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가학

검이 레벨업을 하자 내 체력이 회복됐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피로가 회복됐다.
몸에 살짝씩 베이던 근육통이 날아간 느낌.
하. 젠장
‘너 이 젤리 마력석인거 알았지?’
[어? 아니. 전혀 몰랐는걸.]
‘웃기지마. 마력석 먹으려고 그 지랄한거잖아. 내가 말했잖아. 분명히 위험한 상황때 마력석 줄거라고.’
[아, 몰랐다니까 그러네.]
하.
일단 이미 일어난 일이다. 검을 추궁해봤자 아무것도 달라질 건 없다. 제일 중요한건 고 대리다. 과연 레벨 업을 눈치챘는지. 만약 챘다면 어떤 변명을 해야하는지.
고 대리를 흘끗 봤다.
제발 날 보고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보더라도 아무 표정이 없길 바라면서.
하지만, 그 두 눈은 명백히 나를 보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내 눈과 마주쳤으니까.
그리고 신기한듯 쳐다보는 표정도 뚜렷했다.
“음.. 체력 회복이 완벽히 되셨네요.”
“네.. 어떻게 아셨나요?”
“표정에서 다 보입니다. 젤리가 몸에 맞나봅니다.”
“아..네.”
“필요할때마다 드세요. 탱커는 필히 이런 음식을 가지고 다니는게 좋습니다.”
고 대리가 몸을 돌렸다.
젠장, 탱커라니. 받은게 있어서 거절하기도 애매하네. 그래도 생각해보면 덕분에 들키지 않았다. 탱커노릇해서 받은 젤리 아니었으면 갑작스런 체력회복을 이상하게 봤을테니까.
휴. 식겁했네.
[아··· 그냥 가네.]
‘왜 아쉬워하냐?’
[응? 아니 그냥]
이거.. 이놈 고 대리가 마음에 든 듯 한데.
물론 비련의 남주인공처럼 ‘나보다는 저 남자가 너에게 더 어울려. 널 위해서 내가 떠나줄께 흑흑.’를 할 생각 따윈 일절 없었다.
그냥 주든, 빼앗기든, 압수당하든 죽기는 매 한가지였으니까.
‘사멸.’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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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멸 - 인도자의 검
Lv. 12
Exp (300/12000)
보유기술 목록 [D 시체 일으키기], [아공간 가방],[D 저승의 힘], [D 저주-가학]
예속화 1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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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부른거 아니다. 이 놈아. 상태창 확인하려한거지.
..역시 새로운 기술 생긴게 맞았어.
‘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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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저주 - 가학 (지속효과) : 맞을 때마다, 상대에게 가하는 피해랑 1% 증가. 최대 300%만큼 증가 가능. 지속시간: 10초, 쿨타임 없음】
【이 기술은 시전어가 필요하지 않음.】
【이 기술은 예속화에 구애받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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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건? 지속효과? 내가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숨쉬는 것 처럼 상시 발동하는 기술이다.
시전어가 필요없다는 것 봐선 확실하다.
그렇다는건, 마력 흐름에 민감한 바람 원소 기술자조차도 알아차릴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는건 고 대리도 내가 이러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건 알아차리지 못할거다.. 좋아.
다만 기술설명이 뭔가.. 이상하다.
맞을 때마다 피해량이 증가한다고? 이거 그냥 변태 같은데.
게다가 1대맞을때마다 1%증가면.. 100대 맞아야 2배 증가이고 200대 맞아야 3배 증가란 말이다.
그때까지 맞으면 살 수가 있나?
[지속효과 기술 얻었나보네··· 하필 가학이네.]
‘말하는 투 보니.. 너도 막 알았나본데?’
[정확히는 저주 기술이 개방될 건 알았지만 그게 ‘가학’기술일줄은 몰랐지. 저주 기술은 기본적으로 패시브, 아니 지속효과 기술인데 무엇이 개방될지는 무작위거든.]
‘그래? 가학기술 괜찮은 것 같은데 반응이 왜 그 모양이냐.’
[저주기술 중 하나는 ‘가혹한 눈’이다. 눈길을 마주하는 상대에게 공포와 피해를 주는 기술. 심지어 눈에서 푸른 안광도 나온다고. 그런 멋진 기술 대신 가학이 개방되었으니 그러지.]
‘···푸른 안광 나오는거 남들에게도 보이냐?’
[당연하지.]
‘..아주 이상한 아이템을 들고있다고 광고를 해라.’
안광 나오는 기술 안배워서 다행이다. 저거 개방됐다간 모두에게 이상한 눈초리를 받겠지. 뭐, 좋은 아이템 주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대리님! 저.. 저 앞에..”
누군가가 앞을 가리켰다. 손가락의 방향을 따라가자 고블린이 보였다. 하나, 둘··· 총 20마리.
