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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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올라
작품등록일 :
2024.06.14 02:32
최근연재일 :
2025.04.06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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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4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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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DUMMY

다음 날 아침. 우린 출정 준비를 마쳤다.


출정은커녕, 출장이라곤 잠복근무 경험밖에 없던 나는 옷가지만 몇 벌 챙겼었다. 하지만 페츠가 버럭 호통치며 짐 싸는 것을 도왔다.


육포, 곡물, 소금, 그리고 싸구려 포도주. 이전 인생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들이었지만, 페츠는 배부른 소리하지 말라며 나의 짐에 욱여넣었다.


경비를 받기 위해 맥윈 단장도 만났다.

물론 잔소리도 덤으로 받았지만.


“한 달, 아니 2주만 조용히 있어. 알았지? 이건 나를 위해서가 아니야. 네 목숨을 위해서라고...! 특히 성기사님 말씀을 잘 들어야돼! 안 그러면 니놈 말마따나 좆! 니놈은 좆되는 거라고!”


나는 미소로 답해주었다.

이 미소는 뿌듯함에서 나오는 미소였다.

좆을 사용하는 응용력이 꽤나 훌륭하다.

역시 단장은 나이와 계급이 허투루 높은 게 아닌 듯했다.


고프리 서기관은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루미엘을 불렀다.


“루미엘, 혹시 젤슨과 위그너를 봤는가? 토미, 파크, 벤더, 빌은?”


“모두 보지 못했습니다.”


“대체 어딜 간 건지. 몸도 성치 않을 텐데...”


이름은 모르지만, 어제 저녁 심문관 여섯이 절뚝거리며 나가는 걸 보긴 했다.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걸 보니 탈영이라도 한 건가.


심문관의 탈영은 은근히 자주 일어난다고 들었다. 특히 악마와의 싸움 후가 가장 빈도가 높다고 한다. 다만 가장 최근에 일어난 악마와의 전투는 벌써 3주나 지났다.


이때, 고프리 서기관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절망 어린 얼굴 되더니 루미엘의 손을 잡으며 신신당부했다.


“내가 믿을 사람은 자네밖에 없네. 제발, 저 망나니를 잘 좀 이끌어 주시게. 특히 이번 임무는 교단이 몇 년을 공들여 세운 작전이야.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성기사를 잘 보필하여 브리아즐 주둔 이단 심문관의 명예를 드높여 주시게!”


“걱정마십시오. 고프리 서기관님. 신은 언제나 저희를 비추고 계십니다. 신의 빛이 닿기를.”


페츠는 단장이나 서기관 중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길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사가 끝난 듯해 나는 그대로 돌아서 걸음을 옮겼다.


곧이어 루미엘도 따라왔다. 하지만 페츠는 여전히 단장과 서기관을 바라보며, 팔려 가는 개 마냥 낑낑 앓는 소릴 냈다.


“야이 새캬! 빨리 안 가? ”


맥윈 단장이 그런 페츠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떠밀었다.


“깨갱!”


성문을 지나자 의외로 익숙한 전경이 펼쳐졌다. 나무가 무리 지어 자라고, 드문드문 들판이 넓게 퍼져 있었다. 지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특별한 것 없는 풍경이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이곳이 지구 어딘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럴 리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이 세계를 부정하기엔 이미, 본 것이 너무 많았다.


“와... 저기까지 언제 가냐.”


저 멀리 시야 끝자락의 산을 보며 페츠가 탄식했다.


산 프리나 산맥인가? 꽤나 먼 거리임에도 높이가 느껴졌다. 마치 하늘로 뻗어 나가려는 거대한 벽처럼, 한없이 이어지는 봉우리들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저 산을 넘으면 바할린.


바로 악마와 계약한 자들이 사는 곳이다.


처음에는 굳이 명령을 따라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냥 이대로 바할린으로 가다가 페츠와 루미엘을 따돌리고, 이 세계에 대해 알아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바꿨다. 이 세계의 기득 세력이 바로 교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기득권에서 벗어나, 최하층에서 살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또 하나의 이유도 있었다.


어차피 이곳도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점. 그 말은, 과거에 내가 도저히 참지 못해 결국 경찰이 되었던 그 일들을, 이곳에서도 다시 겪게 되리라는 뜻이기도 했다.


