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4)

동전에 지문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
‘이런 바보 같은! 아니!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하늘이시여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심장이 요동쳤다.
내 눈빛이 흔들리는 걸 본 최경위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어라~ 동공이 확장되네? 역시 무언가 있긴 있네. 그치?”
순간 얼음물을 뿌린 듯 등줄기에 서늘했다.
당황스러움에 절로 눈이 켜져 그 표정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내 두뇌는 맹렬히 회전했다.
‘침착하자. 이미 CCTV 하드는 이미 우리가 폐기했다. 내가 졸졸이 입고 다녀간 부분만 인터넷에 떠돌지 전체 파일은 없다는 말이다. 즉 편의점을 들렸던 사람을 확인할 길이 없는 셈이다. 당황할 필요도. 쫄 필요도 없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그를 보고 말했다.
“그게 아니라. 저도 그 편의점에 들렸었다구요. 그걸로 의심하니 황당해서 그래요. 그게 무슨 증거가 돼요! 자 지문 따가세요. 전 잘못 없으니까.”
오히려 당당하게 나가자 최경위는 뜻대로 잘 안 풀린다고 생각했는지 인상을 구겼다.
내가 지문을 못 따게 할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자식이 뭐 이렇게 당당해! 동전에서 지문만 나오면 넌 빼박이야! 이자식아!”
난 그런 그에게 한심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참 이상하시네.. 제가 가졌던 돈을 다른 사람이 써서 그 동전에 거기 있을 수도 있고, 실제 용의잔데 다른 사람이 이미 거슬러 갔을 수도 있는 건데. 동전에 지문 있으면 빼박이라고요? 그게 증거 효력이 있다구요? 무슨 수사를 그렇게 하세요? 진짜 황당하네.. 그냥 저를 잡고 싶다고 하세요.”
옆에 있던 민경선 형사는 내 말에 수긍했는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최경위는 약간 상대의 표정이나 감에 치중해 주먹구구식으로 수사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난 그의 끈질긴 위협에 포기했다는 듯 말했다.
“자 빨리 지문 따고 사라져 주세요.. 피곤하니까.”
형사들은 기어코 내 지문을 따 갔다.
분명 증거 효력이 없을 것 같았음에도 괜히 마음이 다급해졌다.
‘계획을 빨리 실행해야겠어.’
그들이 돌아간 것을 확인한 난 물을 계속 마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등을 움직여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난 내 발등이 완치되었음을 직감했다.
난 깁스의 종아리 뒷 부분부터 아킬레스건까지 조심스럽게 잘라냈다.
나중에 다시 다리에 낄 수 있도록 말이다.
난 완치의 의미로 맞은편에 기환이에게 엄지를 척하니 올려 괜찮음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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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낮 2시, 기환이는 노트북으로 종일 무언가 하더니 마침 잘되었다는 표정으로 내 침대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병실 침대 커튼을 치고 속삭이듯 말했다.
“드디어 사건이야! 이제 능력을 발휘할 때가 왔어. 일단 이건 귀에 계속 꽂고, 이건 팔뚝에 감아서 스마트폰 넣는 데 써. 나랑 계속 연락할 때 쓸 거야.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상황이 어떤지 수시로 알려 줄 테니까.”
“응.”
난 기환이의 말을 들으며 챙겨 준 블루투스 이어폰과 스마트폰을 몸에 거치할 수 있는 팔뚝형 암 밴드를 받아 왼팔에 장비했다.
그리고 내가 만든 쫄쫄이 옷을 입은 후, 병실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날아올랐다.
-쉬익~ 붕!
마치 히어로물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마음이 들떴다.
“아아~ 천민아 들려? ”
난 기환이의 말을 끊고 말했다.
“잠깐! 잠깐! 나 생수 좀 사고”
난 극심한 갈증으로 아찔한 경험을 했으니 자연스레 생수부터 챙겼다.
그리고 내 편이 되어 줄 것 같은 귀요미 알바생이 있는 편의점으로 다시 찾아갔다.
“안녕하시오.”
그는 새로운 쫄쫄이에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금세 나를 알아봤다.
그리고 그는 내게 은밀히 다가와 말했다.
“저기요! 경찰이 동전 수거해가기 전에 쓴 동전만 미리 회수해서 닦아 놨어요. 무슨 살인 사건도 아니고 뭐가 그리 열심히 인지... 댓글 보니까 그 애들 완전 쓰레기던데. 잘하셨어요. 화이팅!”