너무 많은 숫자다. 아무리 약한 고블린이더라도 이건 좀 무린데.
고 대리도 같은 생각인지 품속에 있던 단도를 꺼냈다.
“보통 저런 대규모 무리에는 아이템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마련이지요. 다만, 숫자가 너무 많군요. 이번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아이템이란 말에 몇 명이 화들짝 놀랐다. 고 대리의 성격상 자신이 처치하면 아이템을 나눠줄 것 같진 않았다.
“혹시 아이템 나오면..”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아이템 분배는 냉정하게 처리해야합니다. 저 혼자 처리한 만큼 나누어드리긴 어렵습니다. 아무리 저에겐 쓸모 없는 물건일지라도.”
“저희가 해보는건 어떨까요? 우리에겐 최강의 ‘탱커’가 있는데.”
누군가 끼어들었다. 역시 기진이다.
“혼자서 감당하기엔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도 특이한 젤리도 받았는데 괜찮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에겐 마수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저와, 강한 공격력을 가진 여성 두 분이 계신데요.”
“음.”
고 대리가 나를 쳐다봤다, 어차피 파티에서 우선권을 가진 사람은 탱커일 수 밖에 없었다.
거절할까?
아니다. 어차피 방어구가 단단해 당장 죽을 것 같진 않기도 하고.
또, 혜인과 영아라면 내가 쓰러지기전에 모두 처치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분들도 동의하신다면,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내가 승낙하자 기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마 내가 거절하리라 생각하고 행동한듯 하다.
“···괜찮겠습니까?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위험하다 싶으면 고 대리님께서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좋습니다. 그러면.. 모두 동의하십니까?.. 좋습니다. 천천히 가시지요.”
아이템 때문인지 다들 참가의사를 밝히자 고 대리는 선뜻 승낙했다.
내가 허리 춤에 있던 몽둥이를 꺼내들자, 다른 이들도 무기를 뺐다.
이거 진짜로 내가 파티장이 된 것 같은데?
“이영님. 지시해주세요.”
예비 1호 혜인이 말했다.
“네. 천천히 전진하겠습니다. 제 뒤에서 앞으로 나오지 마십시요. 제가 앞에서 고블린들의 주의를 끄는 동안 뒤에서 공격해주시면 됩니다.”
“원소 기술 있어요?”
기진이다.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주의를 끈단 말이에요? 이영씨가 앞에서 알짱거린다해도, 우리들이 등 뒤를 밟는 순간 고블린들이 고개를 돌릴겁니다.”
흠. 맞는 말이다.
[말하는 뽄새가 마음에 안들기는 하는데 틀린말은 아니야. 어떻게 하게?]
“나참. 대책 없이 하겠다고 한거야? 아무 원소 ‘기술’도 없는 F급이 혼자서 저 무리를 어떻게 막어? ”
‘기술 도 없는 혼자라.’
기진은 비웃었지만 난 그 말에서 해답을 얻었다.
그래. 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 기술을 쓰기위해선 오히려 혼자가 낫다.
“다들 아시다시피, 마수들의 어그로, 즉 주의를 끄려면 두 가지 방법 중 하나가 있습니다. 먼저, 원소 기술을 이용해 시선을 끄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물 원소 각성자라면 발이나 옷을 축축하게 만들어 불편하게 만들어 어그로를 끌지요.”
“다들 아는 이야기를..”
“두 번째 방법은, 제일 긴 시간동안 전투를 벌이는 겁니다. 5분, 10분동안 혼자서 전투를 벌이는거지요. 그러면 마수들은 오직 그 사람을 죽이겠다는 충동에 휩쌓여 다른 이들은 보지 않게됩니다.”
“그것도 아는 이야기··· 잠깐 설마.”
“네. 저 혼자서 고블린들을 감당할테니 10분 뒤에 공격해 주십시요.”
“이영님!”
예비 2호 영아가 나섰다.
“아무리 방어구를 입었다해도, 고블린이라고 해도 20마리를 혼자 감당할 순 없어요! 10분이 되기도 전에 방어구가 찢어지고 탈진하고, 쓰러질 겁니다!”
“이영님 굳이 그렇게 하실필요까진···”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모두들 만류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이건 오히려 좋은 기회거든.
“고 대리님!”
영아가 고 대리를 불렀지만,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어디까지 해보는지 보자라는것이겠지.
좋아.
고블린들을 향해 나아갔다. 나홀로. 고블린에.
[저주효과 때문에 간거라면 무리한거야. 효과 발휘하기전에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어.]
‘어떻게든 해봐야지.’
[너 설마 게이트에선 죽지 않는 다는 것 믿고 그러는거냐? 그러다간 예속화 2단계로 갈걸?]
