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2)

‘뭐..뭐야?!?!??’
난 몹시 당황했지만, 지체하지는 않았다.
그의 뒤로 몰래 접근해 그의 목 쪽의 경동맥동에 대고 지탄을 사용했다.
오토바이 헬멧을 쓴 그는 자신이 왜 기절했는지도 모른 체 기절했다.
난 곧바로 수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괘.괜찮아?”
분명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수이를 겁에 질리게 하긴 충분한 시간이었다.
“...흑윽 흑으 너무 흑 놀랐어..흑..”
수이는 많이 놀랐는지, 갑자기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난 잠시 수이의 등을 토닥여 진정시키고, 그를 주변에 보이는 끈으로 단단히 묶어 두었다.
‘이거... 경찰은 불러야 할 것 같은데.. 나랑 같이 있던 걸 알면 수이가 곤란해질 텐데...’
“수이야.. 진정해.. 이제 괜찮아.. 괜찮아.. 내가 단단히 묶어 놨어. 일단 경찰부터 불러. 난 나가 있을게. 여자 아이돌 혼자 사는 집에 남자랑 둘이 이었다고 소문나서 너한테 별로 좋을 게 없을 것 같아. 아! 그리고 범인은 들어와서 위협하다가 갑자기 기절해서 묶어 놨다고 해. 아마 자기가 왜 기절했는지도 모를 거야.”
수이는 내 팔을 살짝 잡고는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울먹이며 말했다.
“그냥...흑.. 옆에 있어 주면.. 안돼..?”
순간 심장이 저릿했다.
난 충동적으로 그녀를 힘껏 안고 토닥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았다.
난 내 감정을 억지로 추스르며 말했다.
“니가.. 곤란해질 거야.. 난 조금 떨어져서 지켜볼 게...안심해..”
수이는 곧 경찰과 통화했고 범인은 현행범으로 잡혀 처리되었다.
수이 매니저는 휴가였음에도 강제로 소환되었다.
그런데 난 일련의 상황을 돌이켜 보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 이상해. 매니저가 보냈다고 말 한 걸 보면 수이가 이 집에 살고 있을 걸 알고 노린 계획범죄가 확실해. 근데 놈은 집에 수이만 있다고 확신이라도 한 듯 수이만 노렸어. 내가 있는 걸 몰랐어. 그렇다면 집을 계속 관찰하고 있다가 범행을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인데. 어째서 수이가 혼자라고 확신한 듯 행동한 거지? ..설마... 매니저가 공범!!? ... 아! 아니야... 아까 수이는 매니저한테 연락 달라고 문자 받아 연락했어. 그런데 매니저는 부정하는 것 같았어. 그렇다며..!“
난 내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이에게 전화 걸었다.
“수이야. 지금 주위에 혼자야?”
“어? 어.”
“내가 예전에 폰 검사해 받아보라고 했었잖아? 해봤어?”
“어? 어 해봤는데. 근데 아무것도 안 나왔다고 그랬어. 그래도 혹시 몰라 찜찜해서 폰은 바꿨고. 그 뒤로 불안해서 몸에서 한시도 안 떨어뜨리고 방송 들어갈 때도 내 몸에 지니고 있었고 해킹 안전 수칙도 철저히 지켰는데....”
‘역시 매니저 폰이 해킹당한 거야. 그래서 통화를 유도해서 집 상황을 알 수 있었던 거야. 하지만 수이가 거짓말을 할 거라는 생각까진 못 한거지. 문제는 매니저 폰이 최근에 다시 해킹 당한건지. 아니면 예전에 정사장 사건 전에 해킹된 건지 모르겠다는 건데.. 만약 예전에 해킹된 걸 그대로 쓴거면 정사장이랑 관련이 있을 수도 있어... 만약 그렇다면 왜 다시 이런 일을 벌인 거지? 도대체 왜? 무슨.. 원한이 남아서?’