굳이 다시 돌아올 곳을 떠나야 할 이유는 없었다.




***




우리는 묵묵히 걸었다.

아니, 페츠만 혼자 떠들었다.


해가 산 중턱에 걸렸을 때 출발하여 비스듬하게 비출 때까지, 그는 쉬지 않고 떠들었다.


“루미엘! 단장님께 경비 받았지? 얼마 받았어?”


“은화 여섯 닢입니다.”


“뭐? 몇 개월이나 있을지 모르는데 고작 은화 여섯 닢? 와-, 짠돌이 돼지 새끼!”


“길어봤자 한 달입니다.”


“그걸 믿어? 윗 대가리들이 얼마나 말을 자주 바꾸는데!”


“우리를 못 믿어서라도 오래 두지 않을 겁니다.”


할 말이 없어진 페츠가 뻘쭘하게 코를 훌쩍였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나를 불렀다.


“그런데, 다리안. 대체 어디까지 기억을 잃은 거야? 그리고... 그 싸움 실력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거냐? 심문관 교육에서 그런 건 가르치지 않잖아.”


나는 그저 미소를 지었다.

괜히 말을 더해봤자,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해서였다.


“다리안 심문관은 이단 심문관이 되기 위해 배운 지식은 물론, 우리가 아는 상식도 잊은 듯하더군요.”


루미엘이 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무언가 불만 어린 얼굴로 페츠가 따져 물었다.


“뭐? 설마 신성력도 못 쓰는 건 아니지?”


“못 씁니다.”


“미친... 그럼 악마라도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해? 우리가 보호라도 해줘야 하는 거야?”


“그래서 맥윈 단장님이 여유 될 때마다 신성력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라고 했습니다.”


“칼리쿠스 교황님께 한번 받은 신성력은 사라지지 않겠지?”


“신성력 회수는 오직 칼리쿠스 교황님께서만 가능합니다.”


“아, 그랬지. 그럼, 다리안! 악마를 죽이는 방법은 아는 거지?”


“신성력을 이용하거나, 검은 심장을 파괴한다. 그리고 전투 시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할 것.”


대답을 끝낸 나는 활짝 웃었다.


어제 저녁 맥윈 단장과 고프리 서기관이 나를 붙잡고 주입식 교육을 시켰다. 단순히 교육이라기보다는 사정에 더 가까웠지만.


첫 번째는 신성력이나 불을 이용해 태워 죽이는 것, 두 번째는 그들의 검은 심장을 파괴하는 것. 아직 신성력 사용법을 모르는 나는, 악마의 심장을 노려야 한다.


다만 내가 가진 무기는 철퇴와 단검.

기왕이면 검이 낫겠지만, 무기 창고에 무기들이 상태가 별로인 듯하여 그나마 나은 걸 가지고 온 거다.


“그래, 마스크가 제일 중요해. 악마의 하수인에게 맞아 죽은 것보다, 놈들의 검은 피에 죽은 사람이 더 많을 정도니까.”


어제 저녁 맥윈 단장도 이 부분을 가장 강조했다. 악마와 만나게 되면 목에 부착된 마스크를 꼭 써야 하는 이유. 검은 피가 조금이라도 입안이나, 상처에 들어가면 악마의 하수인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방심은 금물! 특히 악마와 거래한 놈들은 자기 수명을 바쳐 악마의 힘을 사용하니까. 며칠 전에 광장의 처형식 봤지? 그런 놈이 덤비면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고.”


광장의 처형식.

이 세계를 받아들이게 된 계기다.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이단 심문관들이 광장에서 악마와 계약한 자를 태워 죽였다.


사지에 족쇄가 채워져 허공에서 발버둥 치는 그것은 분명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자, 괴상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내 눈에는 그것이 악마라고 단정할 순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살던 세상의 사람들이 보았다면 최소한 괴물이라 불렸을 것이다.


악마라고 불린 그것은 인간의 모습이었을 때부터 지독한 악취를 풍겼다. 그런데 묘하게 익숙한 악취였다.


