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1)
아직은 쌀쌀한 3월.
교실로 가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이 등굣길에 보인다.
“헉! 김민수다!”
“진짜 김민수야!”
“사인해달라고 할까?”
하이스트에 갑자기 나타났을 땐 괴물 취급이었는데 하이스트에 다니는 채로 유명해져서 그런지 입학하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도망치지 않았다.
대충 손만 흔들어줘도 좋아하는 사람들.
태양 길드 팬 미팅 때 나한테 다가와서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 같다.
그리고 한 번 본 적 있는 각성자 한 명.
살랑살랑
긴 꼬리를 흔드는 흰색 늑대 퍼리, 이수정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안녕.”
“저도 임호영 교수님 랩실이에요. 수업 끝나면 볼 수 있겠네요.”
“그럴 필요 없을걸. 나도 1학년 수업을 들어야 해서.”
나는 2학기에 입학한 데다가 기초가 부족한 것을 알아서 전공과목 두 개와 교양 과목만 들으며 학점을 채웠다.
이제부터 1학년 커리큘럼을 따라가야 하니 나름대로 새내기인 것.
“같은 반이면 좋겠네요.”
걸어가는 방향이 같길래 시간표를 보여달라고 했는데 나랑 똑같다.
운이 좋은 건지 같은 각성자라고 붙여둔 건지 모르겠네.
어쩌면 같은 랩실이니까 붙여준 걸 수도.
나랑 이수정이 교실에 도착하자 모두가 날 바라봤다.
“김민수다.”
“옆에 퍼리도 있어.”
“가서 말 걸어볼까?”
“무서운데···.”
나야 탱커라서 덩치가 큰 건 어쩔 수 없는데 이수정은 그냥 인간인 상태로 다니면 되는 거 아닌가?
어쩌면 퍼리인 상태가 귀엽게 생겨서 그런 걸 수도.
맨 뒷자리에 있는 내 전용석에 앉아서 주변을 봤는데 사람들이 조금 늙었다.
작년엔 20대 초반이 다수였는데 지금은 30대 초반이 다수.
아티팩트 산업이 뜨면서 학력 좀 있는 사람은 하이스트에 온다는 소문이 사실일 줄이야.
나를 보고 있던 사람 중 30대 중반인 사람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헤파이스토스 길드의 선임 연구원인 김경민입니다.”
“김민수입니다.”
“제가 최근에 이런 연구를 하는데···.”
이런저런 말을 하는데 말랑말랑한 육감이 알려줬다.
이 사람은 나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육감을 얻고 나서 많은 사람을 만난 건 아니지만 당당하게 다가와서 나를 기만하려는 사람은 처음이다.
그도 그럴 게 나는 무섭게 생겨서 굳이 위험한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당당하게 나를 속이려는 이 사람은 도대체 뭘까?
···
—ㅇㅇ
—제목 : 민수 형님 진짜 개무섭네
(의자에 앉아있는 김민수.jpg)
말할 때마다 심장 떨어질 것 같음
└조직 보스의 아들인데 머리가 너무 똑똑해서 하이스트에 다니는 게 아닐까?
└ㄹㅇㅋㅋ
└??? : 사람들은 항상 내게 친절했다
└화 안 내신다고 ㅋㅋㅋㅋ
└성격 좋은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님 ㅋㅋㅋㅋㅋ
└나도 성격 좋아질 수 있었는데 ㅋㅋㅋㅋㅋ
└교실에 저런 사람 있으면 수업 집중 개 잘될 듯
└공부하는 분위기(진짜임)
└교실에서 담배 피우게 생겼는데 공부를 잘하는 게 말이 됨?
└펄달프상 수상(진짜임)
└제일 길드에서 연구소장으로 데려가려고 함(진짜임)
└개량형 실드 아티팩트 개발자(진짜임)
└시발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저 얼굴로 아티팩트를 어떻게 만드냐고
—ㅇㅇ
—제목 : 임호영 교수님 랩실 어떻게 들어감?
(교수실 문.jpg)
아티팩트 만들다 왔는데 넣어주겠지?
└이미 풀방인 랩실입니다
└ㅇㅇ) ?
└학년당 10명 + 석박사인데 1학년은 다 참
└1학년으로 입학한 거면 다 찼고 편입으로 들어온 거면 자리 있을 텐데?
