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 집착, 정신병

봉철 : 아부지! 저 갑니다! 그라고 ... 이제 지도 모르겠심더!! 언제까지 이카고 살낍니꺼?!!!
봉철은 장수를 뒤로 하고 차에 탑승해 가버렸다.
민혁은 고개를 돌려 장수를 살펴봤다.
장수 : 또 오면! 내 이번엔 똥물을 콱 던져불끼다!!!
(저 사람은 진짜야. 진짜 똥물을 던질 사람이야 ...)
민혁은 추위에 덜덜 떨며 강장수의 의지에 두려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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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과 민혁은 봉철의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봉철 : 고마, 일단 저희 집으로 가시지예. 억수로 미안합니데이.
민혁 : 그럼 부탁 드리 ...
손짓으로 민혁의 말을 막아 세우는 윤정.
윤정 :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아직 민혁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한 윤정, 민혁의 말을 막아서고 본인이 대신 입을 열었다.
(나도 똑같은 말 하려고 했었는데 ...)
봉철 : 아부지가 저 집에 대한 애착이 심해가 ...
차 안의 룸미러로 봉철의 표정을 확인해 보는 윤정.
봉철은 몹시 불편한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봉철 : 바람이라도 씨는 날엔 천장에 기와고 벽이고 다 뜯어져 날아다닌다 안캅니꺼. 하, 머리 아프다~
윤정 : 저렇게 오래된 한옥 집이면 많이 위험하시겠어요.
봉철 : 하모예. 근데 지도 엄니도 이제 신경 안 씁니더. 노인네 똥꼬집 아입니꺼.
뭔가 사연이 많아 보이는 강장수의 집이었다.
어느덧 차는 목적지에 도착해, 으리으리한 저택으로 들어가는 봉철의 소형차.
민혁 : 아니 ... 여기에 사시는 거예요?!
봉철 : 예. 보기랑 다르게 이리 삽니더. 허허허!
말 그대로 대저택.
입구서부터 차로 올라가지 않으면 다리가 꽤 아플 정도로 넓게 펼쳐진 마당.
작은 소형차와 어울리지 않은 고급스러운 대저택이 윤정과 민혁을 반겼다.
민혁 : 대체 이런 집을 놔두시고 왜 ...
봉철 : 지말이 그말이지예.
봉철은 차량을 집 앞에 주차했다.
봉철 : 어서 드시지예. 갈아입을 옷도 좀 내오겠심더.
봉철은 차에서 내려 윤정과 민혁을 집으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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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갈아입고 온 윤정과 민혁.
두 사람은 농사를 지을 때 입는 얼룩무늬 몸빼 바지와 넉넉한 티셔츠를 입고 있고, 정장은 거실 한쪽 구석에 올려놓아 말리고 있었다.
따듯한 차를 준비한 봉철은 두 사람을 식탁으로 안내했다.
봉철 : 이 좀 드이소.
윤정 : 감사합니다.
윤정과 민혁은 테이블에 앉아 차를 한입 마셨다.
윤정 : 맛이 굉장히 독특하네요.
봉철 : ‘돼지 감자차’라꼬. 지가 운영하는 회사 제품입니더. 다이어트에 제격이라 고마 히트 상품이지예.
윤정 : 다이어트요?
봉철 : 당뇨에 좋다카는데, 그건 아이고. 다이어트에 직빵인기라 인기가 좋심니데이.
윤정 : 그렇군요 ...
잠시 적막이 흐르는 테이블 위.
세 사람이 조용히 차를 마시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때, 주머니에서 아까 윤정에게 받았던 명함을 꺼내보는 봉철.
봉철 : ‘청산 토지 자산?’ 이건 어데있는 회삽니꺼?
민혁은 당연히 윤정이 대답할 것으로 생각하며 가만히 있었다.
윤정 : 아, 저희는 서울에 있습니다.
봉철 : 그렇심니꺼? 고마 여기저기 억수로 마이 왔다 아입니꺼. 그카도 전부 아부지 물벼락 맞고 빈손으로 돌아가는데, 그 중에서 ‘한빛태양’하고 ‘에코테라’ 여그가 집요하더라예. 좀 전에 진만씨랑 은혜씨 봤지예?
윤정 : 아드님께서는 어르신이랑 생각이 다르신가 봐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윤정.
봉철은 윤정의 물음에 생각이 많아진 듯 보였다.
봉철 : ...
윤정 : 어르신이 이유가 있을까요?
봉철 : 있지예! ... 집착 ... ‘병’ 입니더 ...
