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 드래곤은 여고생 (1)
“하여간 튜토리얼도 끝났고, 막 이야기도 시작되고 했으니, 장비부터 챙겨야겠지?”
“튜토리얼? 이야기가 뭐요···?”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말고~ 풀세트로다가 맞춰 줄 테니까. 내려갑시다. 내려가.”
“어어어······.”
나는 다시 나선계단으로 파비안을 떠밀었다.
우리는 단속국의 모든 층을 쭈욱 가로질러 지하 1층까지 내려왔다.
“후. 빌어먹을 엘리베이터는 언제 고치는 거야? 지하에서 국장실 두 번만 오라고 하면 사람 잡겠네.”
나는 불평불만을 뇌까리며 탈의실의 문을 열었다.
“자아! 여기가 바로 탈의······.”
“저어··· 선배님?”
이 녀석. 건방지게 선배님의 말을 잘라먹다니···
당돌해서 마음에 드는걸!
“왜? 너도 들어와. 뭐해.”
“질문이 두 가지 있습니다만.”
“벌써 두 개나 생겼어? 허허. 신입이 질문이 많다는 건 좋은 일이지. 말해봐.”
“저희 장비를 가지러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 왜 무기고가 아니라 여기에······.”
“아하~ 우리 후배님, 참 눈치도 없으셔라~”
그렇게 말하며 나는 탈의실 안쪽으로 들어가 캐비닛을 열었다.
그리고 포장된 옷 한 벌을 꺼내 파비안에게 던져주었다.
“짜잔~ 옷도 장비라고 못 배웠어? 원래 공공기관에 입사하면 유니폼부터 주는 법이지. 자, 입어!”
“감사합니다··· 근데, 이거 괜찮은 거예요? 완전 복식이 현대식인데··· 우리가 향할 중간계라는 세계는 중세 판타지 같은 곳 아닌가요? 드래곤도 있고······.”
우와, 그런 질문까지 하다니.
쓸데없이 사소한 설정에 신경 쓰는 녀석이다.
앞으로도 질문을 산더미처럼 하겠는걸.
“아~ 그건 말이지, 인식저해··· 인지필터··· 극적허용이랄까··· 뭐 그런 거 있잖아! 그거야 그거. 아무도 우리 옷 따위엔 신경 안 쓸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런데 또 질문이 날아왔다.
“저··· 근데 아직 두 번째 의문이 풀리지 않았습니다만···”
“응? 뭔데.”
“여긴 남자 탈의실 아닙니까?”
파비안은 문 측면에 달린 팻말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하핫. 우리 후배님···
이 몸이 너무 아름다운 탓에 그만 오해를 하고 만 모양인데.
“까먹고 말하지 않았네. 나는 남자야.”
“아뇨, 절대 남자가 아니신데요.”
파비안은 정색하고 즉답했다.
확실히, 이 몸은 생물학적으론 절대 남자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그렇게 보일 것이고.
하지만 나에게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나 전생엔 남자였어. 근데 환생했더니 이 몸이었다구~ 그렇게 밝히니까 과장이 여자 탈의실엔 들어오지 말라지 뭐야? 사실 여기도 들어오면 안 되는데 과장 몰래 쓰고 있는 거니까 절대 말하면 안돼! 알았지?”
“네···?”
“이 몸은 안 보이는 데서 갈아입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말아~ 후배님~”
이 몸도 참 죄가 많다.
젊은 청년의 이성을 잃게 만들 뻔하다니.
하지만 어쩌겠나, 이 몸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파비안은 내가 다 갈아입고 난 뒤에야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었다.
“하하. 요 귀여운 녀석, 그렇게 부끄러웠어?”
“······.”
어찌나 부끄러운지 말도 잇지 못하는군.
“그럼 이젠 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무기고야. 따라와.”
무기고는 탈의실과 같은 층에 있다.
복도의 골목을 지나 조금 걷자, 무기고와 창구의 직원이 보였다.
