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 회빙환 단속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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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딘02
작품등록일 :
2024.06.22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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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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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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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 악역영애와 춤을 (2)

DUMMY









***


“우욱··· 우우욱······.”

“그렇게 울렁거리면 그냥 토해버려~”

“우욱··· 우우우우··· 하아···!”


파비안은 올라오려는 토를 겨우 삼켰다.


“장하다. 이 녀석. 고작 두 번째 워프인데 워프 멀미를 참아내다니!”

“정확히 말하면 네 번째죠··· 아브락사스의 등 위로 떨어질 때도 워프했고, 그 뒤에 단속국으로 돌··· 우우우욱······.”


그는 이번에도 가까스로 사내 식당 점심 1인분 만큼의 예산이 휴지 조각이 되는 것을 막아냈다.


“그렇게 단속국 재정이 걱정됐어? 토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니까?”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단속국 재정 따위는 제가 알 바 아니죠. 하지만 이 카펫을 더럽히는 건 있을 수 없어요.”


나는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붉은 카펫.

우리는 지금 로즈니아 황궁의 바닥을 밟고 서 있었다.


“역시, 악역영애물 세계관 아니랄까봐 카펫마저 꽃밭이네.”

“그래요··· 이 완벽한 세계를 제 토사물 따위로 더럽힐 순 없죠.”

“그래······?”


엄청난 팬심이다.

도대체 악역영애물을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이만 가자. 여기로 우릴 워프 시켰으니 여기 근처 어디에 용의자가 있다는 걸 거야. 후딱 끝내자고.”

“욱··· 으윽··· 알았어요.”


나는 대충 그의 등을 토닥이고는 걷기 시작했다.


황궁의 복도는 얼마 가지 않아 외부로 이어졌다.


정원의 한쪽을 가로지르는 회랑.


“와아아···”


파비안은 팬심의 감탄을 연발했다.


확실히. 주변이 예쁘긴 했다.


간단한 장식으로 깔끔하게 처리된 회랑의 기둥.

그 사이로 아름답게 그 자태를 뽐내는 푸른 잔디와 관목,

그리고 그 모든 초록을 쓰다듬는 찬연한 햇살까지.


“경치가 좋네.”

“그렇죠? 이 맛이라고요. 이런 풍경과 평화로운 분위기야 말로 악역영애물의 정수라고요.”

“하하······.”


이젠 정말 숨길 생각도 없군.

어제는 그렇게 부끄러워 하더니···


그런데 주위 사방의 경치를 즐기던 파비안이, 별안간 이렇게 물었다.


“근데요 선배. 용의자의 빙의는 자기 의지에 의한 것이었을까요?”


그건 팬으로서가 아니라 단속국원으로서의 파비안이 하는 질문이었다.


즐길 거 다 즐기는 와중에 일에 집중은 하고 있었구만.

대단하셔라. 우리 후배님.


“모르겠는걸. 근데 그건 왜?”

“원래 빙의물이라는 게 프롤로그에서 빙의 과정은 스킵하는 게 보통이잖아요. 그게 로판이든 악역영애물이든··· 다른 장르든.”

“응. 그렇지.”

“근데 그렇게 일어난 빙의에 빙의자 본인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걸까요?”


의외로 좋은 질문을 하는데.

나는 그에 즉답했다.


“없어.”

“네! 역시 그렇죠?”

“하지만 책임은 져야 하지.”

“···?”


파비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책임이요? 빙의는 주인공 본인이 아니라 작가가 시키는 거 아니에요? 자신의 의지가 아닌 빙의에 죄를 물으려면 작가한테 물어야죠.”

“맞는 말이야. 하지만 빙의자라는 건 어쨌든 빙의한 신체를 원래 주인의 허락 없이 점거하고 있는 존재거든.”

“그게 뭐 어쨌는데요···?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닌데···”

“이해하기 어렵다면 하나의 예를 들어줄게.”


-


네가 어떤 외력에 의해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게 됐다고 생각해 봐.


너는 당장 그 집에서 나오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


그 집 바깥에는 절벽밖에 없어서, 집을 한 발짝이라도 벗어나면 바로 죽을 게 뻔했거든.


그래서 너는 나갈 수 있게 될 때까지 그 집에서 살기로 했어.


그 집의 원래 주인이 산 음식을 먹고,

그 집의 원래 주인이 앉던 소파에 눕고,

그 집의 원래 주인이 보던 TV를 보며 살았어.


너는 법적으로 어떤 죄도 짓지 않았어.


넌 네 의지로 거기 들어간 게 아니니까 무단침입죄를 물을 수는 없지.


거기 있는 집기와 음식을 이용하지 않으면 꼼짝없이 죽는 상황이었으니,

그 불가피함을 인정받아서 사유물 침탈의 위법성도 조각될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그 집에 살면서 생긴 집기의 손상이나 손실에 대해 너의 책임은 없게 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지.


