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가 열렸습니다

밤늦은 시각, 7평 남짓한 원룸. 책상에는 각종 청구서가 늘비해 있었고,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가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울리는 작고 낡은 스마트폰.
위잉- 위잉-
두 번의 진동 후 화면에 떠오르는 알림 메시지.
- 비상구가 열렸습니다.
소란에도 달리 움직이는 건 없었다. 그저 구석에 있는 가상현실 접속기기가 열 시간 째 가동되고 있을 뿐.
그 안에는 강상우가 눈을 감은 채 플루토에 접속 중이었다.
..
전 세계가 열광했던 가상현실 기반 게임, ‘플루토’
여러 행성을 모티브로 한 가상공간에서 펼쳐지는 명승부는 출시 직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곧 국내에서도 가장 유행하는 게임이 되었다.
그는 이 게임을 잘했다. 상우의 현재 랭킹은 무려 51위.
그러나 프로가 되지는 못했다. 각종 대회에서의 어처구니없는 실수와 잘못된 판단, 이윽고 팀을 파멸로 이끄는 그의 횡보에 ‘최악의 손’이라는 악명을 남긴 채 아마추어로만 활동할 뿐.
뛰어난 반사신경과 동체 시력 덕분에 게임 내에서는 아직 최상위권을 유지했지만, 이제는 그를 기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나이는 스물아홉이었다.
..
기기에서 나온 상우는 책상 위의 전화기를 집더니 곧장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몸을 가눌 수 없을 때까지 게임을 하는 그는 오늘도 아침 9시가 돼서야 침대에 누웠다.
매일 달라지지 않는 일상,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뒤처진 20대. 이제는 그도 프로가 되는 건 바라지 않았다. 거의 포기한 채였다.
‘어차피 비참한 결말, 그걸 모두 알면서도 의미 없이 상자를 여는 판도라.’
그제 본 블로그의 마지막 한 줄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
상우는 괜한 잡생각을 지우고 전화기를 켰다. 그러자 이번에도 그 수상한 앱에서 알림이 와 있었다.
‘이번에도 새벽 12시 54분이야.’
그랬다. 일주일 전부터 새벽 12시 54분만 되면 비상구라는 앱에서 알림이 도착했다. 알림은,
- 비상구가 열렸습니다
라는 단 한 문장의 메시지였다.
상우는 별 신경 쓰지 않고, 메시지 앱을 켜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려는 듯 망설였다. 손가락 대는 걸 몇 번을 주저하더니 결국은 천천히 써 내려갔다.
- 민오, 아직 입금이 안 됐더라. 혹시 까먹었나 싶어서···
.. 아니야. 내가 굽히고 들어갈 필요는 없지. 나이도 다섯 살이나 어린데.
- 민오, 아직 돈이 안 들어왔네. 확인해줘.
“그래. 요정도면 됐다.”
그는 전송을 누르고 머리에 팔을 얹은 뒤 오늘까지 내야 할 월세와 공과금을 생각했다.
‘돈이 모자라. 한탕 더 뛰어야 하나?’
그가 돈을 버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프로들의 대련 상대가 돼주는 것. 두 시간 정도 진이 빠지게 연습 상대가 되어주면, 그들은 대가로 10만 원 정도를 내줬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돈만 툭 보내는 게 석연치 않았지만, 상우는 그거라도 감지덕지해야 할 팔자였다.
“그래. 저녁에 한탕 더 뛰어야지.”
자주 상대해줬던 몇몇 플레이어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상우는 곧장 잠이 들었다.
..
에엥- 에엥- 에엥-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그도 잠에서 깼다. 소리의 출처는 스마트폰이었다. ‘긴급 재난 문자’였다.
- [기상청] 11월 23일 20:55 제주도 남쪽 70km 해역 규모 7.0 지진 발생 / 낙하물 주의 등 큰 지진에 대비
‘뭐야? 지진?’
조금 뒤 느껴지는 옅은 진동, 그리고 건물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강한 진동이 곧장 뒤따라왔다. 뚜껑이 열린 페트병은 책상에서 떨어져 물이 쏟아졌고, 간이 건조대도 쓰러져 방은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됐다.
예상치 못한 강력함에 상우는 재빨리 일어나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헉헉··· 대체 뭐야.”
십여 초간 상황을 살피다 지진이 끝난 느낌에 조심스레 책상에서 나왔다. 그리고 여러 차례 울리는 스마트폰.
- 방금 지진 봤냐?
- 살아있는 사람? 살아있는 사람?
- 옆집에서 애기 울고 난리야 ㅠㅠ
모두 SNS에서 온 알림이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파묻혀 있는 또 하나의 알림.
- 비상구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 앞으로 3시간 58분 남았습니다.
