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

[야, 나 렙업하게 기술석 줘]
갑자기? 뜬금없었지만, 나쁜 것 만은 아니었다. 저번에도 레벨 업 한 덕분에 내 몸이 치유됐었고 새로운 기술도 생겼으니까.
문제는 단 하나였다.
‘현실화도 안됐는데 어떻게 렙업시켜?’
[아아.. 이런]
가만보면 얘도 진짜 뭔가 나사빠진 것 같네.
문득 옆 수풀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마수는 아니었고 자경단 무리였다. 이미 재빠르게 기술석을 가슴 속에 숨겼다.
아무래도 각성자의 눈을 피하긴 어려웠고, 내가 무엇을 숨기는지 이미 아는 눈치다.
기대도 안했다.
“어이 그거 내-“
“잠깐!”
자경단 중 한 명이 말을 내뱉으려는 걸, 뒤에 있던 놈이 급히 막았다. 여기 우두머리인가?
갑작스레 말문이 막힌 대머리가 상대를 바라보았지만 불을 키듯 노려보는 눈길에 뒤로 물러섰다.
“이 놀들. 직접 쓰러트리신 겁니까?”
다른 이들이 땅바닥을 쳐다봤다
“뭐야 저 공격은..”
“뼈가 드러날 정도인데? 심지 어 한 놈은 핏물이 온 몸에 가득이고..”
“고작 F급이 이렇게 만들 수 있다고?”
놀람 반 불신 반. 뭐라 말해야하지?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거짓말하자니 뭐라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이럴 땐 그냥 뻔뻔하게 나가는게 답이지.]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예.”
내 말이 끝나자마자 우두머리 뒤에 있던 한 명이 어이없다는 듯 소리쳤다.
“거짓말 하지-“
“입 다물어라. 혹시 어떻게 처치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놀들은 E급 마수입니다. 실례지만, 마력 수준이 고작 F급인것 같은데..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냥 뭐..”
내가 말을 않자, 자경단들의 눈알 돌아가는 소리만이 울렸다. 앞에 있는 놈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 뭐 말씀드리기 어려워하시는게 이해합니다. 여러 아이템들을 사용하셨겠지요? 아무래도 그걸 밝히기 싫어하시는것 같고요.. 좋습니다. 이런 분을 저희가 못알아본 잘못이 큽니다. 미안합니다.”
사과할줄은 예상치 못했다. 심지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눈이 동그래지는게 보였다.
“먼저 제 소개부터하지요. 저는 장무 라고 합니다. 이들을 현재 이끌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율을 조정하지요. 3:3:3:3:3:1 이었지요? 바꿔서 전부 1:1로 하지요. 6개 나오면 각자 한 개씩 나눠 가지는 것으로. 자, 같이 다니는게 어떻습니까? 놀 뿐만 아니고 여러 마수들이 나올 수도 있는데.”
[야, 괜찮네. 같이 다녀도.]
검이 부추겼지만 싫었다. 물론 저들이 의심스러운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얻을 마력석이 줄어든다는것은 변치 않았다.
남은 한 달동안 마력석이란 마력석은 모아서 한꺼번에 전부 다 섭취해야하는데. 나누긴 뭘 나눠?
거절해야지..라고 생각하려던 참에
불청객이 여럿들어왔다.
다행히 사람은 아니었고 놀들이었다.
“7마리”
빡빡이가 나지막히 말을 하자마자 장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다행히 우두머리는 없는 듯 하고. 철,양,진 섣불리 접근하지 마라. 그냥 서로 협동하지 못하게만 견제해. 우, 내 왼쪽을 엄호하고. 가자!”
나를 내버려둔채 자경단 무리가 돌진했다. 자신들의 원소를 사용해가며 전투했고 어렵지 않게 처치해갔다.
진형을 갖춰가며 싸우는 모습을 보니 얕잡아볼 상대는 절대 아니었다.
‘..강한자 길드 놈들보다 더욱 쎈 것 같은데.’
[그러게.]
‘어쩔 수 없다. 같이 다니는게 낫겠다.’
[어? 왠일?]