봉철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봉철 : 저 집이 할아버지 집이지예.
윤정 : 할아버지요? 아드님의 할아버지 말씀인가요?
봉철 : 예. 저희 할아버지 집 입니더. 지는 솔직하게 말해가, 저 집은 꼴도 보기 싫습니더.
민혁은 입을 꾹 다문 채 봉철과 윤정의 대화를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윤정 :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
윤정은 조심스레 봉철에게 물었다.
봉철 : 하이고 ... 어디부터 말해 되노 ...
이야기에 뜸을 들이는 봉철.
그런 봉철을 윤정과 민혁은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봉철 : ... 즈기 집 한 가운데 솟아있는 나무 봤지예?
윤정 : 네.
봉철 : 그기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임니더.
봉철은 이야기를 꺼내기 착잡한지 차를 한입 마셨다.
봉철 : ... 할아버지가 6.25 때 돌아가셨슴니더. 징집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하셨지예 ...
윤정 : 아! ...
봉철은 말을 이어갔다.
봉철 : 지 어릴적엔 할아버지 돌아오신다꼬, 북에 있는 거라꼬. 그때까지 기다려야 된다꼬 ... 근데 70년입니더 70년! 이제는 나무가 할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심더. 정신병 정신병!
봉철은 말을 이어가며 조금씩 감정이 격양되어 가는 듯 보였다.
봉철 : 지랑 엄니가 얼마나 고생 했는 줄 압니꺼?! 지 얼굴에 침뱉기지만서도 ... 저희 아부지, 평생 일이란 걸 해본 적이 없심더! 저 집 지키느라! 할아버지 언제 올지 모른다꼬!!
윤정 : 마, 많이 힘드셨겠어요 ...
봉철 : 힘들다 뿐입니꺼?! 나무에 절 해봐쓰요? 안 돌아가셨다꼬 제사도 안 지냄서 설날만 되믄 온 가족 다 불러가 나무에 절을 합니더!! 이기 정신병이 아니면 뭐요?! 그래, 한 평생 일 안했꼬 땡전 한 푼 안 벌어왔어도 내 이리 장성했다 안캅니까? 그라믄 자식 덕이라도 봐야지예. 태풍이라도 온다카믄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는 저 집에서 안 나오고 버팅기는데, 억수로 신경 쓰인다 아입니까! 웬숩니더 웬수!!
윤정 : 그렇군요 ...
봉철은 다시 진정하려는 듯 차를 한입 마셨다.
봉철 : 후우, 미안합니데이. 지가 저 집 얘기만 나오믄 이리 화가 많습니데이.
윤정 : 돈 문제가 아니군요.
봉철 : 돈예? 할 수만 있으믄 고마 던져 뿔고 싶습니더. 돈 필요도 없심더!
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윤정과 민혁은 막막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아보려는 윤정.
윤정 : 저희도 그저 일개 직원이라 어떻게든 매입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봉철은 윤정의 물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봉철 : 모르겠심더. 한빛하고 에코에서 시세 4배까지 쳐준다케도, 물벼락 치는 양반을 우에 합니꺼?
윤정 : 아 ...
윤정은 민혁과 눈이 마주쳤다.
난감한 두 사람.
윤정 : 민혁씨랑 잠시 나가서 얘기하고 와도 될까요?
봉철 : 하모예. 그라지말고, 여서 얘기 나누이소. 지도 잠깐 공장봐야 합니더. 히터 빵빵하게 틀어가 옷은 반나절이면 마를낀데 그때까지 푹 쉬다 가이소. 밖에 춥십니더. 여서 편하게 얘기들 하이소. 지는 지금 나갑니더!
윤정 : 아, 감사합니다.
봉철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집을 나갔다.
잠시 후 저택 거실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흙먼지.
봉철은 차를 타고 공장으로 이동을 했다.
민혁 : 어쩌지 ...
윤정 : 이거 ... 답 없어요.
처음보는 자신감 없는 윤정의 목소리.
민혁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윤정의 모습에 민혁은 자신이라도 힘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고, 머리를 쥐어짰다.
민혁 : ... 할아버지 정신병이라는데,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자고 설득할까?
혐오가 가득한 표정으로 민혁을 쳐다보는 윤정.
윤정 : 진심이세요?
민혁 : 아니, 그냥 해본 말이지 ...
민혁은 윤정의 표정과 말에 즉시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임무만 생각하며 방법을 떠올리던 민혁의 속내는 진심이었다.
윤정 : 선배 ... 이거 ... 임무 만만치 않겠어요 ...
