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6)

정사장 패거리는 그대로 쓰러져 일어나지 않았다.
어안이 벙벙했다.
‘뭐.뭐야?!?!?!? 지.지금 총을 쏜 거야?!?!?’
칼 정도는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왔는데 총이라니.
이러면 이야기가 너무 달라지지 않는가.
유혈이 낭자한 현실 같지 않은 상황에 갑자기 속이 매스꺼웠다.
’우..욱. 아.안돼..!’
난 본능적으로 입을 틀어막고 억지로 참았다.
여기에서 내가 있었던 어떤 증거라도 남기면 안 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손이 절로 덜덜 떨렸다.
홍 대표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박수를 한번 딱 치면서 말을 이어갔다.
“자! 이제 마무리합시다. 너희 넷은 남아서 여기 싹 치우고 시체는...아깝지만.. 녹여. 그리고 여기서 모의하고 사라진 것처럼 꾸며야 하니까. 차랑 폰 싹 다 태우고 대포폰으로 교체한 것처럼 증거 흘려. 뭐.. 김실장이 알아서 잘 하겠지. 일 끝나면 전화하고.”
홍 대표는 문 쪽으로 향하며 계속 말했다.
“그리고 나머지 둘은 따라와. 정사장 사업장 완전히 접을 거야. 이제야 좀 인정받았는데 이대로 망칠 순 없잖아.”
홍대표의 말에 두 사람이 뒤따라 나갔고, 그들은 SUV를 타고 현장을 떠났다.
난 계속해서 모든 상황을 화면에 담았다.
그런데 아쉽게도 배터리에 5% 도 남지 않았다.
‘이런.. 여기 까진가?’
난 폰의 영상을 저장하고 다시금 쫄쫄이와 팬티에 사이에 폰을 끼워 넣었다.
건물에 남겨진 4명 중 김실장으로 보이는 이가 말했다.
“부처야. 작업 시작하자. 한 시간 안에 정리하자.”
그러면서 건물 한편에 있는 낡은 드럼통에 어떤 액체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부처라 불린 남자는 어느새 정장을 벗고 수산시장에서나 쓸법한 커다란 앞치마와 장화로 갈아입었고 한 손에는 커다란 갈고리를 쥐고 이었다.
부처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정사장 패거리 중 한 명의 다리 쪽을 갈고리로 힘껏 내려찍었다.
- 푸슉~!
살을 관통하며 섬뜩한 소리가 퍼졌다.
부처는 무감정하게 다리를 관통한 갈고리를 천장 도르래에 연결해 들어 올렸다.
그리고 능숙하게 옷을 벗기고 트럼통 속에 던져 넣었다.
벗겨진 옷은 김실장에게 전해져 드럼통 속으로 던져졌다.
부처는 줄칼로 칼을 벼리며 매달린 시체로 향했다.
부처는 줄을 내려놓고 목 쪽으로 칼끝을 겨누었다.
난 다음 장면이 너무도 뻔히 그려졌다,
‘미.미쳤어. 미친놈들이야! 뭐가 이렇게 쉬워!’
난 차마 더는 볼 수 없었고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 순간, 부처 뒤에 죽은 듯 널브러져 있던 정사장이 안광을 번뜩이며 일어났다!
정사장은 순식간에 왼손으로는 부처의 뒷덜미를 잡아당겼고,
오른손으로는 부처의 칼 쥔 손을 덥석 잡아 칼을 빼앗아 그대로 부처의 목에 들이밀었다.
부지불식간 뒤에서 덮쳐진 부처는 당황한 얼굴로 저항했다.
하지만 부처는 정사장의 힘을 당해 내지 못했다.
날이 선 칼을 부처의 목에 바짝 들이밀었다.
부처는 섬찟한 느낌에 목에 느껴지자 저항을 멈추었다.
정사장의 머리에선 분명 피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저렇게 일어난 거로 봐선 총알이 빗맞은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김실장들은 잠시 주춤했지만 금세 총을 꺼내 겨누었다.
“뭐.뭐야!! 이런 젠장!”
정사장은 부처를 방패 삼아 잡고서 그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런 씨벌! 물러서!!!!”
정사장은 그들을 경계하며 문 쪽으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곧 문에 다다르자 정사장은 왼손으로 문고리를 돌린 후 철문을 밀어 몸을 밖으로 뺐다.
그리고 반쯤 나갔을 때,
-탕!
김실장은 부처를 향해 총을 쏘았다.
총소리와 함께 내 심장은 다시 한번 내려앉았다.
“크헉!”