└ㅇㅇ) 어 시발 좆됐네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콘)
└근데 막 넣어주지도 않음
└아티팩트 만드는 데 마나 많이 필요해서 각성자만 받는 것 같더라
└ㅇㅎ 처음부터 글러 먹었구먼
—ㅇㅇ
—제목 : 임호영 교수님 중력 연구? 그거 뭐냐?
(공간이 일그러진 시료 병.jpg)
다른 학과인데 이거 도대체 어디서 가져오는 거임?
└놀랍게도 민수 형님이 제작하는 중력 가루다.
└민수 형님은 못 하는 게 뭐임?
└체스
└정말로 못 할까?
└아 ㅋㅋ 못하실 거라고
└ㅋㅋㅋㅋㅋㅋ
└기초과학 <- 의외로 꿀통인데 아무도 모름
└ㄹㅇ 지금 다른 랩실 다 중력 연구한다고 방학에 풀 출근 했음
└왠지 방학인데 사람이 많더라
—ㅇㅇ
—제목 : 하이스트 의외로 다닐만한데?
(걸어 다니는 거위.jpg)
농촌 온 기분임
└아니 ㅋㅋㅋㅋㅋ 누가 학교에서 저런 걸 기르냐고
└퍼리도 한 명 들어옴 개꿀임
└만져도 되겠지?
└경찰서에서 미팅할 듯
└도대체 수상한 놈들은 왜 만질 생각부터 하는 거지?
└너도 귀여운 강아지 보이면 만질 거잖아
└흠
└흠은 시발 남의 개를 왜 만져
—길드렉카
—제목 : 헥사 실드 개량판 출시
(방패.jpg)
경량화 + 마법 효율 상승
실드 유지 시간 40% 증가
가격은 850억 원으로 책정
└캬~ 미친 새끼들 이거 누가 삼?
└없어서 못 판다
└이거 사다가 탱크에 박아야 한다고 ㅋㅋ
└플라즈마 실드는 뭐 없음?
└하나 주우려고 했는데 물량이 없어요
└비행기랑 우주선에 박는다고 민간에 풀리지도 않음
—터리조아
—제목 : 제일 길드 신제품 초코바 출시!
(초고밀도 초코바.jpg)
20개 한 박스에 100만 원입니다.
제일 길드 팬미팅에서 시식할 수 있습니다.
└이 새낀 왜 다른 길드 광고를 해주는 거임?
└터리조아) 제일 길드에 퍼리가 많음;;
└일리가 있어
└손가락 2개 크기의 초코바가 1kg? 시발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팩트)다
└각성자나 초코바처럼 먹지 우리한텐 사탕임 ㅇㅇ
└어지간한 사람은 저거 들지도 못 할 걸?
—ㅇㅇ
—제목 : 태양 길드는 뭐 없음?
(설표.jpg)
제일 길드는 맛있는 거 만드는데
└용박이) 500kg짜리 호박은 있는데
└그걸 어떻게 가져가냐고
└작은 거 내놔
└용박이) 50kg짜리 수박도 있는데 이건 ㄱㅊ?
└시발 수박 50kg을 누가 처먹어
—음탕한꼬리로나를
—제목 : 헤으응
(레스타이거 발바닥 쿠션에 깔린 사람.jpg)
헤으으응
저를 더 매도해 주세요
└이 새낀 진짜 돌아버렸네
└우리 업계에선 포상입니다만?
└어지럽다
└난 손바닥 쿠션도 없는데
└나만 쿠션 없어~
└도대체 물량이 왜 안 풀림? 퍼튜브 이 씹새끼들 태업함?
└방마다 둬야 해서 내가 20개 삼
└범인이 여기 있었네
—ㅇㅇ
—제목 : 중국 근황
(폐허가 된 도시.jpg)
살려줘
└이 새낀 왜 아직도 여기 있음?
└비행기가 안 온대
└ㅇㅇ) 아니 ㅋㅋ 돈을 안 주는데 비행기가 왜 오냐고
└비상착륙 한다고 지난달에 20대 착륙했다던데
└ㅇㅇ) 중국이 얼마나 큰데 20대에 다 타냐
└요즘 농산물 수출한다고 배 좀 가지 않음?
