 거죠?! 두 마리는 잡고 시작하겠다고 했지만, 저도 ‘그쪽’ 데리고서 두 마리 어림도 없을 줄 알았어요! 근데!! 근데 한 마리는 잡았어야 했다구요!
민혁도 억울할법한 상황이었지만, 윤정의 처음 보는 격노에 입을 꾹 다물었다.
윤정 : 제가 선배, 선배 하니까 ‘그쪽’이 정말 민혁 선배라도 되는 줄 알았어요?!
민혁 : 죄송해요 ...
심각한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민혁.
윤정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던 민혁은 고개를 내리깔고 윤정의 손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본인처럼 떨고 있는 윤정의 두 손이 민혁의 눈에 들어왔다.
민혁 : 지, 지금부터 잘 할게요 ... 정신 똑바로 차릴게요! ...
윤정 또한 이런 상황이 익숙지 않았다.
위험한 임무에 경험이 많지 않을뿐더러, 조금이라도 위급할 때면 원래의 민혁이 그녀의 뒤를 봐줬기 때문이었다.
다른 세계 민혁과 이토록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그런 민혁을 챙겨줘야 하는 책임감까지, 숨겨왔던 불안감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윤정이었다.
민혁 : 정말 죄송해요 ...
고개를 떨군채 거듭 사과하는 민혁.
윤정의 눈에도 두려움으로 가득한 민혁의 모습이 보였다.
두 번 이나 비탈길을 굴러 온몸이 흙투성이에 잔뜩 울상을 한 민혁의 얼굴.
죽상을 하고서도 흙이 묻은 윤정의 산탄총을 자신의 옷으로 연신 닦아내고 있었다.
민혁 : 믿어주세요! 제, 제가 원래 실수는 잘해도 같은 실수는 두 번 안 해요!
총을 닦는 민혁의 손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런 민혁의 손을 본 윤정도 본인의 손 역시 떨리고 있었음을 자각했다.
처음 임무를 수행하는 민혁이 호랑이를 마주해 얼마나 떨렸을지 생각 해보는 윤정.
윤정 : 아니에요 ... 소리 질러서 미안해요.
민혁 : 아니에요. 제가 멍청했어요.
총을 다 닦은 민혁은 윤정의 총에 탄을 삽입했다.
직접 장전까지 한 후에야 총을 건네는 민혁.
민혁 : 여기요!
바들바들 떠는 손으로 총을 건네주는 민혁의 모습에 윤정은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윤정 : 제가 예민했어요 ... 저는 임무 수행하면서 작전 시간이 틀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원래의 민혁 선배와 함께했을 때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렇다면 이건 소르치(sorte) 현상이 분명한데, 소르치가 발생할 만한 변수는 없었어요. 우리 정체를 들켰거나, 불필요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도 않았으니까요 ...
요원들이 세계축을 넘어왔을 때 소르치 현상이 나타난 것은 매우 위험하고 심각한 일이었지만, 지금 발생하는 모든 일이 처음인 민혁은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설마?! ...)
윤정은 민혁을 의심했다.
평행우주 관리국의 민혁이 아닌, 평범한 직장인 이민혁이 임무를 수행하게 되어 발생한 소르치 현상이 아닐까.
그렇다면, 앞으로 그와 함께하는 모든 임무에 소르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민혁 : 이제 어떡할까요? 말해주면 정신 차리고 똑바로 할게요!
심란했던 윤정은 오히려 적극적인 민혁의 태도에 머릿속이 정리되는 듯했다.
윤정 : 소르치 현상이 ... 작전 시간이 틀려버린 이상 앞으로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어요. 어쩌면 호랑이가 3마리가 아닐 수도 있구요.
잠시 머리를 굴려보는 윤정.
윤정 : 우선 한 마리는 분명 총상을 입었어요. 피를 따라가면 추적은 쉬우니까, 먼저 땅굴이 더 있는지 찾아보고 이동하도록 해요.
민혁 : 네!
