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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작품등록일 :
2024.06.19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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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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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1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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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UMMY

“허 참.”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바코드를 찍는 계산대 아주머니. 몇십 만원이 뜬 것 같은데 수현은 자세히 보지 않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신용카드를 건네니 그녀는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는 표정이다.


“포인트는요?”


“...7870. 김수현.”


한숨을 내쉬는 계산대 아주머니를 뒤로하고 통조림이 가득 담긴 카트를 끌고 차도를 질주했다. 그렇게 카트를 거실 한구석에 쑤셔넣고서야 그제서야 숨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살았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다. 따지고 보면 한 명이 식량을 싹쓸이 한 거였으니까. 하지만 여기까지 오니 그가 느낀 건 놀랍게도 쾌감이었다. 수현은 몸을 떨었다. 승리했다는 감각. 그 감각이 전신을 타고 돌았다.


“후우우.”


정신을 차리니 온 몸에 땀이 흥건했다. 수건으로 온 몸에 젖은 땀을 닦아냈다. 그리고 나서야 스멀스멀 올라오는 건 다름 아닌 욕심이었다.

이렇게 준비했음에도, 아직 부족하다.

더 많은 물품이 필요하다!

리스트를 나열해 보았다.


‘휴지. 치약. 상비약. 붕대. 소독약. 음식도 더 있어야 돼. 무기. 무기는 공구 같은게 있으면 좋을 텐데···.’


무엇보다 무기가 필수였다. 하다못해 목공 망치라도 하나 있었으면 했다. 최소한 좀비 상대로 맨 주먹질을 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으니까.

지금이라도 한번 더 나가면, 물자를 더 챙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모험적인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


수현은 침을 꿀꺽 삼키고 현관을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집을 박차고 나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보았다.

사태는 점입 가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왜애애애애애앵ㅡㅡㅡㅡ


아파트에서 튀어나온 일가족들이 마트로 달려가고 있었다.


“여보 뛰어!”


핸드폰을 꺼내 들자 재난 경보 알림이 급박하게 울렸다.


[긴급 국가 비상사태 선포. 현재 전국적인 규모의 조직적 폭동 사태 발생, 대통령령에 의한 계엄령이 발효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즉시 가까운 마트에서 생필품을 챙겨 자택에 대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후로 국군의 지시에 따라주십시오.]


수현은 아찔해짐을 느꼈다.

계엄령이라니? 군사 정권 시절에나 쓰던 말이었다.

국가 전체가 마비되었다는 말 아닌가?

예전의 군사 쿠데타들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침착하자.’


공황 상태에 빠질 법도 했다. 그런데 의외로 이성이 돌아오는 속도는 빨랐다.

이것 또한 몸에 일어난 변화인가 싶었다.

빠르게 뛰어 마트 입구에 도착하니 이미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입구가 소란스럽다.


“이 씨발, 사람 쳤어?”


“뭐? 이 자식이.”



아니나 다를까 마트 입구부터 대판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집안 가장들이 멱살을 잡고 아내들과 자식들이 엉켜서 말리는 중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구경꾼들까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하지만 수현은 지나가야 되는 입장.

어쩔 수 없이 인파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지나갑니다.”


팔을 뻗어 사람들을 제꼈다. 그러자 십 수 명이 우수수 양옆으로 쓰러졌다. 한 사람이 밀었다기엔 놀라운 괴력이다.

밀려는 사람들은 이내 짜증 섞인 시선으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 모든 사태를 무시하고 마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안은 벌써 전쟁터였다.


“내놔!”


“이 여자가 미쳤나!”


“라면! 라면 챙겨!”


라면 봉다리를 든 남자의 티셔츠를 잡아당기는 아줌마. 즉석밥을 집어 들다 말고 밀려 넘어져 매대를 넘어뜨리는 노인. 상품으로 진열된 대걸레 봉을 들고 붕붕 휘두르며 주변을 위협하는 젊은 남자 무리들까지. 말 그대로 대 혼란이나 다름없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격한 기침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소름이 돋았다.

눈여겨볼 점은 통조림 코너에 물품 반 이상이 쓸려 나갔다는 것이다.


“이봐요 아줌마! 통조림 어딨어요!”


“아까 다 나갔어요!”



“한개씩 사세요! 한개씩! 차례로!”


모든 직원들이 통조림 코너에 몰려있다. 통조림을 하나라도 더 쓸어가기 위해 아비규환이 벌어지는 상황이란 말이다. 불과 5분 전에 수현이 모든 통조림을 가장 먼저 싹쓸이 했기에 벌어진 상황이다.