너는 네가 원래 집주인에게 입힌 손실에 대해 배상해야 해.


이해하겠어?


-


파비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알 것 같아요. 자의가 아닌 빙의라도 빙의해 있으면서 소모하거나 누린 것들에 관해 빙의자는 배상할 책임이 있죠.”

“정확해.”

“하지만 문제는 그거예요. 그 배상을 받아야 할 원래 ‘엘스티르 클라리몽드’는 어디 있죠? 그리고 배상하려면 뭘 배상해야 하죠?”


예리한 질문이다.


“우리 후배님, 지구에서는 공부 좀 했나보다? 날카로운 구석이 있어. 아주.”

“아니··· 칭찬은 됐고요. 배상할 상대도 없고 배상할 물건이 뭔지도 모호한데 어쩌냔 말이죠.”


아아. 거기에 대해서는 말이지···


“나도 몰라~”

“예에!?”


파비안은 정원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이 녀석, 이 정원이 끔찍하게 넓고 한산한 걸 다행으로 여겨라.


“아니, 그래도 지금까지 선배가 잡아들인 빙의자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데요?”

“나도 자의적 빙의자만 잡아봤지, 타의적 빙의자는 잡아본 적이 없어. 다만, 판례상으로는 빙의자에게 체포 전까지 빙의해 있던 기간과 동일한 길이의 금고형으로 책임을 묻지. 빙의한 몸에 원래 깃들어 있던 영혼은 보통 말소되니, 직접 배상이 불가능하니까.”

“그런······.”

“그래서 모르겠다고 한 거야. 나도 이런 식의 일 처리가 옳은 건지 확신은 없어. 하지만 단속국이 그렇게 정했으니··· 내가 어쩔 수 있나?”


만약 엘스티르 클라리몽드가 타의적 빙의자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뭐, 수사를 하다 보면 감이 오겠지.


우리는 곧 회랑의 끝을 발견했다.


그곳은 티가든이었다.


티파티를 위한 작은 테이블과 지붕이 있었다.


“이야, 바로 이거야······!”


파비안은 그리로 다가가 마치 신을 우러러보듯, 그 원반 모양의 지붕과 티 테이블 앞에 무릎을 꿇었다.


“푸른 잔디와 군데군데 핀 장미, 그리고 하얀 기둥의 티가든. 이게··· 이게 내가 원하던 풍경이었다고요··· 이런 데 한 번쯤은 와보고 싶었는데······.”

“왜, 단속국원이 되길 잘한 것 같아?”


파비안은 엎드려서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녀석이 엎드린 바닥은 감동의 눈물로 금세 축축해졌다.


뭐가 그렇게 좋다는 건지···


“근데 여긴 용의자가 없잖아. 그렇게 팬심이 채우고 싶으면 악역영애 장본인을 좀 찾아보라구.”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파비안은 벌떡 일어났다.


“!”

“어우, 놀랐네. 뭐하니 얘?”

“빙의한 악역영애께서 계시는 곳이야 뻔하죠.”

“어, 어딘데.”

“텃밭.”

“텃밭?”


파비안은 말도 없이 성큼성큼 잔디를 밟고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다.


대충 앞서간 다음 따라오라고 하는 건 내 담당이었을 텐데?


어느샌가 입장이 역전됐다.


“뭐야. 어디 가는데! 텃밭은 또 뭐야? 이 정원에 밭이라도 있다고?”

“당연하죠.”

“그건 그렇다 치고 왜 거기 있다는 건데!”


내 질문에 파비안은 코웃음 쳤다.


“후훗. 바보 같은 질문이네요. 그거야 당연히 빙의한 악역영애께서는 뺨에 흙을 묻히고 직접 텃밭을 가꾸는 성실한 분이어야 하기 때문이죠.”

“아니 근데 텃밭이 한두 군데도 아닐 거 아니야? 그중에 어디 있는지는 어떻게 알아?”

“그런 건 법칙이 있다고요.”


파비안은 멋지게 두 손가락을 펴 보였다.


그는 첫 번째 손가락을 꼽았다.


“후보 1. 유리장으로 만든 온실, 그 안에서 딸기를 키우고 있다.”

“···뭐 온실은 그렇다 치고, 왜 딸기야?”

“예쁘니까!”

“···?!”


그리고 두 번째 손가락을 꼽았다.


“후보 2. 노상의 나무 지지대에 줄기가 엮인 토마토를 키우고 있다.”

“왜 자꾸 빨간 과일인 건데?”

“말했잖아요! 예쁘니까!”

“뭐어?”


질문을 유도하고 자문에 자답하는 것도 내 역할이었을 텐데···


뭔가 내 역할을 하나씩 빼앗기고 있다.


이게··· 오타쿠의 힘?


“식물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녹색이라고요. 녹색의 보색은 빨간색! 포인트 컬러로 딱이죠! 그러니까 맨날 정원에는 장미나 양귀비를 키우는 거라고요! 토마토나 딸기도 같은 맥락이고! 나 참, 그것도 모르다니!”