부처는 외마디 비명으 지르면 문에 안쪽에서 왼쪽 어깨를 움켜쥐고 신음을 흘리고 있었고,
정사장 역시 어깨에 피를 흘리며 문 밖으로 자빠졌다.
총알이 부처의 왼쪽 어깨를 관통해 정사장에게 까지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김실장이 소리쳤다.
“자,잡아!!!!!!”
“으으윽악!!!!!!”
그 와중에 정사장은 열었던 철문을 발로 거칠게 닫고는 일어서 주위에 있던 나무 판자로 입구를 막았다.
-쿵!
건물 내부에서는 김실장 패거리의 재빠른 발소리가 울렸다.
“윽..”
정사장은 어깨를 부여잡고 비틀비틀거리면서 어두운 숲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김실장 패거리 중 한 명은 부처의 상태를 살폈고,
두 명은 곧바로 철문을 쾅쾅 두르리며 건물 밖으로 나오려했다.
김실장은 창문을 깨고 있었다.
쨍그랑!
그 사이 정사장은 곧 숲속에 완전히 동화되었다.
하지만 길게 늘어진 핏자국 마저 숨길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정사장은 부상이 심했고 이대로 내버려 두면 정사장이 잡히는 건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난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어쩌지? 그.그냥 두면 잡혀서 죽을 것 같은데.!’
‘으아! 뭘 고민해! 일단 사람은 살리고 봐야지!!’
찰나의 고민 후 난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난 재빨리 정사장이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난 핏자국을 따라 그를 찾았다.
정사장은 어께의 총상 때문인지 얼마 가지 못하고 나무에 기대 쓰러져있었다.
난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괘. 괜찮아요?”
정사장은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동공이 살짝 확장되었지만 이내 빛을 잃었다.
그의 눈은 이미 썩은 동태 눈처럼 흐리멍덩해져 있었다.
정사장은 조금이라도 저항해 보려는 듯 휘적휘적 손을 뻗었다.
그리고 꺼져가는 말투로 말했다.
“...이..런.. 씨..벌.. 너..또 뭐야!?”
하지만 전신 타이즈의 옷은 잘 잡히지도 않았고, 그의 손아귀는 이미 힘이 잃어 있었다.
나 그에게 다급하게 속삭였다.
“구해줄테니. 정신차리고 몸을 내게 맡겨요!!”
내 등 뒤 숲속에서 빛이 조금씩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아마도 추격자들이 손전등 같은 걸 들고 핏자국을 따라 오는 것 같았다.
마음에 다급해 졌다.
나는 정사장을 재빨리 어깨에 둘러업었다.
그는 내 말을 믿은 것인지 저항할 기운도 없는 것인지 별다른 움직임 없이 내게 몸을 맡겼다.
힘이 조금은 강해진 덕분에 둘러업기 성공했지만 그래도 무게가 상당했다.
‘윽 무거워! 도망 칠 수 있을까?? 아니야.. 할 수 있어. 딱 일보만 가자.’
난 일단 핏자국을 끊어 추격자를 따돌리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나는 호흡을 최대로 들여 마시고 발에 힘을 잔뜩 주고서 최대한 멀리 뛰어올랐다.
- 워터붐!
내가 순식간에 날아오르자 정사장은 작지만 신음을 토해냈다.
“크윽!”
그리고 따뜻한 액체가 어께를 적셨다.
난 온 전신을 집중해서 나무가 많은 곳이 아니 제법 공터가 있는 곳까지 발을 놀려 이동했다.
혼자라면 모르지만, 사람을 둘러업고서 나무가 많은 곳은 착지하는 건 힘들 거라는 판단했다.
약 200M 이동하고 적당한 공터에 착지했다.
- 휘리릭 착!
‘으헉헉...무거워....’
일단 한시름 놓았다. 핏자국이 갑자기 끊겼으니 추격을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난 정사장을 내려놓고 잠시 상태를 살폈다.
정사장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인지 정신을 잃었다.
‘이런! 빨리 병원으로 가야겠어! 하지만... 이렇게 계속 가는 건 불가능해.’
무거워서 힘든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물이 부족했다.
‘어쩌지?’
난 다시 한번 높이 뛰어올라 주변을 살폈다. 비교적 근거리에 가까운 차도가 있었다.
‘저기라면!’
난 다시 바닥으로 내려와. 곧바로 그를 다시 둘러업고 차도로 향했다.
때마침 아주 멀리서 차량 불빛이 다가오고 있었다.
트럭이었다.
난 다짜고짜 트럭 앞을 막아 세웠다.
-끼익이!!
중년의 트럭 운전사 고개를 내밀고 욕설을 퍼부었다.
“아 이 새끼야 너 뭐ㅇ...!?”