‘오! 사회가 이리도 아름다웠던가!’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다.
난 엄지를 척 올리며 말했다.
“오! 정말 감사하오! 하지만 지금은 바빠서 이만 실례하겠소.”
난 지체하지 않고 비상용 생수 500ml 2개 샀다.
물론 지문은 잘 닦고 현금으로 결제했다.
그리고 허리춤에 생수를 장착하며 말했다.
“내가 온 것은 비밀로 해주시오.”
알바생은 힘차게 손을 흔들며 밝게 대답했다.
“네! 또 오세요!”
난 편의점 밖으로 나가자마자 힘차게 날아오른다.
“기환아. 길 안내 해줘~”
“갈 곳은 화제 현장이야. 신고 들어 간지 벌써 5분 지났어.”
그가 말을 듣고 보니 멀리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야! 혹시 화재 현장이 서울 타워 쪽이냐?”
“어? 응. 맞아.”
“화제가 큰가 본데? 연기가 많이 나! 안내 받을 필요도 없겠다. 아! 아니다. CCTV를 피해야 하는구나!”
“어. 지금 진행 방향으로 직진!”
우리 이동할 때 한강 이용하기로 했다.
구름은 낮게 형성된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이용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한강이었다.
무엇보다 서울 중심을 관통하니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다.
난 한강을 타고 화제 현장으로 갔다.
도착하니 9층 높이의 큰 건물에서 엄청난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특히 1층 창문은 화마가 타고 넘어 오는 게 보일 정도로 심각했다.
아마도 1층에서 발화가 시작된 것 같았다.
소방차는 건물 사다리를 대고 창문을 통해 사람들을 빼내고 있었다.
빠져나온 사람 중 일부는 쓰러져 119대원에게 응급 조치를 받고 있었고,
또 일부는 아직 못 나온 사람이 있는지 119 대원에게 화제 현장을 가리키며 울부짖고 있었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가볍게 출발했던 마음과 달리 마음이 무거워졌다.
난 재빨리 도울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건물 6층에 깨진 창문에서 구조의 손길을 요청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난 일단 눈에 보이는 사람부터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곧바로 6층 창문으로 날아가 난간에 서서 말했다.
“날 잡아요!”
그들은 갑자기 이상한 복장의 사람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니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날 잡지 않았고 잠시 망설였다.
난 시간이 생명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들을 재촉했다.
“잡아요! 빨리요!!”
그중 한 사람이 먼저 용기를 냈다.
난 그를 안고 적절히 속도를 유지하며 아래로 내려갔다.
한 번 사람이 안전하게 내려간 것을 확인한 사람들이 내게 의지하기 시작했다.
난 계속해서 위아래로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구조 대원 중 일부는 내가 구해 온 사람들의 응급 처치를 했다.
어느새 깨진 창문으로 6층에 고립되었던 사람들이 더 몰려들었다.
벌써 손발이 후들거렸다.
생각 이상으로 힘이 들었다.
‘헉.헉.헉’
그렇다고 멈출 순 없었다.
난 계속해서 몸을 움직였다.
사람을 안은 상태였기에 워터 붐을 더 정밀하게 사용해야 했고, 호흡도 힘들었고 수분 소모도 더 많았다.
어김없이 갈증이 찾아왔다. 비상용으로 쓰려고 했던 생수도 금세 동이 났다.
‘헉.헉. 젠장..’
내가 잠시 주춤한 사이 구조 대원은 벌써 다음 올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 소방 호수로 물을 뿌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물줄기에 몸을 적시려 했다.
근데 그 수압이 생각 이상으로 강력해 내 몸은 휘청거리며 낙하했다.
중간에 정신을 차려 바닥과의 충돌은 피할 수 있었다.
난 어쩔 수 없이 소방대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물이 필요해요! 물! 부탁해요!
그 소방대원은 내 이상한 행동에도 당황하지 않고 뛰어가더니 생수를 챙겨 가지고 왔다.
확실히 베테랑들의 상황파 능력은 남달랐다.
난 벌컥벌컥 마시고 다시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다시 몸을 움직였다.
난 그곳에 모여 있던 마지막 한 명까지 내려주었다.
‘헉.헉.헉.. 쉬고 싶다.’
문득 휴식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내 안에서 꿈틀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층에도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고,
구조대원들의 일손이 터무니없이 부족해 보였다.
