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2)

‘망할, 완전히 들켰어. 조심 좀 할 걸. 어제 너무 충동적으로 행동했어... 이렇게 내 인생에 유일하게 믿는 친구에게 저격당하는 건가? 어디까지 말한 거지?’
‘이.일단 상황 파악이 먼저다.’
난 다그치듯 그에게 물었다.
“경찰한테 니가 본 거 다 말한 거야!? 어디까지 말 한 거야!?”
기환이는 내심 서운하다는 듯 대답했다.
“야! 뭐냐! 날 못 믿어!? 걱정하지 마! 아무말도 안 했고, 너랑 8시 40분까지 옥상에서 이야기 나누었다고 말했어.”
‘.......엥......!? 뭐야..이자식이 나를 들었다 놨다.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던지 아.. 혹시 뭔가 원하는 게 있는 건가?’
난 잔득 경계하며 기환이에게 묻었다.
“....원하는 게 뭐야..?”
기환이가 대답했다.
“..없는데.. 우린 친구잖아.”
어쩐지 그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기환이를 순간 의심하고 날 배신할 거로 생각한 내가 부끄러웠다.
계속해서 기환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리고 혹시 몰라서 병원이랑 주변 cctv도 해킹해서 확인했고 동선 보니까. 나갈 때는 옥상에서 동쪽 비상계단을 통해서 지하주차장으로 해서 빠져나갔다고 하면 cctv에 안 걸리더라. 거기로 나가서 좀만 가면 너가 버스 탄 곳 바로 나오니까 알리바이로는 충분할 거야. 그리고.. 다른 것도 대비 좀 해놨으니 안심해도 될 듯. 아무튼 너 어제 그거 뭐냐고! 빨리 알려줘!”
‘다.다행이다... 컴퓨터를 잘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cctv 해킹이라니 이정도 일 줄이야. 대단한 놈. 역시 이 녀석이라면 완전히 믿을 수 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지..’
난 이야기할 시간이 있는지 시간을 보았다.
하지만 쉬는 시간은 고작해야 1분,
“이런 곧 수업 시작한다. 내가 이따 병원으로 갈게. 할 이야기가 많아..”
난 재빨리 매점으로 가 아줌마에게 다시 폰을 건네주고 부리나케 교실로 돌아갔다.
당장 조퇴하고 싶었지만 너무 수상해 보일 것 같아서 차마 할 수 없었다.
난 정규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정규 수업이 끝나고 난 그길로 곧장 기환이가 있는 병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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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환이가 있는 병실로 들어가니 기환이는 병실에서 안절부절 손톱을 물어뜯으며,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듣고 있다.
“기환아!”
내가 기환이는 발견하고 부르자.
“어! 천민아!! 일단 옥상으로 가자! 빨리!”
그는 인사도 생략하고 다짜고짜 옥상으로 가자고 말했다.
난 의아했지만, 워낙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어 그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난 그를 부축해 옥상으로 향했다.
그는 가는 길에 쓰레기통 속에서 라텍스 고무장갑을 몰래 챙기며 말했다.
“지금 당장 편의점으로 가야 해.”
난 그의 생뚱맞은 말에 반문한다.
“편의점?”
“응. 여기 왔던 형사님 스마트폰을 잠깐 빌려 쓰면서 해킹해 놨거든. 문자랑 전화 보고, 들을 수 있게. 지금 듣고 있던 게 그거야. 근데 지금 좀 위험해?”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이어지는 기환이의 말에 저절로 눈이 커졌다.
“블랙 스컬이 어젯밤 자신의 편의점에 왔었다고 댓글을 달았고 동영상을 올렸어. 경찰이 이미 그 편의점 CCTV를 봤고, 지문 확보하러 사람을 보냈어.”
“뭐!?!??”
피 말림의 연속이었다.
우리 옥상으로 올라와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난 재빨리 가방에 넣어 두었던 쫄쫄이를 꺼내 입었다.
기환이는 내가 옷을 입는 동안 속사포처럼 주의 사항을 말했다.
“편의점에 가면 내가 준 도구로 니 지문이 있을 만한 곳을 모두 닦아. 하드도 없애서 니가 그 편의점에 다시 가면서 생길지 모를 추가 정보를 없애면 좋은데. 여의치 않으면 그냥 튀어. 가장 중요한 건 지문이야. 그리고 너 어제 보니까 맨발이던데 최소한 편의점 들어갈 땐 양말이라도 신어야 해. 알겠지?”
“어! 응. 알겠어”
그가 시키는 대로 양말과 옷을 입고 기환이가 준 라텍스 고무장갑과 손수건을 대충 허리춤에 꽂아 넣었다.