“수이야. 침착하고. 내 말에 크게 반응하지 말고 잘 들어. 예전에 내가 틀렸을 수도 있어. 예전에 니 폰이 아니라 매니저 폰이 해킹 당했을 수 있어.. 매니저 폰 몰래 끈 후에 나한테 가져다줘. 해킹 당했는지 확인해 봐야겠어.”
수사를 다 받고 나온 수이는 매니저 폰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수이와 나는 기환이 집으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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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환이 집 문 앞 난 살짝 망설였다.
사실 그렇게 뛰쳐나가고 나서 들어가려니 괜히 좀 뻘쭘했다.
난 문을 열자마자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소리쳤다.
“기환아! 미안하다!!”
내 목소리를 듣고, 기환이가 초췌한 얼굴로 뛰어나오다가 수이를 보고 흠칫 놀랐다.
“천민!....? 수이도.. 왔네?”
그런데 나 역시 기환이를 뒤따라 나온 사람을 보고 흠칫 놀랐다.
그는 난찬성이었다.
나랑 영웅놀이를 못하게 되니 고새 다른 사람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난 너무 실망스럽고 화가나 기환이에게 소리쳤다.
“.....뭐야.......!! 진짜 황당하네.. 그새 나 버리고 딴 놈이랑!? 와 진짜 어이없네..”
기환이는 몹시 당황하며 말했다.
그리고 수이를 한번 쳐다보며 어쩔 줄 몰라 말을 더듬었다.
“아.아니 그.그게 아니라.”
난 화가 났다.
내가 기환이에게 고작 이런 존재라니.
난 그를 경멸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하~ 진짜 실망이다..... 너한테 난 고작 이정도 존재라 이거지! 스페어타이어 같는 그냥 갈아 끼우면 되는 부품 정도라 이거지. 허참! 어이없어.”
찬성이 말했다.
“천민군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닐걸세.”
기환이가 말했다.
“일단 따로 이야기 좀....”
난 기환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아! 됐고! 이거 수이 매니저 폰인데, 해킹된 건지나 봐줘. 이 정돈해줄 수 있지? 이거 해주면 조용히 사라져 줄 테니까.”
수이의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는 우리에 말에 수이는 눈알을 이리저리 바빠 굴리며 상황 파악하려 했다.
난 얼핏 그녀의 손에 팝콘과 얼굴에 3D 안경이 보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 그게.. 아닌데...”
기환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푸념 섞인 말을 했다.
그리고는 수이의 폰을 받아 들고 안으로 들어가 확인하기 시작했다.
우리 사이엔 침묵이 이어졌고, 수이 역시 눈만 굴릴 뿐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기환이가 열심히 작업을 시작하자.
더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때, 난찬성이 침묵을 깨고 내게 먼저 말했다.
“잠깐 따로 이야기 좀 하세..”
난 정색하며 말했다.
“... 전 할 이야기 없어요.”
“잠깐이면 되네. 확인하는 동안 할 것도 없지 않은가?”
난 수이와 기환이를 남겨두고 밖으로 나왔다.
난찬성이 먼저 말했다.
“천민 소협. 오해일세.”
난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참나.. 이 상황이 뭐가 오해라는 겁니까?”
그는 차근차근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난 자네를 돕기 위해 온 거라네. 이미 기환 소협은 자네가 돌아올 줄 알고 믿고 있었네. 일단 내 소개를 정식으로 하지. 난 HID 출신으로 앞으로 내가 자네의 뒤를 책임지겠네. 사실 자네가 고스트에게 도망칠 수 있게 총을 쏜 것도 나였네...”
난 그의 뜻밖의 말에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내 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차근차근 말을 이어나갔다.
