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 (3)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난 뒤 늦게 왼손으로 잘린 팔을 감싸며 뒤로 나자빠졌다.
팔이 떨어져 나간 순간 정신도 같이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사물들이 일렁이며 두세 겹 겹쳐 보였다.
그는 내 상태를 보자마자 시민을 쓰레기 버리듯 툭 버렸다.
그리고 나자빠진 내게 빠르게 다가와 무심하게 칼을 휘둘렀다.
모든 상황이 느리게 느껴졌지만, 이미 완전히 공황상태에 빠져 있어 대처할 수가 없었다.
난 그저 얼결에 왼손을 뻗어 저지하려 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왼손의 약지와 소지가 대각선으로 두부처럼 잘리며 떨어졌다.
“으아악!!!!”
툭 하고 떨어진 내 손가락들이 눈이 들어왔다.
-삐이~~~~~익!
귀에 물이 찬 듯 먹먹한 이명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내 몸은 오한이 든 듯 덜덜 떨렸다.
호흡이 가빠지고 점점 상태는 심해져 갔다.
사내는 다시 내 목을 노리고 칼을 찔러왔다.
변변한 저항도 못 하고 죽었다고 생각한 그 순간이었다.
- 탕! 푸슉
총알이 그의 허벅지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으윽..!"
그는 신음을 흘리며 다급히 물러섰다.
어느새 현장을 둘러싼 특수 경찰 인력들이 보였고 그 중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소리쳤다.
“누.누가 쏘는 거야!! 사격 중지! 사격 중지! 투항하라! 투항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그는 다시 기계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쳇. 운이 좋은 놈이군. 때가 온다. 배신자에겐 죽음뿐이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내가 공황상태에 빠져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
기환이의 목소리가 먹먹한 이명을 뚫고 들려왔다.
“야!! 야!!! 천민아!! 정신 차려!! 야! 야!! 도망쳐!! 도망치라고!!!”
그 외침 소리에 난 겨우 정신 줄을 붙잡았다.
심장 박동 소리가 뇌를 직접 때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모든 것이 더 느리고 느리게 느껴졌다.
‘침..착..해! 헉..헉.. 침..착..하자.. 침.착.해.야.해..’
나는 이를 악물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남은 손가락으로 허리의 밴드를 거칠게 뜯어냈다.
그리고 치아와 남은 손가락을 이용해 밴드를 오른쪽 어깨에 동여매 지혈을 시도했다.
내 상황과 관계없이 특수 경찰들이 총을 겨누고 다가오고 있었다.
'헉...헉..헉.. 젠장... 총.. 피할 수 있을까? 헉..헉..'
그때 다가오는 특수경찰과 내 사이로 총알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났다.
-투캉! 팅!
특수 경찰들은 빠르게 산개했고 대장은 소리쳤다.
"사격중지! 사격중지! 누구야 도대체!!"
난 저격이 실수한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재빨리 하늘로 도약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한강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없어진 한쪽 팔과 손가락 때문에 균형 잡기조차 어려웠다.
이미 하늘이 노래지고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
기환이의 음성이 파리가 윙윙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천민아! 야! 야! 괜찮아?”
눈꺼풀이 천근만근 내려앉았다.
모든게 다 귀찮아 지는 것 같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숨쉬기도 버거워졌다.
-헉..헉...헉..헉..헉....
오직 생존 본능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강이 보였다.
난 한강을 향해 무작정 몸을 날렸다.
-쉭~ 풍덩!
하지만 난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계속해서 몸을 움직였다.
최대한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뿐이었다.
길게 잠영하는 고래처럼 더 깊게 더 멀리 무작정 속도를 높였다.
계속 들리던 기환이의 목소리마저 끊겼다.
그리고 어느새 뇌가 새하얀 백지가 된 것처럼 의식이 툭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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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민아!! 흐엉 천민아!! 어딨는 거야! 대답 좀 해봐!! 흐어엉”
난 어디선가 어렴풋이 들리는 기환이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뜨니 별들이 보였다.
어느새 컴컴한 밤이었고, 난 물 위를 부유하고 있었다.
고개를 살며시 돌리니 먼 거리에 한강 다리가 보였다.
난 떨리는 마음으로 살며시 팔을 들어보았다.
‘제발..제발..제발....제발!......휴~~ 있다......’
놀랍게도 새 팔이 자라나 있었다.
솔직히 이정도 부상에서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 걸어 본 것뿐이었다.
그런데 설마 진짜 팔이 다시 생겼을 줄이야.
한강으로 무작정 향한 건 아주 적절한 판단이었다.