└ㅇㅇ) 내륙과 가까운 것 같지만 1,000km 떨어져 있음
└스케일이 시발 ㅋㅋ
└하루에 20km씩 걸으면 50일이면 충분하겠네
└가다가 몬스터한테 잡아먹힐 듯
—유우키
—제목 : 도쿄 근황
(건물보다 탑이 더 많은 도쿄.jpg)
이거 누가 치워주냐
└ㄹㅇㅋㅋ
└언제 철거하냐고
└철거하다가 더 나타날 듯
└이제 좀 낫지 않음?
└유우키) 새로 나타나는 건 헌터 투입해서 바로 없애는데 방치된 건 노답임
└돈 많이 벌잖아 한잔해
└레이저 아티팩트? 그거 좋아 보이더라
└얘넨 양산 속도가 왜 이리 느림? 뭐 나왔다는 말은 있는데 현장에서 쓰는 꼴을 못 봄
└유우키) 양산하려고 하면 신기술 나와서
└ㅋㅋㅋㅋㅋㅋ
수업이 끝나자, 김경민이 다가왔다.
“민수 형님도 온리펄스 보시나요?”
“아뇨.”
예전엔 다른 퍼리는 어떻게 활동하나 궁금해서 구독했었는데 안정 궤도에 오른 뒤엔 구독을 해지했다.
“아쉽네요. 세상에 퍼리 만큼 좋은 게 없는데.”
느껴진다.
나를 계속 떠보면서 정보를 얻고 내가 좋아할 만한 게 있으면 그걸 공략하며 친해지려는 거야.
그게 마냥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결국 내게 손해를 입히려는 사람이라 곁에 두면서 어떻게 행동할지 보고 싶은데도 그러기가 힘들다.
랩실로 가는 데 따라온다.
같은 랩실이 아닌 건 아는데 왜 따라오는지 몰랐지만, 옆 랩실로 가는 걸 보니 길이 같았나 보다.
“내일 봬요.”
“네.”
까다로운 사람이야.
***
30살, 키 165cm, 몸무게 60kg, 김경민은 하이스트에 입학했다.
‘950억 원을 기부하고 말이지.’
이번 하이스트는 역대급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입결을 보여줬다.
학사, 석사, 박사, 해외유학파, 의대 지망생 등등 모든 사람이 하이스트에 지원했고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면서도 각성자인 사람들이 입학했다.
그들과 같이 입학했다는 것만으로 자신의 주가는 상승했고 같은 커리큘럼을 따라가며 공부하면 인생이 피는 건 확정.
모든 게 완벽했다.
‘HO랩에 들어가지 못한 건 아쉽지만 말이지.’
기부입학은 입학만 보장해 주지 그 외에 다른 걸 해주진 않았다.
그럼에도 괜찮았다.
가문에서 지원해 주는 막대한 양의 자금은 김민수의 바로 옆 랩실에 꽂아줄 정도로 충분했으니까.
“민수 씨는 아티팩트를 만들 때 어떤 철학으로 만드시나요?”
“쓰기 편하면 돼요.”
“거대화 특성을 찍었으니 그럴만하죠. 듬직하셔서 좋겠어요.”
각성자라며 올려 쳐 주며 칭찬까지 해주면 좋아하긴 하는데 은근히 넘어오질 않는다.
‘각성자라서 산전수전 다 겪어서 익숙한 건가?’
각성자는 부유하기에 돈보단 사람의 됨됨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비싼 시계, 비싼 옷, 비싼 차를 자주 봤고 통장에 돈이 많으니 사고 싶으면 사고 필요한 게 있으면 통장도 안 보고 사다 보니 돈에 무감각해진 것.
대련 교관으로 많은 돈을 벌고 펄달프상을 수상하며 인기와 명성까지 얻은 김민수의 호감을 얻는 건 힘든 일이었다.
“수정아, 이거 내가 새로 만든 바디워시 시제품인데 써볼래?”
“저는 퍼리라서 전용 바디워시를 써야 하는데요.”
“그거까지 생각해서 만든 거야. 마법으로 만든 거라 더 좋아.”
“고마워요.”
‘젠장. 나도 퍼리였으면 쉽게 다가갈 수 있었을 텐데.’
상관없다.
빠르게 친해질 필요는 없고 학교생활에 익숙해지며 주변인과 친해지다가 김민수와 친해지면 목표 달성이니까.
