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 기억의 파편들

윤정이 호랑이를 향해 랜턴을 비췄을 때, 호랑이의 얼굴은 산탄총에 의해 반쯤 날아간 뒤였다.
윤정 : 어, 어떻게 된 일이에요?!
민혁 : 허억, 허억 ...
쓰러진 호랑이지만 여전히 총을 겨누고 있는 민혁의 총구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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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적인 반응으로 호랑이를 잡아버린 민혁.
본인도 얼떨떨해 호랑이가 쓰러졌음에도 여전히 총구를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민혁 : 허억, 허억 ...
윤정 : 선배, 괜찮으니까 총 내리세요. 즉사했어요.
윤정이 민혁을 안심시켜 주었고, 민혁은 그제야 총구를 내려 자신이 쏜 호랑이에 다가가 보았다.
윤정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워프 엔진 홀로그램을 이용해 호랑이를 스캔했다.
윤정 : 이번에도 브리핑에서 확인된 개체와 크기는 똑같아요. 작전시간이 틀린 것 말고는 다른 소르치는 발생하지 않은 것 같아요.
민혁 : 허억, 허억 ... 윽 ...
머리를 붙잡고 휘청거리는 민혁.
그런 민혁을 윤정이 붙잡아 주었다.
윤정 : 왜 그래요?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민혁 : 사실은 자꾸 이상한 환영이 보여 ...
윤정 : 무슨 환영이요?
민혁 : 잘은 모르겠지만, 원래 있던 이민혁의 기억들 같아 ... 아까 담배 얘기했을 때는 담배에 대한 기억들이었고, 너가 생각하는 대로 즉각 움직이라니까 기억 속에서 내가 너한테 똑같은 말을 했었어 ...
윤정 : 뭐라구요? 뭐지 ... 그런 현상은 들어본 적 없어요.
민혁 : 나도 희미하게 흘러들어오는 기억들이라 잘은 모르지만, 너랑 원래의 이민혁은 확실해 보였어 ...
윤정 : 선배, 워프 엔진 좀 확인 해볼게요.
윤정은 민혁의 손목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민혁의 워프 엔진을 두 번 두드렸고 홀로그램 화면이 떠올랐다.
재빠르게 무언가 입력하는 윤정.
홀로그램은 곧바로 이민혁의 정보를 공중에 띄웠다.
[이민혁, 32세]
[직급 : 1급]
[호랑이 사냥 작전, 현재 고성군 호랑이 테러 진압 중]
[최근 임무 리스트]
- 권한이 없습니다.
[완료된 주요 임무]
- 권한이 없습니다.
[특이 사항]
- 권한이 없습니다.
윤정과 민혁은 홀로그램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민혁 : 이거 나야?
윤정 : 워프 엔진 사용자의 신원이에요. 현재의 선배는 29살이라고 했죠? 이 워프 엔진의 사용자가 누군지 확인해 보려구요. ... 이건 확실히 원래 민혁 선배 거예요.
민혁 : 여기 올 때 나한테 강제로 채웠던 거야.
윤정 : 제가 알기로 워프 엔진이 사용자의 기억을 전달해 주는 기능 같은 건 없어요. ... 그리고 또 이상한 건 임무 리스트나 특이 사항을 민혁 선배 스스로 전부 막아놨네요? 의도가 뭔지 모르겠어요.
민혁 : 아직 한 마리 남았잖아? 계속 이렇게 두통이 심하면 안 될 것 같은데 ... 혹시라도 위급한 상황에 이러면 어떡하지?
민혁의 말을 들은 윤정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갑자기 민혁의 어깨에 두 손을 올려 눈을 마주치는 윤정.
민혁은 윤정의 눈맞춤에 부끄러워 눈을 피했다.
윤정 : 내가 너 비데냐?
민혁 : 에?!
묘한 분위기 속에 윤정의 황당한 질문에 민혁은 당혹스러웠다.
윤정 : 내가 너 비, 비데냐고? 똥이나 닦아주자고 부사수로 앉혔냐고?!