밝은 곳에서 보니 다크 포스를 뿜어내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고 그냥 쫄쫄이 변태 같았다.
물론 지금은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난 손으로만 워터 붐을 써서 무작정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니 어제 그 알바생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앉아 있었다.
내가 편의점으로 들어서자 알바생은 기겁하며 주저앉아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묻지도 않은 말을 막 지껄이기 시작했다.
“으..악!!! 잘못했어요! 전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난 이번엔 최대한 근엄한 음성으로 변조하고 말했다.
“쉿~ 하드를 주면 유혈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알바생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자신이 먹던 아이스크림 하드를 내밀었다.
“...???......풋....푸하하하핫 CCTV 하드디스크 달라고요! 푸하하하 생각지도 못하게 빵 터졌네.”
난 순간 알바생의 엉뚱함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알바생은 자기가 생각해도 스스로가 웃긴지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난 웃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다시 근엄하게 말했다.
“흠흠.. 하드 값은 따로 부치겠소. 부탁하오.”
그는 의외로 순순히 내가 원하는 대로 하드를 가지러 들어갔다.
난 그사이에 기환이게 받은 라텍스 장갑을 끼고 손수건을 들고 어제 내가 만졌던 부분들을 생각나는 대로 닦아 냈다.
어제 갈증이 심해 얼결에 한 행동들이기에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또... 또... 어디지..?’
그때 어느새 하드를 꺼내서 들고 온 알바생이 나를 불렀다.
“저..저기요!”
난 근엄한 척 고개만 살짝 돌려 대답했다.
“왜 그러시오?”
“어제 저기도 만지셨는데요.”
난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여기 말이오?
알바생은 답답하다는 듯 대답했다.
“아니요. 거기 말고 조금 더 왼쪽이요. 아이~참! 제가 도와드릴게요.”
알바생은 친절하게 나를 도와주었다.
‘잉?!?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스톡홀롬 신드롬인가?’
알바생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참! 어제 마셨던 생수통도 마저 닦아야겠네요.”
알바생은 재활용 쓰레기통을 손수 뒤진 후 내가 먹은 생수통의 겉을 닦아 냈다.
난 자연스레 입을 틀어막고 감탄했다.
‘이.. 남자 뭐지..? 너무 치..친절하잖아!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던가!?’
알바생이 왜 나에게 그토록 친절하게 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에게 엄청난 행운이었다.
잠시 후, 난 내가 만진 부분들을 다 닦은 것 같았고 그에게 인사를 건네며 작별을 고했다.
“본의 아니게 피곤하게 했구려. 다음에 이 신세는 꼭 갚겠소. 그럼 이만.”
알바생은 하드를 내게 건넨 후 손까지 흔들며 배웅했다.
“아니에요. 살펴가세요~ 또 오세요!”
************
난 무척 기분 좋게 옥상으로 돌아왔다.
“기환아. 나왔다.”
“잘 처리했어?”
“응. 여기 하드도 가지고 왔는걸.”
내가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기환이는 자신의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왔다.
“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 능력은 뭐고!?”
난 기환이에게 간략하게 내가 능력이 생긴 경위와 능력에 관해 설명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경찰과 있었던 일도 모두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기환이는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기환이는 내 말을 다 듣고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쳤다.
“소름! 내가 본 것들이 진짜구나! 그럼 넌 슈퍼파워를 가진 메조키스트가 된 거네!!?”
“응!?...응..그렇지.”
‘뭐지? 기분 나쁜 건 그냥 기분 탓인가?’
기환이가 계속 말을 걸었다.
“그럼 내가 벌레를 먹어도 너처럼 될까?”
“음.. 한번 먹어봐. 나도 궁금하긴 하다.”
기환이는 잠시 생각하다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능력 생겨도 그건 역시 절대 못 먹겠어... 뉴스 보니까 그 벌레는 포식자도 없다던데? 그리고 개, 돼지도 안 먹는 거래. 난 능력 있는 친구 둔 거로 만족 할래... 하.하”
‘뭐지.. 눈뜨고 쌍 따귀 맞은 이 느낌은? 기분 탓이겠지? 는 개뿔! 당장은 기환이 놈이 은인이라 봐준다. 쩝’
“그건 그렇고. 문제는 내가 완전히 용의선상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거야. 그 최경위가 엄청 집요하더라고. 방법이 없을까?”
“일단 혹시 모르니까 너희 집에 너의 요상한 취미와 관련된 도구들과 영상을 사서 저장해둬. 아! 이왕이면 진짜로 맞고 좋아하는 영상을 찍어두면 더 좋고.”