과거 형사 시절, 내가 죽인 범죄자들에게서 풍기던 그 역겨운 냄새였다. 콧속을 파고들어 살점을 찢어내듯 스며들고, 신경을 갉아 먹는 듯한 악취.


한마디로, 살인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냄새였다.


몸이 바뀌고, 세계가 달라져도 그 불쾌함만큼은 선명했다. 마치 지금도 콧속을 깊숙이 후벼 파는 것처럼.


‘...지금?’


나는 본능적으로 코를 킁킁거리며 공기를 들이마셨다. 곧바로 역겨운 악취가 콧속 깊숙이 파고들며 메스꺼움을 몰고 왔다.


순간,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기억이 아니었다.

과거의 잔상이 아니라, 지금 내 코로 직접 들어오는 냄새였다.


방향을 알아내기 위해 코를 벌름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왜 그래? 똥 마려워?”


페츠의 물음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속이 울렁거렸지만, 다시 한번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다 악취가 짙게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숲이다.’


숲이 우거진 곳이었다. 나무들이 하늘을 덮어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아, 낮인데도 한밤중처럼 어두웠다.


스으으-.


정적을 뚫고, 다시 바람이 스쳤다.

그 순간. 내 코끝이 일그러졌다.


“뭘 보는 거야? 저기에 뭐라도 있어?”


페츠와 루미엘도 내 시선을 따라 숲속을 쳐다봤다.


나무 아래, 축축한 흙바닥이 보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젖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림자 속, 더 짙은 어둠 속으로 희미하게 쓸린 자국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어둠에 익숙해질수록, 흐릿하던 형체가 점점 선명해졌다.


뱀 같은 비늘.

맨들맨들한 개구리 같은 피부.

짐승의 털과 이빨, 그리고 날카로운 발톱까지.


그 모든 것이 뒤섞인 형체들이, 마치 한데 엉켜 뒤틀린 듯 흩어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무언가의 사체들이었다.


“뭐, 뭐야?”


페츠가 갑자기 놀란 듯 뒷걸음질 쳤다.

처음엔 사체를 보고 겁을 먹은 줄 알았다.


그러나 이내 알았다.


나무들 사이, 짙은 어둠 속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악마들인가?’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형체를 드러낸 존재들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숲의 어둠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얼굴들. 사내들의 매서운 낯이, 옅은 빛 아래로 드러났다. 그러나 더더욱 놀란 건, 그들이 입고 있는 옷 때문이었다.


검은색 로브 왼쪽 가슴에 빛의 문양이 박혀 있다. 그 익숙한 옷은 페츠, 루미엘, 그리고 내가 입고 있는 옷과 같았다.


그들은 이단 심문관이었다.


“젤슨...?”


“신의 빛이 닿기를.”


페츠와 루미엘이 그를 보며 반응했다.

나 또한 그 사내와 구면이었다.

너무 반가워서 아는 체를 했다.


“어, 화장실.”


“이, 개...!”


놈이 턱을 부풀렸다.

나에게 맞은 턱이 벌써 아물었나?

생긴 것답지 않게 빠른 회복력을 지닌 놈이었다.


아닌가? 아무래도 이 비실한 몸이 힘을 제대로 실지 못한 것같다. 그러니 내 경고에도 저리 눈을 부라리는 거겠지.


“동기들끼리 인사 한번 거칠구나.”


젤슨의 뒤에 있던 사내가 비아냥거렸다.

페츠와 루미엘이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 그놈들이네.’


어제 저녁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놈들이다. 내 앞에 다시 나타난 걸 보니, 이들 역시 아직 덜 맞았나 보다.


“오냐. 페츠, 루미엘. 그리고...”


우리 선배님께서 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마치 복수한답시고 찾아온 범죄자 놈들과 같은 눈빛으로.


“다리안 씹새끼야. 반갑다?”


어제 저녁 나간 이유가 이 때문인가?


참 열심히다. 나에게 처맞아서 몸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이 먼 거리를 먼저 달려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당장이라도 저들의 노력에 박수 쳐 주고 싶었다.


“서, 선배...! 여긴 어떻게...”


“뭘 어떻게야. 니들 조지려고 왔지!”


“저, 저희는 왜... 이러시면 큰일 나요! 맥윈 단장님이 아시게 되면...!”