윤정의 말을 듣자 또다시 워프 엔진이 점멸을 하며 기억의 파편이 흘러들어오는 민혁.
(너 비데 쓰냐?)
(네 ... 네?! 아니, 그런 거 왜 물어보세요?!)
(내가 너 비데냐고? 너가 싼 똥이나 닦자고 내가...)
역시나 원래의 민혁과 윤정의 기억이 흘러 들어오는 민혁.
민혁 : 윽! ...
민혁은 어지러운 듯 머리를 붙잡았고, 윤정은 그런 민혁을 붙잡아주었다.
윤정 : 왜요?! 또 뭐가 보였어요?!
민혁 : 응. 내가 ... 아니 원래 민혁이 내가 비데냐고 너한테 막 구박하는데?
윤정 : 화, 확실하네요. 그건 제가 선배와 했던 대화가 맞아요 ... 당장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복귀하면 준상 선배에게 물어봐야겠어요 ... 지금은 좀 어때요? 움직일 수 있겠어요?
민혁 : 응, 잠깐이야. 금방 괜찮아지는 것 같아.
윤정 : 난감하네요. 제가 선배랑 한 모든 대화를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 그리고 ... 아아!
문득 무언가 떠오르더니, 어쩔 줄 몰라 하는 윤정.
얼굴에 살짝 홍조를 띠었지만 민혁의 눈에는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윤정 : 우선 임무에 집중해요. 이제 한 마리 남았어요!
민혁 : 그래야지!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려보는 민혁.
윤정 : 이제부터 말은 최대한 아낄게요. 무슨 얘길 했다가 또 겹치는 대화가 나올지 모르겠으니까 ...
민혁 : 알았어. 나도 필요한 말만 할게!
민혁은 산탄총을 꺾어 한발만 사용했던 잔탄을 제거하고, 다시 탄을 삽입했다.
민혁 : 한 마리 잡고 얼른 복귀하자!
윤정 : 쉿!
행여 과거와 겹치는 대화가 나올까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윤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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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과 민혁은 나머지 한 마리에 대한 수색을 재개했다.
깊은 산중을 몇 시간씩 헤매는 두 사람.
추운 날씨에도 두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며 홀로그램에 의지해 호랑이 발자국을 따라가고 있었다.
대화가 겹칠까 말을 아끼는 윤정과 민혁은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에 이르렀다.
‘삐빅 삐빅’
그때 울리는 윤정의 워프 엔진의 알림음.
민혁 : 워프 엔진 에너지 벌써 다 쓴 거야?
윤정 : 아니에요. 혹시 몰라서 일정 에너지를 사용하면 알림이 울게끔 해놨어요.
민혁 : 그래도 이제부터 내꺼 쓰는 게 어때? 내꺼는 아직 한 번도 안 썼잖아?
윤정 : 아직 괜찮아요. 그보다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이대로는 저희가 먼저 지치겠어요.
민혁 : 어떻게 쉬지? 교대로? 먼저 쉴래? 내가 경계서고 있을게.
윤정 : 아니에요. 잠시만요.
윤정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조금이나마 평평한 곳에 나무 한 그루가 있는 곳을 금방 찾아냈다.
윤정 : 20분 정도만 쉬었다 가죠. 둘 다 쉬어야지 교대로 쉴 시간은 없어요. 여기 나무에 등지고 쉬어요. 반경 20미터 이내에 특별한 움직임 정도는 워프 엔진이 감지하니까 크게 걱정하지 마세요.
민혁은 땅굴 입구에서 호랑이가 달려들던 때를 기억했다.
민혁 : 아까 호랑이 달려드는 속도 보니까 20미터는 1초면 될 것 같은데 ...
시간이 지나자 슬슬 토를 다는 민혁이었다.
윤정은 그런 민혁이 조금 거슬렸지만, 피곤한 상황에 힘이 부쳐 짜증을 참아내며 대답했다.
윤정 : 그러니까 등지고 쉬자구요. 이렇게요.
먼저 나무에 등을 대고 앉는 윤정.
