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5)

난 잠깐 한숨을 돌리고 그에게 말했다.
“헉.헉... 응... 괜찮아... 잠시만 쉴게..”
난 한강에 둥둥 떠서 잠시 몸을 회복했다.
몸에 떨림이 좀 멈췄을 때, 다급한 기환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천민아!! 쉴 때가 아니야!! 블랙스컬이 다시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돌자. 최경위가 이쪽으로 사람을 보냈어!!”
‘이런 망할!! 집착남 같은이!!’
난 스프링처럼 물에서 뛰쳐나와 전속력으로 하늘을 달렸다.
“공유할 게 들어봐.”
기환이가 무언가 조작했는지 블루투스 이어폰에서 최경위의 목소리가 들린다.
동전 사건 이후 불안했다.
그래서 이미 해킹한 경찰의 폰을 이용해 다른 주요 경찰 인원들의 폰도 해킹해두었다.
그게 이렇게 바로 쓸모 있을 줄이야.
“야 민경선 어디야? 한국병원에서 가깝냐?”
“예. 한 5분~ 10분 정도 걸리지 말입니다.”
“그럼 빨리 한국병원으로 가서 신천민 그 자식한테 가봐.“
“왜 그러시는지 물어봐도 됩니까?”
“지금 강동 경찰서 김 경위한테 전화 왔는데, 화제 현장에 블랙 스컬 이랑 행동이 똑같은 놈이 다시 나타났데. 그게 신천민인지 확인 좀 해봐. 지금 병실에 없으면 그 새끼일 확률이 높잖아.”
“경위님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리 다쳤는데 어떻게 거기 있겠습니까? 그리고 지문도 결국 없었지 않습니까?”
“야! 위장했을 수도 있잖아. 그리고 그 새끼 장풍 쏘고 날아다니는 거 못 봤어? 무슨 능력이 더 있을지도 모르잖아.”
난 그들의 말에 등골이 서늘해졌고 마음은 더 다급해졌다.
괄약근이 찌릿찌릿했다.
기환는 떨리는 음성으로 내게 말했다.
“지.지금 속도로는 민경선 형사랑 거의 비슷하게 도착할 것 같아. 더 속력 좀 내!”
“응!”
난 몸을 계속 움직였다.
난 제시간에 도착하길 간절히 기도했다.
거의 도착할 무렵 다시 기환이 목소리가 들렸다.
“어떡하지? 벌써 왔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기환이는 최후의 수단을 썼다.
“일단 내가 대신 누워 있을게! 지금부터는 민형사 폰 소리만 실시간으로 들릴 거야. 상황 봐서 행동해.”
잠시 노트북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고 기환이는 내가 실시간으로 상황파악을 할 수 있도록 민경선 형사의 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시끌벅적한 곳을 지나 신호가 끊어진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엘리베이터인 것 같았다.
잠시 후 다시 발소리가 들렸다.
- 뚜벅뚜벅
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커튼을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 촤락~
내 병실 침대의 커튼을 걷어 내는 소리 같았다.
심장이 덜컹
자이로 드롭이라도 탄 듯 내려앉는다.
곧바로 다시 커튼을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 촤락~
‘드.들킨 건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민형사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띠리링 띠리링
“최경위님 한국병원 도착했고 와보니 자고 있습니다.”
기환이가 이런 경우 대신 누워있기로 했는데 다행히 그냥 슬쩍 보기만 한 모양이었다.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최경위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야! 제대로 확인했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지 말입니다. 깨우기는 좀 그렇지 말입니다.”
“야! 이 새끼! 똑바로 안 해? 제대로 확인해!”
-띡! 뚜뚜뚜..
민경선 형사의 통화가 끊어졌다.
그리고 민경선 형사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아 씨발새끼! 진짜 개 짜증나네. 그럼 자기가 확인하지! 절차 무시하고 인원 동원한 거 확 찔러 버릴까? 씨발 막말로 원근인가 뭔가 하는 조카 새끼가 애들 먼저 괴롭힌 거더구먼. 그런 새끼는 당해도 싼 거 아니야.”
‘흠.. 사이가 좋지 않구나!? 근데 조카 새끼..? 최원근이 조카라는 말인가?’
최경위가 나를 왜 이렇게 집요하게 괴롭히는지 비로서야 깨달았다.
짜증이 섞인 민형사의 걸음이 빨라졌다.
- 다다다닷
민경선 형사는 다시 병실로 들어와 다시 커튼을 들추었다.
촤락~
“신천민 학생 일어나봐.”
“음...음... 뭐야?”
난 막 일어난 듯 연기를 하며 뒤집어썼던 이불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휴~시간 맞춰 다행이다.’
민경선 형사가 통화하는 사이 난 창문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기환이는 재빨리 침대 밑으로 숨었고 나와 교대했다.
하지만 복면만 벗은 상황, 아직 아래는 쫄쫄이 옷을 입은 그대로였다.
