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 (1)

이제 겨우 용의 선상에서 조금 멀어졌는데, 다시 그들의 눈에 오를 순 없었다.
“경찰에 말하지 마세요. 괜히 제가 의심받잖아요. 부탁드립니다.”
“떳떳하다면 그게 무슨 상관인가!?”
“공부해야 할 시기인데. 괜한 의심으로 성적이 떨어지잖아요.”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말 끝까지 이상한 핑계를 댈 건가? 난 체육관에 나타난 복면의 사내가 입은 교복과 이번 공원 폭행 사건 피해놈(?)의 교복이 같은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네. 같은 교복, 같은 복면, 거기에 명찰까지, 난 분명히 자네가 생수맨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네. 난 자네가 생수맨에게 나를 안내할 때까지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네!”
난감했다.
그는 내가 생수맨과 관련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어째서 이 남자는 생수맨에게 이다지도 집착하는 것일까?
하지만 바로 경찰을 찾지 않고 나를 찾아온 건 원하는 것이 있다는 의미일 테지?
난 궁금증과 답답한 맘을 동시에 담아 말했다.
“아니. 도대체 생수맨을 왜 찾으시는 거예요?”
그의 입에선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음...... 생수맨은 나의 우상일세.”
그의 뜬금없는 소리에 말문이 막혔다.
“네엥.......!?”
그는 내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는 내가 꿈꾸던 영웅의 모습 그 자체라네. 난 약자를 수호하고 악인을 벌하는 그의 의협심을 동경하네. 그의 곁에서 그를 돕게 해주게나. 내 비록 날거나 장풍을 쏘는 능력은 없지만 그를 보조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네. 부디 내 간청을 거부하지 말아 주게.”
그는 나이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데 아직도 사춘기 청소년의 기묘한 심리적 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 같았다.
‘뭐.뭐지? 이런 걸... 피터팬 증후군이라고 하나..? 나쁘게 말하면 불치병이라는 중2병? 어쩐지 말투도 이상하다 했더니... 이제보니 그때 체육관에서의 그 말투 역시 내게 맞춰준 것이 아니라 이 사람 본연의 말투였어! 세상에!’
난 순간 할 말을 잃었고 잠시 정신이 나간 듯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기환이가 뜬금없이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으로 그의 손을 잡더니 말을 했다.
“전 분명 형님 같은 사람이 어딘가 있을 줄 알았습니다! 형님의 의협심과 영웅의 기개에 감탄했습니다. 소생 신기환이라 합니다. 당장에라도 형님과 잔을 나누고 형제의 연을 맺고 싶습니다. 맞습니다. 형님의 생각대로 우린 생수맨과 관련이 있지요.”
그는 기쁜 얼굴로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정말인가!?? 고맙네. 신아우! 분명 나를 이해해줄 아우님이 있을 줄 알았네! 당장에 형제의 잔을 나누세!”
기환이도 기분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좋습니다.”
‘뭐.뭐지? 이 말도 안 되는 게임 같은 진행은!? 이 뜬금없는 병원결의는 도대체 뭐냐고!?’
‘아~ 도대체 무슨 반응 해야 할지 모르겠다....그냥 다 꺼졌으면 좋겠다.....’
난 그들의 행태에 얼이 빠졌고 턱이 땅에 닿을 듯 내려간 체 아무런 반응을 못 했다.
그때 기환이가 제법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허나! 이 일은 위험이 많이 따르는 일. 형님이 어느 정도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 역량을 파악할 수 있게 선행 100가지를 해주십시오. 그럼 그때는 저희와 함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얼씨구~ 이젠 퀘스트를 줘? 현실이 게임인 줄 아나..’
게임을 무척 좋아하는 기환이에게 약간의 중2병 기질이 있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 보다 중증이었던 모양이다.
나도 중2병이 좀 있긴 했지만, 이 집단에 있으니 난 지극히 가장 정상인 것 같았다.
난 기환이 옆구리를 꾹 찌르고는 말했다.
“야! 왜. 니 맘대로 우리 팀에 끼우고 그래! 우린 아직 저 아저씨 이름도 모르잖아!”
“난 찬성일세.”
갑자기 찬성은 운운하는 아저씨의 말에 난 발끈해서 소리쳤다.