“안 닥쳐? 겁쟁이 새끼가 선배는 안 무섭나 보지?”


페츠가 바로 입을 다물었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상황을 지켜봤다.


‘여섯이라. 수가 꽤 되네.’


아무래도 이번 싸움은 꽤 힘들 것 같다. 내가 저들을 때려눕힐 수 있던 이유는, 좁은 곳이라는 공간적 이점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좀 더 진보된 격투술을 배운 부분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이런 비실한 몸으로 이렇게 개방된 곳에서 다대일의 싸움은 솔직히 쉽지 않다.


‘적어도 형사 시절 몸이었다면.’


아쉬운 마음이 살짝 들었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젠 이 몸에 적응해야 한다.


“닥쳐라!”


그때였다. 선배님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사내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비... 빅터 선배님? 어떻게 벌써 오셨...”


페츠가 그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빅터? 상급 이단 심문관 승급 시험을 보러 갔다던 그 양반인가.’


맥윈 단장이 그토록 이름을 찾아 부르던 그 선배인 듯하다. 승급 시험에 합격했다면, 이젠 브라질 심문단에서 유일한 상급 이단 심문관인 자다.


‘그런거였나.’


어제 나갔던 여섯 명은 빅터를 데리러 갔던 모양이다. 결국 나에 대한 복수를 위해 빅터를 데리고 우리를 칠 계획으로.


‘생긴 것답지 않게 앙큼한 계획을 세웠군.’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에 있던 이단 심문관들이 예를 갖추며 길을 터주었다.


헝클어진 갈색 곱슬머리에 땀 냄새가 풀풀 나게 생긴 사내가 터벅터벅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그의 몸은 다른 이단 심문관과는 다르게 몸집이 매우 컸고, 당장이라도 로브를 터트릴 것처럼 탄탄한 근육을 자랑했다.


“그래, 페츠 오랜만이구나. 이야기는 들었다. 벤즈로 가는 중이라지?”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루미엘. ”


“신의 빛이 닿기를.”


“여전하군. 그래, 인사는 이쯤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지. 위그너, 시작하거라.”


“예.”


빅터 선배님의 지시가 떨어지자, 젤슨과 다른 선배들이 우리를 포위했다. 페츠는 당황하며 두리번거렸고, 루미엘은 여전히 미동조차 없었다.


“빅터 선배님··· 뭐 하시는—”


“벤즈에서 성기사와 만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우리가 네놈들을 대신해 갈 것이다.”


“맥윈 단장님과 얘기된 겁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라. 이 근방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시켜 너희들이 악마에게 당해, 악마의 하수인이 되었다고 전하게 할 것이다.”


맥윈 단장을 만나지 않고, 바로 온 모양이다. 애초에 맥윈 단장을 만났다면, 당연히 저들이 이번 임무를 수행했을 터인데. 성격이 급한 놈들인가 보다.


그나저나 이들이 가까이 올수록 악취가 더욱 짙어졌다. 위장이 뒤틀리는 느낌이다. 입안에 씁쓸한 침이 고였고, 속이 울렁거렸다.


“우리가... 악마의 하수인이요?”


페츠의 물음에도 빅터 선배님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히려 젤슨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내 젤슨은 무언가를 내보이듯 내 얼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역겨운 냄새가 훅 끼쳐왔다.

토악질이 치밀어 올라, 나는 급히 팔뚝으로 코를 막았다.


“저, 저건...!”


페츠가 놀라 말을 더듬었다.


젤슨의 손 위에는 검고 끈적한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이 미세하게 움직일 때마다, 손등을 타고 검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그것은 마치··· 썩어 문드러진 심장 같았다.


“악마의... 심장!”


“빛이, 닿기를...”


“큭큭큭큭-.”


빅터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설마 저희를 악마의 하수인으로 만들 셈이십니까...”


“큭큭큭-. 그래, 그렇다니까?”


“어째서... 그렇게까지... 우리에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사실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다. 고작 사내 녀석이 주먹 좀 휘둘렀다고 목숨까지 빼앗는 건 과한 처사니까.”


“그럼, 어째서....”