수현은 통조림 코너를 빠르게 지나쳤다.

식은땀이 흘렀다.


‘옷 갈아입고 나온 게 다행이군.’


통조림 코너 앞에는 아까의 아주머니도 있다. 들키면 끝장이었다. 만약 그를 알아본 계산대 직원이 범인으로 그를 지목했다면? 화난 군중들이 분명 돌발 행동을 벌였을 거다. 집단 린치를 하자고 달려들었을지도 모르겠지.

수현은 절대로 당해줄 생각이 없었다.


‘반대 입장이었으면 저들은 단 하나라도 나누지 않을 거다.’


극단적인 인간 혐오론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포칼립스 류의 영화나 드라마는 십수 편을 보아왔다. 거기서 대부분의 무력 집단은 식량을 통제하곤 했다.

종말 상황에서 복지 따위는 없었다.

내 식량은 내가 챙겨야 했다.

독한 각오와 함께 혼란 속으로 뛰기 시작했다.

아직도 마트에는 물자가 차고 넘쳤다.


‘우선 상대적으로 사람들이 덜 쏠린 생필품.’


수현은 1차 목표를 정하고 달려나갔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니 하지만 아쉬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식칼이나 국자, 대걸레 따위는 있지만 공구류는 없는 것. 다x소 같은 전문 생필품 매장이 들어선 마트는 아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쉬운 대로 빠르게 식칼들을 주워 담고, 생필품을 쓸어 담아 가방에 넣었다. 가스 버너, 화장지, 치약, 테이프, 접착제 등등. 어느 정도 쓸만한 것들을 담고는 식품 매대로 뛰었다.

식량은 많을수록 좋았다.

하지만 냉동 코너에 도착하니 소란이 인다.

거기에는 중국계로 추정되는 보이는 무리가 한 노인의 머리칼을 잡아당기며 마구 패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놔!”


두피가 찢어지는 고통에 노인의 얼굴이 빨개져 있다. 하지만 중국계들은 식칼을 들고 낄낄거리며 그런 그를 걷어찼다.


“한국놈 새끼가!”


수현은 달려가서 그런 남자의 배를 냅다 걷어찼다.

가죽 터지는 소리가 났다.


뻐억!


순식간에 중국계 사내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주저앉은 채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내장이 파열된 것일까? 한눈에 봐도 단순한 폭행 이상의 충격을 받은 것이 보인다.

남은 패거리가 고함을 지르며 다가왔다.

그들에게 오히려 달려들며 외쳤다.


“내놔!!”


놀랄 만한 속도로 주먹을 휘두른다. 그러자 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턱이 돌아갔다. 또 하나가 기절한다. 이번에는 옆에서 달려오는 놈의 종아리를 킥으로 걷어찼다.

인대가 파열되는 소리가 들렸다.


“끄아아아아아악ㅡㅡㅡㅡ”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바닥을 뒹구는 모습은 이미 인사불성이었다. 그런 놈의 어깨에서 가방을 끌러내어 등에 멨다. 복부를 맞아 얼굴이 시퍼래진 놈의 가방도 압수했다.

3개의 가방을 압수하자 남은 중국인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죄, 죄송···.”


“꺼져라.”


중국계를 쫒아 보내고 가방 3개를 등에 졌다.

주저앉아있던 노인이 가쁜 숨을 골랐다.


“헉 헉··· 고마워요 청년···.”


수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가방을 가리켜 보였다.


“그거 내놓으세요.”


“....?!”


이해가 안 되는 것인지 굳어버린 노인. 수현은 눈을 부릅뜨며 식칼을 뽑아 들었다.


“내놓으라고!”


“히익···!”


노인은 가방을 내팽겨치고 도망쳤다.

비참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수현은 후회하지 않았다.

노인 혼자서 그 가방을 메고 마트를 나간다?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절대 불가능이다.

그렇다면 황금과도 같은 귀한 음식이 사라질 바엔 내가 가지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모든 짐을 등에 맸다. 총 4개의 냉동식품, 라면 배낭을 멨다. 집에 있는 통조림을 포함하면 이쯤 되면 마트 한 개에서 챙길 수 있는 식량은 최대치로 구한 거나 다름없다.

이정도면 목표의 절반을 이뤘다.

이제 탈출해야 하는 상황.