비상구 앱에서 여태 시간을 고지한 적은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 같은 꺼림직한 기분에 이전 알림을 뒤적거리다 아침에 보낸 메시지에 답이 온 걸 확인했다.
대전 상대를 찾는다는 질문에 답이 온 거다.
- 알겠습니다. 저녁 9시에 접속하겠습니다.
“9시? 9시라면··· 지금이잖아?”
재빨리 가상현실 접속기기를 가동했다. 전원이 문제없이 켜지는 거로 보아 다행히 지진에 대한 여파는 없어 보였다.
“그래, 지진이고 뭐고 일단 돈부터 벌어야지.”
상우는 비상구 앱에 대한 건 까맣게 잊은 채 곧장 ‘플루토’로 접속했다.
..
“흐아··· 형님 진짜 대단하십니다. 이번에는 이길 줄 알았는데.”
바닥에 대짜로 뻗은 녀석의 아바타 위에는 K.O 라는 시스템 메시지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아직 한창이지.”
“어디서 제의 안 옵니까 정말?”
“너는 내 나이도 알면서.”
“그래도 웬만한 선수보다 훨씬 나은데.”
“그럼 너희 팀에 좀 꽂아주던가.”
“하하하···”
단지 멋쩍어 웃는 재현에게 상우는 말 없이 손을 내밀었고, 그는 힘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근데 요즘 민오는 안 보인다?”
상우는 아직도 답이 없는 민오의 행방에 대해 슬며시 운을 띄웠고 그러자 녀석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그게···”
그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최근 며칠간 열 명이 넘는 선수들의 연락이 하나씩 끊겼는데, 그중 민오도 있다는 것이었다.
오늘만 해도 벌써 네 명의 소식이 더 끊겼고 소속사에서는 그들의 행방을 찾는 데 혈안이 됐다고 했다.
“집에는 없대?”
“찾아봤죠. 어디에도 없답니다.”
“... 설마 납치는 아니겠지? 경찰은?”
“처음에는 단순 가출로 보고 조용히 해결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럴 단계가 아니랍니다. 내일 당장 신고와 함께 언론에도 밝힌답니다.”
“총 몇 명이랬지?”
“오늘 사라진 사람도 합치면 열댓 명은 될 거예요.”
이거 보통 일이 아니겠는데.
상우는 정말 그들을 걱정하듯 심각한 표정을 지었고, 그러자 재현이 걱정하지 말라며 오히려 형을 다독였다.
“별일 아닐 겁니다.”
“... 그래. 그럴 거야. 괜한 걱정이겠지.”
“저, 근데···”
재현은 하지 않으려는 말을 하려는 듯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형님도 비상구 앱에 대해 아십니까?”
그의 말에 잊고 있던 앱의 알림이 기억났다. 상우는 끄덕이며 답했다.
“어.”
그러자 재현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상우의 어깨를 잡고 흥분하듯 말했다.
“그 앱 어디에 있는지도 아십니까?”
“... 아니? 지우려고 찾아봤는데, 없더라고. 그래서 내버려 뒀지.”
“절대 찾지 마십시오. 궁금하더라도 절대로.”
“왜 무슨 일인데?”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지금 일어나는 일들 분명 그거랑 연관이 있습니다.”
재현은 한 걸음 더 가까이 와 그에게 속삭였다.
“그 앱이 깔린 사람만 사라지고 있어요. 민오도 그 앱에 대해 찾아보다가 연락이 끊긴 거고요.”
..
오늘은 자정이 되기도 전에 기기에서 나왔다. 재현의 말이 아무래도 신경 쓰였던 거다. 책상 위의 스마트폰을 지긋이 바라보다 이내 결심을 하고 손으로 집어 들었다.
천천히 알림을 넘겨 문제의 문장을 찾았다.
- 비상구가 열렸습니다.
재현은 궁금해하지도 말랬지만, 상우는 침을 꼴깍 삼키며 알림을 눌렀다. 그러나 저번처럼,
- 알 수 없는 경로입니다.
라는 메시지와 함께 알림이 삭제됐다.
그러고 보면 비상구 앱은 수상한 점이 많았다. 아이콘의 모습도 볼 수 없었고, 모든 앱의 알림이 가상현실 기기와 연동되는 데에 반해 이 앱의 알림만큼은 스마트폰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외 정보 같은 것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설정에서도, 인터넷에서도.
“대체 정체가 뭐야.”
조금 더 뒤적거리다 문득 생각난 재현의 충고에 상우는 화면을 끄고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다 볼일이나 보러 갈 겸 화장실로 가다가 다시 한번 울리는 진동에 고개를 돌렸다.
우웅- 우웅-
‘분명 무음모드인 데도 울리는 진동. 게다가 두 번이라면.’
