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 (4)

기환이도 당황스럽다는 듯 말했다.
“서.설마.. 원근이 놈이 괴물로 변한 건 성찬이 놈과 통화하고 고작해야 몇 시간 후에 일어난 일인데..... 넌 이미 시간이 한참 지났잖아... 그러니까 아.앞으로도 괴물로 변하지 않을 거야.... 하.하하."
기환이의 억지 웃음 뒤에는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난 역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그런 거겠지?"
기환이가 이어서 말했다.
"일단 침착하고 벌레에 대해 제대로 조사 좀 해보자.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가 너무 벌레에 대해 너무 몰랐잖아.”
"그.그래.."
이전까지 우리가 벌레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은 이러했다.
그 벌레들은 보통 위협을 느끼면 콩처럼 말려서 자신을 보호한다.
그리고 먹이를 먹을 때는 입속의 가늘고 긴 촉수를 이용해 다른 생물의 피를 빨아 아주 더디게 성장했다.
그것들은 여전히 조금씩 크기가 계속해서 커지고 있으며, 번식을 할 수 있는 성체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현재 아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그 증가량에 비해 아직 생태계에 영향은 크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직접 관찰한 것도 하나 있었다.
정말 엄청난 생존력, 내가 병원에 있다가 2주 만에 집에 돌아갔을 때도 그것들은 살아 있었다.
처음엔 죽은 듯 멈춰있다가 내가 피를 주자 금세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우린 이전보다 더 깊이 아주 심도 있게 벌레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인터넷에는 온갖 정보가 있었지만 우린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무작정 믿을 수는 없었다. 우리에겐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했다.
우린 논문이나 공신력있는 기사 위주로 검토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기환이가 아주 최신 논문을 하나 발견했다.
그 논문은 ‘고래 개체 수 감소와 라미아 베르미스(흡혈 기생충)의 개체 수 증가의 상관관계’라는 제목을 가진 코넬리 박사의 논문이었다.
우린 거기서 벌레의 학명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해석하며 차근차근 읽어 나갔다.
논문은 고래와 라미아 베르미스의 개체 수가 x자로 교차 된 그래프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고래가 먹이 섭식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 벌레를 삼키게 되면 혈관이 확장하고 몸집이 부풀면서 다른 개체보다 강해지고,
무차별적 동족 포식성과 공격성이 강화된다고 서술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런 현상이 수중 포유류 전반에 걸쳐 나타날 수 있다며, 심각한 생태계 교란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끊을 맺었다.
기환이는 눈을 동 그라는 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자,잠깐 이게.... 사실이면.... 정말 원근이가 라미아 베르미스를 먹고 그런 괴물이 된게 확실하잖아!!”
사실 그랬다.
논문에 서술한 내용과 원근이와 감염 고래의 증상이 너무 유사했다.
둘 다 몸집이 커졌고, 붉은빛을 띠었다.
게다가 동족 포식성과 공격성 그리고 포유류라는 사실이 같았다.
하지만 난 그의 말에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아니!! 그럼 난.. 왜 멀쩡한 거냐고!!?”
벌레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더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괜찮은 정보가 담기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여전히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계속 검색을 하던 기환이가 말했다.
“어 잠깐만 오늘 사건에 대해 긴급 특집 생방송 한다는데?”
“그래? 일단 그것부터 보자.”
우린 곧바로 뉴스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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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는 심각한 얼굴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하루 종일 이 소식으로 떠들썩하셨을 텐데요.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고작 15분만에 70여명의 사람이 한 사람에게 살해당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오늘 오전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바로 취재 기자 연결합니다. 봄다시 기자 사건의 경위가 어떻게 되나요?”
