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창고에 들어왔을 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단지 직감 뿐만이 아니었다
얼핏 이 창고는 농성하기 좋아보였다. 마트 재고 품목이 진열대에 있는것만큼 많았고 한쪽에는 생수 페트병 2리터 묶음이 파렛트째 쌓여있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에 평생 갇힌다면?
좀비들은 점점 전염되었다. 최악의 경우 수천마리 좀비가 이 동네를 배회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된다면 셔터가 단단히기를 빌어야 할 것이다. 수백이 달려들면 입구 전체가 무너져 내릴지도 몰랐으니까.
수현은 셔터에 달린 플라스틱 유리창을 내다보았다.
밖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것은 거대한 녹색의 장갑차였다.
‘장갑차!’
녹색의 강철 차량들이 달려나간다. 병력수송 장갑차들과 군용트럭이었다. 개중에 K-808 백호 장갑차는 굉음을 내며 트럭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군대의 위용도 잠시였다. 다음 순간 그의 눈에 보인 건 사방에서 군용차를 향해 달려드는 수십의 좀비떼였다.
미친 좀비들을 보자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거기에서 수현은 또 한가지의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놈들은 소리에 특히나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
‘엔진소리가 너무 크다.’
콰콰쾅!
장갑차에서 50구경 중기관총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것은 총기라기 보다는 마치 폭탄이 터지는 소음을 내며 좀비들을 터뜨렸다.
“꺄아아악!”
여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남자들도 휘둥그레지긴 마찬가지였다. 천둥소리가 나서였다. 역시 군대의 화력이라는 걸까? 단지 APC 차량 2대가 전선을 지나고 있을 뿐인데도 10초가 채 되지않아 십수마리의 좀비를 갈아버리며 질주하고 있었다. 그런 군용차량의 위엄을 보고 있자니, 예상했던 대종말이 오지 않을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좀비가 너무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현기증이 났다.
그건 좀비의 파도였다.
‘수, 수백인가?’
캬아아아악ㅡㅡ!
아파트 단지에서 그것들이 튀어나왔다. 남자거나 여자, 노인이건 상관없었다. 그들은 붉은 눈을 하고 있었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장갑차에게 달려들었다. 그 수만 언뜻 보기에도 수백이다. 소름이 돋는 광경이었다.
놈들은 철판에 대고 통하지 않는 손발을 휘두르거나 이빨을 들이밀었다. 그런 놈들은 장갑차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면서 무거운 강철 차체로 깔아뭉게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수가 너무 많은게 문제였다.
좀비들이 연달아 바퀴에 끼어들자 장갑차의 속도마저 주춤할 정도였으니까.
뿐만 아니라, 병력 수송칸이 오픈된 군용 트럭에는 어느새 좀비들이 달려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기겁을 하면서 일어나 소총을 쏴대었음에도 좀비들은 달리는 트럭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군용차량들이 수백의 좀비들을 달고 멀어져가고 있었다.
다시 이쪽으로 올 일은 없을거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수현이 셔터에서 고개를 돌리자 전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 어떻게 되고있는 거죠? 군대는요?”
“...군대가 도망가는데요. 밖에 좀비들이 너무 많아서요.”
“....”
사람들은 수현의 답에 얼음장처럼 굳어있을 뿐이었다.
“흑, 흐흑.”
무거운 침묵 가운데 한 여자가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몇몇은 기침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보던 중년 남자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다들 닥쳐! 그놈들 불러들일 일 있어!”
속삭이듯이 외친 고함에 눈물을 흘리던 여자는 화들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일부는 중년인을 노려보았지만, 그뿐이다.
수현은 불안한 감정을 느꼈다.
아까부터 느꼈던 위기감이었다.
이곳에 오래 갇혀 있을수록 좋지 않았다.
방어 지형도 너무 안좋았다. 탈출 각을 봐야 했다.
‘무기가 필요해.’
그는 무리에서 벗어나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까의 중년 남자가 탐탁치 않게 그를 바라봤지만 상관없었다.
이곳저곳을 탐색하던 수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창고 구석진 곳의 휴게 공간. 거기에서 그가 그토록 바라던 것이 나왔다.