난 목만 내밀고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하~ 왜 또 왔어요? 진짜 스트레스받아 죽겠어요.”
민경선 형사는 살짝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문득 열린 창문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서.설마 조금 더 열렸다고 그 차이를 알아채진 않겠지?’
-꿀꺽
마른침이 넘어갔다.
“아~ 이거 미안하다. 계속 자.”
‘휴~ 괜히 심장을 쪼이네..’
민경선 형사 다시 커튼을 쳐주고 나가며 전화를 걸었다.
이어폰으로 그들의 대화가 들렸다.
“여보세요. 확인했습니다.”
“확실히 얼굴 확인했어?”
“예.... 최경위님 이제 그만 좀 하시지 말입니다. 조카 말만 믿고 너무 표적 수사하고 있지 말입니다.”
“아 그래? 형사 생활하면서 이런 촉이 오는 경우는 드문데.. 다친 시기도 그렇고 우연치고는 너무 공교로운데..”
정말 이 정도면 병이었다.
“아무래도 수상한데.. 아 그 새끼 GPS는 조회해봐. 방송 보니까 팔뚝에 폰 같은 거 있던데.”
“네네. 서에 들어가서 요청서 한번 넣어 보겠습니다.”
‘흥! 그럴 줄 알고 내 스마트폰은 여기에 놔두고, 난 기환이가 따로 준 대포폰 들고 나갔지. 이게 바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다. 이거야! 움하하핫’
난 최경위에게 한 방 먹인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알았다. 이따가 서에서 보자.”
그 말에 긴장이 확 풀렸다.
몸에 진이 다 빠진 느낌, 기환이는 침대 밑에서 기어 나와 옆에 있는 보호자용 침대에 대자로 누웠다.
그리고 말했다.
“시.시발 진짜 좆 될 뻔했네.”
기환이가 욕하는 건 처음 봤다.
굉장히 어설펐다.
나 역시 긴장이 풀리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휴~ 이만하면 용의선상에서 벗어났겠지?”
“일단은? 여기서 더 의심하면 그땐 니가 날 채찍으로 때려야지.”
“그래. 참. 기대된다.”
난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반문했다.
“뭐!?”
“농담이야. 농담 크크크큭”
그때 기환이는 문득 무언가 생각났는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말했다.
“아! 그건 그렇고 천민아... 나는 정말 실망했다....”
“니가 중대장이야 뭐야? 갑자기 왜 실망해!?’
“이 자식아! 청순과 귀여움, 섹시를 동시에 겸비한 채수이랑 연락 끊긴 것처럼 말했잖아!?”
그냥 채수이라고 하면 되지.
미사여구는 왜 붙이냐! 라고 쏘아 주고 싶지만. 나도 공감은 갔다.
“응 그때 번호 날아가서 연락 안 된다니까... 나도 아까워 죽겠다.”
사실은 연락했다.
전화번호는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있었다.
이미 폰 잃어버렸었다고 연락했고 그 후 계속 연락하고 있었다.
다만 기환이를 위한 서프라이즈를 위해 말하지 않고 있었다.
“우씨! 뻥 치지마!”
기환이는 몹시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나한테 왜 말 거짓말했어!”
‘이렇게 밝히려던 건 아니었는데 할 수 없지.’
난 마술사가 마술을 소개하는 것처럼 포즈를 취하고 말했다.
“따.따란! 서프라이즈!”
기환인 내가 의도적으로 거짓말했다고 생각했는지 배신을 선포했다.
“.....배신자.....우씨! 신고해 버릴 테다!”
여자 하나 때문에 믿음직스러운 친구가 돌변했다.
물론 단순히 여자 하나는 아니지만. 난 상처 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헐..... 여자 하나에 친구를 버리려고...?”
기환이는 내게 따지듯 이야기했다.
“여자 하나? 수이님을 여자 하나라고 표현한 거야 지금!? 그리고... 그냥 스쳐 가는 인연이라더니? 다쳤다니까 병원으로 온다는데!?”
‘엥? 이건 무슨 소리? 내가 다친 걸 이야기한 건가!? 아니 이놈이 남의 핸드폰으로 무슨 짓을!’
난 기환이를 향해 수줍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굿 기환! 내 맘을 잘도 읽었군. 솔직히 내 손으로 ‘나 다쳤어’라고 차마 쓸 수 없었는데. 대신 써주다니 사랑한다! 인마!’
“이 자식! 잘했다! 그래서 언제 온다는데?”
난 수이가 온다는 소식에 벌써 마음이 들떴다.
“오늘 5시에!”
“뭐!?!”
1시간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우린 서로의 몰골을 확인했다.
기환이는 헝클어진 머리에 추레한 환자복을 입고 있었고, 난 요상한 쫄쫄이 복장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매우 구렸다.
“.......망할! 이런 몰골로 볼 순 없지! 머리 감고 머리도 손질 좀 해야겠어!”
“그치? 역시 아플 때는 카디건이지!”