봄다시 기자는 사건 현장을 훑어 내려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오늘 오전 11시경, 이곳 병원 1인실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묻지마 학살이 시작됩니다. C군은 함께 있던 친구 B군을 창문으로 밀어 떨어뜨리고 달아나. 같은 층에 있던 환자와 가족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피해 비상계단을 타고 도망쳤으나, 어느새 뒤따라온 C군을 피하진 못했습니다. 그 과정에서만 15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C군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곳 1층까지 내려와 로비와 연결된 문을 부수고 들어갑니다. 당시 로비에는 많은 사람이 대기 중이었고, C군이 살인을 시작하자 사람들은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좁은 문 걸려 병목현상이 발생하면서 사람들이 뒤엉키기 시작했고, 뒤쫓아 온 C군에 의해 44여 명이 죽는 대량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얼마나 처참했는지 이곳에 피가 흘러 계단을 타고 흐를 정도였습니다. C군은 병원을 빠져나고서도 묻지마 살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길을 가던 사람 14명을 더 살해하였습니다. 뒤늦게 생수맨에 의해 저지를 당하지만. 안타깝게 그 과정에서도 한 사람이 숨졌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갑자기 나타난 가면의 사내가 C군을 데려가면서, 현재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졌습니다. 사망자만 도합 74명이고 부상자를 합치면 170여명에 이르는 대참사에도 당국은 조사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아직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앵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질문을 계속했다.
“하..정말 믿기지 않는 사건인데요? 어떻게 한 사람이 170여명의 사상자를 낼 수 있었습니까? 그 배경이 뭡니까? 살해 방식도 독특하다던데요?”
“네. 대부분의 사상자는 물어 뜨기거나 산채로 내팽겨쳐져 죽었습니다. 목격자에 따르면 C군은 엄청난 근육질로 생수맨 조차 고전할 정도로 강한 힘으로 사람들을 학살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 C군은 어떻게 되었나요?”
“네. 목격자들에 따르면 죽었다고 추정하는 게 타당해 보입이다. 하지만 현재는 정체불명의 가면 사내가 데리고 사라져 시신은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 가면의 정체불명의 사내이야기를 안 할 수 없군요, 그러니까 그 고스트가 C군을 어떻게 데리고 간 겁니까? 경찰도 많았다고 들었는데요”
“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고스트는 마치 마술을 부리듯 손짓 한 번으로 C군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했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아! 생수맨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다는데, 사실입니까?”
“네. 사실입니다. 고스트에게 팔과 손가락이 잘려 도망치다가 한강으로 추락했습니다. 당국은 뒤늦게 생수맨이 빠진 곳을 중심으로 한강을 수색하고 있지만, 아직 시체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꼭 살아 있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저희가 단독 입수한 C군 과 같이 있던 친구이자 생존자인 B군의 인터뷰입니다.”
생존자 인터뷰 (B군)
“저도 모르겠어요. 흑흐... 병실에서 같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미쳐서 날뛰기 시작하더니 저를 창문으로 밀었어요. 저는 다행히 캐노피에 떨어져 살았는데...... 흑흑 하필이면 병문안 온 가족들이....흑흑... 모두 죽었고... 흑흑 동생은 중환자실에서 못 깨어나고 있어요.... 흑흑흑..”
다시 화면이 바뀌고 앵커가 말한다.
“하..참.. 참담하네요.. 갑자기 우리 사회에 왜 이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루속히 사건의 비밀들이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긴급 뉴스를 마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시간 댓글
-c군 예전에 생수맨한테 팔 잘린 국회의원 아들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생수맨이 안 막았으면 더 큰 참사로 이어질 뻔. 생수맨 감사합니다.
-생수맨 이름 너무 구려요. 포투스맨으로 승격시켜 줍시다.
-사대주의 보소. 포투스맨이나 생수맨이나.
-어휴~ 생수맨 새끼가 우물쭈물만 안 했어도 더 많이 살렸을 듯.
-너 인성 문제 있어?
-생수맨 사랑해요!
-핫튜브에 영상 올라온 거 보니까. 생수맨이 생수 먹고 여유 부리다가 사람 죽게 내버려 둠. 살인자 새끼.
-어휴.... 위댓 새끼가 뒤졌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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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뉴스의 실시간 댓글을 보고 갑자기 우울해졌다.
어느 정도는 맞는 지적이었다.
내가 더 빠른 판단을 했다면 사람을 살릴 수 있었다.
물론 응원하는 댓글이 더 많았다
하지만 유독 그 댓글이 더 마음을 후벼팠다.
마음에 죄책감이 묵직이 자리했다.
그때, 뉴스 화면 상단에 사망자 수마저 바뀌었다.
중상자 중 누가 또 죽은 것 같았다.