하지만 그는 흠칫 놀라서 말을 멈췄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해골 무늬 복면 쫄쫄이가 피를 철철 흘리는 사람을 둘러업고 있는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남자는 놀란 얼굴로 말했다.
“무..무슨 일 있습니까?”
난 다급하게 그에게 말했다.
“도와주세요!! 가까운 병원으로 부탁합니다. 시간이 없어요.”
“네?! 아 네! 빨리 트럭에 타세요!”
남자는 내 진심 어린 부탁을 받아들인 것인지. 기괴한 조합이 풍기는 분위기에 압도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순순한 인류애였는지 모르겠다.
난 정 사장을 둘러업고 트럭 화물칸에 올랐고 트럭은 병원으로 향했다.
트럭이 병원에 당도했을 때, 난 트럭에서 하차해 병원 옥상을 사라졌다.
남은 일을 트럭 아저씨에게 넘겼다.
내가 남아있으면 이것저것 설명할 게 너무 많았다.
다행히 트럭 아저씨는 병원 의료진에게 손짓, 발짓하며 설명하며 정신을 잃은 정사장을 인계했다.
난 그제야 털썩 주저앉았다.
“휴 힘들었다... 몇 시지?”
난 시간을 보기 위해 스마트폰을 찾았고 몸을 뒤적이던 난 당혹감에 말문이 막혔다.
“어!!어????????어!!!!!!”
스마트폰이 없었다!
‘아.안돼! 제발제발!제발!’
난 다급하게 몸을 수색했지만 매끈하게 느껴지는 감촉만 있을 뿐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트럭 기사가 병원 안으로 들어간 사이, 난 은밀히 트럭으로 다시 접근해 살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없었다.
분명 정 사장을 구하기 전까지만 해도 있었다.
사람을 둘러업고 격렬히 움직이다 어딘가에 떨군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어디서 언제 떨어졌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난 스마트폰을 찾으러 가려다 이내 발길을 돌렸다.
하필 동영상을 찍느라 무음으로 해두었고 배터리도 얼마 없었으니 지금쯤 꺼져 있을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이 밤에 도저히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마..망할... 이게 뭐야..? 난.. 오늘... 뭐 한 거지? 증거도 사라지고.. 기분 나쁜 경험만 잔뜩 하고. 젠장.....그나마 증인 하나라도 병원으로 보냈으니...망정이지.. 에휴.. 정사장 잘 살아나겠지?’
총상을 입고 병원에 갔으니 경찰에 연락 갈게 분명했다.
살인 당할 뻔한 정사장이 살아난다면 사건의 진상이 분명 드러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 지친다.. 그래..난 최선을 다했어.... 집에나 가자..”
난 멘탈이 반쯤 나가 그대로 집에 가려다가 뒤늦게 벗어 놓은 옷가지가 생각이 났다.
다시 발길을 돌려 의료 수거함에서 옷과 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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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해 보니 2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엄마가 거실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엄마는 많이 걱정하셨던 모양이다.
“연락도 없이 왜 이렇게 늦었어!? 폰도 꺼져 있고 걱정했잖니!”
난 내가 겪은 일들을 말할 수 없었고 거짓말로 둘러댔다.
“아...그게 스마트폰을 버스에 두고 내렸어요. 찾다가 결국 못 찾고 포기하고 그냥 왔어요.”
난 양심에 가책을 느꼈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엄마는 조금은 먹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화라도 먼저하지. 엄마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또.... 실종된 줄 알고... 오늘은 늦었으니 빨리 자고 스마트폰은 다시 사든 하자구나.”
“네... 죄송해요... 엄마도 빨리 주무세요.”
“그래...”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난 피곤한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향했다.
옷을 벗어 대야에 물을 담아 대충 담가 놓았다.
그리고 목욕물을 받아 몸을 담갔다.
‘윽.. 피곤해.. 젠장... 마치 하루를 이틀처럼 산 기분이야.'
난 마치 꿈을 꾼 것만 같았다.
갑자기 이상한 능력을 얻었고 채수이를 만나고 사채업자도 만났고...... 그리고 살인...
‘우욱~’
숲속 도살장에서의 장면들이 다시 연상되어 속이 울렁거렸다.
난 도리질을 하며 물속에 얼굴을 푹 담갔다.
그 잔상이 조금이라도 씻겨 내려가기 바랐다.
“푸핫! 헉..헉..헉.. 젠장..”
하지만 꿈에 볼까 두려운 그 잔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좋은 생각 하자! 좋은 생각! 내일이면 놈들에게 복수할 수 있잖아.”
절로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노곤함에 업혀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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