산탄총은 즉시 쏠 수 있도록 품에 안으며 앉았다.
민혁은 윤정이 앉는 것을 보고, 나무 반대편으로 앉았다.
그러곤 매고 있던 가방을 윤정의 다리 사이 아래에 끼워주었다.
민혁 : 어때 편하지? 눈 좀 붙여. 내가 깨 있을게. 나는 앉아있어도 충분해.
윤정 : ...
윤정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윤정 : ... 하하 ... 원래의 선배와 이런 비슷한 상황이 있었거든요? 근데 제가 얘기하면 또 선배 워프 엔진 작동하고 어떻게 될지 몰라서 말을 못하겠네요 ...
민혁 : 그래? ... 그때도 지금처럼 위험한 임무였어?
윤정 : ... 그때는 뭐든 다 위험해 보였어요 ... 저도 잘 몰랐거든요.
서로 한 쪽 방향씩 경계를 맡으며 대화를 이어 나가는 두 사람.
윤정이 쉬는데 방해하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곧잘 대답해 주는 윤정에 민혁은 계속 말을 걸었다.
민혁 : 나 하나 궁금한 거 물어봐도 돼?
윤정 : 어떤 거요?
민혁 : 너는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된 거야?
윤정 : 평행우주 관리국이요?
민혁 : 응. 나는 강제로 끌려왔는데, 너나 다른 사람들은 어쩌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세계에서 이런 일을 하게 된 건지 궁금해서.
윤정 : 음 ... 말해드릴 순 있는데, 제가 선배한테 이걸 말했던 게 기억나거든요? 그러니까 원래의 민혁 선배요. 그래서 지금 말하기는 위험할 것 같아요. 또 머리 아프려구요?
민혁 : 아, 그럼 아니야. 얘기 안 해줘도 돼. 나중에 얘기해줘.
윤정 : 네, 나중에요.
윤정의 대답을 끝으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대화는 멈췄고, 적막이 흘렀다.
서로 조용히 쉬고 있는 두 사람.
그렇게 시간은 십여 분이 흘렀다.
그 순간, 어디선가 사람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으아아아아악!!!’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는 두 사람.
비명이 들렸던 방향에 홀로그램을 비춰보는 윤정.
호랑이 발자국이 이어진 방향이었다.
윤정 : 빨리 가봐요!
민혁 : 어? 어!
윤정과 민혁은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탕! 탕! 탕탕!’
근처 가까이서 울리는 총소리.
윤정과 민혁은 더욱더 빠르게 달려나갔다.
하늘 : 으어 으아아악! ...
무장 한 군인 한 명이 쓰러져 팔에 피를 흘리고 있었고, 먼 발치에서 다른 군인 한 명은 숲속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병철 : 미친 시발 뭐야 이거!!
하늘 : 으아아, 내 팔!! 팔 존나 아픕니다!!
군인 두 명이 호랑이의 습격을 받았다.
윤정은 민혁에게 고개를 끄덕했고, 먼저 앞장서 군인에게 다가갔다.
민혁은 그런 윤정의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은 비탈길에서 빠져나와 군인들에게 접근했다.
쓰러진 하늘은 여전히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고, 호랑이가 사라진 숲속에 총구를 겨누던 병철은 윤정과 민혁이 나타나자 총구 방향을 그쪽으로 돌렸다.
병철 : 뭐, 뭐야!! 누구야!
윤정 : 진정하세요. 저희는 허가받고 수렵 활동 중인 사냥꾼들입니다.
등에 산탄총을 맨 채 품 안에서 수렵 허가증을 꺼내 펼쳐 보이는 윤정.
멀리 떨어진 주황색 전등 하나가 있었지만, 그 정도 밝기로 허가증의 내용이 절대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형식상의 행동에야 비로소 안심하고 총구를 내리는 병철.
병철 : 바, 방금 호랑이 맞죠?!
윤정 : 어디로 갔나요?
병철 : 저기 저기로 갔어요 ... 한국에 호랑이라니 미친 ...