“내가 맞고 좋아하는 걸 찍으라고? 막 채찍 같은 거로? 동영상도 녹화하고?”
“응.”
“.......정말 그 방법이 최선일까?”
“크흐흐흑 니가 이미 말을 그렇게 해둔 걸 어쩌냐? 뭐 사실은 차선책이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만들어 두긴 하자. 없는 것 보단 나을 듯.”
난 자꾸 놀리는 기환이를 보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말했다.
“야! 왜 차선부터 말해 최선을 말해”
“크큭 미안 알겠어. 현재 경찰은 워낙 잔인하게 원근이만 괴롭혔으니 원한 관계로 상정하고 수사를 하고 있어. 그러니까 원한 관계가 아니라 니가 히어로처럼 여러 활동을 하다가 우연히 중학생을 구한 것처럼 위장하는 거야. 사실 이미 블랙스컬의 활동은 정사장 병원 이송부터 시작되었으니까 충분히 가능해. 이미 사람들에게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런데 문제는 정사장이 회복 중 깨어나서 갑자기 도망쳤잖아?“
난 기환이 말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뭐? 정사장이 도망쳐?”
기환이는 의외라는 듯 말했다.
“응 몰랐어?”
폰도 없고 내 상황이 상황인지라 전혀 신경쓰지 못했다.
‘어째서 도망쳤지..? 그럼 홍 대표 그 살인자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상념에 빠지니 기환이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집중해!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아무튼 정사장이 도망치니까 사람들은 그가 도망친 이유가 범죄자라서라고 말하고 있어. 그러니까 현재 블랙스컬의 이미지는 범죄자 살려주고 학생은 죽일 뻔했다는 거지. 물론 최원근 인성이 쓰레기라는 여론이 아직은 조금 우세하지만, 현재 언론이 너의 안 좋은 면들을 부각시키고 있단 말이지. 그건 수사를 가속 시킬 뿐이야.
“그러니까 결국 니 말은 히어로처럼 자경단 활동을 해야 한다는 거지?”
“그렇치! 선한 이미지를 최대한 부각시켜 경찰도 쉽게 못 건드리지 만들어야지. 그리고 니가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려면 네가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을 때, 블랙 스컬로 다시 등장해야 해!”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가능한데? 알리바이 만드는 거 쉽지 않아..”
“조금 아픈 방법이 있긴 한데 한번 해볼래?”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야! 뭔데? 빨리 말해봐!”
기환이는 내게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소근소근
‘음.. 좋은 방법 이긴 한데... 아플 것 같은데 ...’
“........ 조금 아픈 거라며?”
“인생은 마음먹기 달린 거래.”
“얼씨구. 원효대사 나셨네. 그럼 니가 해볼래?”
“난 그런 능력이 없잖아. 넌 메조키스트이기도 하고.”
난 기환이 말에 발끈해 소리쳤다.
“아오! 이 자식이! 메조키스트 아니거든! 하.. 근데 괜찮은 방법이긴 하네..”
기환이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환이 녀석의 눈이 이토록 초롱초롱하게 빛난 것을 본 적이 있었던가?
“일단 연락을 해야 하니까. 핸드폰부터 사야겠다. 그리고 네가 입은 그 누더기 솔직히 너무 구려. 이미지를 좋게 바꿔야 해.”
“야. 핸드폰 살 돈도 없는데 옷 살 돈은 더더욱 없다.”
“돈은 내가 조금 있어?”
기환이의 말에 난 지금껏 놀림당한 것을 갚아줄 요량으로 기환이를 업신여겼다.
“니가? 풋~ 얼마나 있는데?”
“그렇게 많지 않아. 지금은 좀 많이 써서 5만 달라 정돈 있어.”
“푸푸풋~ 5만원 가지고 뭘 한다고..... 잠깐! 달라 라고? 5만 달라 면... 일십백천...? 5천만원?”
“응”
난 깜짝 놀랐다가 기환이를 비웃으며 말했다.
“뻥치시네! 네가 그 돈 있으면 난 빌게이츠다. 네가 그 돈을 무슨 수로 벌어?”
“진짜야. 버그바운티 해서 벌었어.”
표정이 몹시 진지했다.
난 계속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다.
“그게 먼데?”
“쉽게 말하며 프로그램에 오류나 약점을 지적, 수정해주고 돈 받은 거야.”
‘뭐지 정말인가? 분명 표정은 찐인데....’
“그게 그렇게 돈을 많이 주는 거야? 음...못 믿겠어.”
기환이는 스마트 폰으로 자신의 통장 잔고를 보여 주었다.
‘55,230,000....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이 양파 같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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