윤정 : 그리고 ... 다시 반말하세요. 저도 앞으로 ‘그쪽’이라고 안 하고 꼭 선배라고 부를게요. 남들이 보는 앞에서 실수라도 하면 안 되니까요.
민혁 : 으, 응 ... 알았어.
랜턴을 들고 다시 주변을 수색하는 윤정과 민혁.
민혁은 방금 호랑이가 나왔던 땅굴에 랜턴을 비춰 보았다.
지름만 고작 1m였을 뿐 내부는 꽤 널찍한 땅굴이었다.
랜턴을 비췄을 때 볼 수 있었던, 땅굴 통로를 가득채운 호랑이의 주먹만한 푸른 빛 눈동자는 호랑이의 크기가 얼마나 컸을지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이내 민혁은 땅굴 위로 올라가 발로 입구를 차 무너뜨렸다.
민혁 : 합! 합!
윤정 : 뭐하세요?
민혁 : 혹시 몰라서 땅굴 입구 무너뜨리고 있어!
열심히 발길질하는 민혁을 윤정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곤 윤정도 처음 발견된 땅굴 입구로 이동해 발길질을 시작했다.
열심히 발길질하지만 크게 무너지지 않은 땅굴 입구.
어느 순간 윤정의 옆으로 다가온 민혁은 땅굴 위로 올라가 두 다리로 점프를 뛰며 땅굴 입구를 무너뜨렸다.
민혁 : 합! 합!
작은 입구의 땅굴은 민혁의 점프 몇 번에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윤정 : 고마워요. 다른 땅굴을 찾는 건 이제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요. 출발해요.
민혁 : 알았어.
윤정 : 이쪽으로 오세요.
이동하는 두 사람.
윤정은 뒤늦게 나타난 두 마리 호랑이가 사라졌던 마지막 방향을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 흘린 호랑이 피를 발견한 민혁.
민혁 : 피다!
윤정 : 방아쇠 잠금 풀어놨죠?
민혁 : 다, 당연하지.
총구를 앞으로 향한 채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두 사람.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크게 울부짖는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크아아앙!’
‘끼잉끼잉!!’
소리를 듣자마자 서로 말하지 않아도 빠르게 이동하는 두 사람.
곧 울음소리의 근원지에 도착했고, 그곳에는 호랑이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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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동 없이 쓰러져있는 호랑이 한 마리.
윤정과 민혁은 주변을 경계하며 다가갔다.
윤정 : 선배, 경계 늦추지 마세요!
민혁 : 으, 응!
민혁은 언제라도 총격을 가할 수 있는 자세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고, 윤정은 호랑이에 총구를 겨누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윤정 : 죽었어요 ...
쓰러져있던 호랑이는 목에 큰 상처를 입고 죽어있었다.
민혁 : 아까 너가 맞춰서 그런가?
윤정 : 아니에요 ... 이건 ...
죽은 호랑이에 랜턴을 비춰보는 윤정.
호랑이의 뒷다리 쪽에 작은 탄환 흔적과 피가 보였지만, 목덜미에 큰 이빨 자국과 대량의 피로 보아 목이 물려 죽임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
윤정 : 목이 물려 죽었어요 ...
민혁 : 지들끼리? ...
윤정 : 네. 뜯어먹거나 주변을 배회한 흔적은 없어요. 죽인 즉시 이동했습니다. 추적이 가능한 개체를 판단하고 제거했어요. 고도로 훈련됐다는 말은 틀림없나 봐요.
윤정은 워프 엔진을 작동시켜 홀로그램을 켰다.
홀로그램은 호랑이를 스캔하더니 공중 화면에 일련의 정보를 펼쳐놓았다.
윤정 : 몸길이 294센티미터 ... 임무 브리핑 때 봤던 개체 중 한 마리와 정확히 일치해요.
윤정은 당장 소르치 현상이 발생했기에 최초의 임무 브리핑 때와 상황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호랑이 몸길이를 재보았다.