‘아니. 안죽어.’
[뭘 믿고 저러는건지.]
“끼에엑”
“끄라아아”
“끼익끼익”
고블린과의 거리는 불과 10m도 안됐다. 품 속에 있던 빨간 물약을 꺼내 젤리가 담겨있던 가죽 주머니 안에 넣었다.
가죽 주머니는 왼 손에 굳게 쥐었다. 깨지지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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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특제 물약 : 체력 회복 및 속도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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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뭘 믿나 했더니. 물약 믿고 깝치는거냐? 그 귀중한걸? 아깝지 않냐?]
‘물약도 유통기한 있어. 그럴바에 그냥 마시는게 낫지.’
[아하하. 좋아. 그런데 과연 네가 먹을 틈이 있을까?]
검의 말을 뒤로한 채 달려갔다.
선빵필승.
가속과 함께 앞 놈 고블린의 머리를 후려쳤다. 정통으로 직격했지만, 비틀 거리기만 할뿐, 쓰러지진 않았다.
“키에엑!”
다른 놈들이 내게 다가와 몽둥이들을 날렸다. 온 몸으로 버텼지만, 무기들이 다리로 쳐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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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저주 - 가학 (지속효과) : 맞을 때마다, 상대에게 가하는 피해랑 1% 증가. 최대 300%만큼 증가 가능. 지속시간: 10초, 쿨타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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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가학: 공격력 1%만큼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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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가학: 공격력 2%만큼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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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가학: 공격력 3%만큼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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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착실히 올라갔지만, 때리지 못했다. 두들겨 맞느라 다리 하나, 팔 하나 들기도 어려웠다.
“이영님!”
누군가 외쳤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머리가 어지럽다. 너무 많이 맞았나? 머리도 흔들 몸도 흔들, 고블린의 몽둥이와 둔탁한 칼날이 계속 방어구를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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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가학: 공격력 37%만큼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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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가학: 공격력 38%만큼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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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가학: 공격력 39%만큼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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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계속해서 올라갔다.
입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붉은색의 액체.
[피 나오는거 봐라. 무슨 만용을 저지른거냐? 얼른 살려달라고 비는게 나을걸?]
‘아니, 아직 때가 아니야.’
[이제 니가 드디어 미쳤구나?]
뭐, 그럴지도. 하지만 의미있는 실험일지도 모르지.
***
‘팀원들을 보호하려고 먼저 나선건 좋아. 하지만 저렇게 맞아서야.’
고 대위, 아니 정 주호 대위는 둥그렇게 모인 고블린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저었다.
저 동그란 돔 안에 있는건 이영. 방어구때문에 지금은 괜찮지만 오래버틸순 없을 것이다.
‘···‘뭔가 생각이 있어서 혼자 나간건 줄 알았는데, 그저 무모한 것일 줄이야. 저런 리더는 나중에 파티원들이나 길드원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어. 아쉽네. 좋은 인재라 생각했는데.’
몇몇 길드, 혹은 협회에게 소개시켜줄 좋은 인재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저건 무리였다.
제주도에서도 무모한 한 사람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봤던가. 저런 리더는 없느니만 못했다.
‘아이템에 대한 욕망은 자신의 위치를 잊게 만들곤 하지. 아쉽지만 이제 내가 나서야-‘
고 대리는 생각을 더 잇지 못했다.
고블린 돔이 조금씩 들썩인다. 몇몇이 밀려들더니..
<쾅>
세 놈이 바깥으로 길게 나자빠졌다.
부셔진 돔 사이로 목소리가 울러펴졌다.
“지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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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가학: 공격력 170%만큼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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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가학: 공격력 171%만큼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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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가학: 공격력 172%만큼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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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이 정도면 한 방에 고블린들을 저세상으로 보낼 수 있으리라.
이제 남은건 빨간 물약을 터트리면 됐다. 장무에게서 얻은 이 빨간 물약. 기괴의 연금술사가 만든 이 물약은 몸에 붓기만해도 낫다는건 이미 예전에 경험했다.
왼 손을 뻗자 고블린의 몽둥이가 손을 강타했다. 체력 병이 깨졌고, 액체가 갑옷사이로 흘러들어왔다. 놀랍게도 체력이.. 금방 회복됐다.
두 다리를 일으켰고
주먹 한 방을 날렸다.
고블린 한 놈이 바깥으로 밀려나면서 다른 놈들과 엉켰다.
빈 공간 사이로 고 대리와 다른 각성자들이 보인다.
다른 고블린이 그 공간을 다시 막았지만, 내겐 의미 없으리라. 다시 한 번 더 주먹을 날리자 이번엔 고블린의 안면이 운석맞은 것처럼 푹 들어가며 튕겨나갔다.
그래.
이제 시작이다.
“지금!”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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