···
—ㅇㅇ
—제목 : 털파랑 신제품 뭐냐고 ㅋㅋ
(퓨어 소프 바디워시.jpg)
퍼리 전용 바디워시 출시
거대화 특성 찍었으면 3번만 짜도 충분하다고 함
└이거 냄새 맡아봤는데 은은하게 좋은 게 털에 섬유유연제 묻힌 줄 ㅋㅋ
└과하지 않고 은은하게 향기로운 게 ㄹㅇ 개미침
└킁카킁카 헤으응
└퍼리들 다 이거 쓰는 거 같던데
└ㅇㅇ
└털에 뭐 묻으면 닦기 힘든데 이거면 다 닦임
└퓨어 소프는 세제 아니었냐고
└세정력 낮추고 향기만 극대화한 거
└이거 하수구에 부어도 똑같이 깨끗해짐 많이 부어야 해서 그렇지
—터리조아
—제목 : 털ㅋㅋㅋㅋㅋ
(퓨어 소프 바디워시로 샤워하는 설표.jpg)
이거 개미쳤다 ㅋㅋㅋㅋㅋ
└ㅗㅜㅑㅗㅜㅑㅗㅜㅑㅗㅜㅑ
└터리조아 님 팬이에요
└꼬리 개두껍네 음탕한 놈 때리면 좋아할 듯
└이거 왜 퍼리 아닌 놈들도 삼? 마트에서 봄
└냄새 오래가서
—와스타이거
—제목 : 털파랑 <- 신임
(욕조에 들어가 있는 백호.jpg)
편의점 갔는데 냄새 좋다고 뭐 쓰냐고 함 ㅋㅋㅋㅋㅋ
└털ㅋㅋㅋㅋㅋ
└이게 10만 원이나 할 가치가 있음?
└와스타이거) 씻고 자면 잘 때 털이 포근한 이불 같아져서 꿀잠 잠
└이게 왜 지금까지 없었지?
└그냥 바디워시만 써도 되니까
└있긴 함 수요가 너무 한정적이고 아티팩트라 비싸서 안 쓴 것임
└바디워시 한 통에 50만 원인데 퍼리 놈들은 털 많아서 여러 번 짜야 했음 한 달에 바디워시로 200 쓸 바엔 안 쓰지
—ㅇㅇ
—제목 : 실시간 공항 근황
(가득 쌓인 물류 택배.jpg)
ㅅㅂ 바디워시 직구 뭐냐고
└아 ㅋㅋ 퍼리는 전 세계에 퍼져있다고
└싼마이로 쓰는 건데 잘 팔리네
└이게 효과 더 좋을걸? 한 번만 짜도 돼서
└ㅇㅇ 거대화 특성 찍은 사람은 기존에 반 통은 썼어야 하는데 이건 3번만 짜도 됨
└도대체 이걸 어떻게 만들어야 10만 원에 팖?
└펄달프상 수상자 <- 모든 의문이 해결됨
└뭐 어떻게든 만들지 않았을까?
└우리한테 설명해 줘도 모를 듯
└ㅋㅋㅋㅋㅋ
‘친해질 수 있을까?’
친해져야 하는데 김민수가 너무 잘 나간다.
큰 체격과 많은 돈과 엄청난 업적을 세운 김민수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었고 칭찬을 해주며 가까워져야 하는데 칭찬에 면역이 있는지 쉽사리 친해지질 않는다.
그래서 옆 랩실 사람들에게 슬쩍 물어봤다.
“민수 씨는 요즘 뭐 한데요?”
“개인 연구는 안 하고 저희가 하는 연구만 도와줘요.”
“예? 왜요?”
“더 할 게 없다던데요.”
‘사업 때문에 연구는 멈춘 건가. 펄달프상 하나 더 받는 게 맞을 텐데 가진 게 너무 많은 사람이라 욕심이 없어.’
친해지고 싶어서 미치겠는데 도저히 진전이 없는 막막한 이 상황.
새 학기가 됐을 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나중에 쉽게 친해질 텐데 다른 사람이라면 넘어오고도 남았을 시간에 거리가 멀어지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 돈과 시간을 더 쓰면 해결되겠지.’
정작 김민수는 김경민을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이야, 중력에 관한 연구도 벌써 많이 진척됐네요.”
“중력 가루에 마법을 부여한 아티팩트, 중력 소자를 완성한다면 인류는 위대한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겁니다.”
“꾸준히 중력 가루를 공급한 보람이 있네요.”
“펄달프상과 노벨상을 같이 수상할 수 있을 겁니다.”
노벨상이 눈앞에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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