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1)
무더운 5월.
대전은 빵 발사로 바쁘고 하이스트는 중력 연구로 바쁘고 랩실 사람들은 개인 연구로 바쁜 시기.
평소처럼 랩실에 박혀서 사람들이 도와달라는 걸 도와주는데 흰색 늑대 퍼리가 다가왔다.
“오빠, 물질 분해를 촉진하는 가루를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분필 같은 거에 마법을 부여하고 갈면 돼.”
“좀 더 밀도 있게 마법을 담을 소재는 없나요?”
“몬스터의 뼈. 근데 비싸고 단단해서 가공이 어려워.”
고기가 넘쳐나는 만큼 뼈도 넘쳐나지만 뼈가 워낙 크고 무겁다 보니 직접 가져오는 게 아니라면 운송비 때문에 비쌀 수밖에 없다.
“이미 가루 낸 거에 마법을 부여하면요?”
“잘 안되던데. 물질 분해는 어디에다가 쓰게?”
“쓰레기가 많잖아요. 거기다가 뿌려서 없앨까, 했죠.”
태우면 간단하지만, 안 타는 것도 있고 연소 과정에서 유독가스가 발생하니 나쁘지 않을지도.
최근 싸진 밀가루를 이용해 식빵을 그릇처럼 쓰다 보니 친환경 붐이 일었다.
유행에 탑승하면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 같단 말이지.
마침 재료는 남아도는 몬스터의 뼈고 마법을 부여하는 아티팩트를 제작해서 마나만 밀어 넣으면 쓰레기를 무한으로 없앨 수 있다.
“넌 좋은 아이디어가 많아서 좋아. 이걸로 사업 한번 해볼래?”
“네? 그 정도 돈은 없는데요.”
“돈은 만들면 돼. 가자.”
이수정은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따라왔고 우리는 태양 길드 연구동에 도착했다.
“이곳에 도움이 되는 실험 도구가 있나요?”
“아니, 돈이 있지.”
연구소 가장 깊은 곳.
아티팩트를 가장 잘 만드는 수석 연구원이 있는 곳의 문을 열자, 거대한 드래곤 퍼리가 앉아있었다.
“선배~ 무슨 일이에요?”
“투자를 좀 받고 싶어서.”
이수정을 앞으로 밀자 뭘 만들고 뭘 하고 싶은지 말했다.
용박 씨의 표정을 보니 흥미 있지 않고 돈이 될 것 같지 않아서 무덤덤한데 나를 힐끔 보더니 입을 열었다.
“좋은 생각이네요. 진행하죠. 마나석 채우는데 쓰는 인원을 100명 제공해 드릴게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마법을 부여하는 아티팩트는 엄청나게 많은 마나가 필요하다.
나야 영약을 사용해서 뭔가를 만들 때 막히는 일이 없지만 각성자라고 할지라도 마법 부여는 며칠이나 걸리는 일.
이럴 땐 다른 사람의 마나를 사용해서 아티팩트를 발동시켜야 하는데 그 사람을 제공해 주겠다고 한 거다.
“대신 태양 길드 지분도 있는 겁니다.”
“당연하죠.”
···
“기존보다 10배는 더 빠르게 썩힐 수 있네요.”
“성능 확실하구만.”
“근데 이거··· 돈이 안 되잖아요.”
“어떻게 돈으로 바꿀지는 네가 정해야지.”
기술은 개발됐다.
근데 이걸 만들어서 판다고 돈이 될까?
분해 가루 10kg으로 쓰레기 100kg을 10배 빠르게 썩힐 수 있는데 그 누가 여기에 돈을 쓰고 싶을까.
“이거 10kg짜리 만들어서 팔 거면 최소 250만 원에 팔아야 해요. 쓰레기 1t을 빠르게 분해하기 위해 2,500만 원이 드는 건데··· 오빠는 도대체 세제를 어떻게 만든 거예요.”
“세제 2kg은 20번 사용량이니까 괜찮지.”
만들기 힘들고 무겁고 효율도 별로인 결과물.
연구 논문으로는 충분하겠지만 그게 끝이다.
“진짜 좋은 제품인데···.”
“아쉬우면 도와달라고 할 사람들이 있지.”
“교수님이요?”
“교수님도 괜찮고 돈줄이 있잖아. 연구소.”
태양 길드에 너무 의지하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워하지만 그렇다고 의지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아이디어만 있고 추진할 능력이 있다면 도와주고 연구원은 할 수 없는 생산부터 판매까지 다 해줄 테니까.
“··· 이렇게 좋은 제품을 버릴 순 없어요. 태양 길드가 대량 양산해서 팔면 저한테 뭐라도 떨어지겠죠.”
분해 효율을 높이는 방법은 알지만, 나는 아티팩트를 만들어 주고 태양 길드 연구소와 이어줄 뿐 별로 관여하지 않았다.
내게 의지하는 것보단 같은 연구원끼리 친해져야 하고 전태양이 그러라고 연구소를 세워준 거였으니까.