그녀의 이름은 바이올렛.
무기고 관리자다.
난 멀리서부터 소리쳤다.
“어이. 바이올렛. 그거!”
“맨날 그거라고만 말하면 알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그녀 역시 내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는 착오 없이 내가 말하는 물건을 꺼내왔다.
“자. 네가 말하신 그거다. 내가 항상 네 개떡 같은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는 걸 고맙게 생각하란 말이야.”
“고마워~ 고마워~”
하지만 바이올렛이 내민 물건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대신 파비안이 그 복잡한 기계 장치 같이 생긴 물건을 받아 들었다.
“이건······.”
“그래, 어디 보자······.”
바이올렛은 안경을 치켜올리고 미간을 찡그리며 그 물건의 보관증을 읽어 내려갔다.
“별을 쏘아 떨어뜨리는 거인의 대궁··· 괄호 열고, 대장장이 신이자 마녀인 훌드라에 의해 벼려졌고 천상운해의 대현자 아스타라에 의해 축복받았으며, 수석 기술자 마그니에 의해 변형 기능이 추가됨. 괄호 닫고···”
길고 긴 설명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파비안은 그 활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활의 양 날개가 쫙 펼쳐지며 그 위용을 뽐냈다.
파비안도 꽤 건장한 편임에도, 대궁의 크기는 자기 주인을 어린애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내 기준으로도 이건 꽤 대단한 무기 같아 보인다.
신참인 후배님도 어엿한 한 명의 환생자.
한 세계의 주인공,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였다.
이런 무기 하나쯤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
“돌려주는 거군요··· 제 무기.”
“응. 근데 보너스도 있어.”
나는 바이올렛에게 초커처럼 생긴 물건을 두 개 건네받았다.
난 그걸 들고 파비안의 목을 끌어안았다.
“으악···! 뭐예요 갑자기!”
“말했잖아. 보너스가 있다고.”
“아···”
파비안은 내가 채워준 초커를 만지작거렸다.
아, 참고로 허그도 보너스였다.
“이거 혹시 제가 탈주하려고 하면 죽이려고 채우는 건가요? 작전 구역 바깥으로 나가면 목걸이가 펑···한다든지······.”
“크핫.”
바이올렛이 무기고의 철창 안쪽에서 폭소를 터뜨렸다.
“어휴 죽겠네! 저 질문을 안 하는 신입을 본 적이 없어! 큭큭큭······.”
“바보야. 폭탄 목걸이였으면 여기 데려오기 전부터 채워놨겠지. 보너스는 보너스야. 좋은 거라구! 그 활 챙겨서 따라오기나 해! 이젠 진짜로 떠날 시간이야!”
나는 파비안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 근데 선배님은 무기 안 챙기세요?”
“응. 나는 필요 없어.”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 모든 준비를 마쳤다.
나는 팔을 쭉 펴고 단속국의 가장 자랑스러운 시설을 소개했다.
“자. 이게 대망의 워프게이트입니다! 차원도약을 위한 관문이지! 짝짝짝~”
“······.”
하지만 내 발랄한 소개가 무색하게도 파비안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워프게이트요···? 그냥 복도랑 문인데요?”
우리는 똑같이 생긴 문들이 끝없이 늘어선 복도에 서 있었다.
우리 앞에 있는 문도 다른 문들과 다를 것은 없었다.
단지 이런 팻말이 붙어 있을 뿐.
‘세계관-366, 중간계’
“그래. 어딜 가는데 그냥 문 말고 뭘 지나가겠어? 무지개다리라도 기대한 거야?”
“진짜로 너무 평범한 문이라··· 근데 이거 어떻게 작동하는 거죠?”
“아아! 우리 후배님께서는 질문을 많이 하는 아주 좋은 버릇을 갖고 계시지만, 내 인내심이 다하고 말았으니 이걸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역시나 이것도 백문이 불여일견.
사용 방법 따윈 듣는 것보다 보는 게 백번 빠르다.