“아저씨는 끼어들지 말아요! 아저씨가 찬성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거든요!”
“.... 그.그게 아니라... 성이 난이고 이름이 찬성이라는 말일세..”
“..?!?!?......푸하하하하하하하핫..하..하...하.”
난씨도 처음 보았는데 이름이 찬성이라니... 난 뜬금없는 그의 말에 웃음을 찾지 못하고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난 너무 크게 혼자 웃었고 둘의 시선이 집중되자 민망함에 웃음이 저절로 잦아들었다.
'우씨!! 나만 쓰레기야!!'
그런 날 보고는 난찬성은 호탕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허허허. 그리 웃으니 민망하구먼. 그래도 뜻을 들으면 생각이 달라질 걸세. 난세 난. 빛날 찬. 별 성. 난세에 빛나는 별이라는 뜻이라네. 돌아가신 형님께서 어릴적 친히 지어주신 이름이라 자부심이 있다네.”
“아....”
탄식이 절로 나왔다.
‘와.. 여기서 탈룰라 가불기를 쓴다고?돌아가신...형님? 겁나 사연 있어 보이네..’
그때 기환이가 미소를 지으며 쌍따봉을 날리며 말했다.
“역시 멋진 뜻에 멋진 성함이 십니다. 형님!”
‘그래. 나만 쓰레기야. 나만.. 망할.. 난 웃을 처지도 아니면서......’
솔직히 많이 이상한 사람이지만 그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호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나의 비밀을 공유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환이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내 어께에 손을 턱 올리고 말했다.
“이보게 친구!! 내 사람 보는 눈을 믿어 주게!”
그리고는 난찬성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난형! 천민 아우는 제가 설득하지요. 그리고 형제의 잔은 난형이 돌아오면 나누는 것으로 하지요.”
“고맙네. 신아우. 100가지 선행을 하고 돌아오겠네. 꼭 기다려 주게.”
그는 예의를 깍듯하게 차리며 말하고는 사라져버렸다.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환이 명치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야! 무슨 짓을 한 거냐!? 이 자식아!!”
“컥! 무.무슨 짓이긴. 이미 니가 생수맨인 걸 확신하고 있는 사람한테 무슨 말을 하겠어? 저런 타입의 사람은 이렇게 맞춰주는 방법이 최선이야.”
기환이의 대답이 그럴싸하게 들렸다.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독특한 그의 성격을 알기에 충분했고, 그의 성격을 보면 쉬이 물러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똑똑하게 처리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왜 그렇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냐..? 너 혹시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거 아니야?”
기환이는 마음을 들킨 듯 살짝 더듬더니 귀에 꽂은 이어폰을 가리키며 화제 전환을 했다.
“내.내가 언제? 흠흠!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너의 생수 파워를 쓸 곳이 또 생겼어.”
그의 갑작스러운 말에 난 의심부터 했다.
“뻥 치지마! 와~ 갑자기 이렇게 대화를 회피한다고?”
기환이는 다급하게 내게 장비를 건네고는 말했다.
“아니야! 진짜야. 빨리 준비해! 마약사범이 자동차 타고 도망 중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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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화재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고 벌써 2주의 시간이 흘렀다.
그 2주간 많은 일이 있었다.
처음 이틀은 낮이건 밤이건 긴급 신고에 접수된 사건에 최대한 관여했다.
그런데 문제는 대한민국은 카메라가 너무 많았다.
물론 나도 멍청이는 아니기에 조심했고, 기환이도 CCTV가 최대한 없는 곳으로 잘 안내했다.
하지만 자동차 블랙박스 등 정부 시설이 아닌 카메라의 위치까지 모두 알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너무 많이 찍혔고, 곳곳에서 제보가 들려왔다.
자칫하면 위치가 특정 될 판이었다.
그래서 난 3일째는 수사의 혼란을 주기 위해 먼저 버스를 타고 멀리 간 후, 긴급 출동을 기다리고 있다가 사건을 처리하고 일을 끝마치면 돌아왔다.
하지만 그 방법도 한두 번이지 도저히 낮에는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정말 다급하고 큰일이 아니면 우린 밤에만 활동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밤에만 나타나자, 사람들은 생수맨이 취직해서 낮에는 못 나온다고 댓글을 달았다.