슬그머니 다가온 민혁은 자신을 덮치려 했던 호랑이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민혁 : 이제 핏자국도 없는데 어떻게 찾지?
윤정 : 잠시만요.
윤정은 워프 엔진의 홀로그램을 또다시 작동시켰다.
홀로그램은 주변을 스캔하더니 호랑이 발자국을 찾아 그 부위만 초록빛으로 밝혀주었다.
윤정 : 당장 급한 대로 이걸로 추적해 보죠. 에너지를 빨리 소모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민혁 : 세계축 연결만 가능한 게 아니구나 ... 여러모로 굉장히 유용하네.
윤정 : ... 이번 임무가 끝나면 조작 방법 알려드릴게요.
민혁 : 응, 알았어 ... 호랑이 시체는 어쩔까? 불로 태워야 하나?
윤정의 잔소리 이후, 더욱 적극적으로 임무를 대하는 민혁.
윤정 : 괜찮아요. 출발해요.
홀로그램의 초록색으로 물든 호랑이 발자국을 따라가는 두 사람.
발자국은 어느 순간 두 갈래 길로 갈라지게 된다.
(따로 움직이자고 하기는 너무 무서운데 ...)
민혁은 윤정에게 차마 무섭다고 말할 수 없었다.
윤정 : 따로 움직이기는 너무 위험해요. 같이 움직이죠. 오른쪽으로 먼저 가봐요.
민혁 : 응! 좋은 생각이야!
‘좋은 생각이야’라는 말은 하지 말 걸 후회하는 민혁.
그때, 멀리서 두 사람을 노려보는 호랑이 한 마리.
그 호랑이는 두 갈래 발자국 중 왼쪽으로 빠졌던 호랑이였다.
‘크르르릉 ...’
매서운 눈빛으로 윤정을 노려보는 호랑이.
입 주변은 피로 흥건한, 다른 호랑이를 물어 죽인 호랑이였다.
호랑이는 이상하리만치 윤정만 응시하며 낮은 포복으로 윤정에게 접근하였다.
정확히는 윤정 손목에 있는 워프 엔진 홀로그램 빛 때문에 윤정을 응시하고 있었다.
윤정 : 선배, 지금부터는 고민하는 순간 늦어요.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세요. 생각하는 즉시 몸이 같이 움직여야 해요.
민혁 : 알았 ... 윽!
또다시 워프 엔진의 깜박거리는 점멸과 함께 민혁의 머릿속에는 기억의 파편들이 흘러들어왔다.
(야, 내가 생각만 하지 말랬지? 생각만 많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까?)
(죄, 죄송합니다 ...)
(생각하는 대로 즉각 움직이라고! 죽으려면 혼자 죽던가!)
기억 속, 임무를 수행 중인 민혁과 윤정의 대화.
아까보다 분명 선명한 기억이지만, 역시나 찰나에 불과해 다시금 희미해져 갔다.
윤정 : 괜찮아요? 왜 그래요? 아까 어디 다쳤어요?
민혁 : 아, 아니. 괜찮아. 잠깐 두통이 ...
‘부스럭’
그 순간,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펑!!’
두통이 가시지 않았던 민혁의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털썩 ...’
윤정을 노리고 있던 호랑이는 민혁이 쏜 총에 맞고 쓰러졌다.
불과 열 걸음 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였다.
윤정도 깜짝 놀라 재빨리 소리가 나던 곳으로 총구를 돌렸다.
거꾸로 뒤집혀 네 다리를 덜덜 떨고 있는 호랑이는 공중에 소변을 흩뿌리며 쓰러져 있었다.
윤정이 호랑이를 향해 랜턴을 비췄을 때, 호랑이의 얼굴은 산탄총에 의해 반쯤 날아간 뒤였다.
윤정 : 어, 어떻게 된 일이에요?!
민혁 : 허억, 허억 ...
쓰러진 호랑이지만 여전히 총을 겨누고 있는 민혁의 총구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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