그들의 생명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근이는 나 때문에 벌레를 먹고 그렇게 된 거면? 혹시 이 모든 일이 나 때문...인걸까? 나 때문에 사람들이 죽은 걸까?”
기환이는 자책하는 나를 애써 위로했다.
“무슨 소리야! 아니야! 벌레를 네게 먹인 것도 그놈이고, 벌레를 먹은 것도 그놈일 텐데 어째서 너 자신을 탓하는 거야! 자책하지 마!”
“내가 그 놈의 팔을 망가트리지 않았다면...그랬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지 않았을까?”
“그러지마... 천민아... 확실치도 않잖아.”
“그래. 그것이 내 책임이 아니더라도, 댓글의 말처럼 내가 더 일찍 갔더라면, 내가 더 완벽한 판단을 했다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난 그동안 너무 안일한 생각으로 영웅 놀이를 해왔던 것은 아닐까? 난 그저 사람들의 환호가 좋아서 재미 삼아 이 일을 했던 것은 아닐까? 무게감 없이 책임 없이 임한 건 아닐까? 그리고 가면 사내 또 나타나면 난 감당할 수 있을까?”
머리가 복잡하고 두려워졌다.
난 계속 넋두리하듯 주절거렸다.
“난 잘 모르겠어.... 내가 계속 이런 어쭙잖은 영웅 흉내를 내도 되는지.”
“자책하지마.. 넌 최선을 다했어.. 난 니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 난 이 세상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너 밖에 없다고 생각해.”
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데, 난 나를 못 믿겠는데, 기환이는 어째서 나를 이렇게 믿는 걸까?
난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기환이에게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렇게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야! 그 가면 남자의 말 기억나? 그는 원근이를 막타토르라고 불렀어. 그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야. 게다가 때가 도래한다니? 그럼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간다는 말 아니야? 게다가 오늘 내가 원근이를 죽인 것처럼 난 또 누군가를 죽여야 할지도 몰라..... 이건 이전처럼 한두 사람 구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이런 건 정부가 할 일이지. 내가 손댈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기환이는 답답하게 착해 빠진 이타주의자 같은 말을 했다.
“맞는 말이야. 하지만 우린 우리대로 최선을 다해 보자. 정부 쪽도 한 번 접선해 보자.”
난 기환이의 대답에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금씩 언성이 높아졌다.
“자꾸 뭐! 어떻게 최선을 다하라는 거야!? 도대체 우리 둘이서 무엇을 할 수 있는데!”
여전히 기환이는 착해 빠진 이상론을 폈다.
“그야! 우린 우리대로 정보를 수집하고 그 남자를 막아야지!”
난 그의 말에 발끈해 소리쳤다.
“이상적인 이야기 좀 하지 마!! 넌 고작 뒤에서 컴퓨터나 두들기니 모르겠지! 돌아가는 상황이 파악이 안 되나 본데? 난 아직도 내 팔이 잘려나간 고통이 생생해!! 심장이 두근거려 미칠 것 같다고!! 나.....진짜 죽을 뻔했어!! 나 엄마도 동생도 너도 수이도 다시는 못 볼 뻔했어!!! 그리고 내가 원근이처럼 안된다는 보장 있어!?”
이거다.
이게 내 본심이었다.
살인이 두렵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이 두렵다?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을까 두렵다?
그건 그저 핑계였다.
난 지금 죽는 것이 가장 두렵다.
자살 시도 후 뒤바뀐 내 삶, 난 가족과 내 친구들과 한 번이라도 더 만나고 이야기하고 느끼고 싶었다.
이 행복을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았다.
난... 죽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난 여전히 어쭙잖은 영웅 놀이에 흠뻑 빠져있었고, 솔직하게 터져 나온 내 고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껏 남들 위하는 척, 영웅인 척 위선 떨다가, 뒤늦게 내 이기적인 마음을 들킨 것 같아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기환이는 뒤늦게 내 진짜 마음의 걸림돌을 알아챘는지 무척이나 당황하며 사과했다.
“미.미안......내가 너무 너에게만 무거운 짐을 지게 했어.. 미안 정말 미안해.......”
“.....나 가볼게....”
난 부끄러움과 상처 입은 자존심에 기환이 집을 도망치듯 나왔다.
“처.천민아! 니가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아... 그러니까... 나 기다릴게!”
등 뒤로 기환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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