“그냥 날 따라 해.”
“예?”
나는 그냥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 너머에 펼쳐진 광막한 어둠의 너머로···
그저 몸을 놓아주었다.
“어어! 선배님···!”
파비안은 떨어지는 내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낙하의 시작과 함께 손짓했다.
“자! 가자!”
“선배니이임······!!!”
나는 어둠 속으로 끝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문 너머로 보이는 파비안은 급속도로 작아져 갔다.
망설이지 마 우리 후배님!
그냥 몸을 던져!
좋아 좋아 좋아 좋아···!
그래! 장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그 비명만 없었다면 훨씬 멋졌겠지만 말이야!
저 위쪽에서 낙하하는 파비안의 절규가 들려왔다.
“으아아아 선배님 저 토할 것 같아요······!”
아아.
신참과 워프게이트, 그리고 토.
그 셋은 떼어놓을 수 없는 인연으로 묶여 있다.
그러니까···
“그냥 해버려~!”
그리고 토는 쏟아졌다.
방금까지 있던 어둠 속의 허공이 아니라, 잘 포장된 돌바닥 위에.
“우웨에에에엑······.”
파비안이 기껏 먹은 점심 메뉴를 전부 게워 냈을 때, 우리는 이미 다른 세계에 있었다.
‘세계관-366, 중간계’에.
나는 파비안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어유~ 힘들어쪄요~ 우리 후배님은 정말로 신참답다니까.”
“신참이니까 신참처럼 굴죠··· 뭐 잘못됐습니까?”
“아니이~ 잘못된 건 아니고~ 하여튼 우리 도착했어!”
파비안이 고개를 들자, 나는 우리에게 그늘을 드리운 거대한 물체를 가리켰다.
“자! 드래곤!”
“뭐요!?”
경악하는 후배님의 표정.
오늘만 몇 번째더라?
내가 가리킨 건 그냥 종이 모형에 불과했다.
하지만 좀 큰 종이 모형.
십수 명의 사람이 그 종이용을 가마에 태우고 행진하고 있었다.
“여기는······.”
“대충 뭐시기 왕국의 수도. 거기의 대로야. 무슨 축제라도 하나 보네?”
“시뻘겋고 왕창 큰 용 모형에다가··· 사람은 또 더럽게 많고, 도대체 왜 여기에··· 으아악······!”
파비안은 뒤에서 온 인파에 떠밀려 강제로 행렬에 참여하게 됐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인파의 움직임에 밀려다니는 것도 재미는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목적지는 이 행렬과는 정반대.
일단 후배님부터 구하고 보실까.
나는 인파 사이를 샤샥 파고들어 파비안을 찾아냈다.
“아! 선배님.”
“감동의 재회! 나 없이 미아가 되면 어쩌나 걱정했어?”
“아니 그런 걱정은 안 했습니다만··· 왜 이런 데로 우리가 보내진 거죠? 분명 산꼭대기나 동굴일 거로 생각했는데요. 드래곤의 레어는 보통 그런 데 있는 거 아닌가요?”
“그건 이따가 묻고! 일단 거꾸로 거슬러 가자!”
확실히, 후배님의 말대로 여기엔 사람이 더럽게 많다.
게다가 시끄럽고.
나는 밀려오는 인파를 밀치며 파비안에게 물었다.
“우리 후배님은 이종 환생물은 좀 읽어봤나?”
“이종 환생물이요? 뭔데요 그게?”
“아니 뭐, 환생을 했는데 거미였다든지, 검이었다든지. 그런 거 있잖아.”
“아··· 그런 거요! 옛적에 보긴 봤죠!”
“그러면 이종 환생물의 가장 대표적인 클리셰가 뭔지도 알겠네?”
“클리셰요?”
“단속반 일을 하려면 우선 각 세계관의 클리셰부터 잘 알아야 하거든!”