“그날 기환 소협은 지금까지와는 너무 다른 유형의 사건이 터지자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네. 만약을 대비해서 말이지. 자네가 보기에 기환 소협이 뒤에 숨어서 별일 안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자네가 다치지 않도록 항상 신경 쓰고 있었네. 내가 자네를 서포터 할 역량이 되는지 선행을 시켜 파악했고, 내가 자네를 도울 수 있다고 판단이 서자 억대의 저격용 총과 각종 무기를 다크웹에서 사서 내게 지원했다네.”
너무 뜻밖의 말이었다.
난 날 이렇게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게 수억원이나 되는 돈을 투자해 지원하고 있는 녀석에게 뒤에서 키보드 두들기는 별일 안 하는 녀석 취급했다.
“하.. 바보녀석... 진작 말하지.”
난 죄책감에 입술을 살짝 깨물며 넋두리하듯 읊조렸다.
“그날은 자네 동의 없이 날 현장에 불러서 미처 말하지 못했다는군. 원래는 조금 더 있다가 자네와 상의 후 나를 부를 작정이었다는데. 그날 상황이 워낙 급하게 돌아가서 어쩔 수 없이 급히 호출했다는군. 급히 연락받아 늦게 도착해서 큰 도움을 못 되었지만.. 그래도 도망칠 때는 어느 정도 보탬이 되지 않았는가.. 물론 자네가 목숨 걸고 힘든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건 알지만 기환 소협도 밤낮없이 잠 줄여가며 열심히 서포트하고 있으니 너무 나무라지 말게나.”
“하.. 진짜 나쁜자식... 또 나만 쓰레기 만드네.. 왜! 자꾸 중요한 말을 안 하냐고 왜!!”
코끝이 시큰해졌다.
솔직히 억대의 돈이 애 이름도 아니고 누가 날 위해 이렇게 해줄 수 있겠는가?
돌이켜 보면 난 기환이 없이는 아무것도 못 했을 것이다.
어쩌면 진작에 잡혀서 인체 해부당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난 찬성이 형에게 말했다.
“...형.. 감사합니다. 오해도 풀어주시고 목숨도 구해 주셔서..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찬성이 형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내가 날 받아들여 주는 건가? 고맙네. 어서 들어가세.”
오해가 풀린 우리는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난 기환이에게 말하며 주먹을 내밀었다.
“야! 신기환! 찬성 형님한테 다 들었어. 저번에 막말해서 미안했다. 그리고 앞으론 셋이서 잘해 보자.”
기환이는 한 손으로는 코끝을 어루만지며, 다른 손으로 주먹을 내밀어 툭 치며 말했다.
“아니야.. 제대로 신경 못 쓴 내가 더 미안하지...”
수이는 우리에 말에 눈이 동그래져 우리 셋을 번갈아 쳐다보며 혼자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뭐.뭐지? 얼굴을 왜 붉히지? 서.설마...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난 어쩐지 이 망상 분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아 말했다.
“수이야.. 니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수이는 화들짝 놀라 시치미를 뚝 떼고는 전혀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아.아니야~ 나 아무 생각도 안 했어.”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해 그냥 설명을 관둬 버렸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수이는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그런데.. 이분은 누구야? 난 이분이 내 일에 대해 아는 거 별로인데...”
찬성이 형이 말했다.
“난 찬성일세!”
수이가 정색하며 말했다.
“어머! 아저씨가 찬성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거든요!”
기환이가 말했다.
“그.그게 아니라. 이형 성이 난 이름이 찬성이야.”
수이는 눈을 한 두 번 깜박이다가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푸풋..푸핳하하하하하하핫......하..하..하....에잇 나만 쓰레기야!”
그리고 기환이와 난찬성의 반응을 보고는 웃음이 잦아들었다.
수이는 서운하다는 듯 소리쳤다.
기환이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쟤도 쓰레기야.”
난 그런 수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다행이야.. 나만 쓰레기가 아니라서. 후후훗’
그리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잠시 후 매니저 폰의 검토를 끝낸 기환이 나를 보고 설명했다.