이 자식··· 아주 물 만난 고기다.


이렇게 기어오르다니 아주 머리를 짓밟아서······.


아, 아니지.

선배가 돼서 잘하고 있는 후배를 기죽일 수는 없는 법.


나는 잠자코 후배님이 하는 걸 두고 보기로 했다.

일단 꽤 잘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갑자기 그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봐요! 저기!”

“?”


그곳엔 한 소녀가 있었다.


아마도 10대 중반에서 후반.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조심스럽게 빨간 토마토를 수확하는 여자애였다.


“에이. 그냥 황궁에서 일하는 시녀겠지. 저렇게 어린데?”

“하! 어떤지 한번 보자고요!”


파비안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아주 조심스럽게 소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소녀가 놀라지 않게 충분히 거리가 있는 곳에서 그녀를 불렀다.


“전하···! 전하···!”

“?”


소녀는 고개를 들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곧 우리를 발견했다.


파비안은 어서 고개 숙이라면서 날 닦달했다.


“뭐해요! 얼른 고개 숙이지 않고! 비엘코폴 대공녀 전하라고요···!”

“와. 벌써 이 세계 주민이 다됐어. 그냥 여기 살아도 되겠네.”

“마음 같아선 살고 싶네요! 빨리!”


나는 대충 고개를 꾸벅 숙였다.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장갑을 벗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정면에서 그 외모를 보니 알 것 같았다.


붉은 눈, 흑발에 곧은 생머리.

얇은 입술에 창백한 피부.


아름답지만 필시 독을 품은 것만 같은 용모였다.


파비안이 제대로 찾긴 했나보다.


“저기··· 두 분께서는?”


소녀는 다가와 물었다.


하지만 막상 소녀의 앞에 서자 파비안은 이빨만 덜덜 떨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 이래야 너답지.


“후우.”


모자란 후배 녀석 대신 이 루시님이 나서는 수밖에.


나는 황실의 예법에 따라 대공녀에게 인사했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엘스티르 데 비엘코폴 클라리몽드 대공녀 전하.”


그리고 나는 파비안과 나를 소개했다.


“저는 루시, 이 자는 파비안이라고 합니다. 이 자가 대공녀님과 동향이라 하여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동향··· 이라고요? 비엘코폴··· 저희 지방 출신인가요?”

“아뇨. 그보다 훨씬 깊은 고향입니다.”

“훨씬 깊은···?”


엘스티르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것인지 묘한 눈빛이 되었다.


이 대공녀.

보통 아가씨는 아닐지도.


“지구···라고 하면 아시겠습니까?”

“!?”

“그곳의 대한민국에서 오셨죠? 민연지 씨.”


동시에 두 사람의 이목이 전부 내게 집중됐다.


멀티버스 여행자라는 것들은 전부 고향 이야기만 하면 이렇게 눈이 땡글땡글해진다니까···


“당신들··· 정체가 뭐죠?”


그렇게 묻는 대공녀의 말투는 소녀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엘스티르가 아닌 민연지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우릴 모르는 걸 보니 신디케이트의 접촉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거 하나는 다행이군.


“···그저 당신과 같이 회귀, 빙의, 환생 중 하나를 겪은 멀티버스 여행자일 뿐입니다.”


나는 파비안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 녀석은 정말로 당신과 같은 지구에서 온 사람입니다. 그냥 이야기나 나누고 싶어서 왔습니다.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


긴장감이 감돌았다.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대화할 것인가, 그러지 않을 것인가.


과거의 지구인 민연지이자···

엘스티르 클라리몽드 대공녀.


그녀의 결정에 따라 우리는 서로 칼을 겨누게 될 수도,

즐겁게 담소를 나누게 될 수도 있다.


물론, 결국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지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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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회 : 전지전능 대공녀 (2) 24.07.02 22 0 12쪽
12 12회 : 전지전능 대공녀 (1) 24.07.01 20 0 13쪽
11 11회 : 악역영애와 춤을 (4) 24.06.30 23 0 12쪽
10 10회 : 악역영애와 춤을 (3) 24.06.29 29 0 13쪽
» 9회 : 악역영애와 춤을 (2) 24.06.28 20 0 12쪽
8 8회 : 악역영애와 춤을 (1) 24.06.27 32 0 13쪽
7 7회 : 냐옹 없는 X켓단 (2) 24.06.26 22 1 16쪽
6 6회 : 냐옹 없는 X켓단 (1) 24.06.25 24 1 15쪽
5 5회 : 드래곤은 여고생 (4) 24.06.24 26 1 15쪽
4 4회 : 드래곤은 여고생 (3) 24.06.23 33 1 14쪽
3 3회 : 드래곤은 여고생 (2) 24.06.22 22 1 16쪽
2 2회 : 드래곤은 여고생 (1) 24.06.22 32 1 14쪽
1 1회 : 오리엔테이션 24.06.22 92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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