용박 씨를 찾아갔다.
“이게 이런 문제가 있는데··· 해서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해서 왔습니다.”
“국제 아티팩트 발명회가 있는데 태양 길드가 부스를 할당받았거든요. 거기 출품해 줄게요.”
“감사합니다!”
“대신 양산은 충분히 해둬야 하고 시연으로 계획까지 구상해 둬야 해요. 그곳에서 며칠 내내 놔두며 썩히는 걸 보고 있을 순 없잖아요.”
“네!”
파닥파닥!
기분 좋은지 꼬리가 프로펠러라도 되려는 것 같다.
“잘됐네. 거기서 호구만 찾으면 바로 돈방석에 앉는 거야.”
“호구라뇨. 돈통이라고 부르죠.”
***
키 165cm, 몸무게 60kg, 변신(F-), 이수정은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내가 하이스트에 다니고 있어!’
펄달프상을 배출한 학교!
곧 노벨상을 받을 학교!
세계 최고의 연구시설과 인재들!
모두가 들어가고 싶어 하는 랩실 소속!
“뭐 도와줄 거 없어?”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거대하면서 친절한 선배.
“분해 효율을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을까요?”
“나는 재료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뼛가루는 표면에만 달라붙고 물에 녹지 않아서 효과가 낮아.”
“하지만 그런 재료는 너무 비싼걸요.”
“비싸진 만큼 효율이 높아지면 더 싸졌다고 볼 수 있지.”
“재료를 찾아볼게요.”
‘싸고 가볍고 토양오염이 없으면서 마법 부여가 잘 되는 재료가 뭐가 있을까.’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루 종일 검색만 하다가 딱 맞는 재료를 발견했다.
“몬스터의 가죽을 재료로 쓰면 될 거 같아요. 마법 부여도 잘 되고 뼈보다 싸고 가볍고 생체물질이라 분해를 도와줄 거예요.”
“그래? 연구소로 가서 한번 만들어 보자.”
마법 부여가 잘되지 않고 수분 조절을 못 하면 썩어버리며 담겨있던 마법이 사라졌다.
“혹시 액체에 마법 부여를 해도 될까요?”
“밀봉만 잘하면 상관없지.”
“시도해 볼래요.”
액체에 담기는 마법은 고체 이상.
1kg의 액체로 10kg의 뼛가루와 같은 성능을 냈다.
‘액체라서 표면만 작용하던 단점이 사라졌다.’
“전보다는 싸졌겠지만, 여전히 비싼 건 맞아.”
“아티팩트 효율을 올릴 수는 없을까요?”
“마나 회로를 잘 짠다면 가능할 것 같은데.”
태양 길드 연구소로 가서 지금까지 성과와 마나 회로 개선에 관해 물으니 장인 수십 명이 달라붙어서 마나 회로를 개선해 줬다.
‘효율이 20%는 올라갔다. 100만 원에 팔 수 있을 정도야.’
그럼에도 여전히 너무 비쌌다.
그 누가 쓰레기 100kg을 분해하겠다고 100만 원을 쓸까.
거대한 드래곤 퍼리가 말했다.
“꼭 아티팩트 하나만 쓸 필요는 없죠.”
“···?”
“잘 썩는 물질에 섞어서 뿌리면 되지 않나요?”
어차피 분해하는 게 목적이라면 분해를 돕는 액체에 희석해서 뿌리자는 거였다.
그 이후로 거의 연구소에 살다시피 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고 도살장에서 버려지는 생체물질을 섞어서 생산 단가와 효율까지 잡을 수 있었다.
“수석 연구원님. 그래도 너무 비싸요. 50만 원에 쓰레기 100kg을 분해한다면 누가 사겠어요.”
“사게 만들어줘야죠.”
“여기서 더 개선할 게 있나요?”
“우린 없지만 쓰레기는 건드릴 수 있죠.”
“?”
“쓰레기를 갈아서 표면적을 넓혀줍시다.”
쓰레기에 닿는 표면적은 넓을수록 좋으니 아예 쓰레기를 갈아서 가루로 만드는 자동차까지 등장했다.
‘이게 맞나?’
하지만 이것 외엔 방법이 없었고 국제 아티팩트 발명회가 다가왔다.
“발명회를 뒤집으러 가보자고요.”
···
큰 포부와 다르게 이곳엔 신기하고 유용한 아티팩트가 넘쳐났고 화려하거나 빠르지 않은 분해 물질은 철저히 외면받았다.
그나마 태양 길드가 있는 부스 옆에 붙어있어서 사람은 오는 편이었지만 그게 전부.
“신기한 아티팩트네요. 쓰레기를 분해하는 아티팩트라니.”
“한 번 구경해 보실래요?”
“그러죠.”
빵 한 조각을 접시에 두고 분해 마법이 담긴 액체를 붓자 서서히 부패하더니 금세 곰팡이 덩어리가 되어 쪼그라들었다.