수현의 눈이 차가워졌다.

마트 안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군인이 들이닥치거나 좀비가 나올 거야.’


생각보다 진행이 빨리 되고 있었다.

좀비도 문제지만 군인이 가장 문제였다. 계엄령이 선포되었으니 곧 군인들이 들이닥칠 거다. 과연 대한민국 군대가 국민들을 편하게 놔둘 것인가? 수현은 아니라고 봤다. 아버지의 경고가 떠올랐다. 잘못하면 징집을 당할수도 있었다.

어떻게 탈출해야 할까. 수현은 정문과 뒷문 창고까지 시야에 담으며 탈출 경로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입을 벌리고 말았다.

아는 사람을 만나서였다.


“어?”


피투성이의 회사원. 그가 카트에 물건을 담다가 수현을 보고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까 버스에서?”


회사원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수현을 바라본다. 그러더니 이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건 긍정적인 신호였다. 나름의 동질감이라고 할까? 둘은 함께 살아서 나온 사이였다.

수현도 경계를 풀었다.

먼저 손을 내밀어온건 회사원이었다.


“이럴수가! 근처 사시나봐요.”


“예. xx아파트요.”


“아! 같은 주민이시구나. 저 143동.”


놀랍게도 같은 동네 주민이었다.


“142동입니다. 김수현이라고 합니다.”


회사원은 믿음직한 사람을 만난 표정이었다.


“최재형입니다. 아까는 고맙습니다. 버스에서.”


말을 이어나가며 그는 울컥한 듯 했다. 그 지옥도의 광경이 생각나서일거다.

따지고 보면 최재형에게 있어서 수현은 은인이나 다를바 없었다. 만약 1초라도 늦었다면··· 버스라는 이름의 통조림에 갇힌 채로 좀비 밥이 되었겠지.

그때 탈출하라고 소리친 것이 바로 수현이었다. 그래서 감격스런 눈동자로 바라보는 거다.

수현은 딱히 해줄 말이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도움을 준 사람이 살았다니 반갑기도 했다.

그렇게 재회를 마치고, 최재형은 이내 심각한 얼굴로 돌아왔다.


“근데 수현씨. 이거 심상치 않아요. 이거 뭐 깡패들도 보이고 곧 있으면 그··· 좀비 새끼들 나올거 같습니다. 저도 가족 맥일거 챙기려 급하게 나왔는데 미치겠습니다.”


그의 말에 동감했다.


“예. 죽을수도 있습니다.”


“헉.”


아닌게 아니라 마트 안은 이미 대규모 약탈장으로 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질서있게 행동하던 사람들도, 재단문자가 연달아 날아들고 사이렌이 울리자 나중에는 라면 한봉이라도 뺏으려고 주먹과 발길질을 날렸다. 균등한 배분이라는 소리는 이미 쏙 들어간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분명 좀비 바이러스는 나타날 거다. 아니 이미 전염이 시작되었을수도.

목적은 마쳤다. 최대한 빠르게 빠져나가야 한다.

수현은 최재형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4개의 식량 가방 중 한 개를 풀어서 건넸다.


“받으세요.”


“!! 주시게요?”


“네. 대신 지금 같이 나가죠. 인원수가 많아야 놈들이 안 건드릴 겁니다.”


수현에게는 무리가 필요했다.

상황을 둘러보니 약탈자들이 좋아하는 타겟은 약자였다. 노약자, 여자, 아이, 또는 혼자 다니는 고립된 남자. 그런 취약계층 만을 철저히 노렸다.

물론 일반 남성 몇명이 달려들어도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방금 전 중국인들을 상대할 때 그는 느꼈다. 내 몸이 분명히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하지만 싸움이나 하기엔 곧있으면 세상이 멸망한다. 1분이 아까운 시간에 드잡이질이나 할 생각은 없었다. 이 사람도 꽤나 덩치가 컸으니, 둘이서 경계하면서 마트를 벗어나면 된다.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최재형은 반색을 했다. 약탈자 놈들에게 꼼짝없이 린치당하지는 않을까봐 걱정했던 것 같았다.


“후! 좋습니다.”


굳었던 표정을 푼 그는 곧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시선이 없는 걸 확인하곤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끌렀다.

그러더니 수현에게 건넨다.

물건을 본 순간 눈이 부릅 떠졌다.

검은색의 권총이다.


“...총?”


최재형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그 새끼들, 허리에 이걸 꽂고 있더라고.”


“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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