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요한 집안. 거실 창 밖으로 가을 햇살이 비치는 광경은 어찌 보면 평화롭기까지 했다. 그 꿈같은 상황에 수현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어 두 뺨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현실은 차가운 법.
두 손에 묻은 흥건한 피가 그의 현실감각을 한순간에 끌어올렸다.
“.......”
제자리에 서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5분동안이나 상황을 복기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을 다그쳤다.
‘...그냥 싸움 아니었을까? 좀비는 말이 안 되잖아.’
약해지는 마음은 계속 이 상황을 부정하려 했다. 하지만 하나 남은 이성이 자꾸만 그를 붙들었다.
그렇게 모든게 명확해 지고서야 결론을 내렸다.
아니 내릴 수밖에 없었다.
현실에서 도망칠 순 없었다.
‘좀비 사태가 맞아.’
그는 다급히 소매를 풀어 자신의 양 팔뚝을 살폈다. 셔츠는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있었지만 다행히 물린 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피를 문질러봐도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제서야 안도했다.
어떻게 물리지 않고 잘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그 다음으로, 가장 먼저 생각난 건 가족이었다.
부모님을 떠올린 순간 수현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이런.’
두 분은 중학교 동창 모임이 생기셔서 부부동반 여행을 가셨다. 그것도 미국으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하필 지금이라니?
다급히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보이스톡을 연결하자 다행히 신호가 갔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벌써부터 떨리고 있었다.
[수현아···.? 별일 없지?]
수현은 이 모든 일을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심하다가 이내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엄마. 제 말 잘 들으세요. 지금 광견병 걸린 사람들이 밖에 미쳐서 날뛰고 있어요. 영화에 나오는 좀비 같은건데. 있다가 뉴스 나올거에요.”
말하고 나서 이를 꽉 깨물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많이 떨리고 있었다.
[...그래. 수현아 여기도 조금 상황이 안좋은가봐. 지금 라스베가스 호텔인데 군인들이 막 들어오면서 엄청 시끄럽네. 수현아. 몸 조심해야된다. 알겠지?]
“네. 엄마도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그 말을 끝으로 어머니는 더 통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뒤이어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김수현.]
“네.”
[너 예비군이라고 끌고가려고 하면 절대 가지 마라. 먹을 거 준비해서 집에서 버티고 있어. 엄마 데리고 한국 들어갈거니까. 그 새끼들이 끌고 가려 하면 절대 가지 마. 알겠지!]
“네. 아버지··· 알았어요.”
[그래. 일단 끊어야겠다. 상황 봐서 전화할게.]
무뚝뚝하신 아버지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수현은 감정이 복받치는 걸 느꼈다. 두 분을 다시 만날 수는 있는 걸까?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
“x발.”
욕짓거리를 내뱉으며 베란다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월요일의 길거리는 일견 평화로워 보였다. 어린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해맑게 웃으며 돌아다닌다. 하지만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몰골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 세계는 멸망할 것이다.
‘멸망이라···.’
몇번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었다. 이딴 세상, 확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다. 수년동안 취업에서 시련을 느끼고 방황했을 때. 사회 구조에 대해 분노했을 때. 또는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비리···. 그런 때면 세상이 확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는가?
하지만 이젠 진짜로 세상이 멸망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세상이 멸망한다면?
통쾌할까? 아니면 슬플까?
이순간 해야 할 일은 바로 나 자신을 관조하는 것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김수현. 27세 남성. 사회초년생. 아버지는 중견기업 직장인. 어머니는 판매원.
지루할 정도로 평범한 학창시절. 군대, 직장생활.
딱히 더 더하고 뺄 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무난하고 조용한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 내가, 세상이 멸망한다면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까?
수현은 생각했다.
살고 싶다고.
‘난 살거다.’
누가 뭐라해도 상관없었다.
통쾌함과 슬픔 그런 감정도 모르겠다.
단지 죽긴 싫었다. 그뿐이다.
“후우.”
냉정함을 되찾자 머리가 차가워졌다.
타임라인을 분석해보자.
좀비 사태가 맞다. 하지만 사건은 아직 시작 지점에 멈춰 있었다.
재앙은 전조 증상을 동반했었다. 바로 지독할 정도로 유행한 독감이었다. 그 독감은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유행했다. 추리가 맞다면 아마도 좀비 바이러스일거다.