기환이는 능력이 있는 나보다 빠르게 목발을 짚고 화장실을 향해 날듯이 날아갔다.
갈비뼈의 아픔 따윈 채수이 방문 소식과 함께 사라져버린 모양이었다.
‘질 순 없지! 워터 부.. 이 아니지 흥분해서 나도 모르게 능력 쓸 뻔했네.’
우린 폭풍처럼 꽃단장했다.
머리 자연스럽게 세팅하고 기환이가 어디선가 공수해 온 검정 카디건을 걸치고 향수도 뿌렸다. 들뜬 마음으로 병실 침대에 앉아 수이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폰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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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 [지금 한국병원 앞이야! 몇 호실이야? ㅎㅎ]
천민 : [407호 ㅋㅋ]
수이 : [응응! 지금 갈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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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이가 병실로 들어왔다.
채수이가 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천민아!”
병실 입구의 채수이는 나 연예인이요 하는 복장을 하고 등장했다.
난 채수이의 목소리가 들리자, 괜히 창가 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손가락 세 개를 펴고 새끼손가락을 살짝 굽힌 후 팔을 들고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어~ 왔어?”
드라마 보면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장면이었다.
“풋후흐 야! 너 뭐야 나온다고 꽃단장 한 거야? 향수 냄새 뭐야. 킥킥킥 진짜 웃겨.”
채수이는 내 예상과는 아주 다르게 혼자 박장대소를 했다.
허세도 역시 연예인이 해야 제 맛, 내가 하면 그저 코믹인가 보다.
난 당황하지 않은 척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서.성공이야! 네가 자꾸 웃기다고 부담 줘서 이런 설정까지 했잖아. 하.하.하”
수이는 내가 구해주고 만원만 달라고 한 것과 내가 삐까 소리 내며 사채업자 사무실로 다시 뛰어 올라가려 했을 때를 거론하며 내가 똑똑한 멍청이 같아서 웃기다고 했다.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날 재밌어했다.
“그럼 성공했네. 킥킥 근데 어쩌다 다친 거야?”
“내가 다치면 네가 와 줄 거 같아서 다쳤지.. 는 농담이고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서 굴렀어.”
난 장난스럽게 대답하려다 괜히 쑥스러워져서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으이구~ 조심 좀 하지. 내가 이래서 널 보고 똑청이라고 하는 거야.”
채수이의 걱정 어린 핀잔이 싫지 않았다.
“그.그래도.. 똑청이는 좀...”
갑자기 시선이 느껴져 보니, 의사로 보이는 이가 문을 붙잡고 남의 담장을 넘보는 도둑처럼 힐끗힐끗 보고 있었다.
그들이 날 부러운 듯 바라보니 괜히 우쭐해졌다.
그리고 더 강렬한 시선이 있었으니
기환이가 분노에 가득 차 날 째려보면서 문을 쿵 닫았다.
‘아!....미안하다. 이제 생각났다.’
“아참! 이렇게 갑자기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내가 전에 말한 기환이. 기환아 이리와.”
기환이는 금세 표정이 바뀌어 눈 만난 강아지 마냥 좋다고 쫄래쫄래 다가왔다.
기환이는 빠르게 목발을 짚고 수줍게 다가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천민이 친구 신기환입니다.”
수이는 기환이를 빠르게 훑어보고는 말했다.
“아! 네가 만나 달라고 했던! 안녕 내 팬이라며? 반가워!”
기환이는 부끄러운 듯 눈도 못 마주치고서는 작게 말했다.
“아.안녕하세요.”
수이는 웃으며 말했다.
“뭐야~ 천민이 친구라며 너도 말놔! 근데.... 손잡고 같이 넘어진 거야? 왜 같이 있어?"
엄마와 똑같은 질문에 순간 데자뷰는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어째서 친구와 같이 병원에 있는 것의 결론이 손잡고 넘어지는 거지. 내가 남자랑 손잡고 다닐 것처럼 생겼나.’
"아니. 기환이는 차에 치여서 먼저 입원했어."
"헐~ 정예멤버는 다르네. 게다가 성도 같고.”
수이는 기환이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내게 다시 질문했다.
“그니까. 아마 아주 먼 친척쯤 되는 모양인데. 고등학교 때 처음 봤어.”
“그렇구나. 진짜 인연이긴 하네.”
분명 잘 얘기하고 있었는데 기환이가 끼자 왠지 대화가 뚝 끊겼다.
순간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수이는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러다 갑자기 손뼉을 딱 치더니 입을 열었다.
“아참! 너 생수맨 영상 봤어?”
“......생수맨이 뭐야?”
“그 왜~ 오늘 오후에 불난 곳에서 사람들 살리고 유유히 살아진 쫄쫄이 맨, 그 사람이 생수맨이라고 하던데?”
‘.....!???? 이게 무슨 소리야??? 생수맨??? 서.설마 날 말하는 거야? 이... 거지 같은 네이밍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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