그것은 손색 없는 무기였다.
‘오함마!’
아마도 얼음을 깨기 위해서였을 거다. 아니면 자재 파렛트 같은 것을 부수는데 사용했을수도 있겠지. 어쨌든 철물점에서 살 수 있는 거대한 양손 망치가 구석에 고이 놓여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커다란 빠루, 한손 망치도 몇개 보였다.
쾌재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수현은 양손 망치를 집어들었다. 역시나 슬렛지 해머라고 할까. 묵직한 감각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침을 꿀꺽 삼켰다.
과연 그놈들의 머리통을 한번에 깰 수 있을까?
시험삼아 양손으로 잡고 휘둘러 보았다.
한번 휘두를 때마다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붕- 붕-!
사실 휘두른 순간 느낌이 왔다.
머리통을 깨는게 아니라 산산조각 낼 수 있다고.
심상치 않은 물리력이 손 끝을 타고 전해졌다.
‘이거면 됐다.’
수현은 사람들 사이로 돌아갔다. 그런데 상황은 또 변해있었다.
아까 창고문을 열었던 여자가 핸드폰으로 영상을 틀었고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보고 있는 중이었다.
최재형을 바라보자 그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주, 중국에서 연설을 하고있습니다···.”
“.......”
핸드폰 화면을 보니 중국의 주석이 최고회의를 소집해 연설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충격의 연속이었다.
[...국익과 생존권에 심대한 위협을 받아···. 전면전을 선포한다.]
전쟁? 아니면···.
무엇이 됐든 이 세상이 끝장났다는 것이 피부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
모두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꿈이라도 꾸는 것 같은 느낌일 거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심장박동수가 빨라지는 게 보였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동물은 패닉에 빠져 기절하기도 한다. 그런 반응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수현은 짧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연설에 집중하고 있던 사람들이 그를 돌아보았다.
이들에게 의견을 표현해야 했다.
“지금 여기서 나가야 합니다.”
“...!”
눈을 크게 뜬 사람들이 이쪽을 바라본다.
나가야 한다니?
밖으로 나가는게 자살 행위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정을 되돌릴 생각은 없었다.
지금도 본능은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아무도 안 나간다면 혼자서라도 나가야 한다고.
“그게 무슨···.”
시작은 아까의 중년인이었다.
화등잔만하게 커다래졌던 두 눈이 분노로 변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수현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문은 못 엽니다. 다 죽어요.”
한숨이 나왔다.
“아까 군대가 좀비들을 다 끌고갔어요. 나가려면 마지막 기회입니다.”
“미친 소리!”
중년 남자는 이제 비웃는듯한 엷은 웃음을 띈다.
“지금 이게 무슨 영화인 줄 아십니까? 아까 사람들 뜯어먹히는 거 안 봤어요? 뭐 그 망치로 휘둘러서 좀비 잡겠다? 하하하. 상식적으로 가능하다 보세요?”
겉보기에는 중년남자의 말이 맞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하지만 이딴 개소리에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수현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똑똑히 경고했다.
“가족들 보러 안 가실겁니까?”
“.......”
얼음장처럼 내려앉은 침묵. 상황이 바뀌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부인분은요? 자녀분은?”
“....”
입술을 짓씹고 있지만 중년 남자의 얼굴은 크게 일그러져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각기 다른 반응이 나왔다.
“나, 난 나가야 돼. 집에 가족들이 있어.”
최재형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수현의 옆에 섰다. 동영상을 보던 여자도 핸드폰을 껐다.
그녀는 셔터에 난 창으로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좀비가 적어진 건 맞아요. 전 나갈게요.”
몇명이 더 나가려고 수현의 옆에 섰다.
가족들을 봐야한다는 입장이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었다.
“자살하려면 당신들끼리 해. 근데 셔터는 열지 마.”
“맞아요. 그것들이 안으로 들어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죠? 군대가 올때까지 여기서 벼텨야 돼요!”
중년인의 빈정댐을 시작으로 다른 가족들도 입을 열었다. 일가족을 끌고 온 이들이었다.