난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나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창문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날아갔다.
다시 반복된 구출, 중노동이 따로 없었다.
그나마 다행은 센스 있는 구조 대원이 내가 생수가 필요한 것을 눈치채고 보급을 착실히 해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난 파김치가 될 때까지 발을 움직였다.
더는 창문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은 없었다.
‘헉.헉.헉 이제.... 내 할 일은 끝인가...?’
난 지칠대로 지쳤고 남은 일은 전문가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막 떠날 참이었다.
그런데 웬 사내 하나가 구조 대원들의 저지도 뚫고서 다급히 달려와 울먹이며 말했다.
“도.도와주세요. 흑흑. 혜원이가 아직 못 나왔어요. 흑흑 도와주세요. 제발”
난 너무도 간절하게 매달리는 그를 보고 있자니. 차마 매정하게 뿌리치고 갈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난 거친 숨을 쉬며 그에게 물었다.
“헉.헉. 혹시 몇층인지 아세요? 헉.헉.”
“7. 7층이요!! 이름은 혜원이에요! 김혜원!”
난 그의 말을 듣고 생수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다시 7층으로 들어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7층은 불이 이 정도로 심한 것 같지 않았는데 어느새 불은 삽시간에 번져있었다.
부적절한 설계 탓인지, 건물 자체를 너무 타기 쉬운 소재로 만든 탓인지, 불길은 점점 더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난 먼저 창문 근처에서 불을 향해 워터 붐을 써본다.
불은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꺼졌고 조금 있자 다시 살아났다.
‘됐어! 이 정도면 쓸만하겠어!’
난 곧바로 더 내부로 들어갔다.
연기는 점점 짙어져 식별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난 어쩔 수 없이 소리를 치며 건물을 돌아다녔다.
“혜원씨! 혜원씨! 있어요!??”
그때 화마에 타는 소리를 뚫고 어렴풋이 도와달라는 소리가 들렸다.
“여.여기요!! 콜록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콜록”
난 그 소리에 의지해 그들을 찾아갔다.
난 워터 붐을 날려 나를 덮쳐오는 화마를 잠재워 가며 이동했다.
하지만 연기마저 모두 막을 수 없었고 메케한 연기는 자꾸만 코끝을 파고들었다.
소리의 진원지에 도착하니 화장실이었다.
“혜원씨?”
문 안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네!네! 살려주세요!”
난 화장실에 철문을 열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이 정도의 열기라면 문고리는 불에 의해 달구어져 있을 것이 뻔했다.
난 문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뒤로 많이 물러서세요!!”
그리고 워터 붐을 사용해 문을 거칠게 열었다.
그곳엔 여자가 둘 있었다.
아마 화장실에 있다가 삽시간에 번진 불로 피하지 못하고 그냥 연기만 막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난 그들에게 다시 말했다.
“두 분 모두 따라오세요!”
그들은 소방대원이 아닌 이상한 쫄쫄이 맨이라 절망한 얼굴이었다.
난 마침 덮쳐오는 불길을 워터 붐으로 잠재우며 말했다.
“빨리 따라와요!”
그들은 내 행동에서 희망을 얻었는지 반색하며 날 따라나섰다.
난 가장 가까워 보이는 창문을 찾아 이동했다.
그녀들은 다행히 고개를 숙이고 날 잘 따라왔다.
난 창문을 깨고 그녀들을 구조 대원 곁에 안전하게 내려주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이라고 한 사람이 허둥지둥 달려왔다.
“혜원아! 혜원아!!”
난 그 모습을 뒤로하고 마지막 힘을 쥐어짜 워터 붐을 사용해 현장을 빠르게 벗어났다.
내가 할 일도 없어 보였지만 무엇보다 몸이 한계였다.
몸을 겨우 움직이고 있었지만, 내 마음대로 잘 컨트롤 되진 않았다.
몸이 근육이 사시나무처럼 떨려 한강까지 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내가 현장을 벗어나는 움직임을 보여서인지 기환이가 말을 걸어왔다.
“잘 해결했어?”
난 대꾸할 힘도 없었다.
“........”
그저 이를 앙 다물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한강을 향해 뛰었다.
“여보세요?? 야! 천민아!”
그리고 한강이 보이자 난 힘이 절로 빠졌고 그대로 한강으로 추락했다.
-풍덩!!
“여.여보세요? 야! 천민아! 여보세요!? 야!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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