“해킹당한 게 맞아. 근데 프로그램도 잘 만들었고, ip를 우회에서 접근해서 아쉽지만 추적은 쉽지 않아 보여..”
수이가 혼란스러운 듯 손톱을 물어뜯으며 대답했다.
“헐.....소름... 진짜 해킹이라니....”
나 기환이에게 물었다.
“야 해킹 시점도 알 수 있어?”
“응. 프로그램이 설치 된건 꽤 오래 됐어. 한 1년 정도?”
난 깜짝 놀랐다.
“뭐!? 새로 설치 된 건 없는 거야?”
“응”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럼.. 스토커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정사장의 해킹 프로그램을 사용했다는 말이 되는데... 그럼 단독범이 아니고 정사장과 관련이 있다는 말인데. 자신이 죽을 뻔한 게 수이 탓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 그 정도로 원한이 깊다고? 따로 조사해 봐야 겠어..’
기환이 되물었다.
“왜 그러는데?”
수이도 궁금하다는 듯 눈을 똥그랗게 떴다.
난 괜히 수이가 걱정할 것 같아 얼버무렸다.
“아.아니야”
기환이는 입을 삐쭉하더니 나를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수이야.... 이미 경찰에 범인이 잡혀 있으니 수사에 도움이 될 수 있게 이 폰도 경찰서에 제출해. 그리고 매니저님 한테도 모든 비번 개인정보 다 바꾸라고 하고.”
수이가 대답했다.
“휴...알겠어.. 고마워... 근데.. 기환아 너 진짜 멋있다. 이제 보니 완전 능력자였네!”
기환이는 수이의 칭찬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작게 엄지와 검지로 v자를 만들어 턱에 가져다 대면서 말했다.
“후훗. 내가 좀 그런 면이 있지.”
하지만 여전히 눈은 바닥을 향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기환이는 그렇게 보고 싶다던 수이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내 옆쪽에 붙어서 수이가 태양이라도 된 듯 절대 눈을 맞추지 않았다.
수이가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는지 말했다.
“기환아.. 전부터 느낀 건데. 너는 왜 눈을 안 마주치냐?”
기환이는 수이가 자신에게 집중해서인지 점점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게.. 눈을 보면 좀.. 부끄러워 가지고..”
수이는 얼굴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눈을 맞추려 시도했다.
하지만 기환이가 눈알을 굴려 피하는 솜씨가 더 뛰어났다.
“뭐가 부끄럽냐. 나도 너랑 똑같은 사람인데. 그리고 너 내 광 팬 맞아? 방안에 사진 한 장이 없냐. 이거..실망인데.”
기환이는 다급히 소리치듯 변명했다.
“부,붙이면!! 포스터에 손상이 가서... 따로 모셔뒀어...”
수이는 이상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흠..이상하네. 이 정도면 완전 찐팬인데.. 왜 난 팬 사인회 때 못 봤지...”
기환이는 귀는 물론 얼굴 전체가 시뻘겋게 물이 든 체 다급히 변명했다.
“일이 많아서..... 그래도! 굿즈랑 앨범은 착실히 잘 구매하고 있어.”
“푸훗 귀엽긴... 고맙다. 너가 그렇게 지지해준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기환이는 알게 모르게 엄마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자기가 수이를 키웠다는 자부심이 어려있었다.
수이는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오늘 너무 고마웠어.. 나 이만 가볼게. 내일 스케줄이 있어서...”
새벽 2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그런 일도 있었는데 좀 쉬지...”
내 말에 수이는 씩씩하고 당차게 이야기했다.
“아니야.. 좀 놀라긴 했는데, 네 덕분에 다치지도 않았고, 또 이런 일로 무너지면 채수이가 아니지! 난 갈게. 그리고 너희는...... 못 다한 이야기 나눠!”
채수이는 우리 셋을 슬쩍 바라보고는 얼굴을 붉히며 말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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