상우는 그 알림이 비상구 앱에서 온 걸 확신하고 곧장 전화기를 집었다. 화면에는 역시 예상했던 문장이 적혀 있었다.
- 비상구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 적힌 한 줄.
- 앞으로 한 시간 남았습니다. 신속히 대피해주십시오.
그러자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울리며 화면에는 경고 메시지가 줄줄이 도착하고 있었다.
에엥- 에엥- 에엥-
- [기상청] 11월 23일 11:54 제주도 남서쪽 150km 해역 규모 8.8 지진 발생 / 낙하물 주의 등 큰 지진에 대비
- [기상청] 11월 23일 11:54 제주도 남서쪽 150km 해역 규모 8.8 지진 발생 / 낙하물 주의 등 큰 지진에 대비
- [기상청] 쓰나미, 쓰나미 주의. 최대 30m 이상의 쓰나미 관측 중
- [기상청] 실제 상황입니다. 해안가에 있는 주민들은 고지대로 대피 후···
사이렌 소리는 끝날 기미가 안 보였고, 곧이어 느껴지는 조그마한 진동. 그리고 곧장 뒤따라오는···
“으··· 으악!”
순간적으로 몸이 공중에 붕 뜨면서 상상조차 한 적 없던 거센 지진이 시작됐다.
..
“켁, 케켁···”
어떻게든 정신을 부여잡고 책상으로 기어들어 간 상우는 지진이 끝날 때까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 안에서도 몸이 붕 뜰 정도로 진동은 어마어마했다.
책장에서 떨어진 책들이 저절로 공중에 붕 떴다 벽에 박히기도 하고, 깨진 유리 조각이 여기저기 날아와 살결을 베기도 했다.
쿠구궁-
여러 차례의 굉음과 함께 진동이 끊기지 않았다. 몸은 계속 들썩거렸고, 군데군데 부딪혀 상처도 생겼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한순간 휩쓸고 간 지진이 다행히 두 번씩이나 오진 않았다는 거다.
“...”
지진이 잠잠해지자 창문 밖에선 자동차의 경적, 전깃줄이 끊어지고 간판이 떨어지는 소리, 건물 곳곳에선 아이의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고함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상우는 책상에서 나와 슬쩍 창문 너머를 보았고, 거리에는 건물에서 한 번에 뛰쳐나온 수많은 인파 때문에 마치 지옥과도 다름없었다.
곧 복도 쪽도 소란스러웠다. 사람들이 하나둘 집에서 뛰쳐나와 계단으로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나가야 하나?’
그때 또다시 흔들리는 건물. 상우는 곧장 책상 안으로 몸을 숨겼고, 지진이 끝날 때까지 또 기다렸다. 다행히 이번에는 규모가 작은 여진이었다.
그래도 무언가를 하기에는 매우 위험한 상황 같았다.
“젠장, 이래 가지곤 뭘 할 수가···”
그 순간 상우의 눈에 들어온 건 바닥에 놓인 스마트폰이었다. 매분 마다 비상구 앱에서 알림을 보내고 있었다.
- 앞으로 49분 남았습니다. 신속히 대피해주십시오.
알림을 지긋이 보던 상우는 무언가 눈치챈 듯 동그랗게 눈을 떴다.
... 대피? 그래, 대피!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대피야.
상우는 황급히 알림을 눌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비상구 앱이 정상적으로 나타났다. 녹색의 화면에 남은 시간이 적힌 타이머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밑에는 비밀번호를 입력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 00 / 00 : 48 : 52 』
..
『 □□□□□ 』
비밀번호는 다섯 글자.
“후···”
상우는 숨을 고르며 침착히 화면을 들여다보았고 곧 오른쪽 아래에 ‘힌트’라고 적힌 문구가 보였다. 문구를 누르자 단 두 글자의 힌트가 나왔다.
『 인사 』
인사라면 뭐, 안녕? 안녕하세요?
그러나 비밀번호는 영어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상우는 잠깐 고민하더니 한 글자씩 입력하기 시작했다.
H-E-L-L-O
그러자 단 몇 문장이 쓰인 다음 화면이 나타났다. 상우는 그것을 읽고 책상에서 나왔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현관문 앞으로 걸어갔다.
현관문의 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여기가 아니다.’
그는 뒤로 돌아 화장실 문을 보았다. 분명 문이 닫혀있는데도 닫힌 문틈에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
상우는 문고기를 당겨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고, 이윽고 그곳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
- 비상구가 열렸습니다. 비상구를 따라 신속히 대피해주세요.
- 비상구는 당신에게 가장 가까운 닫힌 문입니다. 단, 다른 사람이 보고 있을 때는 비상구가 열리지 않습니다.
- 당신의 귀화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리고 밑에는,
“Hello.”라고 조그맣게 적혀 있었다.
- 작가의말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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