윤정 : 총은 맞혔어요?
병철 : 당연히 공포탄이죠!!
겁이 나 윤정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는 병철.
민혁은 쓰러진 하늘의 상태를 돌보고 있었다.
쓰러진 하늘의 팔에 상처는 물린 자국이 아니라, 발톱에 할퀴어진 상처였다.
민혁 : 윤정아, 그래도 물리진 않은 것 같아. 내가 지혈할게.
민혁은 가방에서 붕대를 꺼냈다.
윤정 : 선배, 지혈은 저 친구에게 맡기고 따라오세요!
‘삐익 삐익 삐익 삐익’
순간, 윤정과 민혁의 워프 엔진이 동시에 빛을 발산하며 알림음을 울렸다.
윤정 : 이, 이럴 리가 없는데 ... 말이 안 되는데?!
민혁 : 어?! 이거 왜 이래?
윤정과 민혁의 워프 엔진은 계속해서 강렬한 빚과 알림음을 내고 있었다.
윤정은 워프 엔진을 가볍게 터치해 알림음과 빚을 꺼버렸고, 민혁은 그런 윤정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해 워프 엔진의 알림 소리를 꺼버렸다.
윤정 : 작전 종료에요 ... 임무가 성공한 겁니다 ...
민혁 : 아직 한 마리가 남았는데?!
윤정과 민혁이 워프 엔진의 알림 소리에 반응하고 있을 때, 병철은 하늘에게 다가와 상처를 살펴보고 있었다.
병철 : 강하늘 괜찮냐?!
하늘 : 강병철 상뱀임, 저 뒤질 것 같습니다! ...
병철은 윤정과 민혁에게 소리쳤다.
병철 : 저기요! 좀 도와주세요!!
민혁 : 아! 여기 붕대! 지혈할 줄 알지?
민혁은 병철을 도와 하늘의 지혈을 도왔다.
와중에 윤정은 머리를 감싸 쥐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도대체 뭐지?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왜 임무가 성공한 거지? 아직 ... 아직 한 마리가 남았는데!!)
하늘 : 으으으 ...
민혁 : 괜찮을 거야. 부대는 여기서 멀어?
병철 : 가깝습니다. 근데 호랑이가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르는데 ...
‘야!! 뭐야!! 무슨 일이야?!’
그때, 총소리를 들은 다른 군인들이 멀리서 달려오고 있었다.
윤정 : 선배 일단 자리 피해요. 복귀가 최우선이에요. 빨리 따라오세요!
민혁 : 아, 알았어! 얘들아, 우리는 이만 가볼게!
병철, 하늘 : 가, 감사합니다!
윤정과 민혁은 호랑이가 향했다는 방향으로 뛰어 들어갔다.
군인들이 있던 곳에서 벗어난 두 사람.
윤정 : 선배, 복귀 준비하세요.
민혁 : 진짜로? 이대로 이렇게 복귀한다고?
윤정 : 아니요. 차가 있던 장소로 돌아가자구요. 차량도 처리해야 하고 이제 임무 정리하는 단계입니다.
민혁 : 한 마리 남았잖아?
윤정 : 저도 몰라요. 임무는 성공했고, 복귀 명령은 받았어요.
민혁 : 저 한 마리가 어떻게 될 줄 알고?!
윤정 : 선배! 거기까지는 저희가 신경 쓸 바 아니에요! 저도 모르겠으니까 그만해요! 제가 판단하겠습니다. 복귀 준비해야 해요!
윤정의 말과 동시에 민혁의 워프 엔진은 또다시 점멸을 시작했다.
‘깜빡 깜빡 깜빡 ...’
또다시 기억의 파편들이 머릿속에 들어오는 민혁.
(너가 신경 쓸건 아니야!)
(제가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내가 판단했어. 같이 위험 부담을 떠안을 ... 그리고 넌 ...)
이전보다 강렬하고 선명하게 흘러들어오는 기억의 파편들.
순간 민혁은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린다.
윤정 : 선배!! 선배!!
완전히 쓰러져 버린 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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