기환이의 곡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으허어엉. 으헝 미안해. 으헝.”
난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헤엄쳐나갔다.
물가로 나와 보니 기환이가 보였다.
녀석은 목발도 내팽개치고 주저앉아 통곡 있었다.
놀랍게도 기환이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불편한 몸으로 이곳까지 온 것이다.
친구 하나는 정말 잘 둔 것 같았다.
코끝이 시큰했지만, 난 그에게 다가가 괜히 무신경한 어조로 말했다.
“조용히 해! 인마! 동네 사람 다 듣겠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기환이는 날 보고는 귀신이라도 본 듯 눈이 커졌다.
그리고 더 크게 울며 일어나 다가왔다.
“..................흐허허허헝엉 이 미친놈아!! 흐헝 죽은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흐허어어헝”
날 위해 하도 서럽게 우는 그를 보자, 멋쩍어진 나는 농담으로 말했다.
“내가 죽긴 왜 죽어. 날 몰라? 나 생수맨이야.”
기환이는 나의 농담에도 숨이 넘어갈 듯 울었다.
“흐헝헝. 이 미친놈.. 이 상황에 농담이 나오냐! 꺼이 남은 걱정돼 죽는 줄 알았구만....꺼이”
그의 아이 같은 순수한 목소리에 괜히 뭉클한 감정이 들었다.
“그런 소리 마라. 진짜 죽을 뻔한 사람 서럽다. 큭큭. 근데 어떻게 찾았냐?”
“흑.. 폰 GPS 보고 무작정 나왔지···. 꺼이..”
난 기환이를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고맙다. 그럼 이제 돌아가자.”
난 사람들을 구하며 습관이 되어 자연스럽게 기환이를 공주님 안 듯 안아 올렸다.
“.......”
순간 기환이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 서로 흠칫 놀라 동시에 반응했다.
"워!워!!? 뭐야 무슨 짓이야?"
“잠깐! 이건 아닌 거 같아.”
나 곧바로 녀석을 내려놓았다.
남세스럽다고 느낀 탓이다.
기환이도 당황한 듯 말했다.
“편하게 택시 타고 가야지?”
“그렇지! 역시 히어로에겐 택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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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기환이는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왔지만,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이상한 일들이 마치 재앙처럼 한꺼번에 몰려왔다.
인터넷엔 이미 난리가 나 있었다.
벌써 가면 사내는 ‘고스트’라는 이름이 지어져 있었다.
난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다가 기환이에게 의문을 쏟아냈다.
“도대체 어째서 원근이는 괴물같이 변한 거지?! 그리고 고스트는 누구지? 또 고스트가 했던 이상한 말들은 뭐였을까?”
기환이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잠깐! 잠깐! 차근차근 접근해 보자. 먼저 원근이부터 아! 참 그 고스트가.. 아까 뭐라고 했지?”
난 어쩐지 처음 듣는 말임에도 고스트의 말을 쉽게 캐치 할 수 있었고 곧바로 대답했다.
"막타토르!"
"아 그래 맞다! 오! 한 번에 잘 알아들었네. 암튼 막타토르인가 뭐 있었잖아? 그건 무슨 말이었을까? 그는 원근이를 왜 그렇게 지칭했을까?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
기환이가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며 말하더니 계속 이어 말했다.
“어 ...뭐야?.. 있는 말이네? 찾아보니까 라틴어로 도살자라는데?”
'아! 고고학자였던 아빠한테 귀동냥으로 들은 라틴어가 있어서 한 번에 알아들었던 건가..?'
나 역시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말했다.
“도살자? 딱.. 어울리는 이름이긴 한데.. 고스트가 막타토르라는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보면 그가 원근이를 그렇게 만든 걸까? 아니지.. 아니야.... 분명 원근이의 존재를 모르는 눈치였는데.... 그럼 그와는 관련 없이 발생했다? 하지만 어떻게?”
기환이가 말했다.
“음.. 솔직히 이 상황에서 이상한 능력자가 너 말고 나타났어? 그럼 너라면 뭐부터 의심하겠냐?”
“......벌레?”
“나도 같은 생각이야.”
“하지만 원근이는 이성을 잃은 좀비처럼 변했고.... 난... 멀쩡하잖아?”
기환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그럼 벌레는 아닌 걸까?"
"아.. 진짜 원근이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만 알아내도 좀 도움이 될 텐데..말이지.. "
“아 잠깐! 어쩌면 알 수 있으려나?”
기환이의 말에 난 의아해 물었다.
“어 진짜? 어떻게? 방법이 있어?”