“하지만 이건 위신의 문제다. 너도 알지 않나? 이번 일이 다른 심문단까지 퍼지면 어떻게 될지. 세상이 브리아즐 소속 심문관을 우습게 볼 거다. 그리고 브리아즐 출신 심문관들의 출세길도 막히겠지.”


위신, 고작 그런 이유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재미로 죽이는 놈도 봤고, 이유 없이 죽이는 놈도 봤다. 이유야 갖다 붙이면 그만이니까.


게다가 이런 중세 시대 같은 곳이라면, 약한 자가 받아야 할 멸시는 거의 죽음과도 같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빅터의 말대로 사내들의 주먹 다툼일 뿐이다. 빅터가 우리를 죽이려는 이유는 단순히 위신 같은 문제로 보이지 않았다.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분명 다른 이유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십시오! 결국 선배님의 출세길이 걱정이신 거잖아요!”


“이게 과연 나 혼자만을 위한 일이겠냐, 페츠, 멍청한 놈. 나약한 이단 심문관이라는 굴욕이 브리아즐을 넘어, 이단 심문관 전체에게 씌워질 거라는 걸 모른단 말이냐? 교단이 약해지면, 우매한 군중이 감히 우리에게 반기를 들 거다. 이건 교단 전체의 심각한 사안이자, 정의를 위한 일이다.”


나는 그제야 확신이 들었다.


‘확실히 다른 이유가 있군.’


빅터의 지루한 연설의 대상은 페츠가 아니다. 그의 곁에 있는 여섯 이단 심문관을 상대로 한 연설일 것이다.


명분이 확실하다면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죽이면 그만이다. 길게 설명하는 걸 보아하니, 여섯 이단 심문관을 설득하고,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함으로 보였다.


더 듣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내 움직임에 젤슨이 움찔하며 몸을 굳혔다.


주변 녀석들도 반사적으로 무기를 들었다.

그러나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텁-!


놈이 들고 있던 악마의 심장을 단숨에 낚아챘다.


“무, 무슨 짓이냐!”


심장을 빼앗긴 젤슨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나는 익숙한 미소를 지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어차피 나 줄 거잖아?”


“뭐···?”


그 순간, 빅터가 낮게 웃었다.


“허, 제법인데? 듣던 대로 손이 빠르구나. 그래서 뭐, 어쩌려고? 진짜 먹기라도 하려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악마의 심장은 차고 넘치니, 애써 파괴하진 말거라.”


내 손안에서 검붉은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축축하고 뜨끈한 감촉이 손가락을 타고 스며들었다.


“아니면... 겁에 질려 미친 건가?”


빅터가 천천히 검을 뽑았다.

철제의 차가운 마찰음이 고요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그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기다려봐. 먹으라며.”


주변의 모든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집중됐다.

놈들도, 빅터도, 심지어 페츠와 루미엘까지.

의심과 혼란이 뒤섞인 얼굴들이었다.


천천히 심장을 입에 닿을 듯 가져다 대었다.


누군가의 숨 참는 소리가 들렸다.


웃음기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살폈다.


어떤 이는 황당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고, 어떤 이는 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정말 먹으려는 건지, 아니면 또 다른 속셈이 있는 건지 알 수 없다는 듯이.


빅터가 그걸 보더니 피식 비웃었다.


“크하하하! 겁이 나는 것이냐? 네 놈이 객기를...!”


그 순간이었다.


“헙!!!”


축축한 살덩이를 젤슨의 입안으로 처박았다. 그와 동시에 단검으로 턱 밑을 박아 넣어, 입안의 심장을 찔렀다.


뿌직! 하며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커헙! 컥!”


놈의 입에서 장맛날의 하수구처럼 검은 피가 넘쳐 흘렸다.


사방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나는 젤슨을 놓아주지 않았다.


놈의 금발 머리를 강하게 틀어쥐었다. 그가 반항할 기미가 보이자 턱 밑으로 박아 넣은 단검을 흔들었다.


놈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으며 처절한 시선을 내게 향했다. 놈의 눈동자가 극도의 공포로 떨렸다.


나는 그 눈을 보며 속삭였다.


“내가 그때 그랬지? 한 번 더 덤빌 거면 목숨을 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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