파비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갑자기 물으시니까 잘 안 떠오르는데요···”
후배님이 모르신다면, 이 똑똑하고 명석하고 명랑하신 선배님께서 가르쳐 줘야겠지만···
그냥 가르쳐주면 재미 없지.
“힌트! 이건 고전 판타지물에 나오는 드래곤들의 클리셰이기도 해. 진짜 진짜 뭔지 모르겠어?”
“그래도 모르겠어요. 힌트 없습니까?”
“힌트는 바로 이 몸.”
나는 나 자신을 가리켰다.
그러자 후배님은 이렇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여자 안에 남자가 들어있고, 퍼스널컬러가 산만하며, 말이 많으면서, 행동거지가 유달리 부산스럽다?”
“뭐어?! 이 녀석! 말 다 했어!”
정녕 이 녀석이 선배님의 꿀밤 맛을 보고 싶은 것인가?
나는 파비안 앞에서 주먹을 흔들었다.
“으아악! 왜 그러세요?! 선배님이 자기가 힌트라며요!”
“감히 나를 그런 식으로 봤겠다!”
“죄송해요! 근데 그런 식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어떡합니까!”
“···쓸데없이 대쪽 같은 녀석이구나. 너.”
후··· 내가 선배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두개골이 오목해지고 말았을 텐데···
내가 선배님인 걸 행운으로 알기는 아는 건지!
나는 갈수록 이놈의 캐릭터가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하긴, 나처럼 정상적이고 평범하면 재미없지.
“에이 됐다. 이런 쉬운 것도 몰라?”
“도대체 뭐길래요?”
“나라를 멸망시킬 정도로 강해진 이종환생물의 주인공은 십중팔구, 아니 십중십은 인간으로 폴리모프가 가능하다고. 이 몸 같은 미인으로 말이지!”
“오.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파비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면 이 인파의 틈에 그 아브락사스라는 드래곤이 숨어 있는 걸까요?”
“그건 썩 좋은 질문이 아니네.”
“네? 왜죠?”
후배님.
너는 좀 더 공감능력을 갖추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어.
난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너 같으면 천만 단위의 사람을 죽이고 축제나 즐기고 있을 수 있겠어?”
“아······.”
“물론 아브락사스가 사이코패스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그런 인물은 아니거든.”
“그럼 어떤 사람인 거죠?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사이코는 아닌··· 그런 사람이 잘 상상이 안 가는데요.”
우리 후배님은 사이코만 사람을 죽이는 줄 아는가 보네.
참 마음이 깨끗한 녀석이구먼.
“하핫.”
“왜 웃으시는 거예요? 분위기는 선배가 먼저 잡아 놓고서는.”
“아니, 우리 후배님은 참 순수하다 싶어서.”
“그럼 어른스러우신 선배님께서 말씀해 주시죠. 용의자는 어떤 사람인지.”
말투가 완전 ‘나 삐졌어요’인데?
이 귀여운 자식~
“나도 귀여운 후배님을 위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싶은 참이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져 버렸는걸?”
“무슨 뜻이죠?”
“내가 말해주지 않아도 곧 알게 될 거라는 말이지! 자, 봐!”
나는 저 앞쪽, 행렬의 끝자락, 이 쭉 뻗은 거리가 끝나가는 그곳을 가리켰다.
“음? 뭐가 있는 거죠?”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그 끝에는 그저 평범하게 생긴 건물이 서 있을 뿐이었다.
다만 그 건물의 3층 테라스 위.
그곳에 한 여인이 있었다.
“저건······!”
땅에 닿을 듯 곧게 뻗은 머리칼을 늘어뜨리고, 먼 곳에서도 보일 정도로 큰 눈동자를 빛내는 여인.
그 눈으로 세상 모든 것을 관조하듯 무심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묘령의 절세미녀.
나는 그녀를 가리킨 손을 내려놓으며, 쇼의 개막을 알리듯 두 팔을 쫙 벌렸다.
“저게 우리의 타깃, 1,330만의 학살자. 드래곤 아브락사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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