“그 왜 저번에 성찬이 놈 폰 해킹했었잖아! 혹시 몰라서 통화 내용이 녹음되도록 해놨었는데. 혹시 성찬이가 원근이랑 통화한 내용을 듣다보면 단서가 있지 않을까?“
“오! 그래? 한번 빨리 틀어봐!”
우리는 컴퓨터로 성찬이가 원근에게 전화한 내용을 선별해 듣기 시작했다.
꽤나 지루하고 오랜 시간이 거렸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통화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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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성찬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곧이어 원근이의 신경질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뭐야! X발!”
성찬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했다.
“야 원근아! 아무리 생각해도 존나 이상하지 않냐?”
“X발 갑자기 전화해서 먼 개소리야! 안 그래도 팔 병신 돼서 기분 개 X같은데!!“
“야 생각해봐! 생수맨인가 그 새끼가 왜 유독 우리만 고문하듯 지독하게 굴었는지 이상하지 않냐? 특히 너한테 존나 원한 있어 보였다고. 그럼 솔까 씹천민 그 새끼밖에 없잖아. 너도 목소리 들은 것 같다며!”
“아 X발 몰라! 나도 씹천민 같았는데 ... 삼촌이 혐의점을 못 찾았잖아! 원한 살 놈이 누구냐고 해서 그 놈을 떠올린 건지.. 진짜 목소리를 들은 건지 이젠 나도 모르겠다... 아니 설령 그 새끼가 맞다 쳐도 반항도 못 하던 새끼가 하루아침에 그렇게 변했다는 게 말이 되냐!”
“야! 그럼 날아다니고 장풍 쏘는 건 말이 되냐!?”
원근은 잠시 침묵하다 거칠게 말을 했다.
“........... 아! 뭐! 그래서 어쩌라고! 너 같은 절름발이나 나 같은 팔 병신들이 뭐? 복수라도 하자고!??”
성찬은 원근의 반응에도 차근차근 설명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너 기억 안 나냐? 우리가 그 새끼한테 벌레 먹인 다음 날 그 새끼 어떻게 돌아왔는지? 우리가 그날은 면상도 존나 무자비하게 때렸는데. 다음날 멍 자국 하나 없이 돌아와서 반항하기 시작했잖아. 기억나지? 그땐 뭐지 하면서도 별생각 없이 넘어갔는데. 생수맨한테 처맞고 병실에 누워서 한참 생각하다 보니까. 존나 이상한 거야.”
원근은 한층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
”흠... 그래서 요점이 뭔데?“
”우리가 벌레를 먹인 후 씹천민이 회복된 얼굴로 우리한테 반항하기 시작했고 곧바로 원한을 가진 듯한 생수맨이란 자식이 나타났어. 우연치고는 너무 공교롭지 않냐? 어쩌면.... 그 벌레가 씹천민에게 능력을 주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니 말은? 그 벌레를 먹으면 날 수 있고 장풍도 쏜다?”
“모르지~ 내 말은 그냥 한번은 시도해 볼 가치는 있지 않냐? 뭐 그런거지.”
“음..... 아... 그래도 그 벌레는 먹기 싫은데.... 만약 니 생각이 틀렸으면? 먹고 이상한 병에 걸려 뒤질 수도 있잖아.”
“야! 씹천민은 그렇게 많이 처먹고도 지금 학교 잘 나가는 거 보면 모르냐? 벌레 먹는 건 짜증 나지만 시도해서 나쁠 건 없잖아. 솔까말 잘되면 존~나 좋은 거고, 아무 일 없으면 뭐. 그만인 거지. 원근아 잘 생각해? 혹시 알아? 그놈이 다음날 멀쩡하게 나타났던 것처럼? 네 팔도 고쳐질지 아냐??
”그치 밑져야 본전이지... 그럴까... 그럼?”
“오케이. 그럼 바로 준비해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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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통화 내용을 들은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난 시릴 정도로 커진 눈으로 말했다.
“잠.잠깐..! 그럼 원근이 놈이 그 벌레를 먹고 그렇게 된 게 맞는 거네!!?”
“그..그런 것 같은데?”
난 등골이 오싹해져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아니! 그럼! 도대체! 난 왜 멀쩡한 거지?!? 자..잠깐!...그럼 혹시 나도 앞으로 그런 흉측한 괴물처럼 변하는 건가?"
- 작가의말
잦은 오탈자와 문장 오류로 몰입을 헤치게 만들어 정말 죄송합니다. 잠도 좀 충분히 자고 빡세게 퇴고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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