‘첫 번째. 지금처럼 기술에 쿨타임 걸려있으면, 내가 뭘하기 어려우니까. 두 번째. 이번 서든 게이트는 마수들도 E급 인 마당에 사람들까지 들어와있으니까. 그냥 챙길것만 안전히 챙기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게 나아.
[마력석 아깝다고 할땐 언제고? 그냥 쟤네들 실력보니 제압하긴 어려울 것 같아서 그런거 아냐?]
’크흠. 아니거든? 전략적 선택이야’
[그러시겠죠.]
뭣도 모르면서. 흠흠. 제안을 받아들이자고 결심한 그 때, 전투가 끝났다. 전리품은 무려 원소 기술석. 모두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이게 무슨”
“여기 서든 게이트는 보상이 기술석인가 봅니다! 땡잡았습니다!”
모두의 웃음꽃이 피는 와중에 장무가 리더는 리더인지 주위를 확인했다.
“다친 놈?”
“없습니다!”
“좀 긁혔던데.”
“이 정도야 뭐. 양이가 치유해주겠죠. 대지 원소 기술자인데. 뭐 정안되면 형님이 주신 포션 먹으면 될겁니다.”
“좋아···”
장무가 내쪽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희랑 같이 다니시겠습니까?”
“네. 그렇게하죠. 비율은 모두 동등하게 비율 1 맞죠?”
“하하 당연한 말씀을. 가시죠”
***
한 명 더 합류한 자경단은 거침없이 전진했다. 장무는 마수들이 나올때마다 옆을 흘끗 흘겨봤다. 자신을 이영이라 소개한 이를 틈날 때마다 쳐다봤지만, 도대체 무슨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건지 알 수 없었다.
‘실력은 보여주지도 않고.. 게다가 마나도 없고.. 아이템빨이라고 하자니.. 뭐, 보여주는 것도 없네. 도대체 놀들을 어떻게 처치한거야?··· 그냥 기술석 빼앗고 죽여? 아니면..’
아니다. 굳이 이런 놈을 상대하는데 자신의 귀중한 물약을 사용할 순 없었다. 게다가 죽이는 것도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이 놈은 분명히 희귀한 아이템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F급이 E급 마수, 그것도 3마리를 처치했으니 확실하다.
이정도면 왠만한 기술석보다 비싼 아이템일수도 있다. 그것을 놓치기는 아까웠다.
물론 죽인 후 몸을 뒤지는 방법도 있었다. 문제는 아공간 가방안에 있을경우 빼앗을 수조차 없었고, 설사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귀속 아이템이라면 스스로 주는게 아닌 이상 빼앗을 순 없었다.
‘비싼 아이템들 중 몇몇개는 귀속 아이템이란걸 생각해보면.. 죽여도 못가질 수도 있어. 어떻게 한담?’
장무는 어렵지 않게 금방 답을 찾아냈다. 애초에 이런 적이 한 두번도 아닌만큼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알아낸 다음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어야하는데 어떻게... 아 그렇지. 위험한 상황을 만들면 돼. 그러면 꺼내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겠지. 그다음에 협박을 하면..’
장무는 무슨 말을 던지면 좋을지 생각을 갈무리했다.
***
[과연 저들이 너를 내버려 둘까?]
왠일이냐? 날 걱정해주고. 주인을 갈아타려고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던 놈이 저런말을 던지니 뭔가 신기했다.
좀 감동인데? 물론 내색하진 않았다. 그동안 행동한게 괘씸해서.
‘왜 갑자기 생각하는 척이야? 주인 갈아타길 원했으면서.’
[···나 현실화 안됐는데 어떻게 갈아타?]
아.. 그런거였냐.
역시나. 그냥 영영 현실화 안되는 것도 괜찮은데··· 생각해보니 그러면 레벨업을 못하겠구나.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갑작스럽게 장무의 말이 끼어들었다.
“놀들 밖에 안보이는것 보니, 이 서든 게이트에선 놀 우두머리가 있을 확률이 높군요.”
“그런가요?”
“네. 아무래도 한 종류의 마수들만 보인다면, 우두머리도 같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봤자 E+급 밖에 더되겠습니까? 일반 마수들 잡는 것보다 3~4배, 많게는 10배도 넘는 전리품이 떨어지는 만큼, 오히려 좋은 기회라 할 수 있습니다··· 가실건가요? 너희들은 찬성이지?”