그들은 아예 벌떡 일어서서 셔터 쪽을 가로막았다. 수현쪽을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모양새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극약 처방이 답이다.
수현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죽기 싫으면 비켜라.”
“.......!”
대표로 선 중년 남자의 눈이 크게 떠진다. 수현이 식칼을 뽑아 들었기 때문이었다.
칼날을 번뜩이며 중년인을 향해 천천히 한 걸음씩 다가갔다.
그럴수록 중년인은 뒷걸음질을 쳤다.
곧 고함이 터져 나왔다.
“씨발! 나가! 나가라고!”
울분이 섞인건지 모르는 고함이다. 그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는 하차장 구석으로 비켜설 뿐이었다.
이제 방해 요인은 없었다. 수현은 나가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최재형과 여자를 제외하고도 수산시장 직원, 남자 한명이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심각할 정도로 굳어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게 보였다.
안심을 시켜야 했다.
“xx아파트 까지는 100미터도 안됩니다. 금방이에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다 같은 단지 주민들이었다.
수현은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간단하네요. 해봅시다.”
“...후우- 후우- 수현씨. 가능하겠습니까?”
최재형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뚫을 수 있습니다.”
“...후.”
“다들 저쪽에 연장 챙기세요. 그 자식들도 머리통을 박살내면 죽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수현은 셔터에 기대어놓은 카트를 치웠다. 이제 남은 것은 셔터 뿐.
아직까지 밖에 보이는 좀비의 움직임은 없다.
중년인이 저주를 퍼부었다.
“다 뒤질 거야. 난 말렸어. 죽어도 나 원망하지 말라고.”
“닥치시죠.”
어느새 빠루를 들고나온 최재형이 중년인을 향해 윽발 질렀다. 그럼에도 중년인은 비웃음을 흘릴 뿐 중얼거리는걸 멈추지 않았다.
수현은 빠루나 망치를 들고 선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셔터의 밑을 잡았다.
“갑니다.”
창고 문이 확 열리고 월요일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절망적인 심정이 느껴졌다.
원래라면 출근길이었을 도로가 피바다로 변해 있었다.
밖에는 혈흔과 시체로 가득했다.
“닫아! 병신들. 하하하.”
수현 쪽이 나오자 뒤에서 셔터가 쾅 닫힌다. 그리고 카트가 셔터를 단단히 봉인했다. 중년 남자는 유리창을 통해서 수현을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병신 새끼들! 너넨 다 뒤질거다. 하하하!”
저주와도 같은 섬뜩한 비웃음. 이제 돌아갈 길은 없었다.
저 멀리서 좀비들이 사람들을 뜯어먹으러 뛰어다니는 게 보였다.
수산시장 직원의 다리가 심하게 후들거리고 있었다.
“이, 이거 잘못된 거 아냐?”
직원의 물음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수현은 어깨에 기댔던 양손 망치를 두 손으로 단단히 잡았다. 그리고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뛰어요!”
이제 이판사판이었다.
“진짜 좀비들이 없어요!”
여자의 말에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정말 아파트 단지까지 도착했는데도 좀비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한 남자는 반색했다.
“저 여기! 302동이요!”
“가요!”
그는 자신의 아파트 동을 발견하고는 화색이 되어 뛰어들어갔다.
하지만 남자를 보내고 중간까지 왔을 때, 주차장에서 좀비들이 튀어나오는 게 보였다.
수산시장 남자가 회칼을 쥔 채 비명을 질렀다.
“씨바알···!”
“캬아아악!”
놈들은 마치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달려들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수현은 자세를 잡고 달려오는 좀비를 파악했다.
‘세 놈.’
거리를 계산하고는 양손으로 망치를 그러쥐었다.
그리고 타이밍이 오자 큰 궤적을 그리며 휘둘렀다.
뻐억!
남자 좀비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뇌수가 비산했다.
다음 좀비는 여자 둘.
반대 방향으로 풀 스윙을 휘둘렀다.
두 좀비의 머리통이 말 그대로 터져버렸다.
“허억.”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수현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말했다.
“303동 사시는 분?”
최재형이 부들거리는 손을 들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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