결론은 전 세계 모두가 감염되었다는게 결론이었다.
‘이런 미친.’
몇주간 보아왔던 뉴스들을 종합해보자면 말이 되는 이야기였다. 끔찍한 상상을 하자면 인류의 대부분이, 80% 이상이 바이러스 보균자일수도 있다.
절망스러운 심정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수현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가장 급한것들이 번개가 치듯 몇개 떠올랐다.
‘물. 식량. 그리고 무기.’
당장 집 안에있는 물자부터 파악해야 했다.
쏴아아-
찬물을 틀어 샤워를 했다. 피투성이가 된 옷가지는 대충 던져놓았다. 그렇게 나체가 되어 거울을 보니 감탄이 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몸이 180도 바뀌어 있었다.
“허.”
평소에도 생활 운동을 했다. 중량운동도 조금 쳤다고 할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건강관리가 목적이었고 그마저도 헬스장 끊어놓고 몇일 다니다 깔짝 깔짝이었다. 절대 이런 정도는 아니었던 거다.
식스팩이라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스테로이드라도 맞았단 말인가?
근육이 보디빌더처럼 살을 찢고 드러나 있었다.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
고개를 젓고는 우선 옷부터 새것으로 갈아입었다.
이제부터 절대 상처가 나거나 물리면 안 된다.
수현은 좀비영화를 꽤 봤었다. 그리고 공통적인 특징은 좀비에게 물리면 끝장이란 것. 한번 물렸다면 아무리 발악해도 좀비가 되어버린다.
물리거나 긁히지 않는게 제일 중요. 때문에 이빨을 막아줄 보호 면적을 늘려야 했다.
옷가지를 닥치는대로 꺼내서 개중에 가장 두꺼운 것들을 골랐다. 긴팔 티셔츠, 두꺼운 후드티, 패딩까지 3중으로 겹쳐 입었다. 바지는 내복, 긴양말, 청바지를 차례로 입고 가죽장갑도 단단히 착용했다. 머리는 마스크, 야구모자로 방어했다.
그제서야 약간 안심이 되었다.
겨울 복장이라 벌써부터 땀이 흘렀지만 상관없다. 좀비들에게 둘러 쌓여 뜯겨 죽는거보단 나았으니까.
수현은 패딩 지퍼를 꽉 잠갔다.
다음은 부엌.
우선 서랍을 전부 열어서 그릇을 닥치는대로 쏟았다.
와장창-
모든 냄비와 텀블러를 꺼냈다. 그리고 화장실로 달려가 물을 받기 시작했다. 긴급으로 쓸 수 있는 식수였다. 냄비를 모아놓고 보니 10개가 넘었는데 조금씩 마신다면 꽤나 오래 버틸수 있을 것 같았다.
‘물은 됐고···.’
마지막으로 음식.
재고를 파악한 수현은 절망스런 심정이었다.
‘부족하다.’
3인 가족이 사는 집이지만 음식이 너무 없다.
이걸로는 불가능이었다.
냉장고에는 돼지고기 몇백그램이 있었다. 나머지는 계란 반판, 냉동식품 3팩, 야채들이 전부. 선반에는 라면 1팩이랑 참치캔 몇개가 나왔다. 딱 일상적인 음식 양이다.
수현은 눈을 부릅 뜰수밖에 없었다.
굶어 죽는다.
이 좀비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 최선의 경우라면 약간의 참사 정도로 끝나겠지만 그건 꿈이다. 만약 모든 매체에서 본 대로 최악의 결과라면? 군대도 전염되어 와해된다면? 그때는 그야말로 종말이다. 경우에 따라서, 어쩌면 1년 이상 집안에서 나가지 못하고 버텨야 할지도 모른다는 거다. 하지만 이 정도 식량으로?
택도 없다. 아무리 아껴서 먹는다고 해도 한달이 지난 후부터 굶어야 된다는 끔찍한 계산이 섰다.
지금 당장 대형마트로 달려가야 했다.
“후우- 후우-”
심호흡을 몇번 했다. 그리고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아 온 집을 뒤졌다. 생각보다 가정집에는 무기로 쓸만한 것들이 없었다. 프라이팬이나 식칼 정도. 식칼을 허리춤에 차자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상대는 좀비 뿐만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좀비가 나타나면 대 혼란이 벌어질거였다.