“네 형님.”
“그럼요.”
“가야죠.”
“얼른 가죠. 형님.”
불안한 마음이 없지만 마음속에 반짝이는 마력석이 더욱 컸다. 10배라고? 심지어 여기는 기술석이 나오지 않던가.
팔아서 마력석을 왕창 사는 것도 가능하다.
원래 주식도 위험을 무릅써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처럼 이것도 마찬가지일터였다. 3달전 생활비 아껴가며 넣었다가 상폐당한 미국주식이 생각났지만 그건그거고 이건 이거다.
가즈아아아아.
[쓰읍. 뭔가 밑밥까는거 같은데?]
이놈의 검이 수상하다는 듯 만류했다. 이래서 주식 안해본 애랑은 말을 섞으면 안된다. 위기속에서 보물이 있는 법이라고!
‘우두머리 보상 이야기는 맞잖아. 나도 들은 적 있다고.’
[그걸 말하는게 아니잖아. 네가 위험할거 생각하는거지.]
‘조용히해. 난 갈테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두머리도 저희랑 같이 가시겠습니까?”
재촉하는 듯 묻는 장무의 말. 이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하리라.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깊숙한 곳으로 가지요. 양아. 앞장서라.”
“예 형님. 탐지하면서 천천히 가겠습니다.”
머리카락 대신 붉은 손바닥 자국이 있는 양이 먼저 나아갔다.
***
“형님··· 뭔가 이상합니다.
“뭐가?”
“100m앞에 분명히 우두머리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E급 기운이 아닙니다.”
“뭔 개소리야? E급 놀이 나왔는데 우두머리가 놀이 아니란 이야기냐?”
“그것까진 모르겠고.. 그냥 E급보다는 더욱 높은 것 같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마라. 니놈이 각성자등급은 E급이지만, 원소 등급은 어떻게 되냐? 고작 F급 아니냐? 그러니 제대로 못느끼는거 아니야?”
“아닙니다! 애초에 대지 원소 기술자들은 F급만 되도 대략적인 마나는 파악이-“
“이 새끼가 어디서 눈을 부라려?”
<빡>
장무의 손이 다시 머리로 향했다. 이미 손 모양의 붉은 자국이 머리에 박혀있었는데, 거기에 또 다시 손바닥이 겹쳤다.
[머리에.. 손가락이 10개네?]
검의 말대로 였다. 퍽 웃겼지만, 분위기가 심각해서 차마 입밖으로 웃진 못했다.
“잔말말고 따라와! 어디서 말도 안되는 소리하고 있어. 무슨 언데드나 악마, 천사도 아닌 고작 놀따위가? 말이 돼?”
“형님.. 여기 서든게이트입니다. 뭐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구요.”
“시끄러워! 전리품 분배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잔말말고 앞장서.”
“···네..”
전리품의 위력은 강력했다. 표정을 여전히 불만스러워 보였으나, 결국 다시 앞장섰다.
하지만 아까완 다르게 속도가 미적지근했고, 주위를 더욱 두리번거렸다. 여차하면 도망가는거 아냐?
그것까지 뭐라고하긴 그런가? 장무도 별 말 안하네.
생각해보면 안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조심하겠다는데 그걸로 뭐라 하기도 이상한 상황이다.
[야, 여차하면 도망갈 준비해]
얘는 또 왜 이래?
‘내가 알아서 할거니 조용히해.’
[걱정해줘도 지랄이야]
‘니 살자고 걱정 하는거지 나 살자고 했던건 아니잖아?’
[어쨌든 지금은 나도 살아야 하잖아? 미친놈아 내 말들어. 저 놈 말이 맞아. E급아니다. D급이야. 저놈들로는 절대 못살아남아.]
‘기술 쓰면 나도 D급 되니까 괜찮아.’
[일반 마수면 그러겠지. 아니, 너 없이도 저놈들 끼리 잡을 수 있어. 문제는 우두머리라는 거야. 최소 같은 등급 5명은 모여야 잡는다는거 몰라? 너 포함해서 D급 4명이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해. 잔말말고 도망칠 준비해.]
도망치라고? 내 보상은? 내 원소 기술석은?