어쨌든 내가 사람들을 꾸준히 돕자, 사람들은 나를 국민 영웅처럼 대했다.
기환이 말대로 난 경찰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 덕분에 최진성 경위는 수사에 압박받았고,
민경선 형사의 증언에 따라 징계받았다.
뉴스에서는 내 정체에 대한 온갖 추측이 난무했고, 사람들은 내게 열광했다.
그리고 심지어 영생수교라는 종교도 생겼다.
물론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장 노골적인 사람은 원근이 아빠인 최필규였다.
그는 내가 잔인한 폭행범이고 잠시 가면을 쓴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회와 사법 질서를 어지럽힌다면서 이대로 묵과한다면 사회의 혼란을 일으킬 거라고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라 수사가 재개할 조짐도 보였다.
다행히 아직은 나의 이중생활이 잘 유지되고 있었고, 나도 이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맘에 안 드는 점이 있다면 생수맨이라는 별칭, 부끄럽지만 인터넷에 댓글을 달아 라틴어로 물, 음료를 뜻하는 포투스맨이라는 별칭을 홍보하기도 했다.
그 결과는 썩 대단치 않았다.
아주 일부 사람들인 나와 기환이만 포투스맨이라고 불렀고, 사람들 여전히 입에 착 감기는 생수맨이라는 별칭을 더 좋아했다.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나도 점점 익숙해졌다.
포기에 가까운 마음이랄까.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내가 힘을 사용할수록 내 힘은 점차 강해졌다는 점이다.
회복력은 물론 맷집도, 힘도 보통 사람보다 훨씬 세졌다.
또 한 내가 워터 붐 능력을 계속 사용하면서, 굳이 손이나 발의 힘을 잔뜩 주어서 사용하지 않아도 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특정 부위를 잘 의식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었다.
그 새로운 요령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는데. 원터 붐을 손가락에 집중해 사용하는 것이었다.
난 이것을 지탄이라고 불렀다.
그 힘으로 경동맥동을 자극해 기절시킬 수 있었는데, 수분 소모를 최소화하면서 범죄자를 상처 없이 제압하는 방법으로는 이만한 게 없었다.
난 학교로 다시 등교를 시작했고,
기환이는 학교 다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며 자퇴하고 집을 나와 독립했다.
기환이는 사건이 있을 때는 나와 함께 사람들을 구했고,
그 이외의 시간은 버그 바운티로서 새로운 생활을 했다.
난 벌써 자신의 길을 찾은 기환이가 멋지게 느껴졌다.
우린 기환이가 마련한 거처를 아지트 삼아 같이 살고 있었다.
물론 엄마한테는 학교 기숙사에서 살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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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교로 복귀하고 두 번째 날, 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야 그 소식 들었냐? 원근이 새끼 오른팔 완전히 잘랐데.”
“헐.. 불쌍해서 어쩌냐?”
“뭐가 불쌍하냐. 인과응보지 뭐.”
난 아이들의 말에 기분이 씁쓸해졌다.
솔직히 내가 그에 팔을 그 정도로 망가트렸을 때, 어느 정도 예상했다.
다만 죄책감에 녀석들과 관련된 일을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다.
“야! 그 새끼 이제 좆도 아닌데 SNS 조지러 가자.”
“오! 재밌겠다. 뭐라고 쓸까?”
“큭큭 야야. 이거 어때? 뭐여? 팔 다 뻗은겨?”
“이제 딸딸이 왼손으로 쳐야겠네. 낄낄”
“이야~악마도 니들한테 한 수 배워야겠다.. 낄낄”
학교는 무서운 곳이다.
사탄이 인간 세상에 유학 온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조금만 약해 보이면 물어뜯기고 피투성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날 오후, 수업을 중에 내 폰으로 기환이의 출동 문자가 찍혔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기환이가 낮에 출동 요청한다는 건, 무척 큰일이 터졌다는 말이었다.
난 문자를 보자마자 조퇴 스킬를 사용했다.
난 교실을 나가면서 바로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우고 통화를 시작했다.
“왜!? 무슨 일이야!?”
“천민아! 진짜 큰일났어! 지금 괴인이 나타나 사람들을 학살하고 난리래. 빨리 좀 가봐.”
‘괴인? 사람을 학살해??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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