신기하긴 하지만 겨우 그게 전부인 조잡한 마법.
하지만 구경하던 남자는 눈이 둥그레져 있었다.
“ho랩실? 임호영 교수님 랩실 아닙니까?”
“맞아요. 이 제품은 태양 길드와 협력해서 만든 제품이에요.”
“그러고 보면 여기 적혀있는 기여자에 김민수는···.”
“펄달프상을 받은 그 김민수예요.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 남자는 사진만 수십 번은 찍고 갔다.
‘뭐지? 기자인가? 좋은 기사 좀 내줬으면 좋겠다. 돈하고 시간을 갈아 넣었는데 기사 한 줄 안 나오면 억울하단 말이야.’
꿈이 이루어진 걸까?
외국인 수백 명이 몰려와서 어떤 아티팩트냐고 질문하기 바빴고 빵을 금세 곰팡이 조각으로 만들자 신기해하기 바빴다.
“(김민수)”
“(민수 킴)”
“(펄달프 프라이즈)”
“(노벨 프라이즈)”
아티팩트의 효과 때문이 아닌 김민수의 이름 때문에 몰렸다고 할지라도 상관없다.
“(이 제품을 구매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노력이 헛된 게 아니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ㅇㅇ
—제목 : 아티팩트 발명회에 김민수 작품 등장
(흰색 늑대 퍼리.jpg)
은근슬쩍 스리슬쩍 퍼리 앞세워서 홍보 중이었음
└엌ㅋㅋㅋㅋ 아까 지나갔는데 사람 왜 이리 많아짐?
└따라 하면 돈이 되거든
└아직 제염 공장으로 돈 번 사람 없지 않음?
└알빠노(진짜임)
└근데 왜 김민수 없음?
└영어 못해
└?
—길드렉카
—제목 : 태양 길드 부스 근황
(흰색 늑대 퍼리 앞에 몰린 사람들.jpg)
태양 길드 <<<<<<<< 김민수
└아니 ㅋㅋ 실드 아티팩트는 군납이라서 안 판다고요
└부럽지? 구경해
└ㅅㅂ 나도 하나 주워둘걸
└10억에 팔 때가 제일 쌌다
└저거 뭐임?
└ㅁ?ㄹ 뭔 액체던데
—ㅇㅇ
—제목 : 근들갑ㄴ
(빵이 순식간에 썩는.gif)
분해 마법으로 쓰레기 빨리 분해하는 물건임
└저거 있으면 음식물 쓰레기 안 버려도 됨?
└집에서 곰팡이 키우게?
└거의 생화학 테러
└어디 씀?
└어디든 쓰지 않을까?
└프랑스에서 센강 똥물이라고 계약한다던데
└은근히 쓸데가 있었군
—ㅇㅇ
—제목 : 저거 원래 쓰레기 매립지에 쓰는 거임
(시연 영상.mp4)
반응 안 하는 유리나 금 같은 거 빼고 다 썩어서 거름으로 바뀜
└이거 개미쳤는데?
└걍 쓰레기 매립지에 부으면 쓰레기가 증발하는 거 아니야
└ㄹㅇㅋㅋ 쓰레기가 삭제된다고
└자연으로 환원시키는 거야!(쓰레기를 묻으며)
└맞지 매립이 진짜 친환경이지 ㅋㅋㅋㅋㅋㅋ
└친환경의 정상화
—ㅇㅇ
—제목 : 뭐 쓰레기 분해하는 게 대단한 건가?
(시연 영상.mp4)
태우면 공짜인데
└석유는 니가 만듦?
└언제 소각장까지 가서 태우냐고 모아서 거름 만들면 되지
└사람 쓰는 것도 다 돈인데 저건 매립장에 스프링클러 하나만 달아놓으면 끝임
└매립지도 사람 투입해서 관리해야 함 가스 나와서 근데 그걸 없앨 수 있음 매립지의 정상화임
└댓글 보니까 대단해 보이네
└ㄹㅇ 저거 어디다 쓰나 싶었는데 진짜 돈이 됐던 거임
└사는 사람이 있긴 함?
—ㅇㅇ
—제목 : 오피셜로 매립지 없애겠다고 뜸
(미국 뉴스.jpg)
땅이 넓은데 왜 없애냐고?
홍수로 매립지 대량 유실 일어나서 쓰레기 7,700억 톤이 바다로 쓸려나간 PTSD가 있거든
발작 버튼 누른 거임
└시발 ㅋㅋ 진짜 돈이 됐잖아
└??? : 공포에 만들어라
└??? : 나는 물을 들여와서 저어
└??? : 왜 돈 되는 걸 안 만들까?
└우리 대가리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요
└김민수는 뭔가 별거 아닌데 돈 되는 거 존나 잘 만들어서 신기함
└ㄹㅇ 난 그냥 실드 아티팩트 만들어서 팔 생각밖에 못 하는데
“똥을 싸도 박수를 쳐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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