···저 말이 사실인가? 검은 지금까지 주인을 갈아치우려했다. 다만 검의 제 1 목적은 생존이라는 것.
그런의미에서 지금 한 말은 진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 상태에서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지?’
[현실화 안된 상태에서? 잘은 모르지만 아마 소멸될거다. 지금은 너와 내가 목표가 같으니 내 말들어. 보상 얻으려다가 개죽음 당할거다. 동생 병원비 내야한다며?]
이새끼가 치트키쓰네. 하.. 기술석이 아른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빠져나오는거야 어렵지 않았다. 그저 말할기가 껄끄러웠고 아쉬움이 한가득이어서 그렇지.
“저..”
“왜 그러시죠?”
“저 대지 원소 각성자분의 말을 듣는게 나을 것 같은데요. 서든 게이트이니 무슨일이 생기더라도 이상할게 없으니..”
내 말에 모두들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양’이라 불리는 대머리 대지 원소 각성자 한 명을 제외하곤 싸늘한 표정이었다.
“나참.. 어이가 없어서.. 겁먹으신 겁니까? 아니면 느낄 수 있는 아이템이라도 가지신겁니까?”
“네? 아니 조심해서 나쁠게 없다는거죠..”
검이 말해줬다고 말할 수는 없는 만큼 두리뭉술하게 대충 말했지만 장무는 혀를 찼다.
“겁먹었으면 빠지시죠. 이래서 F급들은···”
“저 ‘양’이란 놈이 한 말 때문에 그런가본데 틀린 경우도 꽤나 많아. 댁이 빠져도 상관은 없지만, 나중에 우리끼리 짠거니 뭐니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미리 이야기 해주는거야. 정말 빠질거야?”
“그래도 우두머리때는 빠지겠습니다. 조심해서 나쁠건 없으니.”
“뭐 그러시던가.”
예상대로 시큰둥하게 말했다. 이제 남은건 탈주뿐이었다. 기술석이 아른거려 그냥 다시 참가한다고 말할까 고민했지만, 이미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는 법이다.
뭐 어떻게 하겠어.
[아 씨.]
‘왜 그래? 니말대로 잘 빠져나왔는데.’
[하- 문제가 하나생겼다.]
‘뭔데?’
[너무 늦었어.]
무슨 말인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이···이게 무슨”
“미..미친 저게 ‘놀’이라고? 무슨 키가···”
자신의 둥지에서 기다려야할 놀 우두머리가 다가왔다.
키는 족히 2.5m는 되어 보였고, 덩치는 놀 3마리를 합친 것처럼 큰.
“으르르아아아!”
늑대의 울음소리였지만, 호랑이처럼 극히 낮은 저음이 귀를 파고들었다/
“진형을 갖춰라!”
장무가 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다들 패닉에 빠진 뒤였다.
“미..미친.”
“왜 우두머리가 여기까지와??”
대지 원소 기술자가 아니더라도, 워낙 근처에 있는 만큼 본능적으로 알았다.
앞에 있는 놈이 절대 E급은 아니라는 것을.
[야 정신차려!]
와씨 뭐야 이거.
[놀들은 시각보다는 후각과 청각이 더욱 예민하다. 소리나지 않게 뒷걸음질 쳐.]
그나마 빠져나온다고 한 덕택에 나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조심히 빠져나오기는 어렵지 않은 상황. 천천히 발을 뒤로 옮겼다.
놀이 맨 앞에 있던 대지 원소 기술자, ‘양’을 나무기둥만한 몽둥이로 얼굴을 후려쳤다. 이제 도망칠 때다. 내 발소리는 전투의 함성에 묻히리라.
저들이 전투하는 동안 열심히 도망치면 된다.
···라고 생각했는데.
[허. 씨발 좆됐네.]
“씨발”
검도 나도 욕이 나왔다.
이미 뒤에는 수 십마리의 놀들이 우리를 포위한 채로 서있었다.
[이정도면 30마리는 넘겠는데?]
답이없네.
“하··· 죽음의 힘이 내게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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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급 저승의 힘 - D등급 만큼의 힘과 민첩성,체력 증가. 지속 시간 30초. 쿨타임 30분. 검의 레벨에 따라 능력, 지속시간 및 등급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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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 홀로그램이 반짝거렸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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