민혁 : 뭐?! 그렇게 답이 없는 문제야?
윤정 : 사실 이런 식의 임무는 경험이 없어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 강압적인 방법을 생각하면 소르치(sorte)가 걱정이고, 그렇다고 당장 해답이 보이지도 않아요 ...
민혁 : 윤정아 ...
임무에 계획이 없는 윤정의 모습이 낯선 민혁.
그럴 때 오히려 임무에 대한 의지를 다잡는 것은 민혁이었다.
민혁 : 그래도 쉽게 포기할 생각하지 말고, 조금 더 생각해 보자. 방법이 있을 거야.
그때, 민혁은 강장수의 집 앞에서 은혜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지 않아?’
민혁 : 윤정아! 아까 은혜라는 사람 명함받은거 있지?
윤정 : 네? 네.
민혁 : 줘 봐.
‘에코 테라, 대표 장은혜 010-0000-0000’
윤정 : 아!
윤정도 은혜의 말이 떠오른 듯 탄성을 내뱉었다.
민혁 : 이 사람한테 그 방법이 뭔지 물어보자.
윤정 : 쉽게 알려줄까요?
민혁 : 자기들은 포기했다잖아? 우리보고 알아서 하라며. 그러면 정보 공유도 해주지 않을까 싶은데?
윤정 : 그래요. 밑져야 본전인데, 저도 그 방법 말고는 모르겠어요.
민혁은 워프 엔진 홀로그램을 열었다.
판단부터 행동까지 빠르게 행동하는 민혁이 신기한 듯 쳐다보는 윤정.
민혁 : 아! 윤정아, 네가 전화 할래?
윤정 : 아니에요. 선배가 해보세요.
윤정은 옅은 미소를 띠며 민혁에게 역할을 넘겼다.
민혁 : 그래? 알았어. 내가 해볼게.
윤정에게 배운 대로 워프 엔진을 작동시켜 전화 기능을 사용하는 민혁.
몇 번의 신호음이 가더니 은혜는 전화를 받았다.
은혜 : (네, 전화 받았습니다~)
민혁 : 아, 안녕하십니까. 아까 강장수 어르신 댁 앞에서 뵀던 청산토지자산 이민혁입니다!
은혜 : (아~ 네~ 무슨 일로?)
민혁 : 잠깐 만나 뵙고 얘기 좀 하고 싶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은혜 : (후후, 거기 매입 안되죠?)
민혁은 윤정을 한 번 쳐다봤다.
윤정은 통화를 전적으로 민혁에게 맡겨놓았는지 계속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민혁 : 네 ... 아까 방법이 아에 없지는 않다고 하신 것 같아서, 그 방법을 듣고 싶어서요.
은혜 : (으음 ... 마침 서울 올라가기 전에 전화 주셨네. 문자 찍어드릴 테니까 거기로 와요.)
민혁 : 앗! 네! 감사합니다!
통화를 끝마친 민혁.
윤정은 조금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민혁을 보고 있었다.
윤정 : 잘했어요.
민혁 : 다, 다행이야. 심장 떨려 죽는 줄 알았어.
윤정 : 심장씩이나요? ...
‘삐빅’
워프 엔진에 들어오는 은혜의 문자 내용.
가까운 읍내에 있는 카페 주소가 찍혀있었다.
민혁 : 바로 출발해 볼까?!
윤정 : 이, 이러구요?
윤정과 민혁은 서로의 옷차림을 쳐다보았다.
얼룩무늬 몸빼 바지와 목이 늘어난 티셔츠.
민혁 : 이 사람, 서울 올라가기 전이라고 했는데 늦어서 그냥 가버리면 어떡해?
윤정 : ...
윤정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임무 수행에 결정적일지 모르는 지금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 민혁.
그리고 현재 임무 수행을 주도하는 자기 모습에 조금 도취된 민혁이었다.
민혁 : 윤정아.
윤정 : 네?
윤정을 불러놓고서 정장 상의가 말랐는지 확인해 보는 민혁.
민혁 : 너껀 거의 말랐어 ... 입자.
윤정 : 지금 이 차림에 정장 자켓을 입으라구요?!
얼룩무늬 몸빼 바지에 목이 늘어난 티셔츠, 그리고 검은색 정장 자켓의 조합.
윤정 : 아니요. 이거 아니에요.
민혁 : 윤정아, 내껀 덜 말랐어. 나는 그래도 그냥 입으니까 너도 입어.
윤정 : 시, 싫어요!!
윤정은 그런 옷차림이 죽기보다 싫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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