법은 없었다.
약탈자들의 세상이었다.
수현은 눈을 부릅떴다.
‘절대로 아무것도 뺏기지 않을거다.’
어차피 망해버린 세계, 그들은 선도 없을 것이다.
법이 있기 이전에도 연쇄살인이나 싸이코 범죄자는 많았으니까.
그렇다면 각오해야 했다.
법과 사회가 지켜줄거란 희망은 버려야했다.
싸워서 이기는 게 몸을 지킬 방법이었다.
힘에는 힘으로 맞서야 할거다.
하지만 나는 혼자인데 약탈자를 상대할 수 있을까?
‘...왠지 될 것 같기도.’
수현은 자신의 두 손바닥을 펼쳐보았다. 그리고 프라이팬 하나를 집어들었다.
양 손에 들고, 찢는다는 상상을 하면서 철판을 좌우로 당겼다.
곧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찌지직-
아무리 얊은 철판이라지만 우스울 정도로 찢어진다. 심지어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증가된 근력.
변화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어쩐지 감각도 날카로워진 기분이야. 반사신경도.’
버스에서 그 고통을 겪은 이후로 몸이 달라졌다. 하루하루 출근할 때 느꼈던 무기력함 대신 더없이 상쾌한 기분이 자리잡고 있었다. 정신은 지나칠 정도로 또렷해졌다.
감각이 벼려졌다고 해야 할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를 노릇이었다.
‘복잡한 생각은 하지 말자.’
모르긴 몰라도 당장 해가 되지 않는다. 두통도 싹 가셨고 컨디션은 어느때보다 좋았다.
그리고 힘이 있다면, 결정할 수 있다.
결정당하는 쪽이 아니라는 거다.
‘어차피 모두가 약탈하게 된다면··· 내가 한다.’
그는 현관문을 박차고 슈퍼마트로 향했다.
[속보입니다. 현재 서울 강남 일대에서 무차별 폭행 사건이 연달아 벌어졌는데요. 사건을 보고받은 경찰이 즉시 대응에 나서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에서는 또다시 증오 범죄 유행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예지 기자···]
엘리베이터 안에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 중 몇몇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고있었다. 아주머니들은 한가로운 표정이었다. 벌어지는 일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였다. 그녀들은 오히려 수현을 슬금슬금 피하고 있었다. 가을이라지만 패딩에 마스크까지 끼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수현의 모습은 흡사 칼부림 범죄자 같기도 했다.
답답한 심정이었다.
이들은 좀비 사태라는 것을 알까?
‘저 사람은 아는 것 같은데.’
구석에서 남자 한명이 식은땀을 흘리는 게 보였다. 그 또한 수현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도 좀비 사태를 파악했겠지.
미약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수현은 눈인사를 하고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급한대로 가장 큰 커뮤니티들을 열어 보았다.
[지금 당장 숨어라]
진짜 구라 안치고 좀비 맞다
[ㅅㅂ 불안해서 슈퍼 갔다오는중]
[좀비 사진 찍음.jpg]
이거 실화다 실제 상황
ㄴ개소리 ㄴㄴ
ㄴ신고함
새로고침을 하자 고어사이트에나 올라올 법한 시체 영상들이 올라왔다. 거기서는 사람들이 산채로 뜯어먹히고 있었다.
수현은 숨을 삼켰다. 내심 이 모든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꿈이 산산히 부서지고 있었다.
전염이 시작되고 있었다.
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급하게 대형마트로 달려갔다. 길거리에는 아직까지는 사람들이 일상적인 삶을 보내고 있었다. 급해 보이는 사람은 그 하나뿐. 무단횡단으로 달려가자 차들이 경적을 울려댄다.
빠아앙-
“야! 미쳤어!”
그러거나 말거나 마트 안을 박차고 들어갔다. 가방에 닥치는대로 통조림을 쓸어담고 그것도 모자라서 카트까지 끌고왔다.
매대에 있던 통조림을 싹 쓸어오니 계산대 아주머니가 이상한 눈초리를 보낸다.
급한 마음에 고함을 질렀다.
“계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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